브라질 제국

브라질의 역사
História do Brasil
원주민포르투갈 피식민지근현대





포르투갈 제국이베리아 연합포르투갈 제국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르브
연합왕국

페르남부쿠 공화국
브라질 제국
히우그란지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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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총독령

(리우데자네이루 총독령,
바이아 총독령)
브라질국

마라냥국
네덜란드령 브라질
그랑파라
마라냥국
그랑파라
히우네그루국
마라냥
피아우이국
브라질 제국
Império do Brasil
국기국장
1822년 ~ 1889년
표어Independência ou Morte!
(독립이 아니면 죽음을!)
국가독립의 찬가
위치남아메리카
수도리우데자네이루
정치체제입헌군주제
국가원수황제
언어포르투갈어
종교로마 가톨릭
주요사건1822년 독립&건국,제국선포,
페드루 1세 즉위
1825년~1828년
브라질-아르헨티나 전쟁
1831년
페드루 1세 퇴위
->페드루 2세 즉위
1864년~1870년
삼국동맹전쟁
1888년 노예제 폐지
1889년
페드루 2세 강제 퇴위
->제국 해체
통화헤알
성립 이전브라질국[1]
멸망 이후브라질 제1공화국,우루과이

1 개요

1822년 포르투갈 왕국으로부터 독립하여 오늘날의 브라질에 세워진 제국이다. 1889년에 브라질이 공화국으로 전환되면서 멸망하였다.

2 역사

나폴레옹포르투갈을 점령하자 포르투갈의 브라간사 왕가가 거대하고 부유한 식민지인 브라질로 망명하게 되는데 식민지였던 브라질은 거의 본토에 준하는 가치를 가진 영토로 격상하면서 포르투갈의 중심지로 성장하게 된다. 특히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는 한때 포르투갈의 수도로 선포되기도 했는데, 이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도시가 수도로 선포된 유일한 사례다. 신성 브리타니아 제국 나폴레옹이 워털루 전투의 패배로 세인트헬레나로 귀양을 가자 브라간사 왕가는 1821년 다시 포르투갈로 귀환하나, 이미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단순한 식민지로 남아있을 의사가 없을 정도로 성장했고 그에 따라 막강한 발언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자치권도 확대되었다. 결국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단순한 식민지에서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베 연합 왕국을 선포할 정도로 성장했으며, 리스본의 본국 정부는 브라질 자치 정부에 대해 간섭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포르투갈 본국 정부가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결국 포르투갈 의회는 연합왕국을 해체하고 브라질을 단순한 식민지로 격하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브라질인들은 격분했고 결국 주앙 6세의 아들인 페드루 1세가 1822년 9월7일 독립을 선포하고 10월 17일 제국을 선포했으며, 1824년 3월 25일에 헌법이 제정되고, 1826년 5월에 의회가 열리면서 브라질 제국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초대 황제 페드루 1세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았으나 갓 독립한 나라들이 대개 그렇듯이 국가 내부의 대립과 반목이 극심했고 페드루 1세는 대립을 진압하기 위해 전제주의적인 통치 방식을 택했고 이는 역효과를 낳아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남부의 시스플라티나 주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아 우루과이로 독립하자 황제는 아르헨티나에 선전포고했는데 징집령에 반대하여 폭동이 일어나는 판국이었고 아르헨티나 군대는 브라질의 함대를 전멸시켜 거의 브라질 해안을 능욕하는 한편 유럽 용병과 소수의 징집병으로 구성된 브라질 군대를 개발살내버리고 브라질 본토까지 유린했다. 결국 1828년 우루과이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페드루 1세의 인기는 개발살나고 말았다.황제를 반대하는 폭동까지 일어나자 질려버린 그는 1831년 불과 5세인 아들 페드루 2세에게 제위를 물려주고 포르투갈로 도망돌아갔다.

그의 아들인 페드로 2세 마그나니머스장장 58년간 재위하면서 많은 치적을 쌓았다. 1847년부터 총리 제도를 실시하였고, 흑인들과 인디언들로 구성된 노예들을 부리는 플랜테이션 농업으로 자본주의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1864년 강성해진 파라과이가 호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자 아르헨티나, 우루과이와 연합하여 박살내버렸고 파라과이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솔라노 로페스는 궁지에 몰린 후에도 항전을 계속하다 전사했다 . 브라질은 6년간의 전쟁 끝에 예전부터 탐하던 마투그로수 주를 크게 확대시킬 수 있었으며 도합 1만4천 제곱킬로미터의 영토를 아르헨티나와 나눠먹었으며 이과수 폭포를 삼등분했다.

한편 브라질은 아메리카에서 노예제가 유지되는 마지막 나라였는데 예전부터 노예제를 좋아하지 않았던 페드루 2세는 1888년 전격적으로 노예제 폐지에 서명했다. 허나 이 과격한 개혁은 농장주들과 자본가들의 큰 불만을 불러일으켰고, 이들 중 상당 수를 공화주의자로 전향하게 만들었다. 또한 페드루 2세의 치세 기간 동안 나라가 안정되면서 식자층이 크게 늘었고 황제 자체를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 못마땅하게 여기는 공화주의자들이 매우 늘었다. 결국 이들의 합세로 1889년 11월 15일 브라질 의회는 제정의 폐지를 선포했고 페드루 2세와 그 가족들을 국외로 추방했다. 페드루 2세는 그 말을 듣고 즉각 수락하여 포르투갈로 떠나버렸다. 페드루 2세와 그 가족들은 유럽의 호텔을 전전하면서 어렵게 살았고 1891년 페드루 2세는 당뇨병과 폐렴이 겹쳐 파리에서 숨지고 만다. 한편 브라질에서는 황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1920년 황제의 시신을 도로 브라질로 모셔왔으며 그의 이름을 딴 도시인 페트로폴리스에 안장했다.

3 후일담

오랜 군부 독재와 부패에 지친 브라질에선 1990년대에 난데없이 대대적인 제정 복고 운동이 벌어져 1993년 4월 국가 정체(政體)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졌다(공화국/군주국, 내각제/대통령제). 유효표 중 복벽을 지지하는 결과는 13.4%였으며 상파울루,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비교적 높은 지지를 얻었다. 그래봤자 16% 좀 넘는 수준이지만...

여담으로 브라질 제국은 사라졌으나 브라질 황제의 직책만은 남았고 페드루 2세보다 오래 산 유일한 자식인 딸 이자베우가 그 직책을 승계하게 된다. 이자베우의 사망 이후에는 그녀의 손자 페드루 엔히키 왕자가 승계하였고, 브라간사 왕가는 오를레앙-브라간사 왕가로 이어진다.

4 각종 매체에서

  1. 포르투갈 왕국의 식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