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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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정이?....

KIA 타이거즈 No.038
손영민(孫詠敏 / Young-Min Son)
생년월일1987년 4월 28일
출신지충청북도 청주시
출신학교우암초-청주중-청주기계공고
포지션투수
투타우사우타
프로입단2006년 2차지명 1라운드(전체 5순위)
소속팀KIA 타이거즈 (2006~2012, 2016~)
KIA 타이거즈 등번호 39번(2006~2007)
유동훈(1999~2004)손영민(2006~2007)유동훈(2008)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2008~2009)
신용운(2006~2007)손영민(2008~2009)신용운(2010~2011)
KIA 타이거즈 등번호 21번(2010)
정성철(2009)손영민(2010)윤석민(2011~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1번(2011)
안영명(2010)손영민(2011)이범석(2012~2014)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2012)
신용운(2010~2011)손영민(2012)손동욱(2013)
KIA 타이거즈 등번호 038번(2016~)
손영민(2016~)

1 소개

정우람에 버금가던 고무팔
조범현이 KIA에서 유일하게 혹사시키던 투수[1]
한 때 기아의 필승조 였지만, 사생활, 음주운전 문제로 모든걸 잃어버린 선수

KIA 타이거즈투수. 우암초-청주중-청주기계공고를 거쳐 2006년 2차 1번으로 KIA에 입단했다. 당시 KIA는 좌완 투수 양승진을 지명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느닷없이 손영민으로 급선회하며 그해 2차지명을 혼돈으로 빠뜨렸다.[2] 사실 손영민은 현대 유니콘스가 1라운드 8픽으로 지명하기로 했었는데, KIA가 뽑아가자 대신 뽑은 것이 강정호였다.[3] 결국 양승진은 순번이 쭉 밀려 2라운드 10픽으로 한화 이글스의 품으로 가게 되었고, 어쨌든 그 해 고교 최고의 언더핸드 투수로 청주기공의 핵잠수함 소리를 듣던 손영민은 그렇게 KIA 유니폼을 입었다.

2 프로 데뷔 후

2.1 2006 ~ 2008 시즌

2007년부터 중간계투로 주로 등판, 2008년까지는 불영민이라 불리며 꽤나 까였다.

2.2 2009 시즌

2009년 94이닝 동안 투구하며[4] 5승 2패 12홀드 1세이브에 2.97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KIA 불펜의 핵심으로 부상하였다. 특이하게도 연투를 할수록 경기 내용이 좋아졌다.(…) 한국시리즈와 요미우리전에서 부진했던 이유가 연투 이후의 등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드립이 있었을 정도.

2.3 2010 시즌

전 시즌처럼 필승조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말까지 평균자책점 6.75를 찍고 막장화되고 있었다가 5월부터는 좀 나아지는 듯 싶었지만 6월 18일 문학 SK전에서 불을 지르며 선발 윤석민의 승리를 지켜주지 못했다. 다음 날 윤석민이 오른손으로 라커룸을 쳐 부상을 당한 소식이 알려졌고, 그렇게 팀 16연패의 닻을 올렸다. 6월 23일 광주 넥센전에서는 선발 양현종의 승리를 날려버렸다. 7월 22일 광주 삼성전에서는 곽정철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2아웃까지 잡아냈으나 진갑용에게 역전 투런 홈런을 맞고 말았다. 그래놓고 후속타자는 깔끔하게 삼진으로 처리하였다.

