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센구미

新選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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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레인

1 막부 말기 시절의 무사집단(新撰組)

신찬조(新撰組) 또는 신선조(新選組). 별명은 미부의 낭인들(壬生狼).[1]
501 군단의 대선배

국내에서는 신선조(新選組)라는 번역이 널리 알려져있는데, 이는 撰(지을 찬)과 選(가릴 선)이 같은 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撰은 '지을 찬' 외에도 '가릴 선'의 의미도 지니고 있으며, 이 의미로 보면 選(가릴 선)이 번역 시 더 원어 쪽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일본에서도 新選組와 新撰組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 과거 자료에는 찬을 쓴 것도 있고 선을 쓴 것도 있다고 한다.

개그로 쓰이면 가끔식 가운데의 찬자를 鮮(고울 선)으로 바꿔서 新鮮組(신센구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Fresh club이니까 그야말로 개그(…).

정치적인 면에서는 다소 복잡한 조직이다. 널리 민간에 알려진 신센구미는 막부를 철저히 보호하는 치안 및 준군사조직으로, 좌막파(佐幕派, 사바쿠하)이며 주로 교토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에는 한참 교토를 노리고 존왕양이파(덴노를 받들어, 외국을 격퇴하지 않으면 일본에 미래는 없다는 사상)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치안강화의 필요성이 생겼고 따라서 자연스럽게 신센구미가 그 자리를 차고 들어갔다.

원래는 쇼군 호위를 명목으로 한 로시구미(浪士組)가 그 유래. 문제는 로시구미를 창설한 키요카와 하치로가 미토 번사로 존왕양이론자였다. 결국 쿄토에 입성하자마자 존왕양이를 주장했고, 결국 미마와리구미의 사사키 타다사부로에 의해 살해당하며 로시구미는 와해되고 만다. 와해된 뒤 교토에 남은 24명이 스스로를 미부로시구미[2]라고 자처했고 이것이 후에 교토의 치안을 담당한 아이즈 번의 번주였던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예하에 들어가서 신센구미로 발전하게 된다. 즉 좌막을 자처하고 조직을 만든 자가 갑자기 조직을 자기 멋대로 토막파의 정치운동에 동원하려고 하니 당연히 막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모여든 조직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생긴 것인데, 문젠 미부로시구미를 만드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 세리자와 카모도 존왕양이의 대표격인 미토 번사이며 과격한 존왕양이 운동을 하다 죽을 뻔한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조직의 내부에 불안과 갈등을 껴안은 데다 신분을 따지지 않고 구성원을 모아들였기 때문에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히지카타 토시조가 생각한 방법이 좌막의 기치에 따르지 않거나 기준에 못미치는 자에 대한 가차없는 피의 숙청. 신센구미는 적에게 죽은 사람보다 내부 숙청으로 죽거나 쫓겨난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며, 초대 국장 세리자와 카모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이케다야 사건(교토에 불을 지르고 덴노를 납치한다는 과격한 테러 계획을 위해 이케다야의 2층에서 회의하던 존왕양이파 지사들을 색출해내 습격한 사건)으로 일약 유명해지고 막부의 확실한 인정과 지원을 받게 되며, 교토에 잠복해 있는 과격파 존왕양이론자들을 색출했다.

이후는 조직은 여러 변천사를 거치게 되고, 보신 전쟁에서는 하코다테까지 올라가 막부의 충성파들과 끝까지 신정부군에 대항해 싸우다가 소멸한다.

그들이 쫓던 사람중 한 명이 사카모토 료마지만, 정작 잡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메이지 유신에 참여해서 사츠마가 비호하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신센구미는 료마를 건드릴 수 없었다고 한다.

행동부대는 1번대부터 10번대까지, 총 10개 부대로 나눠져 있었다.

천연이심류에서 함께 수행하던 곤도 이사미(국장), 히지카타 토시조(부국장), 오키다 소지(1번대 대장)의 3인이 주축이 되어 총 234명의 낭인을 모아 결성되었다.

오키다 소지는 젊어서 병으로 죽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고[3] 히지카타 토시조는 끝까지 막부 측에서 싸우다 비장하게 전사했지만, 곤도 이사미는 항복 후 참수[4]당했기 때문에 왠지 평가가 좋지 않다. 단순 살인귀라고 왜곡되던 시절도 있을 정도.

비슷한 조직으로는 교토 미마와리구미(京都見廻組)가 있다. 이쪽도 업무는 비슷하나 그 출신이 막부의 막신들. 즉 엘리트 무사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고 담당 구역도 홍등가나 시장판 등을 관할한 신센구미와 달리 니조성이나 궁궐 주변의 관청들이 있는 거리였다.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가끔 신센구미 창작물에 나올 땐 계급부심에 쩔어서 어깨에 힘주며 건방떨고 다니는 재수없는 자식들(...)로 나오며 실제로도 그랬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로 그 부심으로 총으로 무장한 신정부군 상대로 칼들고 닥돌했다 전멸(...).

