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체

신조어 문체의 종류
일반나스체도깨비말사물존칭야민정음오타체외계어
지큐체통신체한본어휴먼구연체이응체-
특정 집단이
쓰는 문체
급식체노땅체다나까체여자어연서복체박근혜 화법
오덕체줌마체광고체참피체--
끝말체근성체근영체긔체나영체냥체-
삼체~스무니다체~슴다체양양체~아체음슴체
이기야~해체해오체~지 말입니다--
기타, 외국어 관련번역체 문장보그체왈도체인살어--
문체: 일반 문체 / 신조어 문체

1 개요

나스 키노코문체를 한국에서는 흔히 '나스체'라고도 부른다. 그러나 이것을 그만의 고유한 문체라고 이해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비주얼 노벨 연출에 최적화된 스타일 등, 다른 작가와도 스타일을 공유하기 때문.

나스체라는 단어는 2006년경 달빠 배척의 중심지였던 DC 판타지 갤러리에서 나온 말로서, 일본에선 쓰이지 않는다. 나스체와 같은 장황한 문체는 일본에선 오래 전부터 범용적으로 쓰여온 문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의외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는 게임 업계만이 아니라 소설 업계에서도 나스체와 유사한 문체가 오랫 동안 쓰여 왔고 특히 라이트 노벨 업계에서는 주로 전투 연출에서 역동적인 묘사를 위해 이러한 문체가 다용되어 온 편이었는데, 이는 만화라는 보다 시각적인 매체가 대중성을 획득하는 현실 속에서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매체적 장점을 극대화하여 만화의 경쟁 매체로써 좀 더 많은 대중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었기도 했다.라이트노벨의 전투연출 이에 대해 "왜 소설이 만화의 비주얼을 극복해야 되냐?"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 역시 존재한다. 나스체는 이렇게 일본에서 흔히 쓰여 온 문체의 여러 사례들 중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불친절함과 다소 매니악한 성향의 특성들이 특히 강해진 케이스에 속할 뿐이라 볼 수도 있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2006년경 판타지 갤러리의 '이빨'이라는 갤러가 패러디 소설을 쓴 것이 웹상에 널리 퍼지면서였다.# 그리고 이후에도 판타지 갤러리에선 패러디 소설 창작이 성행한다.#

1. 같은 표현을 반복함으로써 심리묘사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비주얼 노벨에서는 소설과 달리 문장 출력이 조절되어 흔히 쓰이게 된 방식. 한자, 가타카나, 히라가나 세 문자를 활용하는 일본어 문자체계의 특성상, 똑같은 표현을 다양하게 표기할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이를테면 "죽다"를 "死ぬ" "しぬ" "シヌ"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발음은 모두 /shinu/이다.

2. 일반명사의 본래 뜻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뜻으로 정의하는 것도 자주 한다. 이런 점으로 인해 편안한 독서를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런 경우가 나스의 작품에서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나스가 영향을 받은 작가인 모리 히로시교고쿠 나츠히코 등에게서도 찾을 수 있는 특징. 사실, 이러한 방식은 작가 개인의 철학을 전달하기 매우 좋은 방식이라 나스에게 한정지어 생각할 수 있는 특징이 아니다.

  • 가령 '죽는다'의 경우 일반적인 의미는 '생명이 끊어지다'라는 의미지만, 직사의 마안과 엮이면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존재론적 죽음으로 연결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직사의 마안 항목 참조.

3. 대시(─)를 통해 호흡을 드러낸다.

2 상세

나스체가 만연체라는 의견도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자면 잘못된 의견이다. 실제로 그의 문장에 대해서는 그다지 길지 않다는 평도 있으며, 긴 문장만이 아니라 짧은 문장도 당연히 섞어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만연체라고 딱 잘라 말하기는 곤란한 면이 있다. 또한 문장의 길이와는 관계 없이 특유의 이해하기 어려운 불친절함을 살릴 수 있다면 나스체 또는 그 유사품으로 간주될 수 있음을 생각해 봐도, 나스체를 무조건적으로 만연체와 동일시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강조를 위해서 같은 어구를 반복하는 기법을 종종 사용하기에, 그러한 점에서 나스체가 만연체와 비슷한 인상을 주는 부분은 있다. 실제로 나스 키노코의 글에서도 일상생활을 묘사할 때는 이러한 특성이 별로 나오지 않으며, 전투상황과 같은 급박한 사태나 등장인물들의 극적인 심리묘사 등에서만 주로 사용된다.

