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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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곡

1 개요

Gondor

제 3시대 인간계 최강의 국가[1][2][3]
뉴메노르 2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국가. 어원은 돌이라는 뜻의 Gon과 땅이라는 뜻의 Dor, 즉 돌의 땅이라는 뜻이다. '곤도오'로 발음되기도 한다. 다만 톨킨이 의도한 발음은 r을 유성음으로서 약하지 않게 발음하는 것. 제1시대의 국가 곤돌린[4]과는 다르다.

국가의 상징은 미나스 티리스 꼭대기의 있는 흰색 나무로, 국기는 백색 성수와 그 주위에 팔란티르를 상징하는 7개의 별이다. 왕가의 문양은 이와는 조금 다른데, 국기 위에 왕을 뜻하는 왕관이 그려져 있다. 곤도르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은 왕관으로, 알카린 대왕 시절에 옛 시절 투구를 본떠서 제작한 것이다. 소설에서의 묘사 또한 궁성 경비대의 투구와 매우 흡사하나 좀 더 고급스럽게 생기고, 이마 부분에 여러 보석이 박혀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런 거 없고 그냥 왕관.

참고로, 톨킨은 곤도르의 왕관을 이집트의 헤젯 왕관에서 따 왔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이를 반영했는지, 곤도르군의 투구를 보면 키가 크고 위가 뾰족한 헤젯이 연상된다. 다만 투구를 뺀 갑옷 등의 나머지 복식은 동로마 제국의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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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대 동안 곤도르의 영토 변화가 나타난 지도. 푸른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곤도르이다. 가장 작았을 때가 처음이며, 마지막 노란색 부분은 반지전쟁을 끝내고 곤도르의 왕으로 정식 즉위한 아라고른이 확장한 영토다.

2 역사

2.1 곤도르의 건국 초기

곤도르는 엘렌딜이 세운 망명 누메노르 왕국의 후계국으로 엘렌딜 사후 그의 두 아들들에게 나뉜 왕국 중 남쪽을 뜻한다. 원래는 엘렌딜이 북쪽과 남쪽 둘 다 다스리는 대왕이었지만 길갈라드와 협력하기 쉬운 북쪽 아르노르만 직접 통치하고, 이실두르아나리온이 각각 미나스 이실미나스 아노르에 머물면서 남쪽인 곤도르를 공동 통치했다. 이후 엘렌딜아나리온이 사망한 뒤에 한동안 이실두르아르노르와 곤도르의 2대 대왕으로서 공동 통치하며 전후 질서를 바로 잡았다. 한편 이실두르는 한반지의 매력에 빠져 아르노르의 국보로 삼고 대신 그 것에 대한 기록을 곤도르에 남기게 된다.[5] 또한 그는 검은문 양편에 거대한 이빨탑을 건설하였고 두르상과 키리스 두아스를 세워 모르도르를 철저히 감시토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실두르는 동생 아나리온을 생각하며 백색나무의 묘목을 미나스 아노르에 심은 후 곤도르를 아나리온의 아들 메넬딜에게 넘겨주고 아르노르로 떠난다. 하지만 이실두르가 창포벌판의 재난으로 사망하면서 두 왕국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으며 곤도르는 메넬딜의 자손들이, 아르노르는 이실두르의 자손들이 계속 대를 이어 나가게 된다.

2.2 곤도르의 전성기

본래 곤도르는 아노리엔 지방만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제 3시대 500년부터 하라드와 동부인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541년, 제 8대 왕인 로멘다킬 1세가 동부인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하지만 550년, 그의 아들이었던 투람바르가 동부들인들을 대파하고 동쪽의 넓은 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830년, 12대 왕인 타란논은 해군을 양성하며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영토를 확장시킨다. 933년, 13대 왕인 에아르닐 1세가 움바르를 점령하지만 몇 년 후, 폭풍우로 실종되고 만다.

이윽고 1000년 대에 곤도르는 거대한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1015년, 움바르에서 쫒겨난 검은 누메노르인들이 하라드인들을 이끌고 움바르를 포위 공격하였고 전투중, 14대 왕인 키랸딜이 전사하고 만다. 하지만 1050년 마침내 15대 왕인 햐르멘다킬 1세가 하라드를 정복하면서 움바르의 포위를 풀었고 하라드인들은 완전히 쇠망하며 뿔뿔히 흩어지게 된다.

이 시기 곤도르의 국력은 최절정기에 달해 누구도 감히 곤도르를 공격하지 못했다. 안두인 강 북쪽의 북부인들도 곤도르의 북쪽 영역의 통치를 인정해주었으며 하라드의 왕자들은 곤도르에 볼모로 보내어져 그 궁정에서 살아야했다. 곤도르의 강역은 북으로는 켈레브란트 벌판과 푸른숲 남쪽, 서로는 회색강, 동으로는 룬 내해, 남으로는 하르넨 강과 움바르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거의 중간계 서부의 절반에 가까운 국토를 보유한 셈이다. 모르도르는 황폐한 곳이었으나 키리스 웅골과 모란논 등에 요새와 탑을 세우고 쉴 틈 없이 감시했다.

2.3 곤도르의 쇠퇴기

최전성기를 이루던 곤도르도 1000년이 지나면서 급격히 쇠퇴하게 된다. 특히 곤도르에게 닥친 3가지의 시련인 동족분쟁, 대역병 그리고 전차몰이족의 침략은 곤도르에게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타격을 입힌 대재앙이었다.

2.3.1 동족 분쟁

햐르멘다킬은 위대한 선박왕이었으나, 그의 아들 아타나미르는 호부견자의 전형이었다. 그는 곤도르의 부귀와 영화에만 탐닉했으며, 그의 통치 아래 곤도르는 보석따위는 곤도르의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공기돌에 불과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유했으나 실상은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곤도르의 전성기를 유지하기 위해 해야 될 일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며, 단지 했던 일이라고는 평범했던 왕관을 날개가 달리고 화려한 보석이 달린 것으로 폼나게 교체하는 것이 전부였다.

1240년, 17대 왕인 나르마킬 1세는 즉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예 국가 경영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고 조카였던 미날카르에게 섭정을 맡긴다. 곤도르의 만력제 1248년, 미날카르는 북부인들 중 가장 강한 로바니온의 왕 비두가비아의 원군과 함께 동부인들을 격파하고, 룬 내해 동쪽의 그들의 거주지를 파괴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안두인 강 서쪽 림라이트 강까지 요새화하고, 이방인들이 에뮌 무일 이상 진출하는 것을 금하였으며, 넨 히소엘 입구에 이실두르아나리온의 모습을 본땄다고 전해지는 아르고나스를 세우게 하였다.

또한 북부인과 우호를 돈독히 하고 싶은 미날카르는 그의 아들 발라카르를 로바니온에 대사로 보내 머물게 하였으며, 발라카르는 그곳에서 로바니온의 왕인 비두가비아의 딸 비두마비와 결혼하고 그 곳에서 아들 엘다카르를 낳게 된다. 이는 훗날 큰 약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곤도르인들은 순수혈통을 중시하는 사회로 두네다인의 핏줄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시하였다. 즉 신라의 성골과 진골과 비슷할 것이다. 따라서 왕가의 일원이 두네다인이 아닌 일반 북부인과 결혼한 사건은 곤도르 귀족들에게 크나큰 반발을 일으켰다.

