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스 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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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옌스 게르하르트 레만
(Jens Gerhard Lehmann)
생년월일1969년 11월 10일
국적독일
출생지에센
포지션골키퍼
신체조건190cm / 87kg
등번호1번
프로입단1989년 FC 샬케 04
소속팀FC 샬케 04(1988~1998)
AC 밀란(1998~1999)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1999~2003)
아스날 FC(2003~2008)
VfB 슈투트가르트(2008~2010)
아스날 FC(2011)
국가대표61경기 / 0골

데이비드 시먼의 뒤를 이은 아스날의 골리.
아스날의 무패우승을 함께했던 레전드.
기행의 사나이.

1 소개

독일의 골키퍼. 10/11시즌을 끝으로 은퇴. 상당히 뛰어난 실력의 골키퍼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 동안 국가 대표팀에서는 쾨프케와 평생의 라이벌 올리버 칸에게 밀려 서드 골리로써 살아온 비운의 사나이. 또한 올리버 칸을 훨씬 뛰어넘는 기행의 사나이.[1] 스페인의 페페 레이나, 이탈리아의 크리스티안 아비아티, 프란체스코 톨도와 같이 준수한 기량을 지녔음에도 출중한 경쟁자[2]으로 인해 대표팀과 인연이 적었던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 그래도 톨도는 유로 2000, 레만은 2006 월드컵에서 주전이라도 해봤지. 레이나는 안습. 하지만 A매치 출장 횟수는 톨도보다 많다.

2 클럽

FC 샬케 04에서 데뷔하여 10년 동안 뛰었다. 재미있는 일화가 상당히 많은데, 그가 본격적으로 주전 골키퍼로써 뛰게 된 1993년에 레버쿠젠과의 경기에서 전반 45분 동안 어이없이 3골을 실점한 후 전반전이 끝나자마자 교체당했는데, 이 때 감독의 말을 잘못 알아듣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가 징계를 받은 기행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후에는 주전 골키퍼로써 좋은 활약을 펼치며 공격에 가담해서 골을 넣는가하면(...) [3]1997년 UEFA컵 결승에서 인테르를 상대로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할 때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AC 밀란으로 이적하였으나 활약이 신통치 않아 한 시즌도 못 채우고(...) 독일로 복귀한다. 그런데 문제는 샬케의 지역 라이벌인 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는 것. 처음에는 클럽 팬들로부터 샬케 선수였다는 점 때문에 욕을 많이 먹었으나 01/02 분데스리가 우승에 기여함으로써 사그라들었다.

2003년에는 데이비드 시먼 이후 골키퍼를 찾고 있던 아스날 FC로 이적, 맹활약을 펼치며 전설의 아스날 무패우승 큰 기여를 한다.[4] 이후에도 좋은 활약을 펼치긴 했는데 실수도 상당했다. 특히 뼈아픈 것은 05/06시즌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FC 바르셀로나와 맞붙게 되었는데, 전반 18분경 레만은 달려오던 사무엘 에투를 잡아채면서 에투는 넘어졌고 결국 레만은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고 결국 벵거 감독은 로베르 피레스를 빼고 마누엘 알무니아를 넣을수밖에 없었고 이후 아스날은 수적 열세를 극복 못하고 1-2로 패하고 말았다.. 비야레알과의 준결승에서 리켈메의 PK를 선방하여 결승으로 이끌었고 챔피언스리그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고 있었기에 뼈아픈 실수였다. 그러나 자국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숙명의 라이벌 올리버 칸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활약하며 그동안의 설움을 떨쳐냈다. 07/08 시즌 초반 실책성 플레이로 실점하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마누엘 알무니아에게 주전 자리를 내준다.

07/08 시즌 종료 후 VfB 슈투트가르트로 이적함으로써 다시 자국 리그로 복귀하였다.[5] 여전히 기행은 이어졌으나, 활약은 나쁘지 않았기에 유로 2008 에서도 주전으로 발탁되는 등 2년 정도 뛰다가 2010년 6월 선수 생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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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포켓몬이 보인다!!!!!

