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더 키드

본명윌리엄 헨리 맥카티 주니어(William Henry McCarty, Jr.)
가명윌리엄 H. 보니(William H. Bonney)
헨리 앤트림(Henry Antrim)
별칭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
생몰년도1859년 11월 23일 ~ 1881년 7월 14일
출신지뉴욕
신체5 ft 7 in (170 cm), 61kg[1], 오른손잡이[2]
특징벽안, 뻐드렁니, 달변가

1 개요

본명은 윌리엄 헨리 매카티 주니어로, 흔히 빌리 더 키드(Billy The Kid)로 더 잘 알려져있다. 서부 개척시대 때 활동했던 범죄자.

2 상세

2.1 전설적인 총잡이

서부개척시대였던 1859년에 태어난 빌리더 키드는 어릴 때부터 비범했다. 12살이 되던 해, 자신의 어머니를 강제로 범한 남자를 자신이 평소 들고 다니던 접이식 나이프로 찔러 죽였는데 이 것이 그의 첫 살인이었다. 이후 그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후 떠돌이 생활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가 15세가 되던해에 처음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한다. 그러나 그는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그는 사망할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을 하던 그는 1877년에 뉴멕시코 주의 링컨 카운티의 존 턴스톨이라는 인물의 밑에 들어가게 되면서 그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게 된다. 바로 경쟁자들을 처단 하는 것. 존 턴스톨의 상점은 승승장구 하고 있었으나 그의 사업을 방해하는 두 사람, 10년 전부터 링컨 카운티의 상권을 주름 잡던 로렌스 머피, 제임스 돌런 이 두사람이 눈 엣 가시였다. 물론 그 두사람도 존 턴스톨이 탐탁치 않아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1878년 2월 18일에 마을의 보안관이었던 윌리엄 브래디에게 뇌물을 줘서 상거래 문란 혐의로 존 턴스톨을 체포해서 그를 제거하고자 했다. 이때 존 턴스털은 체포 과정에서 보안관이 쏜 총에 맞아서 숨을 거두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그리고 여기서 빌리 더 키드가 역사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빌리 더 키드는 곧바로 존 턴스톨이 고용한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그의 복수를 결심, 보안관을 비롯해 로렌스 머피, 제임스 돌런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행동을 시작했다. 특히 보안관 윌리엄 브래디와의 혈투는 역사속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었다. 윌리엄 브래디를 사살한후, 정부 당국에서 나서자 빌리 더 키드는 동료들과함께 또 다시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때 내걸린 현상금은 1,000달러. 그의 현상금을 쟁취하기 위해 보안관 두명이 달려들었으나 맨몸으로 이 둘을 제압한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며 빌리 더 키드의 명성은 올라갔고 그 누구도 그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망할때까지 총 21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참고로 멕시코인, 인디언을 제외한 숫자로 그들을 넣으면 배로 올라간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그 후 살인과 강도짓, 경호원 일을 하며 삶을 연명했는데, 그러던 와중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3]이라는 바텐더와 친해지게 된다. 허나 얼마 안 가 팻 개릿이 보안관으로 뽑히게 되고, 빌리는 개릿에게 쫓기다가 1880년 12월.붙잡히게 된다.

그리고 개릿에게 붙잡힌지 4개월 후인 1881년 4월 18일, 탈옥에 성공하고 이것이 뉴욕 타임스에 실리면서 유명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14일, 결국 그를 체포했던 팻 개릿의 총에 맞아 죽고 만다. 이 또한 의견이 분분한데, 실은 탈옥에 성공해 숨어지냈다는 설이 있다. 그러다 1881년, 그의 은신처에서 그는 친우였던 팻 개럿에 의해 사살당한다. 그런 그를 기려서 다음과 같은 묘비가 세워졌다.

Truth and History.

진실과 경력.

21 Men.
21명을

The Boy Bandit King
죽인 소년 악당왕.

He Died As He Lived
그답게 살고, 또한 그답게 죽은

William H. Bonney "Billy the Kid"
윌리엄 H. 보니 "빌리 더 키드"


....라고 흔히들 알려져 있다.

