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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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신창호(申昌好 / Chang-Ho Shin)
생년월일1987년 3월 18일
출신지서울특별시
학력남정초 - 중앙중 - 경동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6년 2차지명 1라운드
소속팀LG 트윈스 (2006~2007)
서울 해치 (2011)
KIA 타이거즈 (2012~2016.7.15)
연천 미라클 (2016.8.11~)
LG 트윈스 등번호 40번(2006~2007)
전승남
(1997~2004)
신창호(2006~2007)최동환(2009)
KIA 타이거즈 등번호 95번(2012~2014)
임태환(2011)신창호(2012~2014)전현태(2015~)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2015~)
박지훈(2012~2014)신창호(2015~2016.6)배힘찬(2016.7~)
KIA 타이거즈 등번호 44번(2016.7~)
오두철(2015)신창호(2016.7~7.15)
연천 미라클 등번호 38번(2016.8 11~)
결변신창호(2016.08.11~)헌역

1 개요

KIA 타이거즈투수.
학생 시절에는 포수를 봤을 정도로 강한 어깨를 가지고 있다. 또한,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상당히 다이나믹한 투구 폼을 가지고 있다. 다만 공이 높은 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LG에서 뛰던 시절 '신창호의 라이징 패스트볼'이라는 말로 알려지기도 했다. 평균 구속은 140km/h대에서 형성된다.

2 아마추어 선수 시절

원래는 경동고의 주전 포수이자 4번타자로 타격에 나름 소질을 보이던 유망주였으나, 3학년이 되던 해 투수로 전향했다. 이 때 덜 완성된 투구 폼으로도 140km/h의 속구를 뿌려 각 구단의 스카우트들을 놀라게 했는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한달에 3km/h씩 구속을 올려 봉황기 때는 거의 150km/h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리며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다.

3 프로 선수 시절

3.1 LG 트윈스 시절

이와 같은 반짝 활약으로 2006년 2차 지명 당시 류현진, 손영민, 차우찬, 강정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유망주로 분류되었다. 물론 기량이나 성적이 위의 선수들과 동급이었던 것은 아니고, 경동고 3학년 때 투수로 전향한지 3개월만에 강력한 공을 던져 성장 가능성을 보고 지명했다는 것이 옳으며, 당시에도 1라운더로는 깜짝 지명이라는 평이 많았다. 당시 삼성 감독이었던 선동열 감독이 그를 잡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을 정도.

하지만 이에 대해 다른 의견도 있는데, 삼성 라이온즈에서 의도적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여 타구단의 신창호의 상위지명을 유도하였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군산상고의 좌완 에이스 차우찬을 노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던 LG 트윈스에서 삼성 구단의 이런 언플에 낚여서 신창호를 깜짝 지명했고 삼성은 차우찬을 지명하였다는 것. 실제로 LG 트윈스는 이 해 드래프트에서 신창호를 제외하고 돌풍을 일으켰던 군산상고 주전 멤버였던 원종현황선일을 모두 지명하였다.그리고 둘 다 LG에서 망했다

그러나 프로 데뷔 후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2년을 보냈고, 포수 출신 투수들이 흔히 겪는 부작용인 무릎과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까지 받게 되었다. 수술 이후 팀에 복귀하나 예전같은 강속구는 보여 주지 못한 채 결국 팀에서 방출되고 말았다.

3.2 군 복무 시절

방출생이기 때문에 상무나 경찰청에 가지 못한 채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다.

3.3 서울 해치 시절

제대 후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 구단인 서울 해치에서 뛰면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3.4 KIA 타이거즈 시절

2011년 10월 KIA 타이거즈육성선수로 입단하게 되었다. 독립리그 '서울 해치'에서 뛸 당시 감독이었던 박철우KIA 타이거즈의 2군 총괄코치[1]로 부임하면서 입단을 주선했다고 한다.[2]

3.4.1 2012 시즌

시즌 초부터 2군에서 뛰며 몸을 가다듬기 시작하였다. 7월 26일 기준으로 14경기 25⅔이닝 2승 1세이브 1홀드 16피안타 3피홈런 20사사구 23탈삼진 12실점 10자책점에 평균자책점 3.51을 기록. 이후 7월 25일 1군에 콜업되며 정식 선수로 등록되었다.