2011년 골키퍼 문제가 부상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아스날 FC로 깜짝 이적한 것. 주전으로 쓰던 슈륙챙이슈체츠니가 부상을 당해 알무니아 밖에 남지 않게 되자,그냥 알무니아를쓰지 아아 근데 이때까지 해온게있잖아? 안될꺼야아마.. 이적을 선언하며 42세의 나이로 다시 골대 앞에 서게 된 것이다.이것도 기행이라면 기행이다

3 국가대표

국가대표팀에서 운이 매우 없는 선수인데, 그의 평생의 라이벌인 올리버 칸이 국대 주전 골키퍼 자리를 꽉 채우고 있기 때문이었다.[6] 그러다가 유로 2004의 독일의 엄청난 부진 이후로 위르겐 클린스만이 독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 충돌 끝에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로써 선정되어 처음으로 월드컵 무대에서 주전 골키퍼로써 활약하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

동갑내기 올리버 칸과는 상당히 상반된 스타일의 유형이다. 올리버 칸은 전통적인 유형의 골키퍼의 장점을 지닌 선수였다면 옌스 레만은 넓은 시야와 당시 골키퍼 치곤 수준높은 발 기술로 빌드 업 능력에 최적화 된 골키퍼라 볼 수 있다.[7] 아스날이 2000년대 중반 센터백들이 그리 제공권이 강하지 않았음에도 레만의 넓은 시야에 따른 제공권 장악이 탁월했기 때문에 레만의 노쇠화에 따른 기량하락이 시작된 2007년 이전까진 아스날의 수비는 상당히 안정적이였다. 그래서 그에게 붙인 별명이 바로 타잔이다. 높은 점프력과 너른 시야를 바탕으로 상대편의 크로스를 낚아채는 장면은 그야말로 일품이였기 때문이다.

5 여담

선수 생활 동안 수많은 기행을 선보인 것으로 유명했는데, 03/04 시즌 종료 3주 전, 토트넘 핫스퍼와의 경기중 2-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토트넘의 코너킥 찬스 때 로비 킨을 밀치며 페널티킥을 헌납하고 퇴장까지 당했다.[8] 2005년에는 챔피언스리그 경기 입장 전에 마시던 물병의 물을 주심에게 뿜는 등무슨 트리플 H의 물쇼도 아니고의 간 큰(...) 기행까지 선보였다.왜 국대 넘버원이 못 되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기행
2009년에는 경기 끝나기 9분 전에 자신에게 공을 주기 거부하며 조롱하던 볼보이를 비난하기도 했고, 챔피언스리그에서 소변(!!!)을 보는 등 다양한 기행을 선보였다.[9]

2005년 11월 9일 프랑스와의 A매치에서 공격수의 상징인 9번을 등에 박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다. .[10]
  1. 유명한 축구 게임인 FM으로 치면 기행을 만땅으로 주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기행이다.
  2. 레이나는 이케르 카시야스, 톨도와 아비아티는 지안루이지 부폰
  3. 심지어 상대는 최대 라이벌인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였다.
  4. 이 시즌에 골키퍼 장갑 세트를 단 한 세트만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이유는 지면 바꾸려 했는데 한번도 안져서..
  5. 이 때도 말이 많았는데, 07/08 시즌에 아르센 벵거 감독이 그 대신 마누엘 알무니아를 팀의 주전 골키퍼로써 쓰자, 심통이 났는지 신문과 인터뷰를 통해 안티-알무니아 캠페인을 이어가는 기행을 선보였다.근데 틀린 말은 아닌 듯
  6. 칸도 다양한 기행을 선보였으나 그 모든 것을 엄청난 카리스마와 뛰어난 슈퍼 세이브,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의 가공할 만한 활약상으로 묻어버렸다.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우승도 많이 차지하며 클럽 활약상도 뛰어났으니.
  7. 참고로 마누엘 노이어 골피커의 어릴 적 우상이 바로 옌스 레만 이다.
  8. 이후 데일리 스타의 브라이언 울너프는 레만을 정신병자라고까지 표현하며 신랄하게 깠다.
  9. 칸과 레만의 스승인 제프 마이어가 말했다. 레만은 칸이 20년 동안 했던 형편없는 짓들을 1년 만에 해내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