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회의주의

科學的 懷疑主義 / Scientific Skepticism [1]

"어떤 사람들은 회의란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거부하는 거라고 믿거나, 더 나쁘게는 회의와 냉소를 혼동해서, 회의주의자들이란 현재의 안정 상태를 걸고넘어지는 주장은 아무것도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심술맞은 깍쟁이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회의란 어떤 주장에 대한 임시적인 접근법이다. 곧, 회의란 입장이 아니라 방법이다." (중략)

 
"회의주의의 열쇠는 '아무것도 모른다' 는 회의와 '어느 것이든 괜찮다' 는 미혹 사이의 불안정한 지협을, 과학의 방법을 쉬지 않고 열심히 적용하면서 빠져나가는 것이다." (중략)
 
"대단히 지적이고 신중한 서평은 내가 회의주의자들의 일을 '돌팔이 주장들을 조사하고 반박하는 일' 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지적은 잘못이다. 우리가 하는 일은 주어진 주장을 우리가 반박할 것이라고 미리 넘겨짚은 뒤에 조사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주장들이 과연 돌팔이 주장들인지 알아내기 위해 조사하는 것' 이다. 증거를 검토한 뒤, 그 주장에 회의적이 될 수도 있고, 회의주의자에 대해서 회의적이 될 수도 있다."
 
-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p.33; 48; 521

"... (인간의 문제의) 잘못됨을 합리성의 가치로 비판하는 것이 과학적 회의주의 활동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회의주의자에게는 정직성과 객관성, 비판적 사고에 대한 자기 성찰이라는 요구가 따릅니다."

 
- 강건일 숙명여대 약학과 교수, 2009.

1 설명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지식에 자신의 지성을 최대한 의존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대해서는 건전하고 건설적인 의심을 유지하는 입장. 인본주의, 논리 실증주의, 경험주의, 자유사상을 비롯한 계몽주의, 회의주의를 기초로 하며, 이후로 현대 무신론과학주의, 초인본주의, 신(新)합리주의 등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리스어에서 "skepikos" 는 원래 "캐묻기 좋아하다" 는 뜻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회의주의의 핵심을 명쾌하게 찌른 설명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흔한 인식처럼 매사에 무조건 냉소적이라거나, 무조건 앞뒤 가리지 않고 비판만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회의주의와는 다소 다른데, 내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세계가 정말로 매트릭스는 아닌지, 내가 어쩌면 통 속의 뇌는 아닐까 하는 수준까지 회의하지는 않는다. 즉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탐구정신을 기초로 하므로, 경험적으로 확인되는 것 내지는 인간의 지성이나 합리성까지 의심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과학적 회의주의는 철학적 회의주의의 극단적인 유아론(Solipsism)에 동의하지 못한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얻어진 최소한의 신뢰할 수 있는 사실들을 바탕으로 하기에, 무한한 불신의 루프에 갇힌 채 무지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철학적 회의주의와는 달리, 자신들의 노선이 보다 건설적인 의심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과학적 회의주의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학적 탐구에 있어서의 문제적 맥락에만 국한된다. 이 의심들은 완전히 해결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해결되지 못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유보적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한다.

이들은 일반인들이 과학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뜬소문이나 거짓 정보들을 넙죽넙죽(…) 받아들이고 맹신하는 경향을 크게 우려하고 있으며, "이성과학을 위한 리처드 도킨스 재단" 이나 "제임스 랜디 교육재단" 과 같은 단체들을 만들어서 대중강연 활동에도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 가장 규모있는 단체로 "회의주의적 연구 위원회"(CSI; 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2]가 있고, 저널로는 《스켑틱》 이 있다.

과학적 회의주의의 주된 타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모든 대상이다. 넓은 범위에서 설명하자면 유사언어학이나 유사역사학, 유사의학과 같은, 실제 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주장들까지 포괄하는 회의적 정신과 합리적 사고까지 포괄하기도 한다. 즉 과학자들만의 특권적 타이틀은 아니라는 것. 심지어 해리 후디니제임스 랜디 같은 마술사들도 그 일원으로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주로 까이는(…) 대상으로는 오컬트, 초능력, 음모론, 유언비어, 뉴에이지, 대체의학, 종교, 도그마가 주로 거론된다.

또한 많은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반종교 활동에도 투신하고 있으며,[3] 인권운동이나 사회운동과 같은 사회참여적 측면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아닌게아니라 해외의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의 성향은 중도에서 중도 좌파 정도까지로 약간 좌파 성향이 우세한 편이다.

과학적 회의주의 관련 도서로는 《회의주의자 사전》,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사이비 사이언스》, 《쿤&포퍼 : 과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그렇다면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등 많이 있으므로 도서관이나 서점에 방문하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 구분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모든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등장을 배제하지 않는다. 즉 원론적으로 말해서 과학적 회의주의자의 태도는 전구과학(Protoscience)이나 초과학(Parascience)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을 갖고 일단은 그것의 진위여부를 적극적으로 따져 보는 것이다. 만일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객관적인 검증을 배제한 채 "무조건적" 인 불신을 보이거나 배제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과학적 회의주의라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회의주의적 활동은 암묵적으로 신중한 회의주의자(Wet Skeptics)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편 유명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소위 폭로자(debunker)로 불리는 활동을 한다. 과학적 연구절차가 통용되지 않는, 성급한 상상의 불꽃놀이가 만개하는 곳에서 신중한 학문적 소견보다는 '정체 폭로자' 들의 유쾌하면서도 재치 있는 공격이 유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유사과학자들의 주장이 아무런 가치가 없는 우스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런 아이디어를 조사하고 신중하게 따져보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4] 이러한 맥락에서의 회의주의 활동은 암묵적으로 냉담한 회의주의자(Dry Skeptics)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이작 아시모프는 다음과 같은 유쾌한 비유를 들었던 적이 있다.

