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KIA 타이거즈/선수단, 야구 관련 인물(KBO)
배팅찬 으로는 들어올 수 없습니다
파일:/image/076/2015/05/10/2015051001001011000069821 99 20150510171003.jpg |
더 이상 보고 싶지도 않은 낙센(...) 히어로즈 시절. |
파일:/image/109/2016/03/17/201603171554771830 56ea54fc5ccbe 99 20160317155704.jpg |
기아팬들도 보고 싶지 않은, KIA 타이거즈 소속의 현재모습 |
KIA 타이거즈 No.37 | |
배힘찬 (裵힘찬 / Bae Him-Chan)[1] | |
생년월일 | 1983년 12월 8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서울특별시 송파구 |
출신 학교 | 가동초-경원중-서울고 |
포지션 |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02년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10번 |
소속팀 | 현대 유니콘스 (2002~2007) KIA 타이거즈 (2016~) |
군복무 | 공익근무요원 (2006~2007) |
등장곡 | MC몽 - 서커스 |
KIA 타이거즈 등번호 12번 | ||||
차일목 (2003~2015) | ➡ | 배힘찬 (2016~2016.6.30) | ➡ | 임창용(2016.7.1~) |
KIA 타이거즈 등번호 37번 | ||||
신창호 (2015~2016.6.30) | ➡ | 배힘찬 (2016.7.1~) | ➡ | 현역 |
목차
1 소개
KBO리그 KIA 타이거즈의 우완투수. 150km/h에 달하는 빠른 포심 패스트볼을 던질 수 있으나, 제구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점으로.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가는 공을 던지면 140km/h대를 간신히 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인시절부터 프로입단 14년차인 2016년까지도 전혀 해결이 되지 않고 있다.
덧붙혀서 매년 스프링캠프에서는 감독 및 코치진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며 기대를 하게 만들곤 하지만, 정규시즌만 시작하면 부진한 모습을 보이다가 소리소문없이 2군으로 잠적하는 게 일상이다. 전형적인 2군 페드로. 비슷한 타입으로 이동학, 이대환, 조태수, 백정현[2] 등이 거론되곤 한다.
서울고 입학 당시 170대 초반의 키였으나, 1년 사이에 훌쩍 자라 지금의 체격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 프로 생활
현대에 2002년 2차 1순위로 지명되었다. 이 외에 2002년 드래프트에서 현대가 지명한 선수 중에는 이현승과 장원삼이 있다. 이현승이 3라운더, 장원삼이 11라운더. 이 두 명은 대학 졸업 후 2006년에 입단하였다. 2차 1순위라는 지명 순위에서 보이듯 입단 당시에는 나름대로 기대를 받던 유망주였다. 입단 이후에는 2군 붙박이가 되었다. 중간에 공익으로 병역도 해결하고, 팀도 현대에서 낙센(...)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2군 터줏대감. 입단 이후 2002년부터 2008년까지 1군에서 총 15이닝 던졌다.
2.1 2009 시즌
김시진이 2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특히, 이 때 까지는 비주전 및 주전선수들을 비교적 잘썼다. 패전처리 역할을 부여받고서 21경기 31이닝 평균자책점 4.35 1승 1패 2홀드를 기록하였다.[3]
2.2 2010 시즌
4월에 중간계투로 조금 나오다 5월에 붕괴된 선발투수 로테이션을 채우기 위해 땜빵 선발로 출전했다.
5월 1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5와 1/3이닝 1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선발승을 가져간다.
그리고 5월 7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6이닝 0실점으로드디어 터지는 것인가... 했는데
5월 13일 KIA 타이거즈전에서 5이닝 3실점을 하며 불안해지더니 5월 20일 SK전에서 2이닝 3실점 3볼넷, 5월 26일 한화전에서 1 1/3이닝 4실점을 하며 망했다.
26일 이후로 다시 중간계투로 올라오다 화끈한 볼질과 함께 2군으로 사라졌다. 이 때부터 본격적인 패드로 놀이가 되었다.
