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Create World (우리는 세상을 창조한다)[1] |
1 개요
80, 90년대를 명작으로 수놓은 전설의 제작사. 울티마의 산실
하드웨어 고문하는 게임 만드는 회사
울티마 시리즈의 제작자 리처드 개리엇이 자신의 형 로버트 개리엇과 같이 세운 게임 제작사. 회사의 정식 명칭은 오리진 시스템즈지만, 줄여서 오리진으로 많이 불렸다.
RPG 장르의 전설인 울티마 시리즈를 비롯하여 우주 비행 시뮬레이션이란 장르를 개척한 윙커맨더 시리즈, 크루세이더 등 90년대 초반까지 PC 게임의 선두주자 역할을 해왔으나 EA에 인수된 이후 빛이 바래다가 사라지고 만다.
스타 시티즌에 오리진 점프웍스라는 회사로 오마쥬되어 등장한다. 우주선계의 BMW같은 이미지.
2 역사
리처드 개리엇은 아칼라베스와 울티마 1, 2를 다른 회사들과 배급 계약을 해서 팔고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들이 제대로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았고, 어떤 회사는 자기 게임으로 번 돈을 마약 사는 데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자기가 직접 회사를 차려 게임을 팔아야 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경영학을 전공한 형 로버트 개리엇, 동창이었던 척 부치와 함께 1983년 오리진 시스템즈를 세운다. 오리진 이름으로 처음 출시한 게임은 울티마 3.
회사 초창기인 1980년대 중후반에는 RPG 타이틀에 주력했지만 울티마 시리즈로만 먹고 산 것은 아니다. 1985년에 내놓은 《오토 듀얼(Auto Duel)》은 자동차를 소재로 한 RPG 게임이었고, 1987년에 내놓은 《2400 AD》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RPG였다. [2] 이외에도 《타임즈 오브 로어(Times Of Lore)》, 《나이츠 오브 레전드(Knights Of Legend)》 같은 여러가지 RPG를 만들었다. RPG 이외의 분야로는 미니어처 게임을 PC로 옮긴 《오우거(Ogre)》나 전차를 제작하는 게임인 《오메가(Omega)》, RPG와 우주 비행 시뮬레이션을 접목시킨 《스페이스 로그(Space Rogue)》 등을 내놓았다.
1990년에 발매한 윙커맨더가 큰 인기를 얻자 오리진은 울티마 시리즈와 윙 커맨더 시리즈를 집중해서 밀어주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당대 최고의 PC 사양을 추구하여 게임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윙커맨더가 고사양으로 악명을 떨쳐서 그렇지 이미 1987년 등장한 울티마 5부터 게임의 사운드를 들으려면 당시 무지 비쌌던 애플 II의 사운드카드인 머킹보드를 사야 했고, 더 미려한 사운드를 들으려면 머킹보드 2개를 사서 끼워야 했다(...) 울티마 6과 윙커맨더 1부터는 사운드에 이어 그래픽도 당대 최고 사양으로 맞춘 것일 뿐이다. 이렇듯 회사에서 발매한 게임들이 항상 요구사양의 최전선에 있었기에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두 메모리(...)같은 악명 높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울티마 시리즈와 윙 커맨더 시리즈는 확장을 지속하여 울티마는 울티마 6 엔진을 기반으로 한 월드 오브 울티마 시리즈, 울티마 8에서 비난받았던 마리오액션 엔진을 역발상으로 살려서 개발한 명작 액션 게임인 "크루세이더" 시리즈, 오리진 출신 폴 뉴라스가 설립한 루킹 글래스에서 개발한 울티마 언더월드 시리즈로 가지를 쳐나갔고, 윙 커맨더도 여러가지 외전격인 게임을 내놓았다. 또한 윙 커맨더의 제작경험을 살려 비행 시뮬레이션 분야에도 뛰어들어서 "스트라이크 커맨더" 시리즈나 "퍼시픽 스트라이크", "윙스 오브 글로리", "제인스 롱보우(Jane's Longbow)" 시리즈 등 여러 명작을 내놓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1992년 EA가 오리진을 3500만달러라는 헐값에 인수하면서 슬슬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1994년 윙 커맨더의 제작자인 크리스 로버츠가 퇴사하면서 윙 커맨더 시리즈는 그대로 중지되었고,[3] 1990년대 중반부터는 울티마 시리즈를 제외한 신작 제작을 중지시키고 게임 유통업을 하면서 돈을 벌었다. 이 시기에 오리진이 퍼블리싱한 게임들로는 루킹 글래스의 "시스템 쇼크", 사이버메이지[4] 등이 있다.