2 신센구미의 정체성 논란

2000년대 중후반 몇몇 블로그 글들을 통해 신센구미가 정치깡패라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진 듯 하다. 그러나 신센구미를 단순 정치깡패로 모는 것은 일면적 시각이다. 메이지 정부는 사츠마 번과 조슈 번의, 이른바 '삿쵸 동맹' 세력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낸 신정부이다. 이들이 교토에서 활동할 때 가장 큰 훼방꾼이 바로 신센구미였으며, 신센구미가 임무를 명목으로 수많은 양이지사들을 죽였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 후 막부의 개들이라 불리며 신센구미에게 온갖 악역 이미지가 집중된 면도 있다. 실제로도 메이지 유신 이후 상당 기간 신센구미는 그 시대를 다룬 사극이나 역사소설에서 악역으로 등장하게 된다. 또한 신센구미 구성원들의 신분이 낮았던 것도 대부분 사족, 화족으로 구성된 유신지사들과 대비되어 거칠게 묘사되는 데도 한 몫했다.

하지만 신센구미는 본래 교토의 치안 유지를 위하여 조직된 공식 집단이었다. (메인스폰서가 교토 쇼시다이-막부가 임명한 교토의 책임자-를 맡았던 아이즈 번) [5] 신센구미에게 무력으로 대응하는 것은, 교토 쇼시다이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고, 나아가서는 당시 천황으로 불린 일왕보다 센 권력이던 도쿠가와 막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였다. 그리고 소위 존왕양이, 유신지사를 칭한 이들도 별별 인물이나 세력이 뒤섞여 있었다. 일부 과격파들이 교토에서 벌인 행각을 보면, 존왕사상을 숭배한다며 정작 왕궁에 총포를 쏘아대고 돌격하는 등 야만적 전투행위 및 덴노를 납치하고 교토를 불바다로 만드는 대방화 계획(사전 발각) 등을 저지르는 테러리스트들도 있었는데, 이런 집단을 상대로 신센구미도 일정 정도 무력 없이 치안을 유지할 수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또한 그들이 '백성의 지지와 정당성이 없는 깡패적 사설 무력집단'이었다고 보는 입장이 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신센구미는 합법적으로 권력을 조정에서 인정받아 통치하는 막부에게서 정식으로 치안임무를 위탁받은 합법적인 치안유지기관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참고로 신센구미 대원들은 대부분 당시 신분이 높은 무사 계급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집안 출신들이었다. 대장인 곤도 이사미는 농민 출신으로 곤도가에 양자로 들어가 천연이심류를 이어받았고, 부대장인 히지카타 도시조도 이시다 산약이라는 약을 팔던 농민 출신. 2번 대장인 나가쿠라 신파치, 3번 대장인 사이토 하지메와 요시무라 간이치로는 탈번무사 출신이다. 그리고 10번대장 하라다 사노스케는 무가집 하인의 자식이었다. '최후의 무사-신센구미'에 실린 표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탈번무사 출신들이 가장 많고(28명), 평민 계층들의 수(20명)를 다 합치면 번듯한 번사 자제들(15명)보다 많다.

그런 신센구미 임무는 대부분 치안유지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방첩활동 내지는 막부 지지파의 의용군 활동이었다. 조직 내부 피바람이 벌어지는 것 때문에 다소 수상쩍어 보이는 요소가 있지만, 이는 조직 내에 침투해 분열을 획책하는 존왕양이파(이토 가시타로)나 조직을 정말 깡패 수준으로 만드는 수준 이하의 대원(세리자와 카모)을 비교적 정당하게 숙청한 거라 볼 여지도 있다. 게다가 조직원의 비행은 가차없이 처벌하거나, 비행을 일삼는 조직의 리더를 숙청하는 등 상당히 청렴한 자세를 견지했다.

또한 대부분 구성원들이 나고 자란 부슈(무사시, 현 도쿄 도)는 막부 직할령으로, 당대 백성들 눈에는 조정보다 막부가 더 높게 보였기 때문에 막부 측이었다는 게 이상하거나 잘못된 일인 것도 아니다. 애초에 13대 쇼군 이에사다 대까지는, 막부-조정 간 외교에서 의전상 막부 쪽이 우세하였다.

실제로도 신센구미에 대한 악평이 주류였던 시절에도 코단[6]에서는 꾸준히 신센구미를 주인공으로 삼는 등 민간에서의 인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막부를 타도한 조슈와 사츠마는 상당히 구석진 지방이었기 때문에 일본 문화의 주류를 이루는 교토 및 에도(도쿄) 등 대다수 민중은 막부를 동정하거나 심정적으로 지지하는 구석이 있었고, 특히나 주 임무가 테러행위를 저지르는 유신 세력들을 저지하는 치안 유지였고 역사의 한켠으로 비장하게 사라진 신센구미는 동정과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호간비이키라고 하여 패자를 동정하고 영웅시하는 풍조가 있는데다, 그 패자가 하필 민중에게 인기가 많고 몹시 폼나는데다 근대화의 물결 사이에서 분투하는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입장이었기 때문이었다.[7][8] 이건 한국도 비슷한데 실리외교를 펼치다 폐위된 광해군, 아버지의 기대와 정치세력의 알력다툼으로 미쳐간 사도세자 등도 동정하고 영웅화되어 그려진다.(실제 역사에서 결과가 별로 좋지 못했을 때, 역사의 if 처럼 만약 그때 이랬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자연스러운 생각일지도..)