1432년, 결국 20대 왕인 발라카르가 죽자 동족분쟁이 시작된다. 그의 아들인 21대 왕, 엘다카르는 반대파에게 약점을 잡히게 되는데 우선 그가 곤도르가 아닌 로바니온에서 태어난데다가 어머니 또한 두네다인이 아닌 북부인이기 때문에 혼혈아로 간주되어 정통성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곤도르의 대함장으로서 해군기지가 있던 펠라르기르움바르의 큰 지지에 힘입은 작은 할아버지의 손자 카스타미르가 내전을 일으키니, 엘다카르의 대관식은 열리지도 못하였다.

1437년, 결국 카스타미르가 이끄는 반란군은 엘다카르가 있는 수도 오스길리아스를 포위 공격하였다. 별다른 성벽이 존재하지 않았던 도시는 불타고, 그곳에 있던 거대한 팔란티르는 안두인강에 빠져 소실되었다. 엘다카르는 로바니온으로 달아나고, 찬탈자 카스타미르는 스스로 제22대 곤도르의 왕위에 오르고 먼 친척인 엘다카르의 맏아들 오르넨딜을 처형해버리고 만다. 그의 잔인무도한 모습에 미나스 아노르미나스 이실의 주민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한편, 북부로 달아난 엘다카르는 로바니온에서 북부인과 부근의 로바니온을 모으며 때를 기다렸다.

1447년, 엘다카르가 군사를 이끌고 카스타미르를 응징하러 오니, 이미 10년전에 벌어진 오르넨딜 처형사건으로 인해 카스타미르에 등을 돌린지 오래된 이실리엔과 아노리엔, 켈레나르돈도 이에 호응하였다. 마침내 에루이 여울에서 양 세력의 결전이 벌어졌고 여기에서 엘다카르가 카스타미르를 죽이고 승리, 왕권을 회복하였다. 카스타미르의 아들은 펠라르기르로 달아나고, 엘다카르는 이를 뒤쫒아 펠라르기르를 포위하게 된다.

그러나 1년 후, 남은 반란군은 모든 배들을 이끌고 다시 펠라르기르를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는 대부분의 곤도르 해군이 반란군을 지지하였기 때문에 엘다카르에게는 사실상 해군이 없었으므로 반란군의 탈출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탈출한 반란군은 움바르를 빼앗고 현지에서 독립하는 것으로 동족분쟁은 마무리 된다.

동족분쟁의 결과 곤도르는 움바르를 다시 빼앗김으로써 남쪽영토를 많이 상실하고, 다시 해적과 하라드림의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점뿐만 아니라, 과거 아르파라존사우론을 사로잡은 상징적인 지역을 잃었다는 점에서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비록 동족분쟁으로 곤도르의 인구는 많이 감소했지만, 엘다카르와 함께 온 북부인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면서 어느 정도 보충이 되었다. 북부인들이 곤도르의 주민으로 편입되면서 누메노르와 북부인의 피는 점점 섞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누메노르인의 지혜와 수명이 북부인의 피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누메노르인의 권능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고, 이는 축복의 땅이었던 옛 누메노르를 잃은 누메노르인에게서 발라의 축복이 서서히 떠나갔기 때문이었다.

2.3.2 대역병

동족분쟁의 상처는 깊었다. 곤도르는 움바르를 잃어버렸고 하라드림 지역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다시 움바르 해적들의 약탈을 받게 되었다. 결국 1634년, 25대 왕인 미나르딜이 해적들과의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이에 그의 아들인 텔렘나르가 움바르를 멸망시키기 위한 대함대를 준비한다.

하지만 1635년 겨울, 대역병이 로바니온부터 휩쓸기 시작했다. 비록 로바니온의 주민들은 대개 트인 곳에서 살았고 인구가 밀집된 대형 도시들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때마침 그들은 추운 겨울로 인해 나무로 된 집과 마굿간에 몰려있었다. 또한 고대 누메노르에서 전해지는 전통 의술과 치료법이 로바니온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역병이 지나가자 로바니온의 인구와 말의 수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듬해 1636년 마침내 대역병은 곤도르에게도 손길을 뻗쳐왔다. 특히 인구가 집중돼있던 아노리엔 지역과 켈레나르돈 지역에서 많은 수가 죽었고 왕이었던 텔렘나르와 그의 자식들 모두 병사하고 만다. 그가 죽으면서 움바르공격도 흐지부지 되었고 미나스 아노르에 있던 백색나무마저 시들어 죽고 말았다.

1640년, 대역병이 휩쓸고 지나간 곤도르는 인구가 절반이하로 줄어들었고 내전에 이어 대역병까지 휩쓸고 지나간 오스길리아스는 사실상 수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27대왕 타론도르는 이에 수도를 미나스 아노르로 옮기고 백색나무의 묘목을 다시 심었다. 이는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이는 곧 모르도르에 대한 방어선이 허술해지는 결과를 낳았다.[6]

하지만 이 대역병으로 인해 동부인들도 많은 피해를 입었고 감히 곤도르로 쳐들어 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에 곤도르는 움바르 해적들에게 전선을 집중할 수 있었고 마침내 1810년, 29대 왕인 텔레메크타르는 움바르를 공격하여 카스타미르의 후손들을 모두 죽이고, 움바르를 다시 수복하였다.[7]

2.3.3 전차몰이족의 침략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대략 100여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동부인들은 다시 힘을 회복하였고 다시 침략을 시작하였다.

1851년, 돌 굴두르의 꼬드김을 받고 거대한 전차를 몰고 다니는 전차몰이족이 북부인들의 영토로 대규모의 침략을 해 왔다.

1856년, 30대왕인 나르마킬 2세는 로바니온의 왕 마르하리의 군대와 함께 어둠숲 아래 평원으로 출전하여 전차몰이족과 대규모 전투를 벌였지만 완패하였고 그 자신도 전사하였다. 하지만 곤도르군은 후위대로 있던 마르하리의 기병대가 큰 활약을 한 덕분에 전멸은 면하고 이실리엔으로 간신히 후퇴할 수 있었다.[8] 이 결과로 곤도르는 이실리엔을 제외하고 안두인 대하와 에뮌 뮈엘 동쪽 영토를 모두 상실하였다.[9]

한편, 전차몰이족은 여세를 몰아 로바니온으로 쳐들어갔고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들의 노예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는 더 북쪽으로 이동하여 데일인들과 섞였고 마르하리의 아들 마르위니가 이끄는 잔존 세력들은 어둠숲과 안두인 사이의 기슭을 지나 바위섬 캐락과 창포벌판 사이의 안두인 골짜기에 정착하여 초대 군주가 되니, 이들이 곧 에오세오드였다.

