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길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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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giliath

곤도르 왕국의 옛 수도이자, 망명 누메노르 왕국의 수도. 어원은 '별들의 요새'. 구조적으로 도시 한가운데에 안두인 대하가 흐르며, 도시 중앙에 거대한 다리가 있다.

사실 보면 알다시피 미나스 티리스는 연결성이 좋지 않다. 미나스 티리스는 방어에는 좋지만 수도로는 좋지 않고 무엇보다 코앞이 최전방이다. 애초에 건설 사유도 오스길리아스의 서쪽을 방어하는 요새로 건립된지라 도시로서의 기능은 미약하다.

그런데, 따져본다면 오스길리아스가 더 적에게 가까이 있고, 큰 강으로 도시가 분할된데다가 오스길리아스 시 자체만 따지면 제대로 된 방어시설도 별로 없고, 지형도 평야지대라 지형의 방어 혜택도 못받는데 수도가 된 이유가 궁금해질 것이다. 곤도르의 군주들도 이러한 상황을 못 볼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수도를 방어할 요새를 세웠는데, 그게 바로 미나스 아노르와 미나스 이실이었다. '지는 태양의 탑' 미나스 아노르는 안두인 서안의 미개인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떠오르는 달의 탑' 미나스 이실은 모르도르의 위협으로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것이 그 목적. 이 두 성채가 제 역할을 하고 있을 때에는 오스길리아스는 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했다.

엘렌딜이 막 가운데땅으로 와서 망명 누메노르 왕국을 세울 때 만들었다. 정작 엘렌딜은 북쪽의 한적한 안누미나스에서 왕노릇을 하고 있었기에 엘렌딜이 이곳에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실질적으로 남쪽을 통치한 건 이실두르아나리온인데, 이실두르는 주로 미나스 이실에서, 아나리온은 주로 미나스 아노르에서 사우론을 감시하면서 곤도르를 보호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수도는 오스길리아스였고,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옥좌는 오스길리아스의 왕궁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곤도르 중기에 발발한 내전으로 인해 상당히 황폐화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어이없게도 미나스 티리스와 미나스 이실이 있다는 것만 믿고 정작 오스길리아스에는 제대로 된 성벽을 건설하지 않은 데다가, 반란군의 주축이 곤도르 해군이었으므로 안두인 대하를 거슬러올라서 공격했는데, 이쪽 방향으로는 제대로 된 방어책을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순식간에 함락되었다가 나중에 국왕이 북쪽에서 군대를 이끌고 재탈환하는 등 수라장을 겪게 된다. 그리고 이런 내전 와중에 팔란티르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던 오스길리아스의 팔란티르가 안두인 대하에 빠지는 바람에 잃어버리게 됨으로서 점점 수도로의 가치가 상실되고 있었다. 이후 곤도르의 군주는 실질적으로 미나스 아노르에 거주했다. 결국 역병이 불어 오스길리아스의 대부분의 거주민들이 몰살되고, 이를 피해 도망간 주민들도 귀환을 포기하는 등 거의 유령도시화 되는 사태가 벌어지는 바람에 공식적인 수도도 미나스 아노르로 옮겼다.

이후 곤도르의 마지막 왕인 에아렌두르 시대에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이 이끄는 나즈굴이 미나스 이실을 탈취하면서 미나스 이실은 '검은 마법의 탑' 미나스 모르굴이 되어버리고, 이에 맞서 미나스 아노르는 '감시의 탑' 미나스 티리스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미나스 이실을 상실한 것으로 인해 모르도르 방면의 방어책이 없어졌으므로 이 시점에서 이미 오스길리아스는 적의 공격에 직접 노출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이후 통치섭정 데네소르 1세[1]에 모르도르의 우르크가 공격하면서 도시의 대부분이 폐허로 변했고, 이후 오스길리아스는 민간인의 거주지로 활용되지는 못했으며 계속된 적의 공격에 안두인 대하를 방어하는 전진 기지로 이용되었다. 아파트그라드

제3시대 말에 사우론에 의해 도시의 동쪽 지역이 점령당하는 바람에 안두인 대하를 건너는 다리를 파괴하였다. 그러나 완전히 파괴한 게 아니고 1-2경간 정도만 끊어놓은 상태라 사우론의 군대가 대공세를 펼칠 때 다리가 쉽게 복구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그리고 사우론의 대공세로 인해 서쪽도 마저 점령당함에 따라 완전히 함락되어 적의 전진기지로 전락했다.

나중에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되찾긴 했지만, 평화의 제4시대에도 수도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제4시대에서도 실질적 수도는 미나스 티리스이다. 다만 개박살난 이후 수천년이 지난 북쪽의 안누미나스아라고른이 복구하여 북부의 수도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2]
  1. 후대의 데네소르 2세와는 동명이인, 공교롭게도 아들 이름도 똑같이 보로미르다.
  2. 두 도시는 사정이 다르다. 안누미나스는 인구가 줄어서 점점 황폐화되었을 뿐 직접 전쟁의 참화를 겪은 적이 없다. 반면 오스길리아스는 내전부터 시작해서 섭정의 시대에 모르도르와 곤도르의 주요 전장이 될 정도로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도시이므로 그 복구가 훨씬 늦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