계보를 따져보면 전기 소설과 추리 소설의 영향을 받은 문체이며, 나리타 료우고니시오 이신, 카마치 카즈마 등의 소설에서도 이런 식의 문체를 볼 수 있다. 라이큐도 데뷔 초에는 이런 문체를 즐겨 사용했으며 라이트노벨 상당수는 이런 문체를 자주 사용해왔다. 공의 경계 항목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공의 경계는 80년대의 전기소설과 90년대의 신본격 미스터리 소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홈페이지 연재 당시 전기와 신본격의 융합을 시도하는 실험작이라는 의식으로 집필했다고. 실제로 메피스토 계열의 신본격 미스터리의 특징들을 공의 경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참고로 《월희》에서 전기 소설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면, 《공의 경계》에서는 신본격의 영향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편.
가령 나스 기노코 고유의 특징으로 지적받는 인물의 장광설, 개념의 독자적인 재정의, 서술의 호흡을 드러내기 위한 하이픈(대시) 사용 등은 《우부메의 여름》으로 메피스토 상을 신설하게 하는 데 큰 영향을 준 교고쿠 나츠히코 등의 신본격 작가들에게서 먼저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내용적으로는 돌출된 캐릭터(만화적인 캐릭터), 탐정 사무실(가람의 동)을 중심으로 한 탐정역(시키), 조수(미키야), 일반인(토오코)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이 그렇다.
다른 문체적 특징으로 지적되는 심리묘사의 강화, 두뇌전, 전문용어의 반복 사용은 야마다 후타로, 시바타 렌자부로, 유메마쿠라 바쿠, 키쿠치 히데유키 등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인데, 영향을 준 작가들 자체가 전기 소설 계열에 가깝다보니 전기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월희》에서 주로 드러나고, 《공의 경계》에서는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

나스체가 나스 키노코 개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소설의 장르적 관습 내에서 효과적인 요소들이 선대에서 후대로 계승되어 왔음을 지적한 글이다. 전기 장르와 미스터리 장르 등 소설에서 이야기를 연출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해야 언어란 도구를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지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한 결과물이란 것이다.[1]

사실 같은 문구를 반복한다던가 질질 끄는 식의 서술은 굳이 일본 작품이 아니더라도, 비정상적인 광기의 표현이나 공포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호러물에서도 자주 나온다. 적절히 무서운 분위기를 깐 상황에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필력으로 이런 연출이 나오면 굉장히 소름이 끼쳐, 수용자가 공포에 휩싸이는 데 효과적이다.

3 작품별 특징 및 예시

나스 키노코는 인터뷰에서 소설 창작과 게임 제작에 전혀 다른 자세로 임한다고 밝혔다. 소설은 깎아가는 방식으로 쓴다면 게임은 부풀려가는 식으로 쓴다는 것. 또한 동어반복 등의 비주얼노블적인 연출은 소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매체 간의 차이, 장르 간의 차이를 고려한 것이다.

유저의 비공식 한글패치판 텍스트인 만큼 원본과 느낌은 다소 다를 수 있다.

3.1 공의 경계 (소설)

전기 소설로 구상되었던 프로토타입을 신본격 미스터리의 영향을 받아 새로이 썼다. 여성적이고 센티멘탈한 필체가 특징이다. 전기 소설의 테이스트는 남아 있지만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강조하지 않아서 전투씬에 힘을 기울여 쓰지는 않았고, 그를 위한 연출도 하지 않은 편이다. 90년대 웹연재, 아마추어 동인지, 상업화 등에 따라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이 있었다. 상업화 이후에도 판본을 바꿔서내는 것에 따라 가필 수정이 있었지만 큰 폭으로 달라진 부분은 없다.