1899년, 곤도르는 남부의 위협이 제거[10]되자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로 한다. 마르위니는 다시 전차몰이족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곤도르에 경고를 하였으며 동시에 노예가 된 북부인들에게 전차몰이족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라고 선동한다. 마르위니의 경고대로 전차몰이족은 다시 곤도르를 침략하나 곤도르와 마르위니가 숨겨둔 기병대의 후방공격이라고 쓰고 뒤치기을 받고 대패하였다. 동시에 로바니온에서도 북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전차몰이족의 저항이 거센 바람에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했다.

한편, 곤도르와 아르세다인왕국은 오랜 단절을 끊고 다시 동맹을 맺는다. 이들은 앙그마르나 전차몰이족이 누메노르 생존자들을 없애려는 단일한 목적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에 아르세다인의 왕자 아르베두이와 곤도르의 공주 피리엘의 혼인으로 더욱 굳건한 관계를 맺는다.

1940년, 에오세오드에게서 다시 전차몰이족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입수되었고 곤도르의 왕 온도헤르는 이에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온도헤르는 적들이 북쪽과 남쪽에서 모두 쳐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군대르 둘로 나눠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남부전선에는 왕실의 일원인 에아르닐에게 지휘권을 줘서 펠라르기르에 주둔토록 했다. 그리고 북부전선은 왕인 자신이 스스로 지휘하였는데 이는 오래된 곤도르의 관습[11]이었다.

1944년, 마침내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아르닐은 절반의 군대와 함께 안두인 강을 건넜고 나머지는 일부러 포로스강의 여울을 무방비로 둔 채 남부 이실리엔에서 북쪽으로 40마일 정도 되는 곳에 야영하였다. 한편, 온도헤르는 북부 이실리엔을 통과해 다고를라드 평원에 군대를 배치하기로 하였다.[12]

10월 4일, 온도헤르는 45년전 승리했던 전투를 생각하며 적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막 검은 문을 지나고 있었다. 또 외조카 미노타르가 우익부대, 당시 Dor-en-Ernil[13]의 제후 아드라힐이 좌익부대를 이끌며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고를라드에서 비로소 그들의 자리를 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차몰이족은 룬해에서 집결한 뒤 로바니온과 칸드의 군대와 합류하여 곧장 서진한 다음 곤도르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이에 전열이 무너진 온도헤르의 군대는 급히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맞섰고 후미에 있던 미노타르에게 자신의 좌측을 지원하라는 전령을 보냈다. 하지만 온도헤르는 중무장한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의 돌격에 대비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위대와 기와 함께 급히 낮고 둥근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공격이 그 기를 향해 퍼부어져 그 기는 노획되었고 그자신과 호위대 그리고 맏아들이었던 아르타미르가 전사하였다. 그 후, 이들은 곤도르군의 전열 깊숙히 질주하여 대혼란을 일으켰고 많은 자들을 죽음의 늪까지 몰고 가서 대부분 전멸시켰다.

이제 왕의 외조카 미노타르가 지휘권을 잡았다.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온도헤르를 전사시킨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은 퇴각하였고 그 사이 그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자신의 기를 세워, 가까이에 있는 중앙부대의 남아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할에 있는 자들을 재집결시켰다. 그 후, 자신의 후위에 있던 좌익의 아드라힐에게 전령을 보내 당장 후퇴할 것을 명하고, 자신은 안두인 강 동쪽에서 가장 좁은 지역인 카이 안드로스와 에펠 두아스 사이까지 후퇴하여 그곳에 방어선을 치고 미나스 아노르로 가는 길을 최대한 방어하려고 했다. 이 후퇴의 시간을 벌기 위해 아드라힐은 몸소 후외대를 결성하여 전차몰이족의 전진을 저지해보려고 했다. 또한 아드라힐에게 남쪽의 에아르닐을 찾아 이 재앙과 현재 상황을 전하도록 명했다.

또한 미나스 아노르에 있는 다음 왕위 계승자인 파라미르에게도 급보를 보내려는 찰나, 에오세오드의 군사들이 방어선에 합류하여 그가 전사하였음을 알렸다.[14]

비록 이실리엔의 땅은 전차몰이족에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곤도르군이 친 방어선도 수적으로 우세한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의 돌격 앞에 무너지고, 미노타르도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후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드라힐을 찾아 남쪽으로 달아난다. 북부 이실리엔까지 들어와 진격을 멈춘 전차몰이족들은 진지를 차리고, 두 차례의 완승에 축하연을 열었다.

하지만 곤도르의 군대가 모두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전선에 있던 에아르닐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포로스강을 건어 근처의 하라드와 칸드의 연합군을 전멸시키고, 급히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후퇴하던 군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성급하게 곤도르의 멸망을 자축하던 그들의 캠프를 기습하여 대부분 전멸시키고, 달아나는 이들도 쫓아와 죽음의 늪에서 모두 죽이니, 연합군은 죄다 몰살되었다. 하라드와 칸드는 이 패배로 치명타를 입었고 더 이상 곤도르를 함부로 침공하지 못했다. 이후 곤도르는 멸망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게 되었다.

2.4 왕가의 단절

전차몰이족과의 전쟁으로 곤도르는 왕과 두 왕자마저 죽어 직계혈통이 끊어졌고 이에 이실두르의 직계후손이자 아르세다의 왕자였던 아르베두이는 온도헤르의 사위로서 곤도르의 왕권을 요구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후린 가문의 섭정 펠렌두르가 우리는 아나리온의 후손이 아니면 왕위에 올릴 수 없다고 단칼에 거절해버렸다.

이에 아르베두이는 곤도르는 대왕 엘렌딜에서 시작했으며, 그가 두 아들에게 통치를 위임한 것이고, 또 그가 죽은 후 대왕 이실두르아나리온의 아들에게 통치를 위임한 것뿐이지, 왕권을 양도하거나 엘렌딜의 왕국을 쪼개려고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누메노르의 후손으로서, 남자든 여자든 제일 가까운 친족이 후계자가 되는 누메노르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섭정 펠렌두르가 이를 단칼에 거절해버리고 온도헤르 왕의 7촌 조카뻘 되는 장군 에아르닐을 왕위에 올렸다.

사실 섭정의 결정은 좀 복잡한데 누메노르의 옛 법도를 따라 여성의 왕위계승이 인정되었다면 섭정은 그의 아내의 계승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어서 남편이었떤 아르베두이가 곤도르의 왕이 되는 것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섭정은 곤도르의 왕은 아나리온의 후손이여야 한다는 법칙에 준해 아르베두이의 왕위계승을 거부했다. 누메노르 멸망 이후 누메노르의 문화를 이어받은 두네다인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인 계승을 선택했고 곤도르의 왕가도 계속 그렇게 이어져 왔으니 섭정이 억지를 부린 거라곤 할 수 없었다. 섭정의 결정엔 예전 동족분쟁으로 나라를 말아먹을 뻔 한 경험이 있는 곤도르에 또다른 왕위계승 문제를 만들기를 피하고 싶었다는 이유도 있었다. 또 왕과 먼 친척이기는 하지만 엄연히 온도헤르왕의 방계혈족이 존재했다.