계속되는 불질로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는 손신병자라 불리며 유동훈과 함께 넥센 강정호와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길 바라는 선수가 되어버렸다. 특히, 황재균의 롯데 이적 이후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강정호와 함께 갤러리의 지분을 양분하였다. 유동훈과 함께 블론 6개로 이 부문에서 공동 1위. 때문에 그가 올스타전에 나가게 되자 갸갤에선 조뱀의 마지막 선물, 손신병자가 올스타전에 나가는 더러운 세상 등 조롱에 가까운 글들이 올라왔으나 올스타전에선 1⅔이닝 동안 삼진 2개에 무실점으로 호투하였다. 그리고 후반기 첫 경기인 7월 27일 사직 롯데전에서 6회 로페즈를 구원나와 1사 1, 3루 위기 상황에서 황재균을 병살로 처리, 7회말은 삼자범퇴로 마무리해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9 시즌에 비해 심하게 몸이 불어났다. 특히 7월 27일 등판 때의 모습은 그야말로 충공깽. 혹자는 박성호가 손영민 유니폼 입고 올라온 거 아니냐 할 정도였다.

후반기 들어서 잘막아 네이트에서 7월 마지막주 베스트 피쳐에 뽑았으나,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8월 4일 광주 LG전에서 조인성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3윌 쉬고 올라온 서재응의 승리를 날려 먹는 데 일조하였다. 더불어 잉금님에게 LG 포수 최다 홈런 신기록을 조공했다.

8월 7일 군산 두산전에서는 선배 이대진의 승리를 날려버리면서 유동훈을 제치고 드디어 블론세이브 단독 1위에 올랐고, 8월 20일 광주 삼성전에 등판해 볼넷 2개에 안타 2개를 맞으며 3실점하여 결국 2군으로 쫓겨났다. 그리고 숀영민이라는 별명이 추가되었다(숀 헤어+손영민).

이종범나가면 휘발유나 신나를 뿌린다며 까기도 했다.#

2.4 2011 시즌

2011 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조범현 감독이 성장이 많이 이루어진 투수 중 하나로 꼽았다. 커브의 완성도가 높아졌고 유동훈이 어떻냐에 따라 손영민이 마무리 투수를 맡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일단 2010 시즌에 비해 살이 많이 빠지긴 했는데, 달라진 게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나마 화끈하게 불지르는 곽정철이나 유동훈에 비하면 조금 낫다지만 그게 그거. 방사능 대첩에서도 그나마 버텨준 선수가 손영민이었지만.. 방사능 대첩 이후로 행방불명이었다가 광주 넥센 3연전에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4월 14일 등판에서는 첫이닝은 세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아내며 호투했다가 다음 이닝에서 수비실책과 볼넷으로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서재응이 밀어내기 1실점만 하고 잘 막은 덕에 1승을 챙길 수 있었다.

4월 23일 잠실 LG전에서 곽정철이 자초한 만루 위기를 막아낸 박경태가 3회에서 제구난조를 보이자 만루를 자초했고 손영민이 이어 등판해 4이닝동안 1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승리를 챙겼다. 이후 불펜중에서 상태가 가장 좋다고 판단되자 백정처럼 굴려졌다. 2011 시즌 내내 노예로 굴려질 모양.[5]

그리고 KIA 불펜진의 희망으로 등극했다! 2011년 7월 1일 기준으로 4승 3패 6홀드 4세이브 ERA 2.20을 기록하며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불펜진이 영 상태가 안 좋아 거의 유일한 필승계투조(…)로 굴려졌활약했다.

7월 9일 잠실 LG전에서 양현종이 1회부터 무너져 2회에 일찌감치 차정민으로 교체되었고, 구원투수 차정민에 이어 등판하여 4⅔이닝동안 단 46개의 공만으로 무피안타 무실점 호투를 보여주었지만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하여 팀은 그대로 패배하였다. 본격 노예인증. 참고로 양현종이 1⅔이닝 동안 던진 투구수가 손영민이 4⅔이닝동안 던진 공의 수보다 많았다.

7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실망스런 투구로 역전패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로써 2연패.

