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약지지파

피를 마시는 새의 용어.

아라짓 제국의 공후귀족들은 황제에게 충성을 서약하고 황제는 그 서약을 받아들임으로써 황제와 귀족간의 군신 관계가 성립된다는 이론을 지지하는 자들을 일컫는 용어다. 규리하 변경백 아이저 규리하가 이 서약지지파의 필두로 등장한다.

문제는 치천제가 충성서약을 받지 않으려 한다는 점. 치천제는 충성서약이 필요없는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했고, 그 본보기로 아이저 규리하를 패망시켜 서약지지파를 뭉개놓았다. 작품 속 언급으로 볼 때 이 충성서약은 치천제보다 앞선 원시제나 혹은 대호왕 때부터 내려온 전통으로서, 치천제의 서약 거부는 파격으로 보인다.

충성서약을 지지하는 표면적인 논리는 이렇다.

"황제와 귀족간의 군신 관계는 서약을 매개로 이루어져야 한다. 충성서약을 무시한다는 건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다."(시카트 규리하는 서약 무시는 곧 귀족들을 사람이 아닌 돼지로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성토했다)

하긴 충성을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겠다는 사람들을 묵살하고 짓밟는 건 일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서약지지의 표면적인 반대 논리는 이렇다.

1. 현실적으로 6억 명이나 되는 모든 제국 신민들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을 수는 없다.
2. 그럼 서약을 하는 자(귀족)와 서약을 못하는 자(평민)로 나뉘게 되는데, 황제는 제국 신민이 구분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모두 똑같은 대우를 하기 위해 서약 자체를 받지 않겠다.
3. 그런데도 서약을 하겠다고 우기는 놈은 반란군노무쉐키다.

이렇게 보면 둘 다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이유로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면에 숨겨진 보다 현실적인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현실적으로 모든 사람이 서약을 할 수는 없으므로 귀족(봉건영주)이 다스리는 영지의 신민들은 귀족에게 충성하고, 귀족은 신민들 몫까지 포함해서 황제에게 서약한다.
2. 그런데 제국에는 귀족령 외에도 제국 행정관들이 다스리는 제국령이 있다. 제국령의 신민들은 행정관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므로 서약을 할 수 없다.
3. 그럼 어떡하나? 제국령을 줄이고 신민들을 귀족령에 포함시켜야 한다.(점진적인 제국령 축소, 귀족령 확대)

이 3번 결론을 놓고 귀족과 황제의 대립이 벌어지는 것이다. 즉 귀족과 황제 사이의 권력 분쟁이라고 보는 것이 가깝다. 위의 내용은 틸러 달비가 설명한 것으로 서약지지는 여기에 더해서 황제와 공후귀족의 관계를 '계약'으로 맺어지는 대등한 관계로 둘 것이냐, 아니면 절대충성과 복종을 바치는 주종관계로 둘 것이냐, 하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입장 차이까지 섞여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1]

치천제는 황제의 힘을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제국을 분열시킬 수 있는 서약지지파와 분리주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래서 쥐딤에서 레콘들을 쟁룡해에 쳐넣음으로써 분리주의를 격파하고, 엘시 에더리로 하여금 규리하를 정복케 함으로써 서약지지파를 분쇄했다. 자신의 영토에서 쫓겨난 아이저 규리하는 치천제를 향한 복수의 칼날을 갈면서 호시탐탐 서약지지파를 다시 결집시킬 기회를 엿보았다.

그리고 황제에 의해 새 변경백에 오른 정우 규리하는 서약지지를 하지 않았다.(그녀는 서약지지도, 거부도 시시한 일로 여겼다.)

틸러가 정우와 아이저의 대화[2]에서 생각한 바에 따르면 충성서약은 선택되었기 때문에 타인을 지배할 수 있는 지배자가 남을 지배할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택된다는 착각을 만든다. 즉 누군가를 황제로 선택한다는 것 자체에 그에게 충성한다는 의미가 들어가있기에 충성서약은 무의미하다고.

그리고 작품 내에서 서술되는 몇몇 관점은, 이영도씨의 전작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주제로 다루었던 자유복수의 관점에도 어느정도 적합한 모습을 보인다. 소유 하지 않음으로써 진정한 자유의 주인이 되어 사람의 신이 되고자 하는 치천제와 충성에 대한 복수로서 신하가 되고자 하는 서약지지파의 모습은, 마치 키 드레이번오스발의 대립과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물론 역할은 완전 다르지만
  1. 요컨대 피마새판 예송논쟁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보기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근본 사상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여지가 있다는 점에서.
  2. "네 목숨은 네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다. 비셀스. 하지만 규리하가 원하면 너는 그것을 내놓아야 한다." "아버지가 원한 것이 아니었나요?" "규리하가 원한 것이다." "죄송하지만 저는 규리하가 제게 그런 이야기 하는 것 듣지 못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