결국 아르베두이의 요구는 묵살되고, 에아르닐 2세가 곤도르의의 제32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직접 아르세다인에 사자를 보내 자신은 엘렌딜왕국의 불화를 원치 않으며, 필요하면 모든 협조를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아르베두이도 그리 강한 집착은 없으므로 그냥 넘어가지만, 그의 주장은 훗날 그의 후손들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1973년, 아르베두이는 위기를 감지하고 곤도르에 원군요청을 하게 된다. 이에 에아르닐 2세는 아들 에아르누르를 함장으로 하여, 파견이 가능한 모든 군대로 대함대를 구성, 회색항구로 파견하였다.[15] 하지만 이듬해, 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앙그마르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치열한 공방전 끝네 아르세다인의 수도인 포르노스트는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아르베두이는 북부언덕에서 저항하지만 결국 북부 포로켈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1975년 3월, 키르단은 자신에게 도망온 아라나르스에게 소식을 듣고 아르베두이를 구출하기 위해 배를 보내지만 아르베두이가 탄 배는 빙산에 부딪혀 침몰하였다. 원래 배가 떠나기 전 포로켈 인들은 여름까지 기다린 후 떠나라고 조언했었다. 결국 아르베두이가 탄 배는 빙산과 부딪쳐 침몰하였고 그가 가지고 있던 포르노스트와 아몬 술의 팔란티르도 함께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한편, 뒤늦게 도착한 곤도르의 군대는 아르세다인의 잔존세력, 에리아도르 지역의 요정들이 보고 경악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그 요정들이 경악할 정도니 얼마나 대단할까 그 당시의 기록으로는 포를론드, 하를론드, 미슬론드까지 세 개나 되는 항구를 배들이 가득 채웠는데도, 정박하지 못해 기다려야 했던 배들이 부지기수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고무된 키르단은 린돈의 요정군대남아있던 두네다인을 모두 모았고 에아르누르의 군대와 도중에 참전한 호빗궁병과 동쪽으로 진군하였다.

포르노스트 서쪽 평원에서 벌어진 이 대전투에서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곤도르 기병대의 후방공격으로 앙그마르의 군대는 대참패하였고 카른둠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도착하기 전, 에텐무어스에서 에아르누르가 이끄는 곤도르의 기병대가 그들을 따라잡았고 남쪽에서도 임라드리스에서 나온 글로르핀델의 기병대가 이들을 공격하였다. 이에 남은 앙그마르군은 또 다시 크게 패했고 마침내 전멸할 위기에 놓이자 앙그마르의 마술사왕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16]

그를 본 이들은 모두 겁을 먹었다. 마술사왕이 특유의 괴음을 지르며 에아르누르에게 흑마를 달려 덤벼드니, 에아르누르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려고 했지만 그가 탄 말이 겁을 먹어 주인을 태운 채 달아났다. 이에 마술사왕은 고약하게 비웃지만 글로르핀델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니, 그의 주위에 감도는 기운에 마술사왕은 어둠 속으로 도주하였다. 한편, 에아르누르가 돌아와 그를 쫓으려 하나, 글로르핀델은 그의 운명은 남자의 손에 달려있지 않다며 추적을 말렸지만 에아르누르는 아까 당한 불명예를 씻고 싶어 분을 참지 못했다.[17]

1977년, 에오세오드는 거주하고 있던 글래든과 캐락 사이의 지역이 비좁았던 관계로 새로운 거주지를 찾고 있었다. 마침 북쪽에서 앙그마르가 무너진 소식을 듣고 에오세오드는 모든 백성을 이끌고 저 멀리 북쪽에 새로운 정착지를 건설하였다. 곤도르와의 관계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곤도르는 위급할 때 이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위치킹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미나스 이실을 공격하였다. 미나스 이실의 주민들은 2년 동안 방어했지만 그들을 도우러 올 군대는 존재하지 않았고 결국 성은 함락되고 말았다.[18] 그리고 위치킹은 이 성을 미나스 모르굴[19]로 개명하게 된다.

미나스 이실의 함락으로 이 곳에 있던 팔란티르사우론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고 에아르닐 2세는 팔란티르의 사용을 금하게 된다. 대신 백색산맥 지대에 거대한 봉화대를 설치하였으며 아노리엔 지역을 보호하기 위해 거대한 방벽인 람마스 에코르를 건설하였다.

2043년, 에아르닐 2세가 죽고 아들 에아르누르가 곤도르의 33대 왕이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위치킹은 68년 전 에텐무어스 에서의 대결을 비웃으며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분노한 에아르누르는 출전하려 하지만 섭정의 만류로 참았다. 대신 미나스 모르굴에 대항한다는 의미로 미나스 아노르를 미나스 티리스(감시의 탑)로 개명하였다.

2050년, 위치킹은 다시 도발을 해왔고 이에 참지 못한 에아르누르는 미나스 모르굴로 향한 후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20]하지만 문제는 마지막 왕이었던 에아르누르가 자손이 없었고 가까운 친족들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나머지 왕족들은 오랜 내란으로 많이 죽었고 남은 왕족들은 댓수가 멀었고 다른 민족들과 혈통이 섞였으며 무엇보다 적합한 계승자가 없었다. 따라서 마르딜을 시조로 하는 섭정가문이 대리통치를 하는 기묘한 국가체제로 변화하였다.

이후 섭정의 후계자들은 왕이 돌아올 때까지 왕의 권리와 의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통치 섭정은 옥좌에 앉지 못하고[21] 왕관과 홀을 사용하지 못하였고 대신 섭정의 권력을 나타내는 흰 봉을 사용하게 되었다.

2.5 통치 섭정의 시대

곤도르를 통치하게 된 섭정 가문은 후린 가문으로 불렸으며 미나르딜 왕의 섭정이자 누메노르 귀족 후손이었던 에뮌 아르넨의 후린이 시조였다. 원래 섭정은 로멘타킬 1세가 만든 직위로 황족을 임명했다. 예를 들면 나르마킬 1세는 자신의 조카 미날카르를 섭정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미나르딜 왕은 귀족이었던 후린을 섭정으로 선택했는데 마르딜 이전에는 그냥 조언자 정도의 섭정이었다. 그러나 에아르누르 왕이 실종되고 왕위가 공석이 되면서 마르딜 때부터는 왕에 적합한 자가 돌아올 때까지 권력을 대행하는 통치 섭정이 되었다. 물론 그 후 부자 또는 형제, 조카 등 친족 계승이 이루어지고 세월이 흐르면서 본래 의미는 퇴색하고 실상 왕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정확히 통치섭정으로서는 후린의 후손 마르딜 보론웨가 시조였다.