또한 메이지 유신을 통해서 세워진 정부도 백성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는 정부였던 것도 아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을 막부 치하에서 서구식 입헌제나 법치주의 등 현대 문명 국가 기틀을 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인간사가 어디나 그러하듯 지도층에도 여러 입장과 인물이 뒤섞여 있었다. 특히 메이지 유신 후 강경 엘리트 지도층의 온갖 오판이 쌓여 벌어진 태평양 전쟁과 패전 후유증, 세계 유례 없는 원폭 응징까지 겪은 현대 일본인들은 평민 출신들로 나름 끝까지 막부에 대해 신념을 지키려 애쓴 신센구미를 보다 호의적, 동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래도 역시 우리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어..'라는 자위적이면서도 소소한 반발심이 일어난 까닭으로 보는 역사가들도 있다.)[9]

물론 이건 주로 사실을 보고 가치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이미지 문제이다. 대중은 그것이 설혹 틀렸을지라도 '상대적으로 강한 상대방에게 억압받으며 자신의 신념을 위해 우직할 정도로 노력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세력이나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그들을 어떻게든 좋게 봐주려고 노력하거나 '그 억압하는' 세력이나 인물을 증오하기 쉽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동정했으니 옳다는 말은 불쌍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말 만큼이나 한심한 얘기니, 대중이 동정했네 어쨌네 하는 것은 거론할 필요가 없는 문제다.

그리고 신센구미의 숙청 등이 항상 정당한 동기로 벌어졌던 것은 아니며, 곤도 일파가 신센구미 전권을 쥐기 위한 조직 내 내부항쟁의 성격도 있었다고 평가된다. 비행을 근거로 세리자와를 암살한 곤도 본인도 나가쿠라 등 간부들에게 여러 죄목으로 상부에 고소 당한 적도 있는 등, 신센구미라는 조직 역시 일반에 알려진 것처럼 청렴결백한 집단은 아니다. 실제로도 신센구미가 없어질 때까지 일치단결한 것도 아니다. 유명한 간부들 여럿도 신센구미 조직에 환멸을 느끼고 중간에 이탈했을 정도였다. 즉 검증된 자들만을 모은 것도 아니고 정치적인 주장마저 제멋대로라 조직 결속은 상당히 불안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다소 무리한 수단도 거듭 쓴 걸로 추정된다.

정리하자면, 단순 악질 정치깡패라는 평가는 지나친 폄하일 공산이 크지만 그렇다고 대중문화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마냥 낭만 속의 완전무결 청렴결백한 검객집단이었던 것도 아니다. 어느 집단이나 모두가 한 방향을 보고 일치단결 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애니나 미디어를 통해 비춰진 '신센구미'의 모습은 상당히 미화된 측면이 분명히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외모는 심히 미화되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3 이미지와 실제

흔히 보신전쟁 시기 총으로 무장한 신정부군에 대해 칼 들고 닥돌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신선조도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히지카타의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신선조는 상당히 서구화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히지카타 역시 고슈 가츠누마 전투때 대포가 제일 중요하며 창, 칼을 쓸 일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당시 기록을 보면 신선조도 상당히 많은 수의 총을 구입하고 있었고 곤도 이사미가 체포됐을 당시 많은 수의 총을 압수당했다. 토탈 워: 쇼군2의 확장팩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는 이 점에 주목해, 신센구미 치안대라는 총기로 무장한 신센구미가 등장한다. 아예 카테고리도 전열보병. 그와 함께 바로 아래 문단에 소개되는 히지카타 토시조의 발언도 게임상에서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최후의 무사 - 신센구미'를 토대로 보자면, 최강의 검술집단이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로 신센구미도 총과 대포를 위주로 싸우는 중대급 전투단으로 변화된 것 같다. 1인당 1정 정도로 소총들이 분배되기도 하고, 사실상 대장이었던 히지카타 도시조가 도바-후시미 전투 이후에 검의 시대는 끝났다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도바-후시미 전투 초입에 주둔지가 포격에 시달리자, 히지카타 토시조가 나가쿠라 신파치에게 칼을 들고 돌격을 명했는데, 대포만 두들겨맞다가 구사일생으로 담을 넘어 다시 주둔지로 도망왔다는 기록도 있다.

정말로 칼만 들고 돌격했다 전멸한 것은 상기했듯 막부 직속 무사집단인 미마와리구미이다.

그리고 신선조를 위계질서가 잡힌 무사단으로 만들려 한 곤도 이사미와 동향 출신 무사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려 한 나가쿠라 신파치 등과의의 갈등도 노출되는 등, 실제 모습은 현시창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종 미디어의 각색을 거친 간지나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이와 관련해서 초기 창단멤버들 중에서도 곤도 이사미, 히지카타 도시조 등의 천연이심류 멤버들을 제외한 외부 멤버들 중 신센구미와 끝마무리가 괜찮은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 야마나미 케이스케는 이탈했다가 할복했고 토도 헤이스케는 고료에지에 가입했다가 동료들에게 참살당했으며, 사이토 하지메, 나가쿠라 신파치, 하라다 사노스케는 패주의 와중에 조직을 이탈했다. 신센구미를 다룬 미디어에는 잘 다루지 않거나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부분이지만, 계속되는 내부숙청의 와중에 창단멤버들 중에서도 성골격인 천연이심류 멤버들과 진골격인 외부 유파 멤버들 사이의 관계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던 듯 하다.