3.2 월희 (게임)

폐기되었던 원안을 타케우치의 권유에 의해 게임에 맞게 재집필한 것이다. 게임은 혼자서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전기 소설의 테이스트가 물씬 풍기게 되었다.

위와 아래는 상황에 따른 묘사법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한글버전의 '죽였는데'는 "死ぬ" "しぬ" "シヌ"로 같은 표현을 다른 문자로 표기한걸 나름대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긴장감으로 고조시키기 위한 같은 문자의 반복과 전문용어의 반복도 이 작품에서 자주 찾아 볼 수 있다.

3.3 Fate/stay night (게임)

타입문의 상업화에 따라 본격적으로 ‘일’이 되어 월희 때보다 더 에고를 죽여가며 제작에 임했다고 한다.

3.4 D.D.D (소설)

옛날의 자신으로 돌아가 쓰고 싶은 대로 집필한 작품이라고 한다. 굉장히 하드코어한 신전기 소설이다. 나스 키노코 전작품 중 가장 불친절한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공의 경계는 에피소드를 시계열대로 배열하지 않아서 다소 불친절하다곤 하지만 첫장면부터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을 어떤 사람인지 번갈아 묘사하는 등 읽는 데 지장이 생길 법한 부분은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D.D.D그런 거 없다. 불친절함을 감내하고 첫 번째 에피소드를 끝까지 읽어야 반전과 함께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윤곽이 잡히는 구조.

3.5 Fate/hollow ataraxia (게임)

서브라이터 다수가 집필에 참여하고 나스 키노코는 메인라이터를 맡았다. 나스는 메인 시나리오인 밤의 성배전쟁을 비롯한 이야기의 중심을 맡아 집필했다. 특히 밤의 성배전쟁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장면이나 불분명한 무언가에 잡아 먹히는 장면 같은 광기와 혼란을 특유의 표현법으로 묘사하는걸 볼 수 있다.

3.6 마법사의 밤 (게임)

분기가 없고 캐릭터 보이스가 사라진 등, 기존 작풍에 비교했을 때 소설적으로 담백하게 쓰여졌다.

3.7 달의 산호 (소설)

낭독에 최적화하여 문어적인 나스 특유의 문체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3.8 2015년의 시계탑, Garden of Avalon (소설)

기존 팬층을 겨냥한 단편 소설이다. 기존 팬을 겨냥한 만큼 세계관의 기본적인 배경과 용어를 알아야 된다는 허들이 있지만, 공의 경계나 D.D.D.와 달리 담백하게 쓰여진 것이 특징이다.

3.9 Fate/EXTRA 시리즈 (게임)

대화 위주의 스토리텔링에 중간 중간 서술적 묘사가 들어가는 작품으로 호러 연출에 나스 특유의 표현법이 들어가나 2000년 초의 작품과 달리 과하지 않게 정돈된 모습을 보여준다.

4 비판과 반론

언어란 기본적으로 이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있다. 전달성과 가독성 없이 현란하게 문자만 나열하면 문체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견해를 표방하는 이들은 아래와 같은 인용을 제시하며 권위를 빌려 근거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래 인용들은 맥락 없이 제시된 것으로 다량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글은 복잡하고 어수선하기보다 간략해야 한다. 엄청나게 많은 분량의 책이 있어도 어렵고 복잡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은 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제대로 맛볼 수 없는 것과 같다.