7월 20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구원등판했다가 안타, 볼넷을 연달아 내주고 한기주로 교체되었다. 유동훈과 더불어서 한화전 평균자책점이 9점대에 달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노예질로 구위가 하락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7월 21일 대전 한화전에서도 등판하여 3연전 내내 연투했으나 역시나 실망스런 투구로 심동섭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한화를 제외한 다른 팀을 상대할 때에는 비교적 준수한 투구를 보였다. 2011년 KIA 불펜에서 유일한 믿을맨. 노예처럼 굴려질 거라는 예상 그대로 구르고 또 구르면서 소화 이닝수를 계속 불려나갔다. 결국

7월 28일 광주 삼성전에서 1⅓이닝동안 16개의 공을 던졌고
7월 29일 광주 넥센전에서 4이닝동안 54개의 공을 던졌고
7월 31일 광주 넥센전에서 0⅓이닝동안 17개의 공을 던졌고
8월 2일 잠실 두산전에서 3이닝동안 44개의 공을 던져 7승을 챙겼다. 이쯤 되면 손노예 확정

8월 4일 잠실 두산전에서 1⅔이닝동안 15개의 공을 던지면서 이날까지 73⅔이닝을 소화하며 계투 이닝수 1위를 질주했다. 8월 7일 문학 SK전에선 3⅓이닝 동안 42개의 공을 던지며 세이브를 추가했다.

이러다 부상으로 나가 떨어지면 어쩌나 생각될 정도로 심히 우려를 샀고, 그의 호투를 보고 있으면 감탄보다는 근심과 걱정이 앞선다는 KIA팬들이 늘어만 갔다. 실제로 8월 초 기준으로 불펜 투수 중 투구 이닝은 단연 1위. 2000년대 노예 원탑으로 손꼽히는 정우람보다도 더 많이 던졌다! 이 당시 조범현 기아 감독의 투수운용을 비판하는 큰 원인 중 하나다. 아무리 믿을맨이 없다지만 툭하면 손영민만 올리면서 기승전손영민급의 혹사운영을 반복했다. 11시즌 전반기 기아가 화려하게 1위를 찍었다가 후반기 급몰락한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불펜의 핵인 손영민을 너무 쥐어짜낸 탓이 매우 크다.

그리고 8월 10일 광주 LG전에 등판해서 무등구장을 화끈하게 불태워 버렸다. 좀 쉬게 해달라는 무언의 시위

이렇게 2011년 승리조, 추격조, 패전조 가리지 않고 노예처럼 굴러다니던 손영민은 결국 어깨통증으로 8월 18일 2군행이 결정되었다. 그 동안의 혹사 때문에 선수 상태가 우려되었다. 지못미. 20일이 흐른 9월 8일 1군에 복귀했다.

9월 14일 대전 한화전에서 8회 16:7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해 보는 사람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필승조와 패전조의 차이는?

9월 18일 광주 LG전에서 서재응-심동섭의 뒤를 이어 10회 연장전에서 등판하여 8승을 거두었다. 심동섭이 다 막아놓은 걸 이어받아서 8승을 한 거라 어찌보면 분식회계의 진수(…)라고 할 수 있으나 불을 안 지른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는 평.

10월 4일 광주 SK전에서도 2이닝을 던지고 9승을 달성하였다.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앞선 2011년 10월 9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 스코어 2:2인 7회말 1사 2루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최정에게 유격수 땅볼 아웃 진루타를 허용한 후 박정권에게 고의 4구를 내주고 2사 1, 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다음 투수인 한기주로또를 이월시켜서 손영민은 실점없이 이날 경기를 마감했다. 손영민의 이날 성적은 ⅓이닝 7투구수 1볼넷이었고 팀은 연장 11회 접전 끝에 스코어 2:3으로 패하고 말았다.