7월 26일 무등 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KIA에서의 1군 첫 등판을 가졌다. 1:9로 크게 이기던 9회초 등판. 이성열은 1루수 직선타로, 오윤은 삼진으로, 대타 정수성은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내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이날은 1이닝 3타자 10투구수 3타수 1탈삼진을 기록. 팬들이 탈쥐효과를 기대하게 하고 있다.

7월 28일 무등 한화 이글스전에서 팀이 3:1로 지던 7회초 등판하여 1이닝 14투구수 4타수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역전하지 못하고 패배하였다. 하지만 7월 29일에는 3:0으로 지던 상황에서 8회초 등판하여 ⅔이닝 24투구수 4타수 2피안타 1탈삼진 2실점 2자책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후로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8월 8일 유동훈과 함께 2군행.

9월경 다시 1군으로 올라왔으나 큰 활약은 보이지 못하였다. 9월 15일에는 SK에게 4실점을 허용하며 말 그대로 점수를 퍼줬다.(...)

시즌이 끝난 후 늘어나지 않는 구속 때문인지 사이드암으로 전향한다는 소식이 본인 페이스북에 올라왔다고 한다.

3.4.2 2013 시즌

사이드암 전향을 시도하였으나 별 재미를 보지 못했는지 원래 폼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어쨌건 2군에서 선발로 주로 등판했으며,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8월 1일에 처음으로 1군에 콜업되었고, 패전조에서 이닝을 소화하면서 나름대로 제 몫을 해 주었다.

3.4.3 2014 시즌

처음으로 개막전 엔트리에 들면서 주로 중간계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KIA 타이거즈 불펜 중에서 그나마 자기 몫을 해 주는 우완 중간계투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5월 중 선발의 한 축을 맡았던 송은범의 갑작스런 이탈로 인해 공백이 생기자 한승혁을 대신하여 새로운 선발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 5월 29일 챔피언스 필드에서 열린 두산전에 선발로 등판했으나, 2⅔이닝 동안 75개의 공을 던지며 9피안타 3볼넷 1K에 그치고 9실점하며 조기 강판당한 후 패전 투수가 됐다.

3.4.4 이후

2015년 별다른 활약 없이 주로 2군에 있었고, 2016 시즌에는 1군에 오르지 못하다가 시즌 중 전현태, 최현정과 함께 소리소문없이 방출당했다.(구단 홈페이지에는 뒤늦게 삭제되었다.) 아프리카TV 소대수 방송에 나온 나유리 기자의 말에 의하면, 팀의 상황상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해서 방출했다고 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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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연천 미라클 시절

KIA 타이거즈에서 방출된 이후 연천 미라클에 입단 하였고, 11일 LG 육성군과의 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4이닝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을 기록하였다. 9월 9일 한화 이글스 육성군 경기에서는 7회까지 솔로홈런 하나만을 내주면서 호투하였다. 결국 이날 7vs4로 연천 미라클이 승리하였다 10월 7일 LG와에 경기에서는 4이닝 3피안타 1실점으로 호투했지만, 불펜 투수들의 불쇼로 4vs4로 비겼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06LG 트윈스24⅓00000.00010.386321551.846
20071군 기록 없음
연도소속팀경기수이닝승률ERA피안타피홈런4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WHIP
2012KIA 타이거즈76⅔00000.0009.4510155772.250
20131821⅓02000.0005.91293151714142.063
2014273801000.0006.16403263329261.684
KBO 통산(5시즌)5470⅓03000.0006.658510485655521.863
2016연천 미라클31410001.0001.286113220.5
  1. KIA 타이거즈는 따로 2군 감독을 두지 않고, 총괄코치가 2군을 관리한다.
  2. 여담으로 KIA 투수 김진우도 방황하는 기간 동안 잠시 서울 해치에서 뛴 경력이 있다.
  3. KIA에서는 내야수 김선빈안치홍이 제대하면 1군에 올릴 거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