또한 부대의 규율유지를 위해서 마련된 국중법도에 따라 부대의 대원들을 숙청하는 마코토(誠, 진심)의 방기라든지, 입고 있는 '옅은 청색의 톱니무늬 곁옷' 등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이 톱니무늬의 청색 겉옷은 실제로는 창설과 첫 출동 때 단체로 맞춰 입었고 그 후로는 사복과 혼용되다 몇번 안 가서 아무도 입지 않게 되었다.(이케다야 사변 이후로부터 입지 않았던것 같다.)

신선조의 주업무가 교토 밤거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사람 죽이는 일인데, 저따위로 눈에 확 띄는 옷을 입으면 옷만 보고도 숨어버리기 때문에 비효율성이 판명되어 입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신선조를 주연으로 묘사하는 각종 매체만 봐도, 신선조가 저 옷을 입고 뜨는 순간 벌써부터 신선조다!!! 하며 튀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사복 형사가 경찰차타고 사이렌 울리며(...) 나오는 것과 동일한 수준.

확실히 폼은 살긴 하는데, 눈에 뻔히 띄일 걸 꼭 실험해봐야 아나 싶기도 하지만, 신선조 구성원의 출신도 출신이고, 일단 입으면 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테니 입고 현장에 출동해보고 싶긴 했을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임팩트 하나는 세고 비주얼도 살기 때문에 창작물에서는 잠복 근무 빼고는 반드시 이 옷을 입고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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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수많은 매체에서 무수한 방식으로 미화되고 있다.

패자를 동정하는 '판관편애' 정서와 훌륭한 사람들은 다 싸우다가 죽어버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를 구성한 유신지사들은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찌꺼기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로 막장이었던 일본 정부에 대한 실망이 맞물려 미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미화의 시초는 일단 시바 료타로이지만 신센구미의 재평가에 대한 계기를 만든 것은 시모자와 칸이다. 기자시절 사회면의 기사를 쓰다가 곤도 이사무에 대한 자료를 모으게 된 시모자와는 곤도 이사무가 실제로는 그 때까지 알려져 있던 피에 굶주린 살인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흥미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역사가등을 찾아다니며 쓴 것이 신센구미 시마츠키(新選組始末記)이고 시바 료타로는 이것을 읽고 이대로는 카모자와 칸의 저작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해서 카모자와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한다. 실제로도 신센구미 시마츠키는 사료보다는 목격이나 증언 등을 통하여 정보를 입수했고 역사서보다는 오락소설적인 측면을 위주로 서술되었다. 이러한 점은 시바 료타로도 흉내내어 시바 료타로의 신센구미 혈풍록이나 타올라라 검이여 등도 강한 허구성을 지니게 된다.

4 관련 인물

  • 초대 국장 :
세리자와 카모(芹沢鴨)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免許皆伝)
  • 국장 :
니이미 니시키 (新見錦)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
곤도 이사미(近藤勇)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당주
소마 가즈에(相馬主計) - 마지막 신센구미의 대장. 히지카타의 사망 후 대장이 되어 신정부군에게 항복, 전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나 1년만에 풀려난다. 그 직후 돌연 할복. 할복 이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 총장 :
야마나미 케이스케, 혹은 산난 케이스케(山南敬助)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면허개전(免許皆伝)
  • 부장 :
히지카타 토시조(土方歳三)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참모 :
이토 카시타로(伊東甲子太郎)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 조장
    • 1번대 : 오키타 소우지(沖田総司)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숙두(塾頭)
    • 2번대 : 나가쿠라 신파치(永倉新八)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면허개전(免許皆伝)
    • 3번대 : 사이토 하지메(斎藤一) - 일도류(一刀流) 혹은 무외류(無外流)
    • 4번대 : 마츠바라 츄지(松原忠司) - 세키구치류유술(関口流柔術)
    • 5번대 : 타케다 간류사이(武田観柳斎) - 코슈류군학(甲州流軍学)
    • 6번대 : 이노우에 겐자부로(井上源三郎)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7번대 : 타니 산쥬로(谷三十郎) - 타네다류창술(種田流槍術) 혹은 신명류(神明流)
    • 8번대 : 토도 헤이스케(藤堂平助)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목록(目録)
    • 9번대 : 스즈키 미키사부로(鈴木三樹三郎)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 10번대 : 하라다 사노스케(原田左之助) - 타네다류창술(種田流槍術) 혹은 보장원류창술(宝蔵院流槍術)
  • 감찰 :
핫토리 타케오(服部武雄)
야마자키 스스무(山崎烝)
시노하라 타이노신(篠原泰之進) - 타네다,보장원류창술(種田宝蔵院流槍術) / 양이심도류유술(良移心倒流柔術)
요시무라 칸이치로(吉村貫一郎) -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면허(免許)
  • 제사취조역 겸 감찰 : 오오이시 쿠와지로(大石鍬次郎) - 천연이심류(天然理心流)?
  • 평대원이자 히지카타 토시조의 시동: 이치무라 테츠노스케(市村鉄之助) - 신도무념류(神道無念流)