하지만 그건 섭정 가문내의 일이었고, 왕이 돌아올 때까지 섭정들은 어려운 상황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서쪽에서는 왕조가 끊긴 것을 안 던랜드인들은 충성 맹세를 저버렸고 남쪽에서는 움바르 해적들이 출몰하고 있었으며 동쪽에서는 모르도르와 동부인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였다. 게다가 혈맹이었던 에오세오드는 저 멀리 북쪽으로 이동하여 소식이 끊긴지 오래였기 때문에 곤도르는 사실상 고립된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왕통이 단절된 후 왕위를 노린 잦은 변란으로 곤도르는 기울기 시작한다.

2475년, 대규모의 모르도르군이 이실리엔을 휩쓴 다음 오스길리아스를 공격하여 함락시키지만 당시 통치 섭정이었던 데네소르 1세의 아들 보로미르가 이를 격퇴하고 이실리엔까지 회복하였다. 하지만 곤도의 피해도 커서 오스길리아스는 황폐화되었고 안두인 강을 연결한 다리도 파괴되었다. 게다가 그 자신도 부상을 입었고 결국 사망하였다.

2489년, 보로미르의 뒤를 이어 12대 통치섭정이 된 키리온은 해적들이 들끓는 남부보다 방어하기 어려운 동부에 더 많은 첩자를 보내 방비하기 시작하였다.

2.5.1 곤도르와 로한의 우정

2501년, 전차몰이족의 일족인 발코스가 동부에서 몰려와 북부인들을 학살하고 이들을 내몬 다음 로바니온을 차지하였다. 또한 돌 굴두르의 영향을 받아, 창포벌판의 남부 안두인 계곡까지 모두 황폐화 시켰다.

2510년, 로바니온의 발코스가 곤도르로 남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안개산맥의 오크들도 위협이 되자 키리온은 과거에는 혈맹이었지만 지금은 저 멀리 북쪽으로 이동한 에오세오드에게 구원을 요청하기로 한다. 돌 굴두르의 어둠지역을 통과해야하는 어려운 임무이기에 여섯 명의 자원자를 모집하여 하루에 2명씩 짝을 지어 밀사를 파견하기로 한다.

그러나 오직 한 명만이 포위망을 뚫는데 성공하였다.

3월 25일, 사신은 에오세오드에 도착하여 에오세오드의 지도자인 에오를에게 전갈을 전했고 에오를 또한 곤도르가 무너지면 에오세오드도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판단, 곤도르를 돕기로 결정한다.

4월 6일, 에오세오드는 대략 7천명 정도의 모든 기병대를 이끌고 남하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돌 굴두르에 도달했을 무렵, 그 어두움에 두려움을 느끼고 망설였지만 갈라드리엘이 새하얀 안개로 어두움을 밀어내며 그들을 도우니,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한편, 키리온은 에오세오드가 와줄 지 회의를 느끼며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우올드를 지날 무렵 이미 안두인강을 건넌 발코스족이 후방에서 대거 출현했고 퇴로를 끊어버렸고 북쪽의 림라이트강을 넘어 켈레브란트 벌판까지 밀어붙였다. 게다가 북쪽에서는 안개산맥의 오크들이 대거 출현하여 앞뒤가 모두 막힌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때, 발코스 후방에서 에오를의 기병대가 기습공격을 펼쳤고 발코스는 크게 패해 달아났다. 에오를은 이들을 마저 추격하여 칼레나드론 평원에서 발코스를 죽이고 그의 군대를 전멸시킨다.

모든 이들은 키리온이 에오를을 데리고 가 대연회를 베풀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에오를에게 석달 후 이곳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고 미나스 티리스로 돌아간다.

석달 후, 키리오은 에오를과 함께 성산에 올라 칼레나르돈의 소유권을 에오를에게 양도한다고 선포하였다. 이에 에오를은 칼레나르돈에서 살 것이며 곤도르와의 우정은 영원하고 곤도르의 적은 곧 그들의 적이라고 맹세하였다. 이에 키리온은 퀘냐로 이 맹세는 누메노르의 영광과 엘렌딜의 신념이 함께 할 것이고 발라와 일루바타르가 보살필 것이라고 맹세한다.

이렇게 곤도르와 로한의 동맹은 시작된다.

2758년, 움바르와 하라드인들로 구성된 해적들이 곤도르 해안에 상륙해 산맥을 넘어 로한으로 쳐들어왔다. 이에 던랜드인들과 동부인들까지 합세하여 공격하니 로한은 대패하고 나팔산성[22]으로 후퇴하여 농성을 벌였다.

이듬해, 곤도르 군대는 해적을 격파한 다음, 백색산맥 동서로 원군을 보내 로한에 있던 던랜드인들과 동부인들을 큰 패배를 안겨주어 몰아낸다.

2885년, 이번엔 반대로 대규모 하라드인들의 군대가 곤도르로 쳐들어오니 곤도르는 로한에 구원 요청을 하게 된다. 이에 로한은 쌍둥이 왕자를 곤도르에 파견하였고 연합군은 하라드군을 완벽하게 개발살내 대승을 거둔다. 하지만 쌍둥이 왕자는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곤도르는 위로의 뜻으로 막대한 금을 보낸다.

2901년, 대규모 모르도르군이 이실리엔 지역을 휩쓸었고 이에 많은 주민들이 이실리엔을 떠나게 되었다. 이에 곤도르는 비밀 은신처인 헤네스 안눈을 세우고 이실리엔의 순찰자[23] 부대를 결성하게 된다. 또한 카이르 안드로스 섬을 요새화하게 된다.

2.6 반지전쟁 시기

2970년, 로한에 있던 소롱길이 곤도르에 와 섭정인 엑셀리온 2세를 섬기게 되었다. 소롱길은 이 당시 데네소르와 처음 알게 되는데 데네소르는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차렸다.그의 정체는 바로...

2980년, 소롱길은 엑셀리온 2세에게 건의하여 움바르를 기습 공격한다. 그는 많은 해적선들을 불태우고 항만의 수장을 죽인뒤 돌아오게 된다. 이 공격으로 움바르 해적들은 큰 타격을 입는다. 펠라르기르까지 온 후, 그는 많은 이들이 만류하는데도 불구하고 작별인사의 메세지를 남기고 북쪽으로 떠난다. 이렇게 한 이유는 소롱길 스스로 유능했던 데네소르와의 충돌을 피하고 싶었고 아직 능력도 부족한 자기 자신을 숨기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2984년, 데네소르가 26대 섭정이 되었다. 그는 오랜 전란으로 폐허가 된 오스길리아스를 수복하여 요새화하였고 끊어진 다리도 재건하였으며 람마스 에코르도 보수하였다.

하지만 2988년, 그의 아내가 죽으면서 침울해진 나머지 깊은 탑 안에서 홀로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력을 자신한 나머지 사용이 금지된 팔란티르에 손을 대개 된다. 그 결과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기타 입수하기 어려운 정보들을 얻게 되지만 사우론과의 의지 대결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실제 나이보다 늙게 되고, 오만과 절망감만 늘어갔다.