2.3 2011 시즌
3월 12일 KIA 타이거즈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2회부터 슬슬 무너지던 김성현에 이어 4회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한다. 모두가 대량실점을 예상하던 상황에서 이현곤과 김다원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내버리는 위엄을 보여주었다.오오 스트롱 배 오오 그리고 이날 성적은 2 2/3이닝 1피안타 4K 0실점. 최고구속은 149Km/h. 구속도 높았지만 상대적으로 밋밋하던 변화구를 개선해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이후로의 활약은 거의 없다시피했고 확대엔트리에 올라왔으나 밀어내기로 실점만하고 2011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2.4 2012 시즌
1군은커녕 2군에서도 기록이 전혀 없었다.
그래도 기대가 아직 남아있는 건지 구단에서 방출이나 트레이드 없이 보호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에서 이성열의 맞트레이드 대상으로 오재일과 배힘찬을 요구했으나, 이장석의 거절로 배힘찬은 빠졌다고 한다. 정명원 투수 코치가 넥센 시절 애지중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참고로 배힘찬의 등번호 28번은 정명원코치의 선수시절 등번호다. 나이도 30을 넘었지만 현장에서는 아직 기대를 받고 있는 듯하다. 오히려 김성태 이 사람이 대인배였다...
2.5 2013 시즌
2013년 자신을 스카우트했던 염경엽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배힘찬을 상당히 기대하고 있는 선수로 언급했고 2013시즌 스프링캠프에도 참가했다. 그러나 1군에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한채 시즌내내 2군 붙박이로만 지냈다. 팬들은 사실 기대를 거의 접은 상태이다.
2013년 마무리캠프 투수조 MVP를 받으며 다음 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2.6 2014 시즌
2014년 스프링캠프 애리조나 캠프와 오키나와 캠프에 모두 승선해 팬들의 마음 노망주가 드디어 터지나 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으나 오키나와 캠프에서 뚜껑을 열어본 결과 2경기 3⅔이닝 동안 4피안타 5사사구 5실점(4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9.82를 기록하며 역시나 부진했다.
2014년 3월 15일 NC와의 시범경기에서 강윤구에 이어 2번째로 등판해 1과 1/2이닝 동안 2피안타 5볼넷 3실점으로 부진했다.
그렇게 화성에 있던중 5월 8일 2014년도에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었다.
1군에 올라오고도 한경기도 등판하지 않다가 5월 18일 다시 화성으로 돌아갔다. 이쯤 되면 전설의 동물 수준.
2군에서도 딱히 돋보이는 성적을 내지 못했는데도 6월 7일 1군에 등록되었다.
6월 8일 두산전에서 선발투수 김대우와 릴리프 강윤구가 차례로 조기강판되면서 간만에 그 모습을 보게될까 걱정하는 팬들도 있었다. 다행히 마정길, 한현희가 각각 2 1/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안봐도 되겠다며 안심했으나.. 결국 마무리 손승락이 희대의 극장을 열게 된 후 다음 투수로 등판, 3년만에 1군 마운드를 밟았다. 그리고 공 한개로 이닝을 끝냈다.
이후 고향에 돌아가지도 않고 엔트리만 차지하다가 6월 22일 SK전에서 10:5로 이기는 상황에 9회 초 등판했다. 선두타자 박계현에게 실책성 안타를 맞았지만 남은 이닝을 막아냈고 시즌 1.1이닝 무실점 투수가 되었다.
6월 25일 삼성전에서 2:11로 패색이 짙은 상황에 올라와서 일요일이 아니어서인지3점을 추가실점했다. 그나마 3이닝동안 던졌으니 다행인듯.
6월 28일 두산전에서 등판,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7월 2일 롯데전에서도 8회 등판, 삼진 한개를 곁들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7월 6일 기아전에 올라와서 4실점(3분식 1자책)했다. 다음 이닝에 타선이 6점까지 따라잡은걸 생각해보면 아쉬운 점.
이후 7월 7일에 올라온 오재영 대신 말소되었다.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라는 명언에 알맞게 그는 2014년 100만원 연봉 상승과 함께 살아남았다.