5 검술 실력

신센구미의 목적 자체가 낭인과 존황파 지사의 수색및 체포와 순찰, 경비들의 경찰활동을 하고 있었으므로, 대원들의 검술실력은 필연적인 요소였다. 화기가 널린 퍼진 시기에 1:1 대결에서나 어울릴 정통적인 검술 수련을 했던 것은 당시 무사들은 기본 복식으로 길거리에서 일본도를 차고 다녔기 때문에 이를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미디어의 영향으로 일단 베고보는 인상이 강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찰과 유사하게 체포가 목적인 경우가 많았다. 범인이 저항하거나 체포가 힘들 경우 살해로 넘어갔다. 이케다야 사건에서도 7명을 죽이고 4명을 부상, 23명을 체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준군사조직 수준의 무력을 행사해서 전쟁에 참가하기 시작한 때부터는 막부 육군에서 프랑스식 군사훈련을 받는다. 또한 신선조의 검류가 주류 검술이 아니었기에 폄훼하는 의견이 기존에 이 항목에서 작성되었는데, 확실히 당시나 지금이나 신분, 세간의 평판에 집착하는 경향이 일본에도 있었기에 유명하고 문하생이 많은 검류를 사사받은 이는 그렇지 못한 검류를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다만 신선조는 실제로는 시위관파는 소수고 북진일도류나 신도무념류 등의 유명 검술의 목록, 면허자가 상당수 포진되어 있었다. 검술 사범만 해도 7명 중에서 천연이심류는 오키타 소지 한 명 뿐이다. 신선조 창립부터 주요 간부가 천연이심류라서 마치 천연이심류가 신선조를 대표하는것 같지만 실제로는 온갖 다양한 유파들이 다 들어가 있다. 밑에 나오는 신선조 대원중 검술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 목록을 봐도 나카쿠라 신파치는 신도무념류, 사이토는 일도류라 추정, 핫토리 타케오는 북진일도류다. 다만 주류가 아니라 유명세가 없긴 했다.

최근에는 미디어의 영향으로 유명해졌지만 검성이나 검호에 들어가는 인물은 그다지 없다. 예를들어 가츠라 고고로의 실력 같은 경우 이전 문서에는 픽션이라고 되어있는데, 실제로는 에도 3대 도장인 신도무념류 연병관에서 면허를 획득한 검사다. 일본 위키에는 검호라고 기재되어있다. 다만 이런 평가는 아무래도 유명세란게 있기 마련이다. 가츠라가 더 높은 평가를 받더라도 동문인 나카쿠라 보다 더 강한가는 알 수 없는 문제. 어떤 검사의 객관적인 실력 기준은 유파의 면허 소지 여부로 볼 수 있고 같은 면허 소지자 끼리는 1:1 로 결투를 하지 않는 이상은 누가 강한지 판별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문제는 신선조가 1:1 로 싸운 경우가 거의 없다는것에 있다. 상식적으로 치안유지가 목적인 신선조 입장에서는 다수로 소수를 제압하는 건 전술적으로 당연한 일이었다.[10] 이러다 보니 그 당시 실력을 평가하는 주된 기준 중 하나는 죽도시합이 되었다. 그런데 죽도 시합의 경우 실전과의 괴리가 있고 죽도 수련을 안하던 유파는 약한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다. 유명한 히토기리 들도 주로 암살을 하다보니까 죽도시합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죽도에 대비되는 실전검술이란 인식이 있는데 정작 신세구미의 주된 훈련일과는 죽도로 치고박는 것이었다. 유파가 제 각각이다보니 형은 불가능. 밑에 기재된 것만 봐도 오키타 소지가 북진일도류 면허 소지자들을 데리고 놀았다고 나오는데. 이건 상당히 죽도 수련을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암살이나 집단 다구리는 그 자체로 전술적 우위를 담보해 주기 때문에 이걸 기준으로 검술 실력이 마냥 우위라고 보기도 힘들다.

이런 오해는 무술실력=실전이란 인식이 있어서 그런데 무술실력이 꼭 실전성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실전이란건 워낙 복잡한 요소가 많고 그 중에 무술실력은 한가지 요소일 뿐이다. 아무리 뛰어난 검사도 뒷통수에 활 맞으면 그냥 죽는거다. 따라서 양쪽 다 검술 실력을 평가하기는 부적절한 면이 있다. 현대인들이 유희적으로 실력 비교하기를 좋아해서 그렇지 이런 연유로 그 당시 누가 더 강했나는 데이터도 없을뿐더러[11] 그 당시 사람들 입장에선 그다지 중요한 일도 아니었다. 당시 검으로 사람을 벤 무사들 중 이름이 남은것은 신센구미나 일부 히토기리로 유명한 인물들 외엔 거의 없을 정도로 진검으로 죽고 죽인 것 자체가 일부 사례일뿐이다. 여기에 해당되는 신세구미나 시현류가 강한 평가를 받긴 하는데, 그렇다고 도쿄에 없던 수많은 지방 유파들이나 활약이 없던 이들이 약하다고 무작정 주장하기도 힘들다.[12]

