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키 다케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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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키 다케마루 / 若木竹丸(わかき たけまる)
명치(明治) 44년(1911년) 1월 20일 ~ 2000년 1월 3일
일본 도쿄 출신
신장 162cm, 체중 69kg

1 개요

일본의 초창기 유명 보디빌더
최영의를 비롯하여 여러 무술가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에게 단련법을 전수하기도 하고, 스스로 운동기구를 만들어 단련하며, 자신이 시범하는 사진해설을 곁들인 《괴력법(怪力法)》이라는 서적을 1938년에 출판. (당시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시대)

2 상세

2.1 어릴 때의 일과 훈련 시작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는 허약했다고 하는데, 중학교 시절 선배한테 왕따를 당했다고도 하고, 불량배에게 봉변을 당한 후, "강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결심, 팔굽혀 펴기와 턱걸이 등의 훈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7살 때(한국의 고2~3 정도), 헌책방에서 일본에 번역, 출판된, 웨이트 트레이닝의 선구자, 유진 샌도우의 《체력양성법(体力養成法)》을 접하고 이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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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훈련 1년 반이 지난 18세 때의 모습, 14세 때의 모습, 16세 때의 모습

의자와 자전거, 그리고 후술(後述)하겠지만, 시멘트나 돌, 양동이, 철봉 등을 이용하여 단련도구와 훈련방법도 자체 개발하는 등 실로 대단한 면모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그의 훈련은 강박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 스스로 여러 방법을 시험하고 기구들을 만들어가며, 하루 12~15시간의 맹렬한 훈련을 했다.
  • 때로는 실신할 때까지 단련했고, 매일 샌드백을 안고 잘 정도였다.
  • 힘들어서 그만하고 싶어질 때면, “지금 세계의 어디선가 너와 같은 놈이 너와 같은 훈련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은가?!”라며 자신을 몰아세웠다.
  • 잘 때면, 종종 가슴에 살짝 닿을 정도의 역기를 놔두고 잤는데, 밤에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면, 이 역기를 몇 회 들어 올린 후 화장실에 갔고, 돌아올 때는 근처의 판자나 도구들을 몇 차례 들어 올린 후 방에 돌아오곤 했다.

당시는 분할훈련법 등의 개념도 나오지 않은 시대이기도 했고, 강함에 대한 어린 시절의 집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생각하면 이해는 간다. 물론 이는 비과학적이었고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타고난 몸이 건강했는지 나날이 강해져, 20세가 될 무렵에는 스모에서 관동제일이 될 정도로 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2.2 그의 훈련 내용 일부

  • 딥스(담그기, dips)

  • 팔굽혀펴기(push-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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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세워서 하여 악력 증강 효과도 있다.

  • 피스톨(pistol)

  • 밴드 익스텐션(band exten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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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로어 프레스(floor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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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개발한 역기로 212.3kg을 기록

  • 레슬러 브릿지(wrestler bri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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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남자 5명을 태울 수 있었다. 굇수

  • 벤트 프레스(bent press)

2.3 자체개발한 훈련도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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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양동이, 철봉 등을 이용한 그의 역기 제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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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줄 등을 이용한 자작의 "팔씨름 연습기“. 일본식으로, 완각력연습기(腕角力練習機). 처음에는 37kg으로 시작하였고, 10개월 후에 130kg으로 단련했다.

2.4 26세 때 그의 기록

신장 163.2cm
체중 65.6kg
가슴 둘레 133.2cm
상완(上腕) 둘레 51.3cm
플로어 프레스(floor press) 21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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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러 브릿지 147kg[1]
벤치 프레스 228kg
숄더 브릿지 250kg

2.5 《괴력법(怪力法)》 출간(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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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을 시작한 지 10년이 지난 1938년, 27세 때, '괴력법 및 육체개조체력증진법‘, 통칭 《괴력법》을 출판, 당시의 무술계, 스포츠계에 충격을 주고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유도기무라 마사히코최영의도 가르침을 구해왔으며, 최영의의 10엔 동전 구부리기는 이 사람에게 배운 것이라는 게 거의 정설로 통할 정도.

2.6 말년과 죽음

나이 든 후에도 근육량이 주는 것과 힘이 약해지는 걸 용납하지 않아 단련을 멈추지 않았고, 마이크 타이슨과 싸워보고 싶다는 발언으로 잠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뇌경색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치료와 재활훈련을 하며, "아무리 줄어도 팔을 40cm 이하로 하고 싶지는 않다"며 훈련을 계속했다. 2000년 88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그의 골격 때문에 시중에서 유통되는 (棺)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3 일화

1. 무장한 불량배가 시비를 걸어와 헤드록으로 뇌수를 터뜨려 즉사시켰으나, 정당방위로무죄 판결. 사무라이무사도 등의 정서가 여전하던 시대(1920~30년대)였던 탓도 있었을 듯. 거기다가 '무장한' 불량배를 맨손으로 죽였으니...
2. 거리에 나서면 여자들이 피하고 기형아 취급도 받았다고 함. 하지만 미군들은 ‘Amazing!’ 하면서 악수를 청해왔다고.
3. 2001년 1월 3일에 사망했는데, 판매되는 표준형 관에는 어깨가 걸려서 들어가지 않았음.
4. 극진가라데최영의유도기무라 마사히코에게 체력 증강과 관련해서 지도를 해주었는데, 최영의가 처음에 소문을 듣고 찾아갔을 때는 그의 작은 키(162cm)를 보고 경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그와의 팔씨름에서 자신이 쉽게 져서 놀랐고, 이후 최영의가 시범하곤 했던, 손가락으로 동전 구부리기는 그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함. 최영의는 '힘>속도>기술'이라고 자주 강조한 바 있는데, 와카기 다케마루의 영향이 있었다는 후문.
5. 와타나베 유지로(渡辺勇次郎)[2]의 권투도장에 입문, 당시 복싱 아마추어 챔피언을 비롯한 선수들과의 스파링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가볍게 승리.
6. 유도의 강도관(講道館)관을 찾아가서 “4단을 몇 명이나 이기면 5단이 될 수 있습니까?” 라며 도전했으나, 해당 유도관은 도전을 받아주지 않았음.
7. 1936년, 전일본(全日本) 팔씨름대회에 출전,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

4 참고

  • 케틀벨은 1800~1900년대 초기의 서적에서도 등장한다.
  • 피스톤 호리구치(ピストン堀口, 본명은 호리구치 츠네오堀口恒男) 등 일본의 유명선수들을 길러내어 ‘복싱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