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MSL 일람 | ||||
Stout/baskinrobbins배 KPGA 투어 4차리그[1] / MSL 출범 | → | Stout MSL | → | TG삼보 MSL |
1 개요
- 대회 기간 : 2003년 4월 17일 ~ 2003년 7월 19일
- 사용 맵 : 채러티(Charity), 다크 사우론(Dark Sauron), 짐 레이너스 메모리 정글 1.5(Jim Rayner's Memory Jungle 1.5), 건틀릿 2003(Gauntlet 2003)
- 스폰서 : 하이트
- 조 편성
A조 | 홍진호, 조정현, 박태민, 변은종 |
B조 | 조용호, 김환중, 전태규, 서지훈 |
C조 | 임요환, 장진수, 김정민, 백영민 |
D조 | 이윤열, 강민, 김현진, 변길섭 |
- 우승 강민, 준우승 이윤열, 3위 전태규, 4위 조용호
- 결승전 장소 : 여의도 한강 시민공원 특설무대
- 특이사항
- KPGA(現 KeSPA)와의 제휴를 종료하고 MBC GAME이 주관방송사에서 주관사로 승격
- 우승자 상금이 8백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상승.
- 더블 엘리미네이션 도입
- 김동준 해설 투입[2]
- 세중 게임월드 오픈 스튜디오로 이전 후 첫 MSL.
- 차기리그 시드가 3장에서 8장으로 확대.
- 홍진호의 광속탈락.
- MSL(전신인 KPGA투어 포함) 최초의 프로토스 우승자 탄생.
- MSL에서의 첫 번째 1패(결승전 어드밴티지 1승 포함 9승 1패) 우승자가 나옴
- 프로토스가 테란을 꺾고 우승한 유일한 MSL
- 강민, 커리어 첫 개인리그 결승 진출 및 우승.
- 대회 중간 프로게이머 파업으로 인해 올드 게이머를 초청해 Again 2000이라는 세미 토너먼트 개최.
- 승자 결승에서 결승으로 진출 한 선수에게 1승 어드벤티지를 부여.
2 KPGA 시대가 막을 내리고 MSL의 시대가 시작되다
gembc가 정식으로 MBC PLUS 계열에 편입되면서[3] 이름을 MBC GAME으로 바꾸고 K-tec KPGA 위너스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MBC GAME은 KPGA와의 제휴를 종료하면서 MSL을 런칭시켰고 코엑스 세중게임월드 오픈 스튜디오로 경기장을 이전하면서 온게임넷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려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온게임넷도 코엑스 메가박스 내의 메가웹 스테이션을 경기장으로 쓰고 있었기에 코엑스는 단숨에 E스포츠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게 된다.
2.1 리그 방식 개편
양대 리그제가 리그를 너무 루즈하게 만든다고 판단한 장재혁 PD는 스타리그(당시 명칭은 온게임넷 스타리그)와 차별화 시키기 위해 더블 엘리미네이션을 도입했다.
- 16강/승자조 8강/패자조 1,2차 8강 : 단판제
- 승자조 4강/패자조 1,2차 4강 : 3전 2선승제
- 승자조 결승/패자조 준결승,결승 : 5전 3선승제
- 최종 결승 : 5전 3선승제(승자조에서 진출한 선수는 1승 어드밴티지)
그러나 승자조에서 최종 결승에 올라온 선수의 1승 어드밴티지[4] 때문에 논란이 크게 일었고 다음 대회부터는 승자조 결승 진출자가 1,5경기 맵을 선택할 권리를 얻는 것으로 어드밴티지가 변경되었다.
3 리그 진행
전체적으로 프로토스의 기세가 강력했던 리그로 전태규는 패자 결승에서 이윤열을 나락까지 몰아갔었고 이윤열의 정규리그 4연패를 강민이 저지하면서 MSL 최초의 로얄로더가 탄생했으며 강민은 MSL 초대 우승자, 초대 프로토스 우승자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5]
KPGA 투어 1차리그 이후 MBC GAME에서 약한 모습만 보이던 임요환은 패자조 준결승에서 강민에게 패퇴했는데 이후 2년동안 MSL에 복귀하지 못한다.(…) 홍진호는 아예 16강에서 2패로 광속탈락을 하면서 충공깽을 선사했다. 그나마 임요환과는 달리 차기 시즌에 MSL에 복귀하지만.
단독 진행한 첫 리그였던데다가 당시 강민의 팬층은 얇았기 때문에 결승전 장소를 여의도 한강시민공원으로 잡았는데 결승전 당일 새벽에 폭우가 내려 결승전 무대가 진흙투성이에 어수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같은 시즌 스타리그는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했던 것과 대조적이어서 더 안습해보였지만 이건 완불엠 전설의 시작일 뿐이었다.(…)
4 프로게이머 협회와의 갈등
MBC GAME과 MSL의 기반을 닦은 리그로 평가되지만 중간의 선수 파업사태 당시 너무 쉽게 굴복한 것은 후에 프로게이머 협회[6]가 사사건건 엠겜의 발목을 잡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4.1 Again 2000
파업 덕분에 일정이 비게된 MSL 스탭들은 협회와 관계없는 올드 게이머들을 초청하여 작은 토너먼트를 열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Again 2000이다. 물론 비공식 리그이지만 소정의 상금도 지급되었고 MSL 결승 식전 행사로 치러졌고 경기에 대한 반응도 좋았다. 참고로 우승은 기욤 패트리, 준우승은 송병석- ↑ 중간에 왕중왕전 성격으로 K-tec KPGA 투어 위너스 챔피언십이 있었다.
- ↑ 정확하게는 바로 이전대회인 케이텍 KPGA TOUR 위너스 챔피언십부터 투입됐지만 위너스 챔피언십이 이벤트전인지라 MSL은 스타우트부터 투입.
- ↑ 이 말은 이전까지 MBC PLUS의 식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세중게임월드 시대 이전까지 본사 경영센터 A스튜디오에서 셋방살이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 더블 엘리미네이션을 채택하는 경우에 승자조에서 최종결승에 진출한 선수에게 어느 정도의 어드밴티지를 주는 경우는 종종 있어왔다(승자조에서 최종 결승에 올라온 선수는 단 한 번도 지지않고 올라왔으므로 그에 대한 보상차원). 이 경우는 어드밴티지가 너무 커서 문제가 된 케이스.
- ↑ KPGA 투어 시절은 스타리그의 99 PKO처럼 역사에서 빠졌다 들어갔다를 반복한다. 최후에는 MSL의 역사로 인정받지만.
- ↑ 말만 프로게이머 협회지 실제로는 프로게이머 감독 협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