한 마디로 누가 더 객관적으로 강했냐는 명확하게 답이 없는 상태. 그래서 신선조 전원이 마치 그 당시 최강의 달인이었다고 하는 주장은 무리가 있고 또 1:1 로 싸우지 않았거나 주류 검사들이 아니어서 별로였단 것도 맞지 않다. 신선조의 검술은 다수의 대원이 유명 유파의 면허, 하다못해 목록은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준급에 오른 검사가 많았다 정도로 볼 수 있다.

동료끼리의 진검승부는 누군가가 조직을 빠져나와 맞부딪히지 않는 한은 이루어질 수 없었기 때문에 대련 등의 요소로 실력을 미루어보면, 가장 유명한 것이 1번대 대장 오키타 소우지이다. '죽도 대련시에, 부장인 히지카타 토시조나 총장 산난 케이스케, 같은 대장인 이노우에 겐자부로, 토도 헤이스케를 어린애 취급할 정도이며, 실전에서 부딪히면 스승인 곤도 이사미도 당해내지 못할 정도의 검술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나가쿠라 신파치가 평했다고 한다. 조직원 모두가 난다긴다하는 신센구미, 그 중에서도 대장급들까지 어린애 취급할 정도였다는 건 과장이 섞여 있기는 하겠지만, 실력 자체는 자타가 공인할 정도였던 듯 하다.

오키타 소우지가 너무도 유명하여 다른 실력자들이 묻히는 감이 있기는 하지만, 바람의 검심으로 스타덤에 오른 3번대 대장 사이토 하지메가 있다. '아돌'의 모델이 되었을 '좌편수일본돌(左片手一本突き - 왼 한 손 찌르기)가 유명한데, 나가쿠라 신파치는 오키타(소우지)는 용맹의 검, 사이토(하지메)는 무적의 검이라 평했다고.

위에서 다른 이들의 칭찬만 해대는 2번대 대장 나가쿠라 신파치 또한 실제로는 엄청난 실력자였는데, 신센구미 대원이자 훗날 신센구미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낸 아베 쥬로(阿部十郎)는 (검술실력은) 으뜸이 나가쿠라(신파치)요, 두 번째가 오키타(소우지), 세 번째가 사이토(하지메)였다라고 평했다(一に永倉、二に沖田、三に斎藤の順). 나가쿠라는 '용비검(龍飛剣)이라고 이름붙인 기술(하단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위로 상대방의 검을 튕겨올리면서 아래로 베는 기술.)을 특히 잘 썼다고 한다.

아베 쥬로는 감찰이자 암살임무를 주로 맡았던 오오이시 쿠와지로[13]에 대해서도, 신센구미에서 최고로 위협적인 검객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별명 또한 살인귀 쿠와지로로, 이토 카시타로를 위시한 수많은 암살 및 살해 임무를 맡기도 했다.

또한 신센구미 편성 초기의 강자인 핫토리 타케오는 검술, 유술, 창술 등 무술 전반의 달인이며 이도류를 사용했다고 한다. 국중 최강(局中最強)이라 일컬어졌다고 하나 이토 카시타로와 함께 조직을 나간 후, 아부라노코우지사건(油小路事件)에서 이토 카시타로가 신센구미에 의해 암살되고 유해가 방치[14]되자 이를 찾으러 갔다가 신센구미 대원들에게 둘러싸여 분전 후 살해당했다. 함정임을 알면서도 상사의 유해를 찾으러 갔고, 결국 그 함정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최강의 사나이. '의리를 겸비한 여포'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케다여관 사건에서 극소수의 기습으로 2층에서의 초기전투를 주도하였던 국장 콘도 이사미의 검술역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 밖에 미부기사전으로 유명해진 요시무라 칸이치로가 있으나, 소설과 영화에서 거의 최강의 실력을 가진것으로 각색이 가해진것이고, 실제 자료가 희박하여 근거가 부족하다.

6 국중법도(局中法度)

부대의 규율유지를 위해서 마련된 규칙. 어길시 切腹(셉푸쿠=배를 가르고 자결)해야 한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했을 때, 빡빡한 규율과 극단적인 형벌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빡빡한 규율, 자결이라는 형벌을 내야 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예상되는데, 첫째는 대원들의 품행이나 인격적 자질이 형편없었기 때문이었고, 둘째는 시작부터가 위태롭고 막부에서 맡은 일이 맡은 일이니만큼 알아서 조심했다는 것이다. 보통 신선조를 중심으로 다루는 창작물은, 첫번째보다는 두번째를 이유로 삼는다.