3018년 7월, 나즈굴들에 의해 오스길리아스 동쪽이 함락되지만[24] 서쪽은 보로미르파라미르에 의해 겨우 지켜낼 수 있었다.[25]

3019년 3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대규모 전투인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가 벌어졌고 불가능할 것 같던 이 전투에서 곤도르는 승리하였다. 이어 아라고른과 그의 7천명의 군대는 정말 죽을 각오를 하고 모란논으로 향했다. 치열하게 싸우는 도중 그들이 내건 신의 한 수가 성공하였고 사우론은 패망하고 만다.

결국 오랜 동맹이었던 로한의 구원과 더불어 왕 아라고른이 귀환하여 반지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아르노르와 곤도르 두 왕국은 다시 하나가 되었다. 데네소르의 차남 파라미르가 통치권을 반납하면서 통치 섭정의 역사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도 파라미르는 에뮌 아르넨을 영지로 받아 영주가 되었고 왕의 섭정이 되었다. 즉, 마르딜 이전의 섭정으로 회귀한 셈이다.

2.7 제 4시대

엘레사르 왕의 치세 아래 곤도르는 로한을 제외하면 곤도르의 전성기의 국토를 포함한 과거 모든 영토를 회복했다. 정복군주 엘레사르 에레보르 및 데일과는 평화협정과 동맹을 맺었고, 하라드와 동부에서도 우호적인 이들과는 기꺼이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누른의 자유민들은 자치령으로서 곤도르의 이름으로 보호된다. 다만 백색나무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하라드의 먼 벌판과 룬 내해 너머에서 직접 엘레사르 왕이 에오메르 왕과 함께 출정하여 전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평화를 원하는 이들과는 평화협정을 맺되 적대적인 이들에게는 무력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후 엘다리온 왕에게 통치권이 이어지게 되며, 이후의 기록은 없다.

3 주요 지명

3.1 행정구역

3.1.1 국왕 직할령(Royal Ward)

  • 아노리엔 - 민돌루인 산과 안두인 대하로 둘러싸인 지역. 곤도르의 수도권에 해당되는데, 이 지역에 미나스 티리스오스길리아스가 자리잡고 있다.지명의 기원은 태양(아노르)과 아나리온에 해당하는 셈.
  • 이실리엔 - 안두인 강 건너편과 암흑산맥 사이에 자리잡은 지역. 곤도르의 군사적인 요지. 중심지는 미나스 이실이였었지만, 미나스 이실이 함락된 뒤로는 모르도르의 침략에 정면으로 노출된 위험한 땅이 되었다.

3.1.2 주(Province)

  • 레벤닌 - 시리스 강과 안두인 대하가 만나는, 안두인의 하류 지역에 자리잡은 지역으로, 곤도르의 바다로의 출구로서 번영한 주이다. 중심지는 펠라르기르. 반지전쟁 당시 펠라르기르는 움바르 해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 라메돈 - 벨팔라스 영지와 백색산맥 사이에 자리잡은 주로 중심지는 칼렘벨, 영주는 반지전쟁 당시 앙그보르이다.
  • 롯사르나흐 - 아노리엔 남측에 위치한 영지로 중심지는 아르나크, 영주는 반지전쟁 당시 포를롱이었다.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 안팔라스 - 곤도르 서쪽 대부분을 관할하고 있는 주로 중심지는 론드 갈렌, 반지전쟁 당시 영주는 골라스길이었다.
  • 칼레나르돈 - 안개산맥과 켈레브란트 강, 안두인 대하 서쪽으로 자리잡은 광활한 초원지대. 제3시대 2510년 이후로는 로한인들이 나라를 세워 곤도르의 동맹국이 되었다. 정황상 칼레나르돈의 중심지는 아이센가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하론도르 - 일명 남곤도르라 불리며, 하르넨 강 북쪽과 안두인 사이에 자리잡은 지역. 하라드 민족과 치열하게 치고받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또한 움바르로 이동하기 위한 중요한 지역이였다.
  • 모르손드 - 백색산무에 위치하여 중심지는 에레크로 추정된다. 반지전쟁 당시 영주는 두인히르로 펠레노르 평원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3.1.3 산하 공국(Fief)

  • 벨팔라스 - 이실두르 왕이 친척을 제후로 봉한 이래로 자치 공국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중심지는 돌 암로스. 반지전쟁 시점에서는 임라힐이 벨팔라스 공국의 영주이다.
  • 모르만 - 백색산맥 근처에 자리잡은 또다른 공국이다. 추정상 핀나스 겔린과 그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반지전쟁 당시의 영주는 히를루인이다.

3.1.4 준주(Territory)

  • 안드라스트 - 안팔라스 주 서쪽의 돌출된 반도 지역.
  • 움바르 - 아르파라존이 사우론을 혼쭐내준 곤도르의 주요 대도시인 움바르항이 있는 지역이지만, 원체 멀리 떨어져 있고 군사적으로 긴장이 감돌던 지역이였다. 이후엔 왕위계승전쟁에서 밀려난 방계 왕족들이 자리잡아 검은 누메노르인으로 타락했고 해적들의 중심지로 쇠락했다.
  • 톨 팔라스 - 안두인 하구에 자리잡은 큰 섬.

3.1.5 군사통제 지역

  • 고르고로스 - 모르도르의 중심지인 바로 그 지역. 곤도르의 최전성기에는 이 지역에 탑과 요새가 설치되어 모르도르를 물샐 틈 없이 감시했다고 한다.
  • 에네드레이스 - 대략 위치는 던랜드인들이 자리잡은 지역이기도 하고, 북왕국과 연결되는 나름 군사적으로 중요성이 있는 지역이였다.

4 곤도르의 역대 국왕

주석에 딱히 언급이 없는 왕은 부자지간의 계승이다.

''역대 국왕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 기간주석
1대엘렌딜제2시대 3320년제2시대 3441년121년
2대이실두르
아나리온
제2시대 3441년제3시대 2년2년
3대메넬딜제3시대 2년제3시대 158년156년
4대케멘두르제3시대 158년제3시대 238년80년
5대에아렌딜제3시대 238년제3시대 324년86년
6대아나르딜제3시대 324년제3시대 411년87년
7대오스토헤르제3시대 411년제3시대 492년81년
8대로멘다킬 1세(타로스타르)제3시대 491년제3시대 541년50년
9대투람바르제3시대 541년제3시대 667년126년
10대아타나타르 1세제3시대 667년제3시대 748년81년
11대시리온딜제3시대 748년제3시대 840년92년
12대타란논 팔라스투르제3시대 840년제3시대 913년73년
13대에아르닐 1세제3시대 913년제3시대 936년23년[26]
14대키랸딜제3시대 936년제3시대 1015년79년
15대하르멘타킬 1세(키랴헤르)제3시대 1015년제3시대 1149년134년[27]
16대아타나타르 2세(영화대왕 알카린)제3시대 1149년제3시대 1226년77년
17대나르마킬제3시대 1226년제3시대 1294년68년
18대칼마킬제3시대 1294년제3시대 1304년10년[28]
19대로멘타킬 2세(미날카르)제3시대 1304년제3시대 1366년62년[29]
20대발라카르제3시대 1366년제3시대 1432년66년
21대엘다카르(비니사랴)제3시대 1432년제3시대 1437년5년[30]
22대카스타미르제3시대 1437년제3시대 1447년10년[31]
23대엘다카르(복위)제3시대 1447년제3시대 1490년43년[32]
24대알다미르제3시대 1490년제3시대 1540년50년[33]
25대하르멘타킬 2세(비냐리온)제3시대 1540년제3시대 1621년81년
26대미나르딜제3시대 1621년제3시대 1634년13년
27대텔렘나르제3시대 1634년제3시대 1636년2년
28대타론도르제3시대 1636년제3시대 1798년162년[34][35]
29대텔루메크타르 움바르다킬제3시대 1798년제3시대 1850년52년[36]
30대나르마킬 2세제3시대 1850년제3시대 1856년6년
31대칼리메크타르제3시대 1856년제3시대 1936년80년
32대온도헤르제3시대 1936년제3시대 1944년8년[37]
33대에아르닐 2세제3시대 1945년제3시대 2043년98년[38]
34대에아르누르제3시대 2043년제3시대 2050년7년[39]

