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구선수
선수 말년에 쏠쏠히 활약했던 LG 트윈스 시절. (출처 : 포토로)
KIA 타이거즈 No.85 | |
신동수 (申東洙 / Dong-Soo Sin) | |
생년월일 | 1966년 10월 1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광주광역시 |
학력 | 무등중-광주상고 |
가족 | 아들 신희섭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입단 | 1986년 해태 타이거즈 1차 지명 |
소속 팀 | 해태 타이거즈 (1986~1993) LG 트윈스 (1994~1997) OB 베어스 (1998) |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5번 | |||||
김평호(1987-1990) | ➡ | 신동수(1991~1993) | ➡ | 김신(1994~1996) | |
LG 트윈스 등번호 14번 | |||||
이병훈(1990~1993) | ➡ | 신동수(1994) | ➡ | 심재학(1995~1999) |
해태 타이거즈에서 활약했던 좌완 투수. 말년엔 LG 트윈스와 OB 베어스에서도 뛰었다. 현재는 KIA 타이거즈의 1군 투수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1.1 현역 시절
1986년 해태 타이거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당시 타이거즈에 흔치않은 좌완인지라 자주 기용되었다.
커리어하이였던 1991년에는 45경기에 출장하여 176.2이닝을 소화했고, 14승 7패 5세이브를 거뒀고 평균자책점은 2.45를 달성했다. 게다가 무려 5완투 2완봉을 거뒀다.
해태에서 100이닝 이상 던진 햇수가 5년이나 있고, 그 중에서 2년은 두자리 승수도 달성했다. 통산 기록을 보면 1000이닝 가까이 던지면서 평균자책점은 3.51을 거뒀다. 해태가 아닌 다른팀이였더라면 충분히 2선발급이었으나, 팀에 이런 괴물들이 있어서 선발과 계투를 오가는 중무리로 기용되었다.
투구 스타일은 좌완 강속구 스타일이 아닌 기교파였다. 구위는 같은 팀의 김정수가 더 좋았지만, 제구는 신동수가 더 좋았다고 평가받는다.
1992년 9월 17일 대전 빙그레전에서 장종훈에게 40호 홈런을 허용했던 선수이기도 하다.
그렇게 1993년까지 해태에서 좋은 활약을 했으나, 1993년 12월에 있던 한대화+신동수+허문회+김봉재를 LG로 넘기고, 김상훈, 이병훈을 받는 트레이드를 통해서 LG 트윈스로 이적했다.
그 뒤 LG에서 좌완계투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고, 1997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1998년 OB 베어스에 입단해 재기를 노리지만, 부활에 실패하고 그대로 은퇴한다.
1.2 지도자 경력
현역 은퇴를 한 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05 시즌이 지난 뒤 경질되었고, 2006년부터 2009년까지는 모교인 광주동성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를 지내기도 하고,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2009년 9월부터는 모교 광주동성고 야구부 감독을 잠시 맡기도 하였다.
2011년 10월 26일에는 당시 선동열 감독이 기아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다시 투수코치로 친정팀에 돌아왔다.
2 한국전쟁 참전용사
전쟁당시 백골부대 소속의 일병계급 소년병. 당시 맥아더 장군을 만난 일화가 유명하다.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던중, 군인이 참호를 지키고 있는것을 보고 다른 부대는 모두 퇴각했는데 왜 퇴각하지 않았는지 물은 데 대해 직속상관의 명령이 있기 전까진 사수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감명받은 맥아더가 소원을 한 가지 들어준다고 했는데, 제대나 후방배치같은 걸 말한 게 아니라 당시 대한민국 국군의 무기와 탄약이 모자라므로 이것을 원한다고 대답했다. 더 감명받은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온갖 반대에도 실행함은 물론 회고록에도 '그 소년병은 참된 군인이었다. 그 병사의 나라를 구해주겠다고 마음먹었다.'라고 남겼다.
백골부대에서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였는데, 사실로 밝혀졌다! 2006년 KBS뉴스에 직접 출연해 인터뷰를 함으로써 사실여부가 분명해졌고, 본인은 2013년 별세했으나 이후 영화 인천상륙작전에서도 중요한 장면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