히지카타 토시조를 비롯한 리더들의 천재적 조직 관리 비결이라는 해석도 있다. 보통 사설조직의 한계에 부딪쳐 정치깡패로 타락하기 일쑤인 자경단의 수준을 높게 유지하였고, 마침내 공로를 인정받아 막부의 공인을 받아냈을 뿐 아니라 후세에까지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잔인할 정도로 철저한 법규와 도덕성의 엄수라는 것이다.

이렇게 엄격한 규율을 실행한 것은 본래 사무라이 계급이 아닌, 농민 출신이 많은 신센구미의 '정체성' 문제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즉, 혈통 자체가 사무라이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무사보다 더 무사도에 광적으로 충실하게 행동하는 것'으로서 컴플렉스를 메꾸려고 했다는 것이다.

一、士道ニ背キ間敷事
하나. 사도(무사의 도)를 등지지 말것.

一、局ヲ脱スルヲ不許
하나. 국(조직)에서 나가지 말것. 들어오는 건 마음대로지만 나갈 때는 아니란다

一、勝手ニ金策致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돈을 이용하지 말것.

一、勝手ニ訴訟取扱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청부(일거리)를 받지 말것.

一、私ノ闘争ヲ不許
하나. 사투(개인적 싸움)을 하지 말것.

右条々相背候者切腹申付ベク候也
이상의 것에 등을 돌린 자(규율을 어긴 자)는 切腹(할복)으로 갚아야 한다.

7 관련 매체

7.1 신센구미를 소재로 만든 작품

일본에 발매된 작품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어느정도 지지가 있는 작품만 적었습니다.

7.2 학원☆신센구미의 신선조(新選組)

학생회겸 학교내 무력충돌 중재 집단.

남학교와 합쳐서 공학이 되는걸 반대하고 있는 아이즈여학원의 이사장이 밀어 주고 있는 집단인 '좌학파(사가쿠하)'의 선봉을 맡고 있다.

사립 아이즈 여학원은 만들어질때부터 "문무를 겸비한 여성"이 목표라서, 학생들이 늘 검을 허리에 지고 다닌다.[22] 덕분에 작중 일어나고 있는 좌학파(사가쿠하)vs토학파(토우가쿠하)의 싸움은 실제로 칼부림을 한다.(…) 다행히 이 학교의 검은 상대의 검을 튕겨내면 거기서 승부가 끝나기 때문에 사상자는 아직은 없는듯 싶다.

신선조의 패러디라서 국중법도가 당연히 있다. 다행히 해석은 다르다.

7.2.1 국중법도

一、士道ニ背キ間敷事
하나. 사도(무사의 도)를 등지지 말것.

一、局ヲ脱スルヲ不許
하나. 국(조직)에서 나가지 말것.

一、勝手ニ金策致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돈을 이용하지 말것.

一、勝手ニ訴訟取扱不可
하나. 자기 마음대로 청부(일거리)를 받지 말것.

一、私ノ闘争ヲ不許
하나. 사투(개인적 싸움)을 하지 말것.

一、男女戀愛ヲ禁ズル
하나, 남여간의 연애를 금지한다.

右条々相背候者切腹申付ベク候也
이상의 것에 등을 돌린자(규율을 어긴 자)는 切腹(할복)으로 갚아야 한다.

다행히 작품 자체가 러브 코미디인지라, 이 국중법도 역시 러브 코미디풍으로 로컬라이징되어 있어서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다.

예를 들자면 '어길시 할복으로 갚아라'의 경우에는 자신의 배(사비=지갑)를 갈라서(열어서) 갚아라(다른 인원들의 식사를 사준다)식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신센구미는 체중신경 안 쓰고 먹는 사람이라든지, 먹으면 다 가슴으로만 가서 안심하고 먹는 사람등이 있어서 예상밖으로 살벌한 듯 하다.(…)

연애 금지는 공학을 반대하는 좌학파(사가쿠하)에 속하면서도 시험적으로 여학교에 혼자 편입된 주인공이 난데없이 납치되어 신센구미의 4번대 대장이 되면서 생겼다. 그런데 후반가면 의미가 없어진다.(…)

부대는 역시 1~10번까지 있지만, 괴이한 트윈비형 에로오야지 로봇, 머리좋은 고양이, 얼굴이 미묘하게 못생긴 비둘기(…),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가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가 있어서 다행히 히로인 수는 7명(나머지 3명은 하렘시에만)이다.

메이비 소프트답게 다른 유명 애니, 게임 등의 패러디가 보인다

7.3 은혼진선조(真選組)