5 곤도르의 역대 섭정

  • 왕이 다스리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곤도르의 최초 섭정은 후린이며, 이후 펠렌두르,보론딜을 거쳐 왕이 공석이 된 제3시대 2050년부터 반지전쟁이 끝나는 제3시대 3019년까지 섭정들이 곤도르를 다스리게 된다.
  • 편의상 통치 섭정들을 아래에 기록하며, 마르딜을 초대 통치섭정으로 간주함.
''역대 섭정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 기간주석
1대마르딜 보론웨제3시대 2050년제3시대 2080년30년[40]
2대에라단제3시대 2080년제3시대 2116년36년[41]
3대헤리온제3시대 2116년제3시대 2148년32년
4대벨레고른제3시대 2148년제3시대 2204년56년
5대후린 1세제3시대 2204년제3시대 2244년40년
6대투린 1세제3시대 2244년제3시대 2278년34년
7대하도르제3시대 2278년제3시대 2395년117년
8대바라히르제3시대 2395년제3시대 2412년17년
9대디오르제3시대 2412년제3시대 2435년23년
10대데네소르 1세제3시대 2435년제3시대 2477년42년
11대보로미르제3시대 2477년제3시대 2489년22년[42]
12대키리온제3시대 2489년제3시대 2567년78년[43]
13대할라스제3시대 2567년제3시대 2605년28년
14대후린 2세제3시대 2605년제3시대 2628년23년
15대벨렉소르 1세제3시대 2628년제3시대 2655년27년
16대오로드레스제3시대 2655년제3시대 2685년30년
17대엑셀리온 1세제3시대 2685년제3시대 2698년13년[44]
18대에갈모스제3시대 2698년제3시대 2743년45년
19대베렌제3시대 2743년제3시대 2763년20년
20대베레곤드제3시대 2763년제3시대 2811년48년
21대벨렉소르 2세제3시대 2811년제3시대 2872년61년
22대소론디르제3시대 2872년제3시대 2882년10년
23대투린 2세제3시대 2882년제3시대 2914년32년
24대투르곤제3시대 2914년제3시대 2953년39년
25대엑셀리온 2세제3시대 2953년제3시대 2984년31년
26대데네소르 2세제3시대 2984년제3시대 3019년35년[45]

