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즈네프 독트린

1 소개

공산당판 제국주의론

소련의 제5대 서기장레오니트 브레즈네프1968년 11월에 폴란드 공산당 5차 대회의 연설에서 발표한 독트린이다. '제한주권론'이라고도 한다.
이 독트린은 그 해 8월에 소련군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프라하의 봄을 막기 위해 군사개입한 것을 정당화하는 주장이다. 독트린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회주의 진영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별 국가의 주권은 제한될 수 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세력들이 사회주의 국가를 자본주의 국가로 바꾸려고 하거나, 공산권 국가가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행동을 하려고 한다면 그 해당 국가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진영 모두에게 문제가 되므로 소련은 그 해당 국가로 전차를 몰고 가서 반동분자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려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물론 국제법상으로는 엄연한 내정간섭이지만 당시 소련이 최전성기였던데다 이미 냉전이 굳어진 시점이고, 미국베트남의 늪에 빠져 있었기에 서방 국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비난밖에 없었다. 역설적으로 보면 서방의 개입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기에 이럴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결국 소련은 기어코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20만 대군을 체코슬로바키아에 파견하여 폴리시 어퍼컷게르만 로우킥으로 프라하의 봄을 잠재워버린다.

물론 소련도 직접 개입은 부담이 컸는지[1] 브레즈네프 독트린이 적용된 건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 이전까지는 소련의 영향력 하에 있는 중앙유럽 국가에 대한 압박 용도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 예로 폴란드에서 1980년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결성된 폴란드 연대노조가 총파업을 일으켰을 때, 이 독트린에 의거하여 소련군이 출동 준비를 갖추고 폴란드 정부를 압박하자, 이에 폴란드 군부가 스스로 1981년 12월 13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바웬사를 비롯한 폴란드 자유노조원들을 체포한 것을 들 수 있다.

1988년 3월에 일명 '신사고(新思考) 외교'[2]를 펼치던 미하일 고르바초프유고슬라비아베오그라드를 방문하여 발표한 소련의 새로운 외교방침인 이른바 '신(新) 베오그라드 선언'에서 브레즈네프 독트린을 부정함으로써 이 독트린은 비로소 폐기되고 이후 동구권 민주화의 불씨를 댕기게 된다.

2 관련항목

불사조가 즐겨본다고 한다 #[3]
  1. 위성국가라고 해도 주권이 인정되는 주권 국가였기 때문에 소련 입장에서는 남발하기에는 부담이 컸다. 서방만큼은 아니라도 바르샤바 조약기구 역시 그 나라 국민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요구되는데다 혼란이 장기화되면 미국이나 유럽이 손을 쓰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2.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소련이 펼친 외교정책. 신사고 외교를 주창한 소련 정부는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철폐,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의 철수, 동서대립의 해소, 동구권의 민주화와 독일 통일의 용인, 핵무기 감축 정책을 펼쳤다.
  3. 제목이 <브레즈네프 독트린으로부터 페레스트로이카까지 소련의 몰락과 대두되는 민족주의를 통해 본 청계천 민물고기의 생태와 프라하의 봄 관광코스 개발을 서두르는 천민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력>이다. 민물고기만 빼면 그럴 듯한 책인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