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馬晏
281~311
서진의 황족으로 무제 사마염의 15남. 모친은 이부인으로 혜제 사마충과는 이복 형제로 작위는 오(吳)효(孝)왕이다.
아버지 사마염에 의해 오왕에 봉해졌으며 사성교위, 후군장군이 되었다. 팔왕의 난 때 조왕 사마륜이 혜제를 폐위시키고 황제에 즉위하자 사마안의 동복 형제였던 회남왕 사마윤이 반발해 군대를 일으켰다. 그러나 사마윤은 패사하고 이 때 동복 형제라는 이유로 사마안이 사마륜에게 포박되었다. 이 때 사마륜의 심복은 사마안을 죽이라고 했으나, 사마륜은 이를 무시하고 그를 벽지에 있는 대(代)왕으로 좌천시켰다. 301년 사마륜이 죽음을 당하자 다시 오왕으로 복위했으며 상장군, 시중에 임명되었다.
사마안은 계속되는 팔왕의 난 살육전에서 목숨을 부지했으며 실제로 요절한 아들들을 제외한 사마염의 아들 중에서 회제 사마치와 둘만 살아남았다. 사마치가 즉위하자 태위, 대장군이 되었으나, 311년 영가의 난으로 유총의 의해 낙양이 함락되자 사마치와 함께 포박되어 사마안은 피살되었다. 이 후 아들 사마업이 황제에 오르자 태보로 추증되었다.
사마안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장남은 이름을 알 수 없고 차남은 사마상(司馬祥), 3남은 사마업(司馬鄴), 4남은 사마고(司馬固)、막내 아들은 사마연(司馬衍)이었다. 장남과 차남은 요절하고 사마업은 사마안의 이복형이었던 진(秦)l금왕 사마간의 양자로 갔으며 4남과 막내 아들은 낙양 함락 때 피살되었다. 사마업은 회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으나, 장안이 함락될 때 사로잡혀 처형되고 서진은 멸망했다.
사마안이 팔왕의 난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재능이 평범하고 어리석었던 점이 컸다. 실제로 사마륜은 심복의 말을 듣고 유능한 제왕들을 제거했으나, 사마안은 죽이지 않았다. 또 동해왕 사마월도 그를 전혀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했으며 안질을 앓아 병약했던 점도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