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하지메

斎藤 一(さいとう はじめ)
텐포 15년 1월 1일(1844년 2월 18일) ~ 타이쇼 4년(1915년) 9월 28일

1 신센구미의 사이토 하지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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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팍?
이 초상화는 장남 츠토무를 토대로 그린 그림이다.
신센구미 출신으로 메이지 시대에는 경찰로 근무했다고 하는 실존 인물이다.

신센구미 최고의 검술실력자인 오키타 소우지와도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신센구미 2번대 조장 나가쿠라 신파치는 오키타와 함께 사이토의 검술 실력을 평가하면서 '오키타의 검은 맹자(猛者)[1]의 검이라면 사이토의 검은 무적(無敵)의 검이다'(沖田は猛者の剣、斎藤は無敵の剣)라고 언급했다.
3번대 조장 부장 조근인 동시에, 주로 대내 숙청 임무를 맡았다.
세리자와 카모, 이토 카시타로나 5번대 대장 다케다 칸류사이, 7번대 대장인 타니 산주로 등, 조직내외를 막론하고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전해진다. 내부 암살자로서 유명해 이와 관련한 숱한 수수께끼를 남긴 의문의 사나이이기도 하다.

지금의 유명세와는 달리 실제론 신선조 내의 주요 사건에선 약간 동떨어져서 크게 눈에 띄는 활약상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신선조에선 상당한 기여를 한 인물이다. 콘도 이사미를 신선조 원년 멤버 중심으로 아이즈 번주에게 참소한 건백서 사건에서 그 이름이 등장하기도 했으며 참모였던 이토 카시타로가 고료에지란 이름으로 조직을 분열시켰을 때 그와 같이 신선조 부대를 이탈하였고, 마침 그가 본대로 귀환한 직후 이토 카시타로가 암살되었기 때문에 조직 내 숙청이나 방첩업무에서 비밀스레 활약했다고 추정된다. 곧 옛 성과 차남이었던 사실을 따 야마구치 지로(山口次郞)으로 개명하였는데 후세의 팬과 역사 연구가들은 고료에지 시절 당시, 사이토 하지메가 콘도파의 스파이로 이토파의 동향을 감시하고 보고하는 스파이 역할을 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료에지에 같이 가담했던 동료는 사이토 하지메가 밀정이었단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단순히 여자 관계 때문에 조직의 돈에 손을 댔기 때문에 신센구미에서 도망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정황증거 및 사이토 하지메의 성격, 그리고 유신 이후에도 밀정일을 수행했다는 점을 보면 그런 단순한 배신이 아니라 기존의 학설대로 콘도파가 파견한 밀정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보신전쟁에서 부상 당한 히지카타 토시조를 대신하여 임시로 대장이 되어 부대원을 이끌고 아이즈까지 진격하기도 했다.

보신전쟁 이후, 사이토 하지메의 삶은 실로 아이즈 번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할 수 있다. 최후의 이름이었던 후지타 고로란 이름도 아이즈와의 인연에서 개명한 것이었으며 두 번의 결혼도 아이즈의 무가 여성과, 지인도 아이즈번 사람들이 다수였으며 죽을 때는 그 유해가 아이즈에서 안치되는 등, 실로 아이즈인으로서의 삶을 완수하였다. 그의 인생 후반생은 아이즈란 키워드를 제하면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아이즈의 인연으로 점철되었다. 혹자는 그는 에도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 고향을 만든 사람이라고 평하고 있다.

신센구미의 종말 이후에는 바람의 검심에서 정부의 밀정으로 일하는 설정처럼 실제로도 경시청에서 경찰의 밀정으로 근무했다. 서남전쟁 때는 발도대로 참전해서 전장에서 돌격대의 선봉에 서서 부상당하면서 상당한 무훈을 세우기도 하며 평생 신센구미 시절과 그닥 다를 게 없는 무사도 스타일의 인생길을 근대화 사회에서도 꿋꿋이 걸어간(...) 대단한 인물이다. 48세에 경시청에서 퇴직한 이후는 도쿄고등사범학교(현 츠쿠바 대학)에서 부속 박물관 수위로 근무. 하지만 그 당시 도쿄고등사범학교에 부속 박물관은 실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가들은 실제로는 검술 사범이나 수위 신분을 가장해 밀정 활동을 계속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다. 말년은 오차노미즈 여자고등사범학교(현 오차노미즈 여대)에서 소소한 일을 하는 회계 및 서기(...)로 일했다하니 그 하드한 인생을 생각하면 그저 충공그깽

나이들어서 노인이 된 뒤에도 실력이 여전했는지, 근처 학교의 검도부에 견학을 가서 연습 대련을 했는데, 한창 나이의 청년인 검도부원 중에 노인 사이토에게 당해낼 자가 아무도 없었다든가, 역시 노인이 된 후에 근처에서 검도를 연습하는 사람을 보고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목검으로 양철 물통을 찔렀는데 물통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구멍이 뚫렸다는 일화도 있다.