- 정조

정조는 당시 유행하던 소설체 문장을 잡문체라고 규정하고 전통적인 고문을 문장의 모범으로 삼았던 반동적인 인물이다. 그는 문체 오염을 이유로 중국으로부터 고증학과 패관소설 등 명말청초의 문집을 포함해 모든 서적의 수입을 금했다. 주자학적 세계관을 뛰어넘는 새로운 사유와 지식을 담은 명말청초 서적들이 금서로 묶여 버린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교수는 《안쪽과 바깥쪽》 등에서 “정조는 책과 사상의 탄압자”로 기억될 뿐이라고 했다. 문체반정을 일으키며 소설을 탄압했던 정조의 말을 인용하며 소설 문체를 비판하는 것은 어불성설인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을 참고하자.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완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엄숙히 맹세하기 바란다. '평발'이라는 말을 두고 '편평족'이라고 쓰지는 않겠다고. '은 하던 일을 멈추고 똥을 누었다' 대신에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생리현상을 해결했다'고 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똥을 눈다' 는 말이 독자들에게 불쾌감이나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대변을 보았다'고 써도 좋다('존은 하던 일을 멈추고 응가를 했다'도 괜찮겠다).

- 스티븐 킹, 유혹하는 글쓰기

스티븐 킹의 발언을 일부만 발췌하는 것은 그의 의도를 왜곡시키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작법서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적합한 낱말'을 쓰라고 했지 굳이 '쉬운 낱말'을 쓰라고 한 적이 없다. 그는 같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피의 자오선》도 빼어난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책에는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꽤 많다. 그렇다고 그게 문제일까? 내가 좋아하는 대중 음악의 노랫말도 무슨 뜻인지 모를 때가 많은데 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근심과 허위 의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허위 의식이란 어떤 글은 '좋다', 어떤 글은 '나쁘다'라고 규정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이런 태도도 역시 근심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글을 인용하며 언어란 기본적으로 이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어떤 문체가 '나쁘다'고 규정하는 것은 분명한 왜곡이다.

요즘 상을 받았다는 시를 보면, 무슨 놈의 시가 그렇게 어려운지. 소설도 그렇고. 어려운 글은 심오한 글이 아니라 못쓴 글이야. 근데 사람들은 어렵게 쓰는 걸 좋아해. 난해하게 써야 존경을 하지. 내 글은 쉽고 술술 넘어가는데, 그걸 가볍다고 해. 사실 돌아온 사라도 최대한 쉽게 가려고 몇 번을 고치고 고친 거야. 우리나라는 작가들이 문장으로 독자를 고문하고 있는데도, 그걸 존경해. 쉽게 말해서 한국 독자나 비평가들은 마조히스트야.

- 마광수, 대학내일 2011년 5월 둘째 주판(5.9~5.15) 인터뷰에서

마광수의 비판은 교양주의 소설을 향한 것이다. 마광수는 '문학의 교양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지식인들은 가벼움을 경박함으로 그릇된 인식을 하는 경우가 많고, 설사 경박하다고 해도 그것이 의도된 경박성이라는 것을 아는 이가 드물다.” “소설 문장에서 사용되는 단어가 일성어 또는 비속어일 경우 흔히들 그런 인상을 받는 것 같다.”고 하며 한국문학의 위선성과 지나친 엄숙주의를 질타했다.

마광수는 “기성도덕과 가치관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스스로 ‘점잖은 교사’를 가장하는 것은 작가로써 가장 자질이 나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라고 주장했으며, "문학은 무식한 백성들을 가르치고 훈도하여 순치시키는 도덕교과서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한 바, 그의 발언을 교과서처럼 삼는 것은 마광수의 본래 의도와 한참 동떨어진 것이다.

시인은 현자처럼 생각하고 일반인처럼 표현해야 한다.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예이츠가 남긴 말은 이 항목의 맥락상 화려한 문장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그의 작품은 시기별로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초기 작품은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은 어조와 함께 화려한 수식을 특징으로 삼았다. 예이츠의 초기 시에는 그가 남긴 유일한 장편시이자 서사시인 《오이진의 방랑기》(The Wanderings of Oisin)이 있는데, 예이츠 전기작가인 포스터(R. F. Foster)는 이 시집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일(Gael)식 이름, 두드러지는 반복기법, 끊어짐 없는 운율이 세 단락에 걸친 이 시들에 미묘한 변화를 준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특징은 나스체와도 부분적으로 공통점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이츠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던 중기를 지나 후기가 되자 다시 초기의 본래 성향으로 회귀했다.

