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호 사건

홍진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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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대의 사건 사고
1966년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1974년
옹진호 사건
2011년
아시아나 항공기 오인 사격 사건

1 개요

1974년 10월에 일어난 대한민국 해병대 장병들이 옹진호의 선장경찰을 구타한 사건이다.

2 사건 배경

1970년대백령도연평도는 교통 상황이 좋지 못 했다. 날씨가 안 좋으면 배가 뜨지를 못 해고 1주일씩 미뤄지는 일이 빈번했다. 그리고 안보상 요충지이다보니 민간상선이 움직일 때도 해군 고속정의 호위를 받아야 했다.

3 사건 경과

사건 당일에 해병대원 50명이 휴가를 나갈 상황이었다. 옹진호의 승선정원은 300명이었는데 민간인 200명과 해병대원 50명이 부두에서 대기 중이었다. 당시 부두에 있던 해병대원 중 최선임은 나중에 해병대사령관을 지낸 전도봉 대위였다.[1] 배에 타지 못 할 경우 1주일 뒤에나 휴가를 나갈 수 있었다.[2] 해병대원들의 신경이 곤두서자 전 대위는 선장과 치안을 맡은 경찰을 만나 해병대원의 승선이 가능하냐고 물었고 그들은 그렇다고 답했다.

먼저 민간인들이 승선하고 해병대원들이 승선할 계획이었는데 민간인이 탑승하자 선장은 배를 출항했다. 해병들은 극도로 흥분했는데 상선이 2km를 나가자 해군 고속정이 부두로 돌아가라고 명령했다. 배가 돌아오자 해병대원들은 배에 올랐다.[3] 해병대원들은 기물을 파손하고 선장 등 상선사관선원을 두들겨팼고 경찰도 폭행했다. 해병대원들은 그들이 해병대원을 달갑지 않게 여겨 태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찔리나보다 최선임인 전 대위가 선장을 만나 그들 모두를 탑승시키겠단 약속을 받았고 배는 7시간 뒤에 인천에 도착했다. 항구에는 민간인 폭행크리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병 헌병 인원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해병대원들을 연행했는데 전 대위가 나와 계급과 짬으로 찍어누르며 휴가 나온 장병을 체포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자신이 대표로 가겠다고 밝혔다.

전 대위는 헌병대 구치소로 잡혀갔고 한 달 보름 뒤에 휴가나온 군인을 잡아 가두는 것은 너무하다는 동정 여론을 얻어 석방되었다.[4]

당시 기사가 정확히 없어 실제 경과가 어땠는지 아는 위키러의 추가 바람.

출처[5]
  1.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의 그 사람이 맞다. 당시 중대장 보직을 마치고 해군본부로 전출되었는데 기상악화로 한 달째 나가지 못 한 상태였다.
  2. 당시 해병대원들의 휴가는 군 생활 동안 24박25일을 두 번 찢어서 나갈 수 있었다. 교육 수료 후 특박을 제외하면 첫 휴가와 말년 휴가만 있었고 그나마도 섬이라서 기한이 제한적이었다.
  3. 휴가자 외에도 휴가자들을 환송하러 나온 해병대 장병들도 따라 갔다.
  4. 이 사건과 해병대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 등으로 전도봉진급이 불투명했고 장기복무를 보장받지 못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중장까지 진급했다.
  5. 출처가 해병대 관련 사이트이다 보니 좀 미화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