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슈피겔만

(1권 중반부에 실려있는 아트 슈피겔만의 작품, "지옥 혹성의 죄수" 첫머리에 실린 실제 사진. 그녀 옆에 있는 사람은 어릴 적의 아트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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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만화)에서 아냐가 블라덱과 사귈 시절에 보내왔다는 사진을 작중에서 묘사한 그림. 블라덱은 "안나처럼 폴란드어를 아름답게 쓰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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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진[1]


Anja Spiegelman
(1912 ~ 1968)

히로인. 블라덱의 전처이자 아티의 어머니로, 현재 파트에서는 이미 고인이다.

갑부 가문인 질버베르그 가문의 딸. 심약한 성격으로, 너무 마르고 신경이 예민해서 약을 먹었고, 리슈 슈피겔만을 낳은 후엔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겪어서 요양하고 오기도 했다.

그녀를 만나기 전 블라덱은 이미 루시아를 애인으로 사귀고 있었는데, 아냐는 그녀에 비하면 그다지 미인이 아니었지만, 블라덱은 아냐의 지성미와 고상함에 반해 사실상 일방적인 관계였던 루시아를 찬 뒤 아냐를 선택한다.

그 시대 부잣집 딸래미로선 특이하게도[2], 젊은 시절 바르샤바에 사는 친구와 함께 공산당 관련 일을 했다. 급기야는 문서를 받은 지 얼마 안 되어서 검문원들이 쳐들어 올 판이었는데, 아냐가 세들어 사는 처녀에게 억지로 맡기는 바람에 대신 발각되어 옥살이를 하고 오는 해프닝도 있었다.[3] 이 사실을 알게된 블라덱은 자본가로서 개인적으로도 공산주의자를 혐오하고, 아냐가 위험에 처하는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공산당 활동을 중지하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했다고 선언해 그 뒤로 그만두게 되었다.

블라덱 슈피겔만이 살아가는 이유이자 삶의 전부다. 블라덱은 아우슈비츠 내에서 자신이 위험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도 아냐에게 빵을 보내고 격려의 편지를 보냈으며, 전기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눈물 어린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덧붙여 게토에서 아냐가 친척들이 점점 죽어가는 소식을 듣고 이윽고 조카인 롤렉마저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자(다만 롤렉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히스테릭함이 절정에 달해 "날 죽게 놔둬요!"라고 절규하자 블라덱이 "하지만 살기 위해서 싸워야 해! 당신이 필요하단 말야! 언젠가 우리가 살아 남았다는 걸 알게 될 거야."라고 용기를 준다. 그리고 아우슈비츠로 끌려간 뒤에도 주변 사람들에게 잘 대해준데다 카포인 만치에가 신경 써준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았고 이후 블라덱을 찾아 소스노비에츠의 유대인 단체를 들락거리다가 마침내 남편과 재회, 스웨덴에서 지내다가 미국에 건너가 살았다.

그러나 살아남은 후에 1968년 갑자기 스스로 동맥을 끊고 유서도 없이 자살했다. 얼마 안 되는 생존자 중 하나인 친오빠(헤르만 질버베르그)가 교통사고로 죽어버렸고, 아냐는 홀로코스트 시절이나 현재나 자신 주변 사람들이 사라져간다는 사실 때문에 자주 히스테리에 빠졌다[4]. 원래 정신적으로 약한 예민한 우울증 환자가 강박장애가 있고 신경질적인 남편과 같이 살았으니 마음고생이 심했던 데다가, 홀로코스트트라우마에, 툭하면 아버지와 싸우고 맘에 안 드는 여자애와 사귀는데다가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는 아들에, 폐경기 우울증 크리였던 것.

지옥 혹성의 죄수중 그녀의 장례식 장면에서 블라덱이 그녀의 위에 엎어진 채로 절규하기도 했으며, 아티가 마지막에 "어머니는 절 살해했는데 전 여기 남아서 벌을 받아야 해요!"라고 한 것처럼 아티에게는 죄책감의 대상이, 남편 블라덱에게는 그가 아냐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물건들을 모아서 불태우는 등 삶의 이유를 상실하고 방황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존재였다는 말이 되겠다. 심지어 블라덱은 그녀가 죽고 한참이 지나서도 아티와 대화하던 중 "아냐? 뭘 말하라는 거냐? 어딜 봐도 아냐가 보이는데...나는 이 가짜 유리눈으로도, 다른 한쪽의 진짜 눈으로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늘 아냐를 생각하지...."라도 되뇌였을 정도.

아냐의 대학 교수도 그녀의 영민함을 대단히 칭찬했으며,[5] 한 번은 폴란드의 모토노바 부인이라는 사람에게 얹혀 살 때, 그녀의 아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친 적도 있다. 블라덱의 말에 의하면 전문가 수준이었다고. 문학에 재능이 있다. 블라덱과 연애하던 시절엔 '정말로 아름다운 폴란드어 연애편지를 써보냈다'고 하며, 벙커에 숨어 살 때도 늘 노트에 무언가 끄적였다고. 그리고 그녀가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일기도 쓰면서 아티가 언젠가 이것에 관심을 가졌으면 했다.

그런데 아냐 사후에 블라덱이 아냐의 물건을 볼 때마다 아냐가 생각나서 괴롭다며 그 일기를 포함해 그녀의 물건을 모조리 태워버렸다. 훗날 아트 슈피겔만이 만화 를 집필하면서 혹시 어머니가 남긴 일기나 편지 따위가 있을까 집안을 뒤지며 찾고 다녔지만 아무것도 안 남았다. 만약의 이야기이지만, 그녀의 기록들이 살아남아 온전히 아들인 아트에게 건네졌더라면 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일기에 대한 아티의 반응은 아트 슈피겔만 항목 참고.
  1. [1]
  2. 사실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다. 아냐 슈피겔만은 당시 여성으로써 대학까지 다닌 고학력 엘리트였고, 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에서 공산주의 운동의 주축은 젊은 고학력자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공산주의 운동에 관여한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다. 다만, 블라덱이 말리자 두 말 없이 공산당 활동을 중단한 것을 보면 공산주의 운동에 크게 심취하여 깊게 관여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블라덱이 그녀에게 많은 돈을 보상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티는 그건 좀 치사하지 않느냐는 듯 그 때 준 돈이 큰 돈이었냐고 묻지만, 블라덱은 아티의 속마음을 못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한동안 옥살이를 시킨 보상이 될 만큼 큰 보상이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물론 아주 큰 돈이었다고 대답한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족중심적인 보수적 기질이 강한 블라덱과 그보다는 탈 가족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아티의 성격 차이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4. 블라덱은 "아냐 오빠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부터 아냐도 조금씩 죽어갔지."라 평했다.
  5. 블라덱과 아냐가 결혼 전에 아냐의 은사였던 교수를 함께 찾아뵈었을 때, 교수는 블라덱에게 "난 여태껏 아냐처럼 영리하고 똑똑한 학생은 본 적이 없네!"라며 아냐를 칭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