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슈피겔만

1 미국만화가,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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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가 출판된 직후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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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프랑수아즈 몰리와 함께한 사진)

Art Spiegelman

1948년 2월 15일생.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3살때 바로 미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냥 유대계 미국인이라 보는게 더 적합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폴란드계 미국인에 가깝다.

60년대 후반 빙햄턴 대학을 중퇴한 뒤 언더그라운드 만화계[1]에서 활동해 인지도를 높였고, 70년대 중반에 프랑스 출신의 건축학도 프랑수아즈 몰리를 만나 결혼. 슬하에 두 아이를 두었다. 홀로코스트를 사실적으로 묘사한 《》로 199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만화가 외적인 활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이지만 뉴요커 지의 편집자로도 활동했으며, 9.11 테러 때 디자인한 커버는 나름대로 유명하다. 이 커버는 후일 9.11 테러 사태 전후로 자신의 가족들이 겪었던 일들을 만화화한 《사라진 건물의 그림자 속에서 In the Shadow of No Towers》 표지로 재활용된다.

현재도 정력적으로 활동을 지속 중.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한 인터뷰를 보면 만화로 안 그린 이야기들도 꽤 있다고 한다. 만화 쥐에선 아내가 대놓고 나치와 차이가 뭐냐고 아버지를 비난하는데 아들은 묵묵하게 담배를 피우며 아내 편도 아버지 편도 들지 않고 그저 둘을 말리는 게 나오는데 그게 그나마 두 사람을 위해서 중립을 지켰던 거라고 한다.

사실 아트야말로 결혼 전에는 아버지에게 아내보다 더 맹렬하게 대놓고 "(인종차별하는) 당신이 나치 비난할 자격있어?"라든지 "나치도 유대인 죽이면서 당신과 같은 말 했겠죠? 위대한 게르만 민족과 하등한 유대인은 다르다라는 그들의 논리가 하등한 비유태인과 위대한 유태인을 구분짓자는 당신의 말과 차이가 뭐죠?" 라는 말을 정면에서 맞대응하여 아버지가 폭발하게 만든 적도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부모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지옥같은 수용소 생활을 겪은 걸 생각하자면서도 그와 갈등을 빚으면서 그도 참다참다 폭발했다고 한다. 이런 과거 때문인지 꽤 진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탄압에 대하여 비판하는 태도를 보여서 이스라엘 극우에게 증오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쥐》가 퓰리처상을 받은 것을 두고 이스라엘 극우 여론에서는 오로지 홀로코스트에 대한 것으로 언급할 뿐, 나머지에 대한 걸 언급을 피하는 편이다.

심슨 가족》에도 찬조출연했다.

일본 만화 《맨발의 겐》의 영어판 추천글을 쓴 바 있다.

1.1 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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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뒷표지에 실린 오너캐)

의 등장인물이자 작가이자 화자. 애칭 아티. 1의 인물과 동일인. 고로 이 단락은 1.의 인물 과거사를 다루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나온 블라덱 슈피겔만아냐 슈피겔만이 재회한 후 낳은 아들. 두 사람이 수용소에서 고생한 탓인지 난산이어서 제왕절개로 출산해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쉽지 않아서 의사가 한쪽 팔을 부러뜨리고 꺼내야 했는데 그래서 어린 시절에 오른팔을 들면 마치 나치식 경례처럼 팔이 올라가서 블라덱과 아냐는 아티를 보고 농담으로 하일, 히틀러!라고 했다고 한다(...) 홀로코스트아우슈비츠니 하는 것들은 아티가 태어나기 전이니 그와는 상관없…어야 할 터지만 어째 그렇지가 않다.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예민한 우울증 환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일상화되다시피 한 생존본능 및 모순 등 때문에 많이 고생을 한다. 부모에게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 그렇듯이 지은 죄 없이 죄책감에 시달린다. 어릴 때는 부모는 고생했는데 혼자 편히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스스로도 터무니없는 생각인 줄 알면서도 수용소 생활을 겪어보길 바랐다고 한다. 그리고 리슈 슈피겔만에 비해 자신은 부모님에게 좋은 아들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낀다. 사진 속의 죽은 형과 경쟁하는 기분이었다고.