2.2 ...진실

우선 빌리 더 키드, 아니 윌리엄 매카티의 이야기는 살이 굉장히 많이 붙은 이야기다.

  • 우선 윌리엄 매카티의 어머니였던 캐서린 데빈(Catherine Devine)은 그가 보는 앞에서 강간 당한적이 없다. 당연히 그가 12살이 되던해에 살인을 저지른 적도 없다.
  • 그가 처음 범죄를 일으킨 것은 공식적으로 그가 15세였던 1875년 9월에 세탁소에서 옷과 총을 훔치다가 감옥에 가게 되었고 이곳에서 그는 탈출을 감행, 성공한다.
  • 탈옥 이후 그는 애리조나 주에서 목장일을 도우며 근근히 살아 갔는데 1877년 8월 17일, 그를 괴롭히던 인물인 프랭크 케이힐[4]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의 나이 17세.
  • 이후 뉴멕시코 주로 달아난 그는 존 턴스털의 밑에서 카우보이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1878년 2월 18일에 존 턴스털이 체포 당하던 도중 총살 당하자 그를 위해 복수를 결심하고 그와 뜻을 함께하는 카우보이 동료 5명과 함께 1878년 4월 1일 식사 도중 발견한 윌리엄 브래디와 그의 부관 2명을 총으로 쏴 죽인다. 이후 이들은 살인자로써 모든 도시인들의 적이 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동료들은 죽어 나갔고 그를 필두로 도주를 시도 링컨 카운티를 벗어나게 된다.
  •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뉴멕시코 주지사로 부임한 루 윌리스가 링컨 카운티에서 벌어진 사건의 주모자들을 모두 사면해준다는 발표를 한다. 이때 윌리엄 매카티는 루 윌리스에게 자수의 편지를 보냈고 루 윌리스도 그를 사면해주려 했으나 지방검사가 주지사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사형을 구형, 판사도 이를 받아들이며 사형이 선고되었다.
  • 1881년 4월 28일, 교도소에 갇혀있던 윌리엄 매카티는 교도관 제임스 벨과 로버트 올린저를 사살하고 탈옥에 성공한다. 이때 뉴욕 타임즈에 그의 이름이 실리며 서부 제일의 무법자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
  • 그리고 뉴멕시코주 보안관이었던 팻 개릿은 그를 3개월 동안 추적한 끝에 붙잡는데 성공, 포터섬너에 기거중이던 빌리더 키드를 발견하고 그를 사살한다. 당시 맨몸으로 먹을 것을 가지러 방에서 나왔다가 사살되었다고 하는데, 마지막 말은 "Quién es? Quién es?"(스페인어로, 누구냐? 누구냐?) 참고로 팻 개릿은 바텐더로 일한적도 없으며, 그렇기에 당연히 그와 일면식 있던 사람도 아니었다.
  • 그가 총 21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실제 살해한 수는 그 절반에 못 미친다. 혼자 살해한 것이 4명, 도움을 받아 살해한 것이 5명. 이렇게 된건 그의 악명이 널리 퍼지면서 살인을 다 그에게 뒤집어 씌운것이란 주장이 있다.
  • 또한 민간설화에는 나긋한 성격의 의적으로 표현되지만 그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비정한 미치광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영화 '영건'에서 잘 묘사되는데, 자신과 뜻을 달리한 친구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 그리고 실제 그의 묘비는 다음과 같다.

3 트리비아

  • 현존하는 그의 사진은 두장 뿐이다. 위의 독사진은 빌리 더 키드가 1879년~1880년에 뉴멕시코주 포트 섬너(Fort Sumner)의 사진관에서 25센트를 주고 찍은 사진인데 2011년 6월 25일 경매를 통해 230만 달러, 한화로 약 24억원에 낙찰 되었다. 이 사진이 남을 수 있었던 건 빌리 더 키드가 자신의 친구였던 댄 데드릭(Dan Dedrick)에게 이 사진을 선물했고, 이후 댄 데드릭의 후손이었던 업햄가(Upham family)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
또한 바로 위의 사진은 한 골통품 가게에서 단돈 2달러에 팔리던 사진이었는데 2010년 구매자가 감정을 의뢰해본 결과 동료의 결혼식 에 참석한 빌리 더 키드의 사진으로 판명 되었다. 참고로 위의 사진은 현재 500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가 매겨져 있다. 흠좀무.
  • 2010년 뉴멕시코주의 주지사였던 빌 리처드슨은 빌리 더 키드의 죄를 사면해주고 그를 이용한 관광상품을 개발, 지역홍보에 활용하려 했으나 피해자 후손들의 반발로 무산 되었다.
  • 그의 가족으로 패트릭 매카티(아버지), 조셉 메카티(형제)가 있었다.