KIA 타이거즈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하는 바람에 2011년 10월 9일의 경기가 손영민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2.5 2012 시즌

선동열 감독 체제 하에서 스프링캠프에 임하던 중 갑작스럽게 부상크리를 맞고 말았다. 결국 손영민의 이탈로 KIA는 시즌 초부터 마운드 운용에 골머리를 앓게 되었다. 다행히 착실하게 몸을 만들어서 양현종이나 호라시오 라미레즈보다 더 빨리 4월 말경에 복귀가 유력하다고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선동열 감독은 2군에서 손영민을 선발로 전향시킬 생각으로 선발 투수로 등판하도록 지시했고, 2군 3경기에 선발로 등판해 평균 80구 이상을 투구하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손영민이 1군에 복귀하면 부진한 앤서니 르루박경태를 대신해서 선발진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 동안 불펜에서만 뛰었던 손영민이 갑자기 선발로 전향해서 과연 잘 할 수 있을지..

4월 24일부터 몇 차례 1군 경기에 등판하였으나 몸상태가 아직 완전하지 못한지 5월 들어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6월부터 2군에서 몇 차례 선발 등판을 하였으나 5실점을 기록하는 등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임을 보여주었다. 작년에 그렇게 구를 때부터 지금의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것. 2군에서의 부진도 부진이었지만, 특히 6월 28일, 후술한 사생활 문제가 터지면서 결정타를 입었다.

7월 8일부터 다시 2군 경기에 출전하였다. 2이닝동안 6타자 상대로 무피안타 1K로 세이브 기록. 이후로도 2군에서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7월 22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과의 경기에서 1:2로 이기던 9회초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여 두 타자를 잘 아웃시켜 놓고 볼넷과 피안타, 1루수 실책 등으로 불을 지르며 3실점하며 4:2 역전패를 당했다.

8월 8일 1군으로 올라왔다. 8월 9일에 선발 윤석민에 이어서 등판하여 8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는 등 1⅓이닝 동안 삼진 3개를 잡고 세이브를 챙겼다.

그리고 8월 22일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따낸 데 이어 8월 23일에도 구원등판하여 2⅓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구원승을 챙겼다.

그러나 치명타를 입힌 사고가 났으니....

2012년 9월 21일 스포티지를 몰고 가다가 유스퀘어 근처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냈다. 손 모(25) 선수 음주사고 결국 이 날 곧바로 구단에서 임의탈퇴 공시되었다. 다만 이 기간 동안 군대를 보내고 다시 복귀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다. 일단 2013년 초 군 입대를 할 예정이라고 알려 왔지만, 음주운전 사고 합의가 늦어지면서 입대를 1년 미루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3 시즌 후 상무 입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종에서 떨어지면서[6] 현역으로 군 복무를 이행할 것으로 보였지만 본인의 미니홈피를 통해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다이어리에 해당 글이 올라왔던 시점이 2014년 7월 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늦어도 6월 말부터 군 복무를 시작했었던 듯.

2012 시즌 손영민의 부재는 KIA 타이거즈 불펜의 대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2004년 유동훈의 이탈로 인한 불펜 붕괴와 겹쳐지는 모습이다. 이 쪽은 다른 이유로 이탈한 것이지만.

2.5.1 사생활 논란

"지금 팀이 이 꼬라지인데 그것도 연고지인 광주에서 음주운전 한다는 것은 프로선수로서의 자격뿐 아니라 성인으로서도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 - 이병훈 해설위원, 사사구에서

2010년 10월말에 연기자 출신의 Y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Y씨는 5월말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하여 5월에 딸을 얻었다. 이 때문에 갸갤에서는 XX애비[7]라는 별명으로도 통했다. 원래 나이차가 많이 나던 여동생을 끔찍히 아꼈는데, 그 관심이 이젠 딸로 갔다는 듯. 여담으로 딸이 아주 귀요미라고 한다. 그런데 딸의 생일도 채 안된 이듬해 같은 달 3일에 아들을 낳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야구팬들은 어떤 폭풍이 몰아칠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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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이 트위터에 올린 주장글. 모든 논란의 시작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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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로 제시된 마누라와 불륜상대[9]이용규[10]에게 보낸 카톡과 문자메시지.