이후 그 나이 또래 젊은이가 그랬듯이 히피가 됐고 아버지의 히스테리적 증세와 같이 '돈도 안되는 그림이나 그려대고 깜둥이니 뭐니 그런거 상관 안 하는' 아티는 아버지와 허구헌날 충돌했다. 덕분에 나이 스물도 안 돼 정신병원에 가서 치료까지 받을 정도로 정신적으로 시달렸는데, 이 시기에 어머니가 자살. 그가 옛날에 그린 지옥 혹성의 죄수라는 단편에서도 나타나듯이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차갑게 대했고, '아티가 속썩여서 아냐가 자살했다'고 친척들이나 아버지의 친구들이 직접적으로 쏘아붙이기도 했고, 별 말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아냐가 벙커 생활(안네의 일기처럼 숨어 지내는 생활) 당시 할 일이 없어 무작정 끼적인 노트[2]가 있었는데, 블라덱이 이걸 불태웠다고 하자 아티가 "이 빌어먹을 살인자 양반!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라고 일갈한다. 어머니를 묘사할 자료가 필요했는데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과 어머니를 냉대한 것에 대한 분노(아티는 어머니의 죽음에 일부 책임이 있었다)가 뒤섞인 듯 하다. 그래도 나중에 자기가 지나쳤다고 블라덱에게 사과하고 웃으며 헤어지지만 돌아가면서 "...살인자."라고 중얼거리는 걸로 보아 완전히 풀리지 않았던 듯 하다. 사실 어머니의 노트(일기)가 그의 작업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이 될 만한 것이었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겨주려 했던(그리고 그를 통해 자식에게 이해받고 싶어했던) 소중한 노트들을 없애버린 아버지의 행동이 쉽게 용서될 만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아버지 블라덱의 행동 역시 (제 3자인 독자의 기준에서 보자면)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은 아닌것이, 위 서술에서는 아버지 블라덱이 어머니인 아냐를 냉대했다고 보고 있고, 실제로 작중 묘사를 보더라도 전쟁 이후 블라덱과 아냐의 관계가 썩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블라덱은 전쟁 중 가혹한 포로 수용소 생활에서도 어렵게 구한 빵을 생명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아냐에게 보내줄 정도로 아냐를 아꼈고, 아냐가 죽은 이후에는 한동안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할 정도였으며, 아냐의 사후 한참이 지나고서도 '진짜 눈으로도, 유리 눈으로도, 눈을 뜨고 있을때도, 감고 있을때도' 아냐가 보인다고 아티에게 말할 정도로 지극히 아냐를 사랑한 인물이었다. 이 점을 감안하면 아우슈비츠 이후 안 그래도 불안한 정신적 상황에서 아내까지 잃은 후 더욱 극도로 불안한 정신상태에 빠진 블라덱이 보인 비정상적인 행동이라고 참작할 여지는 있는 셈.

편찮으신 아버지가 자신과 같이 살고 싶어하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와 같이 사는 걸 견딜 수가 없어서 늘 외면하고 있고, 또 그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작중(2부 2장, "아우슈비츠 : 시간은 흐른다")에서는 자신이 (아우슈비츠에 있는 것과 똑같은) 시체 더미들 위에서 작업하는 모습으로 묘사하고, 취재진에게 시달린 후 정신과 주치의에게 면담을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1. 이를 부모는 내켜하지 않았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만화가는 정상적인 직업(변호사, 의사 등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른 직업(대표적으로 치과 의사였는데 낮에 진찰하고 밤에 그림을 그리면 되지 않느냐는 이유였다고 한다.)을 가지게 하려고 아트를 설득하려 든 적이 많았다고 한다.
  2. 일종의 일기로, 아냐는 자신의 아이가 이것을 나중에라도 보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랬다고 바로 직전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