6 텔콘타르 왕조

  • 반지전쟁이 끝나고, 아라고른 2세가 북왕국 아르노르와 남왕국 곤도르의 연합 왕국의 초대 왕으로 즉위하였다. 이 때 성을 텔콘타르로 하여 텔콘타르 왕가라고도 불린다. 따라서 연합 왕국의 왕위에 즉위한 아라고른 2세를 엘레사르 텔콘타르 1세라고도 칭한다.
  • 이 항목은 아르노르항목에도 편의상 함께 기재한다.
''역대 국왕즉위년일퇴위년일재위 기간주석
1대엘레사르 1세제3시대 3019년
(제4시대 원년)
제4시대 120년120년
2대엘다리온제4시대 120년??[46]
  1. 사실상 서부를 제외하면 중간계 전역을 지배하는 것이나 다름없던 사우론의 세력을 제 2시대에 패퇴시켰으며, 최전성기 시절에는 중간계 전역의 바다를 지배하고 중간대륙 서부전역의 절반가까운 곳을 국토로 삼았으며 하라드의 왕자들을 볼모로 삼는, 명실공히 중간대륙 최강의 초강대국이었다. 엘론드의 평가로는 누메노르를 연상시킬 정도로 위대했던 국가. 그리고 이 위세는 엘레사르 시대에 이르러 다시 부활한다.
  2. 엘레사르는 살아있는 인간들 중 무력으로는 가장 강력하고 지력으로는 가장 현명했던 사기캐였다. 엘론드와 갈라드리엘의 예언에 의하면 엘렌딜 이후 모든 선조들의 영광을 부활시킬 자가 바로 아라고른이니 위세는 완전히 부활했을 것이다.
  3. 제2차 반지전쟁 당시 미나스 티리스로 지원온 곤도르의 지방군은 3천명, 근데 이것은 해적의 발호 때문에 원래 동원가능한 병력의 1/10만 차출한 것이라 언급되어 있다. 즉, 전성기 이후 내전+전염병+전차몰이족이라는, 훈족에 비견될만한 강력한 기마군단의 침략에다가 1000년 가까이 이루어진 모르도르와의 밀고 밀리는 전쟁으로 인해 2천년간이나 지속적으로 쇠퇴하고도 수도 방위대를 제외한 3만명의 군대를 동원할 정도의 국력은 남아있었다는 뜻이다.
  4. 곤돌린의 뜻은 '바위의 노래'를 의미하는 퀘냐 온돌린데의 변형이며, 중의적으로는 '숨은 바위'를 의미하는 신다린이다. 물론, 둘이 이름이나 성격이 비슷하긴 하다.
  5. 훗날 반지전쟁 시기에 간달프가 보던 기록이 바로 이 것이다.
  6. 애초에 여의도에 수도가 있었는데 관악산 밑으로 수도를 옮겼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자연스럽게 북한산쪽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7.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했다.
  8. 하지만 이 전투에서 마르하리 또한 전사하고 만다.
  9. 하지만 여전히 곤도르의 군대는 강력했고 전차몰이족들도 진격을 못하여 로바니온 정복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10. 이미 그의 조부시기에 움바르는 곤도르 영토가 되었고 하라드인들은 내분이 일어나 있었다.
  11. 왕이 주요 전투에 나서고 왕위 계승자는 수도에 남는것.
  12. 이 시기 아직 안두인강 북쪽에 세워둔 요새들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적들의 도강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온도헤르에게는 어떠한 경고도 전해지지 않았고 이에 온도헤르는 느린 속도로 이동하게 되었다.
  13. 이 지역은 돌 암로스가 있는 지역으로 곤도르 건국전부터 엘렌딜의 먼 친척들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 곤도르가 건국한 이후에도 이 지역은 여전히 이들의 자치령으로 남아있었다.
  14. 곤도르의 국법으로 두 아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아들 파라미르는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였고 죽음의 늪 쪽을 후퇴하다가 적들에게 포획되었다. 에오세오드의 지도자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파라미르는 그의 팔에 안기어 죽었고, 그가 왕자라는 사실은 몸수색을 하다가 왕자의 인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15. 허나 온도헤르 왕이 이끌던 주력의 소멸로 인한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원군은 지체된다.
  16. 사실상 발악에 불과했다. 앙그마르 군대는 완전히 몰살당했기에 빡친 마술사왕만 덩그러니(...)남아 발악한 상황이나 다름없던 것. 세가지 재앙을 다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곤도르는 에리아도르의 인간과 요정족들이 처음 볼 정도로 거대한 군세를 원정군으로서 조직하고, 아르세다인이 수백년 동안 처절하게 싸워가며 쇠락해가고, 끝내 멸망당하고 만 마국 앙그마르를 단 몇 차례의 전투만으로(...)완전히 멸망시킬 정도의 국력을 보유했던 것이다. 더 대단한 점은 얼마 전 왕과 주력이 날아갔던, 피해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나라의 저력이라는 점이다. 곤도르의 엄청난 힘을 느낄 수 있는 부분.
  17. 이 사건은 훗날 곤도르의 왕계가 끊기는 계기가 된다. 이 때의 사건을 두고 위치킹은 두고두고 에아르누르를 조롱했으며 결국 에아르누르가 실종되는 원인이 된다.
  18. 대단위 원정군을 보낼 능력을 가진 나라가 20, 30년만에 본토 방위가 안될만큼 나라가 막장이 될만한 큰 일은 없었다. 지원군이 포위망을 뚫지 못했다고 보는게 옳다고 본다.
  19. 마술사의 탑이라는 뜻.
  20. 왕관 등 왕의 상징물은 안들고갔다는게 그나마 다행, 실종된 후 가묘처리되었으며 왕관은 라스 디넨의 에아르누르 왕 가묘 위에 놓여졌다. 영화에서 마지막에 아라고른이 쓰는 그 날개달린 왕관이다.
  21. 영화를 보면 데네소르가 높이 설치돼있는 옥좌에 앉아있지 않고 그 아래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22. 이 전투에서 로한의 왕 헬름은 홀로 괴력을 발휘해 싸우다가 동사한다. 그 이후 혼버그 요새는 헬름협곡의 요새라 불리게 된다.
  23. 영화에서 보면 파라미르가 이끌던 부대. 이들 또한 두네다인의 후손이었다.
  24. 이 전투는 사실상 데네소르가 얼만큼 준비하고 있는가 떠보려는 의도가 강했다.
  25. 이 전투 후 보로미르는 깊은골로 향한다.
  26. 타란논 팔라스투르의 조카로 후사가 없어 왕위를 계승했다. 왕위에 오르기 전의 이름은 타르키랸.
  27. 이 왕의 재위 시기가 곤도르의 영토와 위세가 절정에 다다른 시기이다. 게다가 이 왕은 역대 왕 중의 재위 기간이 두 번째로 길다.
  28. 나르마킬의 아우로 후사가 없어 왕위를 계승했다.
  29. 원래 섭정으로 64년 동안 지내다가 즉위해서 나머지 62년 동안 통치했다.
  30. 아버지 로멘타킬 2세가 당시 든든한 동맹이었던 로바니온 왕국의 북부인과 혼인하여 태어난 아들이었기 때문에 혈통적으로 정통성이 떨어졌다.
  31. 로멘타킬 2세의 아우로 함대 총사령관을 맡고 있었기에 해안 지방과 펠라르기르, 움바르 등지에서 지지도가 높았다. 엘다카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했고 무엇보다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32. 추방당한 엘다카르는 로바니온으로 도망쳐 로바니온의 북부인 동맹군을 이끌고 돌아와 카스타미르와 맞섰다. 이에 카스타미르를 지지하는 남부 해안지방과 엘다카르를 지지하는 북부지방이 내전을 벌였는데, 결국 다시 엘다카르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카스타미르의 자손들은 탈출해서 펠라르기르와 움바르 등지에서 계속 곤도르와 대치했다.
  33. 엘다카르의 차남으로 그의 형이자 엘다카르의 장남 오르넨딜은 카스타미르에 의해 피살되었다.
  34. 텔렘나르의 아우 미나스탄의 아들로 텔렘나르의 조카였다. 텔렘나르와 그의 자식들이 카스타미르의 증손자 앙가마이테와 상가 도가 이끄는 움바르 해적과 대치하던 중 역병으로 모두 사망하는 바람에 왕위를 계승했다. 재위 시기에 점차 황폐화되는 오스길리아스를 버리고 미나스 아노르로 천도했다. 여담으로 통치 기간이 가장 긴 왕이다.
  35. 이때 불어온 역병은 저 멀리 동쪽에서 발원하였는데, 로바니온 왕국을 황폐화시키고 아노리엔, 이실리엔 지방에 타격을 입힌다음 북쪽으로 이동하여 던랜드를 걸쳐 최종적으로 아르노르의 카르돌란 왕국을 완전히 끝장내고 잠잠해졌다.
  36. 움바르를 급습하여 카스타미르의 자손들을 모두 멸하고 움바르를 정복했다.
  37. 아들들과 사망했지만 그의 딸 피리엘이 아르노르의 왕 아르베두이와 결혼했다.
  38. 텔루메크타르 움바르타킬의 후손으로 온도헤르의 7촌 조카뻘이었다.
  39. 곤도르의 마지막 왕. 미나스 모르굴로 출전해서 실종되었다. 이후로 반지전쟁 시점까지 곤도르는 섭정들이 통치하게 된다.
  40. 통치 섭정의 시조.보론딜의 아들.
  41. 마르딜의 통치 이후 제3시대 2460년까지는 그럭저럭 평화가 지속되었다.
  42. 계승자 시절, 오스길리아스에서 나즈굴을 격퇴했는데 여기서 부상을 입어 오래 통치하지 못하고 죽었다.근데 그게 20년이 넘어
  43. 그의 재위시기에(제3시대 2510년) 로한인들이 칼레나르돈에 들어와 정착했다. 그들은 키리온을 도왔고 키리온은 기꺼이 에오를에게 칼레나르돈을 하사해 나라를 세우게 해주었다.
  44. 미나스 티리스의 백색탑을 보수한 섭정으로, 이 때부터 백색탑은 엑셀리온의 백색탑으로 불리게 된다.
  45. 사실상 마지막 통치 섭정. 그의 뒤를 이어 통치 섭정이 된 파라미르가 바로 아라고른에게 통치권을 반환했다. 그 후에도 섭정 지위 자체는 계속 유지되었기에 섭정가문으로서의 영향력은 제4시대에서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46. 붉은책에 기록된 마지막 연합 왕국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