2012년 6월 28일 불륜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년간 동거했던 여자를 버리고 Y씨와 결혼하였는데 다시 불륜. 아이들 분유값이나 병원비 없다고 지랄하며 폭행까지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이용규에게 돈을 빌려달라 했고 여자와 동거하던 집에서 마누라랑 살고 다시 그집에 불륜녀를 불렀다고 주장했다. KIA팬들을 포함한 많은 야구팬들이 그를 비난했다.

SNS나 야구 관련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 문제로 시끄럽지만, 현대자동차그룹[11]의 언플 때문인지 정작 언론에서는 함구하는 상황이었다. 언론에서 아예 대놓고 보도했던 임태훈이나 임창용과는 정반대.[12] 기껏해야 "야구선수 A씨"가 불륜을 저질러 논란이라는 짧은 기사를 내놓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9월 21일 새벽에 음주운전으로 사고까지 내버렸다. #
혈중알콜 농도 0.129%로, 이 정도면 무조건 면허취소가 확정되는 상황. 결국 당일 KIA 타이거즈에서 손영민을 임의탈퇴시켰고, 야구 커뮤니티는 손영민을 위아더월드로 깠다.[13]

손영민의 부인이 올린 것으로 보이는 글. 음주교통사고 낸 KIA 야구선수 남편의 실체[14] 글에서 도박에 사채까지 손댔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천하의 개쌍놈으로 등극하나 싶었지만, 10월 10일 저녁쯤에 손영민의 미니홈피에 반박의 글이 올라왔다. 손영민 미니홈피[15][16]
이 글에 따르면 부인이 이중인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유흥과 사치에 빠졌으며 돈 때문에 처가식구들이 작당하여 손영민 선수 및 80이 넘은 할머니까지 핍박하고 기아 타이거즈 프런트에까지 가서 난리를 피우는 등 선수의 야구인생을 말아먹으려 한 사람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글의 내용을 보충하는 인증샷으로 글에 나와있는 부인에게 입금한 영수증 사진 등도 공개하였고,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10월 13일 Y씨의 미니홈피에도 손영민의 반박글에 대한 반박과 간통 현장이라 주장하는 사진 등을 올렸다. 부인 미니홈피
외에도 스포츠신문과의 인터뷰로 대응하기도 했으며, 이혼합의서도 공개했다.

대부분의 팬들은 "조용히 당사자끼리 해결할 것이지 굳이 여론으로 문제를 꺼내서 시끄럽게 하는 건 뭐냐"라면서 둘 다 잘못이 있다는 의견이다. 그나마 간통이 확실해 보이는 손영민이 더 욕먹고 있으나, 부인 측도 입이 싼[17]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욕을 먹고 있다. 사랑과 전쟁과 같은 막장 드라마를 뛰어넘는 희대의 사건이 아닐 수가 없다. 애들만 불쌍하다.

아직까지는 교차검증이 되지 않아서 손영민이나 부인 둘 중 누가 더 천하의 개쌍놈인지 확인하기 어려우므로, 확실한 사실이 법정에서 드러날 때까지 지나치게 한쪽만 비난하는 건 자제해야 한다.

음주운전에 대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준법운전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2.6 복귀

사생활 문제와 음주운전 처벌, 그리고 임의탈퇴 공시 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군 복무에 들어갔고, 2016년 4월 소집 해제를 앞두고 있다고 하는 거로 보았을 때 2014년 4월에 입대한 듯하다. 다만 이 때까지 몸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KIA 구단에서 임의탈퇴 해제를 검토한다고 한다. 한편 복무 중 고향인 청주에서 원정 경기를 가졌던 KIA 선수단과 만나기도 했다고.

2016년 4월 6일에 소집 해제된 후 함평 2군 훈련장에 와서 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선수 한 명이 부족한 구단의 특성상, 머지않아 부를 듯하다.