그나마 1997년 내놓은 울티마 온라인이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1999년 울티마 9가 실패하고 EA 경영진과의 마찰끝에 리차드 개리엇이 오리진을 떠나면서 울티마 온라인만 운영하는 회사가 되었다가 결국 2004년 EA가 오리진을 없애고 울티마 온라인의 개발을 당시 새로 인수한 미씩 엔터테인먼트에 넘기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오리진이 몰락한 것에 대해 EA도 양심의 가책은 느꼈는지 2008년 EA의 존 리치티엘로(John Riccitiello) 회장은 불 프로그(Bullfrog), 웨스트우드(Westwood), 오리진(Origin)의 인수에 대해서 “우리 EA가 그들을 망쳐놓았다. 상당한 기간 동안 나는 이들 기업의 인수에 직접 관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망쳤다고 말할 수 있다.”고 자평하며 불 프로그, 웨스트우드, 오리진의 인수는 큰 실패였다고 자평했다.
3 유명한 개발자
리처드 개리엇과 크리스 로버츠가 가장 유명하지만, 오리진 리즈 시절에 이 회사를 거쳐간 유명한 개발자들이 상당히 많다. 몇 가지만 추려보면,
- 존 로메로 : 1987~88년에 오리진에서 잠깐 일한 적이 있었다.
- 폴 뉴라스 : 오리진 초창기에 스페이스 로그 등을 만들다가 퇴사해서 보스턴에 블루 스카이 프로덕션을 설립하고 1인칭 던전 RPG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오리진과의 인연으로 이 게임은 울티마 언더월드라는 이름으로 발매되었고 게임이 성공하자 회사 이름을 루킹 글래스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직원들을 고용하여 시스템 쇼크, 시프 시리즈 등 명작을 차례로 발표했다. 2000년에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을 때까지 루킹 글래스는 오리진 못지 않게 게임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 워렌 스펙터 : 울티마 6부터 오리진에 합류했다. 울티마 시리즈의 스토리, 문학성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같은 오리진 출신인 폴 뉴라스가 설립한 루킹 글래스에서 울티마 언더월드 시리즈와 시스템 쇼크, 사이버메이지 등의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2000년, 루킹글래스 스튜디오가 재정 문제로 문을 닫은 이후에는 존 로메로에게 스카우트되어 이온 스톰 오스틴을 설립,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를 만들었다.
- 하비 스미스 : 오리진에 테스터로 입사해서 게임업계에 데뷔했다. 이후 워렌 스펙터 밑에서 프로듀서로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스펙터와 함께 이온 스톰에서 데이어스 엑스 시리즈를 이끌었다. 디스아너드의 디렉터이기도 하다.
- 라프 코스터(Raph Koster) : 초창기 울티마 온라인의 메인 기획자로 이후 베란트라는 회사로 이직해서 "스타워즈 갤럭시"와 "에버퀘스트 2"를 개발했다.
- 레이먼드 벤슨(Raymond Benson) : 울티마 7의 시나리오 담당으로 이후 소설가로 전직, 007 시리즈 영화판의 소설화를 담당했다.
- 폴 스티드 : 윙 커맨더 시리즈의 리드 아티스트로 이후 이드 소프트웨어에서 퀘이크 시리즈의 상징적인 아트 디자인에 기여했다. 2012년 작고했다.
- 롭 코렐(Rob Corell) : 윙 커맨더 시리즈와 울티마 8, 크루세이더의 그래픽 작업에 참여했다. 이후 심텍스사로 이직, "마스터 오브 오리온 2" 제작에 참여했다. 이후 어도비 시스템즈로 이직하여 어도비 브릿지[5]와 포토샵 익스프레스를 만들었다.
- 톰 칠튼 : 울티마 온라인의 확장팩 "암흑의 시대(Age Of Shadow)"의 메인 기획을 담당했다. 이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참여했다.
- ↑ 회사 좌우명이다.
- ↑ 다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아니고, 외계제국에게 점령당해 점령군으로 진주중인 로봇들의 통제를 받는 미래풍의 도시가 배경이다.
- ↑ 크리스 로버츠는 후에 디지털 앤빌을 설립하고 스타랜서, 프리랜서등을 개발한다.
- ↑ 아메리칸 코믹스풍의 캐릭터가 나오는 게임으로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탑승물 시스템을 활용한 FPS게임중 하나였다. (시스템 쇼크보다는 FPS에 더욱 가까웠던 게임이다.) 하지만 2.5D FPS치고 수준높은 그래픽때문에 고사양으로 유명했고 난이도마저 높아서 금방 잊혀졌다.
- ↑ 어도비사의 제품에 딸려오는 파일 브라우징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