어렵고 교묘한 말로 꾸민 글이 최고의 경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문장의 재앙이다. 글이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써야 한다.

- 교산 허균

허균 역시 되려 동시대에 문장의 화려함이 장점으로 꼽힌 인물이다. 실록에서는 "'문장의 화려함이 근래에 견줄 만한 자가 없다"고 치켜세웠으며 주지번은 "그의 문장은 활달하고 여유가 있으면서도 아름답고 밝아 명나라 왕세정의 만년의 작품같고, 그의 시는 끝까지 꿰뚫었으면서도 어휘가 풍부하고 화려하여 명나라 변공의 청치가 있다"고 하며 그의 어휘가 풍부하고 화려함을 칭찬하였다.

당신의 소설을 읽으면서 한 번도 사전을 뒤져보지 않았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머셋 몸이 받은 편지 中[2]

어휘가 풍부하다고 하여 읽기 어려운 글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듯이, 어휘가 빈약하다고 하여 읽기 쉬운 글이리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사전을 뒤져볼 필요가 없는 글을 쓰려 할 것이 아니라 스티븐 킹의 말대로 적합한 어휘를 선택하는 것이 작가의 본래 의도대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언어는 그냥 개소리일 뿐이다.

- 도올 김용옥

김용옥의 주장은 문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문언어를 풀어서 일상언어로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막말이나 다름이 없어 많은 비판을 당하고 있다. 김용옥은 《논술과 철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헤겔철학의 대부분은 말장난이다. 그 말장난에 휘말려서 방만한 헤겔전집을 연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한 인간의 평생의 노고를 허비하고도 남을 일이다. (중략) 헤겔을 평생 연구한 사람들이 감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은 바로 헤겔의 액면가치를 부정하는 일이다. 헤겔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선포함으로써 헤겔의 일상적 의미를 우리에게 전달하는 일이다. (중략) 자기 삶에 바쁜 사람들이 언제 그곳까지 기어올라가겠는가? 더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곳까지 기어올라가봤자 별볼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헤겔철학이 뭐 그리 대단할 것이 있겠는가? 당시 낙후한 독일촌놈들의 형이상학적 담론에 불과한 것인데? 그러나 헤겔연구가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을 까발려버리기에는 자신이 투자한 인생의 시간과 노력이 너무 억울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나스가 다루는 분야는 소설보다는 비주얼 노벨 쪽에 쏠려있다. 삽화 몇 개와 글만 있는 소설과 그림과 연출, BGM이나 효과음이 나오는 비주얼 노벨은 어울리는 문체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정보의 전달보다는 장황한 단어들의 나열 그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독특한 분위기를 이용한 비주얼 노블식 연출 기법인 것이다. 이러한 표현법에 개인적인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도 잘못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건 아니다.

나스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퍼지게 된 이유가 순전히 나스의 탓만은 아닌 것도 감안하자. 주로 그 튀는 듯한 만연체+a 식의 것들이 비주얼 노벨로써 당시 청소년들에게 많이 각인됐고[3], 그 청소년들이 나스체를 따라한답시고 만연체도 뭣도 아닌 무언가를 구사하고, 빠를 까기 위해서 까들 역시 빠들 못지 않은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일명 위키체라고 불리는 나무위키 특유의 표현법이 다른 커뮤니티에서 과하게 해석되어 조롱 받는 것과 비슷한 경우로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에 편승하여 좀머 등 컨셉 달빠들이 관심을 받기 위하여 일부러 중2병체를 구사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행각을 벌인 탓도 있다.
  1. 물론 이 말이 나스 키노코가 아주 무개성한 작가라는 의미는 아니다. 고전적인 구성과 클리셰로 작품을 짜면서 자기 개성을 드러내는 소설가나 영화 감독은 널렸다.
  2.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로, 전쟁 중에 한 병사가 보냈다고 한다.
  3. 위에서도 서술했지만 정작 나스키 노코 본인은 만연체를 쓰지 않는다. 하이라이트 부분을 장황하고 현학적으로 묘사해 강한 인상을 남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