2016년 4월 28일 임의탈퇴 해제가 승인됐으며, KBO에서는 별도의 징계로 50경기 출장 정지가 내려졌다.[18] 우선 시즌 중 복귀이기 때문에 육성선수 신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8월 13일 롯데전에 등판하여 4타자를 상대해 삼진 2개를 잡으며 무실점. 쉬는 동안 살이 뒤룩뒤룩 쪄서 현재 90kg대로 줄이는 게 목표라고. 그것도 10kg 뺐는데도 이 정도라고.

3 플레이 스타일

싱커를 주무기로 하는 사이드암 투수이며, 이 (좌타자 기준에서) 몸쪽으로 파고드는 싱커와 특유의 커브 덕에 좌타자에게도 주눅들지 않고 상대할 수 있다. 실제로 2009년 이후 기록을 보더라도 우타자보다 좌타자 상대 기록이 더 좋았다. 2009년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18,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19지만 피장타율이 우타자 상대 시 .314인데 좌타자 상대 시 .240이었으며, 부진했던 2010년에도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308이었으나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239였다. 비록 매 해 우타자를 좌타자보다 2배 가량 많이 상대하기는 했지만 2009년에는 좌타자를 106타석에서 상대했으며, 2010년에도 87타석에서 좌타자와 상대했던 만큼 의미 있는 기록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제대로만 던지면 낮은 스트라이크이거나 헛스윙이 나올 정도로 상당히 묘하게 공이 들어가는데[19] 이상하게 불을 자주 지르는 편(…).

4 그 외 이야기

이강철 코치와 비교되어 '손강철'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으며[20] 이강철 코치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신용운경찰청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자 신용운이 달고 있던 자신의 현역시절 번호인 19번을 물려주기도 했을 정도.

여러가지 이유로 배번이 많이 바뀐 선수. 입단 당시에는 병역 비리로 비어 있던 유동훈의 등번호 39번을 달았다가 신용운경찰청에 입대하면서 19번을 2009년까지 달았다. 이후 군복무를 마친 원래 19번의 주인이었던 신용운경찰청에서 복귀함으로써 19번을 빼앗기고 21번으로 바꿔 달았다. 그리고 2011년에는 20번에서 28번으로 배번을 달았던 윤석민이 2010년 부진한 모습을 보여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으로 28번을 버리고 21번을 달았다. 2011년 시즌이 시작하기 전에 가져간 등번호는 문현정이 달았던 11번.[21] 그런데 2010 시즌 장성호의 반대 급부로 트레이드된 안영명이 한화로 다시 돌아가면서 그의 배번인 1번을 가져갔다!! 그러다 2012년 신용운이 2차 드래프트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면서 19번을 다시 차지했다. 2011 시즌 달고 있었던 1번은 소집해제한 이범석이 가져갔다.