한편 자식들의 증언에 따르면 말년에는 병에 걸려서 상당히 고통이 심했을텐데도 불구하고 죽을 때 가부좌를 하고 앉은 자세로 죽었다고 하며, 자신들에게도 늘 전장에서 무사가 지켜야 할 마음가짐을 엄격히 강조했다는 일화도 여럿 있다. 현관 뒤에 숨어있다가 귀가하는 자식들을 죽도로 내려치면서 "무사의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다!(士道不覺悟!)"라든가 "문에 들어가면서 머리부터 들이밀면 기습당했을 때 치명상을 입는다! 발부터 들이밀어라!"라고 설교했을 정도라고...

사실 신센구미 문화에서는 인지도가 낮고, 인기도 저조한 편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바람의 검심에 등장한 뒤라고 한다. 다만 이 쪽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진 탓에 다른 만화에서 등장하는 경우는 오히려 더 적어졌다.(…)

참고로 만화에 출연해서 이상한 쪽으로 인기가 생긴 탓에 많은 수의 부녀자들이 가문의 묘에 참배를 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묘지에서 코스프레를 하는 등(…) 주변에 소란을 피워서, 민폐를 걱정한 나머지 묘지를 폐쇄했다고 한다. 묘는 와카마츠 시 아미타 사에 있다. 부녀자들의 말에 의하면 묘가 후지타가의 본가가 있는 도쿄와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성묘를 갈 수 있어 좋다고 한다.(…) 흠좀무.
확실한 바는 아니나 일본 역사 블로그나 아이즈 지방 연구 사이트 등에 의하면 현재 사이토 하지메의 후손, 즉 후지타 가의 직계 자손은 도쿄의 츠키지 어시장에서 도매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1.1 이름

이름을 무려 네번이나 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은 '사이토 하지메'라는 이름은 두번째로 쓰던 이름이고 태어났을 당시에는 '야마구치 하지메'였다. 하지메(一)란 이름은 정월에 태어나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8세 까지 야마구치 하지메라는 이름을 썼고, 이후에 사이토 하지메로 개명한다. 하지만 사실 이 이름은 5년 정도 밖에 쓰지 않았다.

세번째 이름으로 '야마구치 지로'라는 이름을 사용했었고, 아이즈 전쟁 패전 후는 임시로 '이치노세 덴하치' 혹은 '이치노헤 덴파치'라는 가명을 쓰다 최종적으로 후지타 고로로 개명한다.

바람의 검심에도 등장하는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은 다섯번째 이름으로 그가 죽을 때까지 사용하던 이름이었으며 호적상에도 위의 이름을 사용했다. 이후의 행적들과 재직기록들을 살펴볼 때에는 '후지타 고로'로 찾아야 나온다. 40년 이상 후지타 고로라는 이름을 썼기 때문에 실제로는 후지타 고로가 가장 오래 사용된 이름이다.

후지타 고로(藤田五郞)란 이름은 아이즈번 제후였던 마쓰다이라 카타모리로부터 하사 받은 것이란 설이 있다. 실제로 후지타(藤田)이란 성은 아이즈 지방 무가의 성으로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추측컨대 유신후, 신변 보호의 목적과 아이즈 전쟁에 끝까지 싸워줬던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아이즈 무가의 양자로 들이는 식으로 이름을 하사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이토는 일개 하급 무사, 그것도 아이즈 지방 출신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후손들이 '조부님은 아이즈후의 총신(寵臣)이었다'라고 회고할 정도로 아이즈번 마지막 다이묘 마쓰다이라 카타모리의 총애를 받은 것 같다. 이례적으로 사이토의 혼인시 중매인으로까지 나서주는 등 아이즈 전쟁 때 마지막까지 남아준 것에 대해 대단히 감명 받은 모양이다.)

그 외에도 사이토가 후지타란 성을 쓰게 된 것은 아이즈 전쟁 후, 근신 중에 후지타란 아이즈 노무사에게 받은 것이란 설(아마 양자란 형식)과 아내 토키오의 친척쪽 성이란 설이 있다.

1.2 사이토 하지메가 등장하는 미디어 목록

(국내 번역물만 대상으로 하였다.)

1.2.1 만화

1.2.2 소설

1.2.3 영상물(영화, 드라마)

  • NHK 대하 드라마 신선조! - 오다기리 죠 연기
  • 바람의 검 신선조 (원제:미부기시덴) - 사토 코이치 연기
  • 바람의 검심 실사 영화판 - 에구치 요스케 연기

1.2.4 게임

2 엽기의 함에 등장하는 경비원

인상이 날카롭게 생겼다. 좀 껄렁대는 느낌이지만, 사실은 백화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중 하나이다.

인기가 좋아서 엽기의 함 2장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엽기의 함 제 1 장과 엽기의 함 제 2 장에서 등장하는 인물. 1 의 백화점은 제 2 장의 마키코 루트를 탔다.

인기가 좋아서 2 장에 등장 한 것이 아니라 제 2 장의 구상도 동시에 진행했기 때문이라 알려져 있다.
  1. 국어에서의 의미는 용감하고 기백이 있는 사람이지만, 일본어로는 수완가, 달인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검의 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