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카테린부르크

1 개요

러시아어: Екатеринбург
영어: Yekaterinburg
한국어: 예카테린부르크
문화어: 예까쪠린부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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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카테린부르크
Екатеринбург
설립1723년
면적495㎢
인구1,445,150 (2016)
인구밀도2,919명/㎢
시간대UTC+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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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중앙부에 있는 대도시로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주도이자 우랄 연방관구의 본부가 있다. 인구는 2010년 기준으로 약 135만명으로 러시아에서 4위이며, 한마디로 우랄 산맥의 중심도시.

도시의 이름은 러시아의 여제였던 예카테리나 대제에서 따왔다.

2 도시 특징과 역사

도시가 우랄 산맥의 동쪽 기슭에 가까스로 위치해있기 때문에 아시아에 속해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유럽아시아를 나누는 오블리스크가 도시 서쪽으로 40km에 위치해있다.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경계선으로 터키이스탄불이 있다면 러시아엔 예카테린부르크가 있는 셈. 유럽모스크바극동 시베리아를 잇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예카테린부르크 역을 통과하며, 러시아 철도가 아시아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덕분에 근대 러시아 소설에서 누군가가 시베리아로 유형을 간다면 항상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잠깐 머무는 장면이 나온다.

우랄 산맥의 풍부한 천연 자원들이 모이는 도시이기 때문에 공업이 상당히 발달했다. 러시아인들이 예카테린부르크하면 바로 떠올리는 것이 공장의 이미지. 도시 자체가 18세기 광산업을 위해 건설된 도시이고 이로써 축적된 부를 통해 공업, 금융업,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적백내전 이후 예카테린부르크는 우랄 산맥 권역에서 현재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스베르들롭스크(영어: Sverdlovsk, 러시아어: Свердло́вск)라는 이름으로 도시 이름이 개칭되었다.[1] 이후 스탈린이 우랄 산맥을 공업화하면서 군수산업도 크게 발달하게 되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예카테린부르크와 우랄 산맥 권역의 공업지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지고 러시아 연방이 되면서 도시이름은 다시 옛 이름인 예카테린부르크로 바뀌었으나, 아직까지 이 도시를 포함한 주는 스베르들롭스크 주(Свердло́вская о́бласть)라고 불리면서 소련시대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발전속도가 빠른 도시 중 하나다.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고 고층건물도 많이 올리는 중. 2020 엑스포 유치에 뛰어들었지만 두바이에게 밀렸다..

시내 교통은 트램과 트롤리버스가 활성화 되어 있다. 시베리아에 몇 없는 지하철 보유 도시이기도 하다.
시의 중심부에는 저 위의 사진에서 나오듯이 크고 아름다운 인공호수와 운하를 만들어 두었다. 시민들의 산책로로 이용되며 가끔 카누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보인다.

3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

예카테린부르크 지하철 문서 참조

4 출신 인물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와 같이 경기를 했던 피겨선수 율리아 리프니츠카야가 이 도시 출신. 전 중화민국 총통인 장징궈의 소련 출신 아내 장팡량(蔣方良, 본명 - 파이나 바흐레바) 역시 이곳에서 태어났다. 보리스 옐친이 이곳에서 대학을 나오고[2] 처음 일자리를 잡고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1991년 보수파의 쿠데타 당시 옐친에 의해 임시 수도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만큼 당시 옐친에 대한 지지세가 강했던 지역. 시내를 찾아보면 커다란 옐친의 동상이 있다. 다만 여기 출생은 아니고 같은 스베들롭스크주의 부트카라는 가까운 소도시 출신이다.

5 이야깃거리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니콜라이 2세 일가가 1918년 7월 17일 이곳에 있던 이파티예프 하우스 지하실에서 최후를 맞았다. 이파티예프 하우스는 1977년에 와서야 철거되었으며 현재 그 자리에는 당시 처형당한 로마노프 왕가를 추모하는 피의 성당이라는 정교회 성당이 2003년 완공되었고 관련 박물관이 세워져 있으며 예카테린부르크의 주요 관광지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오래된 도시인만큼 시베리아 횡단철도 연선에서 관광지가 많은 편인 도시다.

또다른 명소 중 하나는 유럽아시아 사이 경계선 표시 기념비. 경계선이 시내에 있지는 않고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 다만 이스탄불처럼 뚜렷한 지형적 경계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상징성이다.

스베르들롭스크였던 시절인 1979년에는 도시에 있던 생화학무기 연구소에서 생물병기로 생산된 탄저균이 도시에퍼지면서 몇 개월만에 수천 명이 죽었다고 한다.

2013년 지방선거에서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도입한 이후 러시아 대도시들 중 사상 최초로 집권여당이 아닌 야권 성향의 시장이 당선되었다. 시민 운동가 출신이라고 한다. #

대한민국의 인천광역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다.
  1. 볼셰비키인 야코프 스베르들로프의 이름을 땀. 예카테린부르크 국립극장 앞에 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개칭은 소비에트가 봉건적 색채가 남아있는 예카테린부르크라는 이름을 도시에 쓸 수 없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레닌그라드로 개칭된 상트 페테르부르크도 마찬가지
  2. 이곳의 국립대인 우랄 공과대학교 출신. 건축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