4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빌리 더 키드는 실제로는 악명높은 서부시대의 무법자였지만 전형적인 서부 총잡이의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지라 악역으로 등장할 때는 주인공이 쓰러뜨려야 하는 최종보스 내지 라이벌로 묘사되지만 주인공으로 등장될 때는 안티 히어로로 묘사된다.

  • 1988년 영화 영건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빌리 더 키드 역은 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스가 맡았다. 하지만 줄거리는 엄청 각색되었으며 찰리 신,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키퍼 서덜랜드, 더멋 멀로니, 에밀리오 에스테베스 같은 당시 청춘 스타들이 화려하게 나왔다. 배우들이 이렇다보니 실제인물과 달리 엄청 미화된 미남으로 나온다. 영화평은 별로였으나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하여 1990년에 2편도 나왔다. 1편에서는 톰 크루즈가, 2편에서는 존 본 조비가 총맞아 죽는 단역으로 나왔었다. #
  • 심슨 가족 할로윈 에피소드에서 리사가 '윌리엄 보니가 21세에 총에 맞아 죽었다'는 것만 보고 스프링필드의 총기를 없애는 운동을 했다가 이를 보고 부활한 빌리 더 키드와 일당에게 스프링필드가 점령당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 유명 보드게임 에서는 그를 기반으로 한 '윌리 더 키드'라는 캐릭터 카드가 있는데 특수능력이 한 턴간 쏠 수 있는 '뱅'의 횟수를 1에서 무제한으로 늘려주는 상당히 좋은 능력이라 4대 강캐릭터로 분류되었었다. 다만 확장팩 등장 이후엔 강캐릭터까지는 아니게 되었다.
  • 그 밖에 샘 페킨파 감독의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1973)이 있는데, 한국 비디오 제목은 관계의 종말이란 해괴한 제목으로 나왔다. 그것도 1시간 넘게 삭제하고..
  • 영웅전희에도 빈유미국 영웅 중 한사람으로 나온다!
  • 무한 중독성으로 유명한 독일의 팝 그룹 징기스칸(가수)도 빌리 더 키드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 가면라이더 고스트에서 15명의 위인 중 한사람으로 나온다. 다만 위에서도 나왔듯이 본질이 악당인 사람을 가지고 위인이나 영웅으로 나오는 점이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다. 무엇보다도 이건 아직 판단이 미숙한 유소년기 대상 시청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악역이 소환했다.
  • 모바일게임 영웅 for Kakao에서는 빌리 더 키드를 모티브로 한 키드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 고우영 삼국지에서는 모략의 일환으로 아메리카 원주민(해당 작에서는 "인디언"이라 호칭)과 빌리 더 키드처럼 꾸민 사람들이 어느 일행을 약탈한다. 빌리와 원주민이 같이 어울려다닐 리가 없다는 논리로 간파.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수정바람.)
  • 미스터 피바디와 셔먼 쇼에서는 악당으로 나왔다. 심의 문제인지 진짜 총이 아닌 물총(...)여자로 변장하여 강도짓도 했다물총으로 뭘 어쩌겠다고..
  1. 이상 그의 나이 17세 기준.
  2.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좌우가 뒤집어져서 사진이 인화되어 왼손잡이로 오해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에서도 왼손잡이로 연출 된 적이 많다. 위의 사진은 좌우가 반전된 사진이다.
  3. 1850~1908. 전직 들소 사냥꾼. 팻 개릿도 땅 문제를 두고 지인과 논쟁하다 제시 브레이젤(1876~1913)이라는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현재 개릿이 살해된 장소에 표식이 남아 있으며, 개릿을 살해한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4. 인근에 사는 대장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