2.7 2015 시즌
5월 17일 한밭 한화 3차전에서 팀이 6:0으로 앞서가다가 끈질긴 추격을 당한 끝에 6:6 동점으로 9회를 끝낸 후 10회말 등판했다. 조상우는 휴식, 손승락은 3연투에다 9회 블론, 다른 계투들도 이미 소진된 상황이어서 하영민 정도 외에는 나올 만한 투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영민도 이미 전날에 41구를 던지며 2.1이닝 롱릴리프를 한 상황인데다, 10회초 타자들이 추가점수를 내지 못하면서[4] 그냥 감독이 무리하지 않고 경기를 내려놓은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다. 배힘찬이 혹시라도 막아내면 자신감 상승이고. 그러나 배힘찬은 볼질로 자초한 2사 만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강경학을 상대로 헛스윙-볼-파울로 이어지는 1-2의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또다시 볼질을 남발하여 밀어내기 볼넷을 내 주고 패전투수가 되었다. 결국 다음날 말소되었다.
그 이후에는 시즌 후반에 간간이 등판하면서 의외로 별로 실점하지 않았다. 다만 5월 17일 경기의 영향인지 주로 승부가 많이 기운 뒤에 등판해서 부담이 덜하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9월 26일 , 독립구단 고양원더스에서 한화 이글스에 입단한 식물타격 송주호에게 홈런을 맞았다. 홈런타자도 아니고 그냥저도 아닌 대수비/대주자 김성근의 양아들로 유명한 송주호에게 맞았다는 점에서 넥센 팬들은 해탈했고 , 이젠 그냥 혀갤에선 빨리 방출하라고 있는 욕 없는 욕 다 먹었다.
그렇게 시즌이 끝나고 가을야구 엔트리는 진작에 못 들고 2군으로 다시 불려갔다고...
시즌 후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넥센 팬들은 쾌재를 부릅니다
2.8 2016 시즌
NAXEN 에이스 GIA로 전격이적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데려온거냐?
함평 전용 투수
새 팀으로 이적하면서 배힘찬은 기존에 달았던 28번 대신 12번을 선택했는데, 타이거즈 역사상 12번은 주로 포수들이 달았던 번호라는 점에서 특이한 선택이 되었다.
2월 19일 삼성과의 연습경기에서 연속 4안타를 쳐맞고 5실점 뒤 혼자 총 6실점을 해 결국 배힘찬이라는것을 보여줬다. 환불 불가 상품입니다.
3월 15일 시범경기 nc전에서는 일단 무실점으로 1이닝을 막아는 냈으나 2안타에 첫타석 로또준을 향한 헤드샷을 날렸다.다행히 호부지가 피했지만 속구였었기에 맞을수도 있었던 아찔한 상황.중년의 찰진 식빵이 이 헤드샷의 분노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3월 24일 롯데 전에서는 4연속 볼넷의 원흉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결국 이러한 활약(...)으로 인해 개막은 함평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5월 5일 시즌 첫 등판하여 9타자를 범타로 막으며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커리어 첫 세이브는 덤
5월 17일 두산전에서 8회말 2점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 3자범퇴를 기록하였다.
5월 18일 두산전에서 석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구원등판하여 힘차게 14구 연속(...) 볼을 기록하고 연속 볼넷도 모자라 밀어내기로 두점을 준데 이어 적시타로 경기를 조공하는데 1등공신 역할을 했다. 기아팬들은 2차 드래프트 1라운드로 3억을 주고 사온 프런트의 안목에 치를 떨고 있다.
임창용이 오랫동안 달고 있던 37번에서 12번으로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배힘찬이 선배인 임창용의 상징이나 다름 없던 37번으로 바꿨다.너따위가?
그리고 함평으로 쫒겨났다.
2016년 시즌 1군 기록은 3게임 0승 0패 1세이브 ERA 7.94으로 여전히 답이 없다는 것을 인증해주었다.
문제는 2군 기록도 신통치 않다는 것. 13게임 0승 4패 ERA 6.50으로 제대로 폭망했다. 이쯤되면 당장 방출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
3 트리비아
- 여기서 NEXEN을 NAXEN으로 표기했는데, 오타인지 의도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넥센 팬들 사이에서는 "저 선수는 넥센 선수가 아니라 낙센 선수다."라는 드립이 흥하게 된다.
4 논란
300px
2015년 5월 17일 한화전에서 고참급 선수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한심한 경기를 보여준 후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리자 팬들이 자신의 경기력에 대해 지적하였는데, 아무리 봐도 이 팬들을 지적하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후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비공개로 돌려버렸다.
혀갤에서는 문성현이 양반일 줄이야![5] 이참에 제발 좀 방출하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