컴투스 프로야구 매니저에서는 손영민의 이름이 가명인 손울민으로 처리되었다가 1월 13일자 업데이트로 손영민으로 돌아왔다.
  1. 이후 kt 위즈에서 조무근, 고영표, 심재민 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2.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1, 2차지명이 공존하던 시절에도 2차지명 1라운드 픽 정도는 스카우트들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지는 상황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저런 행위는 상도의를 말아먹은 행위로 인식될 수 있다.
  3. 강정호는 롯데 자이언츠에서 2라운드 9픽으로 뽑기로 하였다. 참고로 당시엔 ㄹ자가 아니라 z자로 드래프트를 하여 2004년 순위 역순으로 롯데-한화-LG-SK-KIA-두산-삼성-현대 순서로 돌아가며 지명하는 방식이었다. 참고로 강정호의 아버지는 당연히 고향팀의 광팬이었는데 강정호가 안 뽑히자 엄청 빡쳤었다는 카더라가 있다.
  4. 이는 각 구단의 주요 불펜 투수들보다-심지어 금지어보다도-많은 이닝을 투구한 것이다. 일단 조범현 감독은 등판 일수를 세심히 조정해서 최대한 연투를 자제하며 과부하를 줄여가며 큰 문제없이 시즌을 끝마치긴 했지만, 워낙 던진 이닝이 많았기에 여전히 혹사논란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5. 유동훈도 구위가 상당히 좋아보이지만 불펜에서 난조를 보이는 서재응을 대신해 다시 마무리를 맡을 분위기. 게다가 유동훈은 연투가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6. 실기 테스트까지 합격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생활 문제가 원인이 됐는지 최종 선발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사생활 문제보다 임의탈퇴 공시일로부터 1년 간 야구 관련 활동을 못 한다는 규정 때문에 입단하더라도 퓨처스에서 뛸 수 없어서일 듯. 고로 임의탈퇴 상태인지라 임탈 선수가 군 팀에 입단할 수 없다는 규정 때문일 지도. 그 자리는 애초에 서류전형 합격자에 없었던 정주현이 대신 합격하여 상무에 들어갔다.
  7. 신원 보호를 위해 실명을 제거하였다.
  8. 사실 이전부터 그의 사생활 문제에 대한 카더라가 공공연히 돌고 있긴 했다. 2010년경에 급격히 찐 살도 전부 술배라는 이야기도 있다. 2012년 4월에 올라온 한 웨이터의 목격담. 그 와중에 불쌍한 재주리게스 팬들은 그래도 큰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었으나..
  9. 들키지 않으려고 남자 이름으로 등록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12년 KIA 타이거즈 2군 배터리 코치 이름이 김지훈이다.
  10. 위의 이름은 지웠는데 문자 내에 있는 이름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11. KIA 타이거즈의 모기업이다.
  12.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직 사생활 문제가 법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던 상태에서 섣불리 구단 측이나 모기업 측에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상황이었으며,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급 상황에 직면해야 했다. 손영민의 경우에는 당시 2군에 있었고, 당사자(불륜 상대)는 평범한 사람이었던 반면 임태훈의 경우에는 1군에 있었고, 당사자가 매체에서 영향력이 있었던 사람이었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손영민의 경우는 정식으로 법에 저촉되는 행위지만 임태훈의 경우에는 범죄에 관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임창용의 경우에는 부인이 정식으로 고소한 상황이어서 문제가 커진 것이고, 백인천도 미행했던 부인에게 발각되면서 구속된 것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그냥 쉬쉬하면서 지나갈 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직 손영민의 부인 측에서 적극적으로 법적 소송을 걸지 않은 상황이다.
  13. 이 음주운전 사건의 최대 피해 기업이 구단 소유주인 기아자동차라는 소리가 있다. 기아차로 기아차를 박았으니..
  14. 네이버의 한 카페에 처음으로 올라온 글이었으나 삭제되었다.
  15. 운동만 한 야구선수치곤 글이 깔끔하고 논리적으로도 잘 들어맞는다. 변호사가 대필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곽정철처럼 글재주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16. 카더라에 의하면 이전에 Y씨와 만난 적이 있으며, 손영민의 결혼을 극구 만류한 선수는 박용근이라고...
  17. 일단 법적 수단이 막힌 것도 아님에도 SNS로 문제를 터뜨려 여론재판이라고 쓰고 인민재판이라고 읽는국면을 만든 것은 부인 측이 먼저니...
  18. 이에 대해 한창 흥행률 좋던 어떤 팀의 약쟁이 외야수보다 더 출장 정지가 많냐고 대부분의 야구 팬들이 깠다. 게다가 오정복에릭 테임즈도 음주운전을 했는데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면서 또 까이고 있다.
  19. 타자 입장에서는 볼 같아서 가만 있었는데 낮은 스트라이크였다거나, 스트라이크처럼 보여서 스윙했더니 헛스윙을 하는 상황.
  20. 그래서 최훈의 만화에서 손영민은 주로 아이언맨으로 등장했다.
  21. 과거 '영원한 아기호랑이' 故 김상진이 달았던 그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