1) 누군가가 실험실에 10kg 의 소금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 그냥 평범한 주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주장은 누구나 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며 쉽게 믿지만, 그만큼 특별할 것도 없다.

2) 그 사람이 이번에는 실험실에 10kg 의 금괴가 있다고 주장한다.
→ 그것은 특별한 문제가 된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의구심을 자아내게 하며,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만일 정말로 있다면 믿을 것이지만, 없다면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3) 그 사람이 이번에는 자기 실험실에 10kg 의 아인슈타이늄(Einsteinium)이 있다고 주장한다.
→ 아무도 그것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다들 그 주장을 헛소리로 취급할 것이다.[5] 이 경우 그것이 정말로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무의미한 데다 시간낭비다. 냉담한 회의주의자들이 유사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신중한 회의주의자는 3번에 대해서도 검증과 조사를 개시할 것이다. 냉담한 회의주의자들의 활동은 그만큼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회의주의자들에 대해 회의하라"(Be skeptical of the skeptics)는 표현도 나오게 되었다.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자신들이 표방하는 노선이 정말로 과학적 회의주의의 정신과 잘 일치하는지 감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회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냉담한 회의주의자들이 각종 유사과학적 주장에 대해서 "그건 완전히 터무니없고, 말도 안 되는 사기행각이다" 라고 대담하게 주장할 때, 신중한 회의주의자들은 동일한 주장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지는 엄밀하게 통제된 조건 하에서 실험해보기 전에는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 훗날 정말로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것으로 판명되는 사례가 무조건 없다고 할 수는 없으니, 이 점에서는 신중한 회의주의자들이 좀 더 유리하다고 할 수도 있다.

3 국내의 현황

국내에는 약간 늦게 들어온 편인데, PC통신 시절부터 알음알음 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던 것이 2007년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라는 병크가 거하게 터지면서 반종교적 움직임이 호응을 얻었고,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의 국내 출간과 더불어 비로소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교수들 사이에서는 물론 꽤나 예전부터 익숙하던 것으로, 2005년에 타계한 양신규 교수 같은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특징적인 것으로 한의학을 굉장히 싫어한다. 그들이 의료일원화 운동에 목숨을 거는 이유가 바로 과학적 회의주의로 봤을 때 한의학이 근거없는 사이비이자 돌팔이 의학이라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 한의사들이 "한의학의 과학성" 을 주장하는 반면, 국내의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은 사실상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양의학 vs 한의학" 떡밥이 터졌을 때 가장 치열하게 한의학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정치적으로 보아 우파 성향이 의외로 강하다는 것. 2008년 촛불집회 당시 광우병 논란이나 천안함 피격사건을 거치며 보수 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DC 무신론 갤러리에 올라온 관련글 물론 그렇지 않은 회의주의자들도 충분히 많다.[6] 한 때 과학적 회의주의의 대표격으로 자리잡았던 스켑렙의 경우, 이런 성향에 대한 내분으로 인해 커뮤니티가 분열되었고, 본진은 더 이상 회의주의 커뮤니티로 보아야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변질했다. 이에 대해선 해당 항목 참조. 단,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이 광우병 논란천안함 피격사건과 관련 좌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드러났다고 해서 이를 과학적 회의주의자들의 우파 성향이나 보수 성향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좌파병크를 지적한다고 해서 다 우파 성향이나 보수 성향인건 아니기 때문이다.

4 유명한 과학적 회의주의자들

4.1 과학적 회의주의와 유사한 활동을 한 사람들

5 관련 사이트 및 링크

  1. Scepticism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2. 2006년 이전에 쓰던 이름인 "초자연현상 주장들에 관한 과학조사위원회"(CSICOP)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풀네임은 Committee for the Scientific Investigation of Claims of the Paranormal인데 너무 길어서 약어로만 불렸다.
  3. 거꾸로 종교를 가진(?!) 과학적 회의주의자들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틴 가드너.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수학 퍼즐을 연재하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단순히 "심적인 위로와 안정" 을 위해 종교를 믿을 뿐이라는 신앙주의적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그래도 이 양반도 SCICOP 소속이다. 그 외에도 유신론적 진화론자로 거론되는 케네스 밀러도 있다. 이 양반은 "스켑틱스 인콰이어리" 의 펠로우다.
  4. 즉 아주 터무니없어 보이는 거짓말에는 신중한 데이터 분석 같은 것보다는 비웃음과 신랄한 풍자가 도리어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5. 해당 항목에도 나오지만, 아인슈타이늄은 적어도 현재까지의 기술로는 밀리그램 단위로 얻어진다.(…)
  6. 좌파성향을 표방하는 회의주의 커뮤니티 "자유사상가" 가 한때 있었는데 워낙에 영세한데다 내부분열로 인해 폐쇄되었다. 이 사이트의 탄생 자체는 앞서 제시된 DC 링크와도 무관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