참고로 백괴사전에서 신센구미를 검색하면 이 신센구미의 정보가 나온다(...).
  1. 시바 료타로의 각종 소설 때문에 이리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이리가 아니라 낭인이라는 뜻이다. 즉, 미부의 낭인들.
  2. 壬生浪士組. 이런저런 평가가 더 들어가서 낭인의 낭과 발음이 같은(한국어 발음도 같다.) 늑대 낭자를 써서 미부의 늑대라고도 한다.
  3. 그래서 전혀 미남이라는 근거가 없는데 병약 미남, 미소년으로 각색되는 경우가 많다.
  4. 게다가 당당하게 이름을 밝힌 게 아니라 정체성을 숨기려다가 들통이 났다는 얘기가 있다.
  5. 교토(京都) 수호직(守護職), 아이즈(会津) 번주(藩主) 마츠다이라 9대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松平容保).
  6. 책상에 앉아서 부채를 휘두르며 이야기를 하는 일본전통 예술 중에 하나.
  7. 그런데 정작 신센구미는 일반 농민 출신이 많아서 그런가 근대화 전술 및 무기에 그닥 편견이 없었고 준군사조직이 되면서부터는 총을 주무기로 삼았다. 대중문화와 사람들의 인식 때문에 검투를 주 전투 수단으로 삼는 무사집단인 것처럼 묘사되는 것이다.
  8. 고증에 충실한 토탈 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 같은 게임에서는 캠패인 화면의 에이전트일 때는 치안유지와 방첩을, 전투 화면의 유니트일 때는 전열보병처럼 전투하면서 근접하면 무서운 공격력의 발도 돌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캠페인 화면의 신센구미는 초기의 신센구미, 유닛으로 생산되는 신센구미는 후기 보신전쟁의 잔류 신센구미로 볼 수 있다.
  9. 이런 심리가 드러난 가장 이해가 쉬운 작품이 바람의 검심이다. 양심적인 유신지사 켄신은 시종일관 과격한 동료 지사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고 적이던 신센구미에게 오히려 더 큰 공감을 가진다. 신센구미 멤버였던 사이토 하지메는 유신 이후에도 치안유지와 민중의 안녕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으로 남았다.
  10. 어느정도냐면 산조제찰사건에선 8인의 적을 상대로 34명을 준비했고, 아부라노코지사건에선 7명을 상대로 35명이 동원 됐다. 집단 다구리만 잘하고 실제 실력은 별로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는 주된 원인.
  11. 일본에서 있었던 무사시 논쟁에서 무사시를 옹호하던 키쿠치 간이 "도쿠가와 시대에 5회 10회라도 진검시합을 한 사람이 있는가" 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사시나 이토 잇토사이 노부쓰나 등의 몇몇 사례를 빼면 진검 대결 자체가 없었다.
  12. 일본은 검술유파만 수백 개다. 그리고 서로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되어있다. 예를 들어 천연이심류나 시현류는 병법 4대원류중 하나인 신토류 계열인 가토리 신토류에서 나왔다. 그런데 정작 가토리 신토류나 같은 계열의 명문 유파인 가시마 신토류가 막말에 활약을 안했다고 해서 이들보다 약하다고 주장할 순 없는 문제란 것. 네임벨류로만 따지만 가시마 신토류가 압도적
  13. 사카모토 료마 암살의 죄목으로 참수당했다.
  14. 실은, 이토 세력을 전멸시키려는 신센구미의 함정.
  15. 신센구미가 주 무대가 아니지만 사이토 하지메의 역할이 크므로 추가함.
  16. 여담으로 켄신의 회상에 등장하는 신센구미 멤버는 앞줄 하라다 사노스케, 곤도 이사미, 오키타 소지며 뒷줄은 다케다 간류사이, 야마자키 스스무, 이노우에 겐자부로, 하지카타 토시조, 나카쿠라 신파치, 사이토 하지메, 시마다 카이
  17. 모티브가 신센구미라고 한다.
  18. 이들을 모티브로 삼은 진선조가 자주 나오기는 한다. 그리고 무조건 미화시킨게 아니라 깡패에 가까운 경찰 집단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은혼이 가장 고증을 잘했다고 할 수...있나?
  19. 정확히는 히지카타 토시조가 무진전쟁에서 안 죽고 살아 남아 나가쿠라 신파치와 함께 패거리를 모아서 에조를 독립국가로 만들려고 금을 찾아다닌다.
  20. 사카모토 료마와 신센구미 3번대 조장 사이토 하지메가 동일 인물이라는 설정의 용과 같이 시리즈 중 한 작품. 여기서도 은근히 현실은 시궁창스러운 묘사다. 신센구미 내부의 파벌 다툼도 드러나고, 토도 헤이스케의 "이런 미친 법도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미친 시대를 버텨 낼 수 있었던 거다"라는 대사, 살인에 익숙해진 집단이라 그런지 내부 배신자가 썰리자 아무렇지도 않게 슬슬 퇴근하자고 하면서 머릿수가 줄었으니 우리 월급도 늘어나겠구만 같은 대사를 하는 등...덤으로 실제 역사와 한참 다르게 이 작품에선 아예 곤도 이사미가 교토 방화를 막는게 아니라 오히려 교토 방화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거나(...) 진짜 오키타 소우지가 치졸하게 음모 꾸미다 역관광당하고 신분까지 뺏겼다거나 심지어 천연이심류가 다른 검술(미토텐구류)의 이름만 바꾼 거라는 등 충격과 공포스러운 설정이 많다...
  21. 신센구미의 대표적인 사건들을 보여주지만, 히로인이 남자, 즉 게이가 히로인이다.
  22. 사실 문무겸비는 표면적 이유이고, 초대 건립자가 자신의 시대를 앞서간 모에를 실현할려고 그렇게 학교를 만들었다는 설정이 있다. 참고로 설정상으로 메이지 유신때 건립된 학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