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쿠이 히데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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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바 롯데 마린즈 No.16
와쿠이 히데아키 (涌井秀章)
생년월일1986년 6월 21일
국적일본
출신지치바 현 마쓰도 시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4년 드래프트 1순위
소속팀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스 (2005~2013)
치바 롯데 마린즈 (2014~)
2009년 일본프로야구 사와무라상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와쿠이 히데아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마에다 겐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1 개요

일본프로야구의 前 세이부 라이온즈, 現 치바 롯데 마린즈 소속의 선발 투수다.

2 선수생활

2.1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때 소프트볼을 하고 있었으며 야구는 중학생이 된 이후부터 시작했다. 그 후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다녔던 요코하마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교 입학 때부터 제2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로 불리고 있었는데, 고교 2학년 때 춘계 고시엔에 1년 선배 나루세 요시히사[1]등과 함께 출전했다. 준결승까지는 나루세의 구원 투수로서 등판했고 결승전에서는 선발로 나섰지만 히로시마의 고료 고등학교에 3대 15로 패배하고 말았다.

2004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에서 세이부 라이온즈로부터 단독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세이부에 대한 인상을 묻자 “마쓰자카와 같은 팀에서 뛰게 돼 매우 기쁘고, 세이부에 가고 싶었다”라고 대답했다.

2.2 프로 입단 후

2.2.1 세이부 라이온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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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부 라이온즈의 에이스 시절.

2005년 입단할 때부터 많은 기대를 받아 프로 1년차부터 개막 1군 엔트리에 합류했다. 6월 18일, 교류전 최종전인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리를 따냈고, 그 해 2군에서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며 고졸 신인인 스미타니 긴지로와 함께 10대끼리 배터리를 구성하여 ‘10대 배터리’라고 불릴 정도로 언론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3월 26일의 오릭스 버팔로즈전에서 스미타니와의 콤비를 이뤄 승리 투수가 되었고 또한 4월 23일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전에서는 마찬가지로 스미타니와의 배터리로 자신의 첫 완투승을 따냄과 동시에 완봉승을 기록했다. 10대 배터리로서의 승리 투수가 된 사례는 1989년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의 이시이 다다노리[2]-다니시게 모토노부 이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6월에는 리그 1위의 평균 자책점과 3승 1패의 성적으로 자신의 첫 월간 MVP를 수상했고 감독 추천으로 올스타전에 첫 출전하였으며 8월 19일의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서 ‘세이부 라이온즈 창단 이래 퍼시픽 리그 공식전 통산 2000승째’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2007년 데뷔 때의 속구 중심의 투구에서 맞춰잡는 투구 유형의 투구폼으로 바꾸며 승리를 쌓아갔다. 4월 3일의 소프트뱅크전에서의 5회초에는 1이닝 4개의 탈삼진을 달성했고 총 시즌 17승을 올려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양대 리그 최다인 213 이닝을 기록했다. 완투수 11개는 리그 2위였다. 평균자책점은 2.79였을정도

2008년에는 베이징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로 출전 대만전과 중국전의 선발 등판하여 2승을 올렸다. 한국전에서도 중간 계투로도 등판하며 일본 국가대표팀 투수 중에 최다 이닝을 등판을 했다. 대한민국전에서 구원으로 등판한 상황은 당초의 순번으론 다르빗슈 유가 중간 계투로 등판할 예정이었다. 와쿠이 히데아키는 쉬고 있었다가 예정이 변경되었지만 불펜을 통화하는 전화가 고장이어서 벤치의 지시가 전달되지 못했고 쉬고있다가 날벼락맞은와쿠이 히데아키는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마운드에 등판하게 되었다고 당시 일본 대표팀 투수 코치였던 오노 유타카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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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일본 국가대표로 발탁돼 주로 중간 계투로 등판하였고,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세이부 시절 달던 등번호 18번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7월에는 4경기에 4승 무패와 평균 자책점 1.64의 성적을 기록하여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날이갈수록 투구 수가 많아져서 160구 이상 던진 경기가 3경기에 이르는가 하면 한 경기당 평균 투구 수는 132개, 한 이닝당 평균 투구 수는 16.8개에 달할정도 [3] 이러한 혹사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16승 6패로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4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달성했으며, 이닝은 12개 구단 투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200이닝을 넘었고 11차례의 완투 역시 양대리그 단독 선두, 4차례의 완봉은 양대 리그 최다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ERA 2.30, 탈삼진 199개로 본인의 최고기록을 달성했고 양대 리그를 통틀어 유일하게 혼자서 모든 선정 기준을 충족하여 2009년도에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3년 연속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으며 교류전에서 4승을 올렸고 그 해 소프트뱅크의 와다 츠요시 다음으로 교류전 통산 17승을 기록했다. 5월 15일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전에서는 4타수 3안타 4타점의 활약을 보여주었다.
그 후 이시이 가즈히사기시 다카유키 등의 투수들이 연달아 부상으로 이탈하여 매 경기 완투를 전제로 던지는 것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2년연속 강제혹사 하지만 여름에 기록적인 무더위로 인하여 등판 중에 탈수 증상을 일으켜 다리에 쥐가 나 강판되는 등 체력이 꽤나 소모됐을 뿐만 아니라 경기 중반까지 호투하다가 경기 후반에 갑작스런 제구력 난조로 인하여 대량 실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14승을 기록했다.

2011시즌 개막을 앞두고 팔꿈치 통증으로 슬럼프에 빠지는 등 부진하며 5월에 2군으로 내려갔다.[4] 이후 1군 복귀를 했음에도 지속적인 팔꿈치 통증과 6월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날아온 타구를 다리에 맞으며 부상을 당하면서 결국 5년간 계속되었던 두 자릿수 승리는 결국 끝이났다.

2012시즌 5년연속으로 개막전 선발 투수를 맡았다. 그러나 이후 3연패를 당하는 등 부진하며 4월에 1군 등록이 말소되었다. 그 후 당시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고 있던 엔리케 곤잘레스가 부진하며 5월에 1군으로 복귀,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와쿠이가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었다. 5월 13일 닛폰햄 파이터즈전에 1이닝 동안 타자 5명을 상대로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기록 프로 데뷔 후 첫 세이브를 기록했다. 그러나 5월 18일에 발매된 일본의 주간지 프라이데이에서 스캔들 문제를 기사로 내보내며 곤욕을 치뤘다. 22일에 구단 측은 와쿠이의 출장 선수 등록을 무기한 말소 조치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이후 6월 16일 구단에서 엄중 주의를 주며 징계 해제가 되었고 22일에 1군 복귀하며 시즌 종료까지 세이부의 마무리 투수로서 출전하며 30세이브를 기록했다.

2013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었지만 합숙 중에 또 다시 대표팀 합숙 훈련 도중 숙소에서 한 여성과 밀회하는 장면이 프라이데이에 의해 보도되었다. 구단 측은 그가 미혼인 점을 감안해 엄중 주의를 받았다. [5]이후 마무리에서 다시 선발로 복귀하였지만 컨디션 저하와 제구력 난조로인해 시즌 중반부터 중간 계투나 선발 등판을 반복했다. 시즌 중반 이후에는 중간 계투로만 등판하며 시즌 종반에는 마무리로 활약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에 기여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3차전 1점을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8회 등판했지만 카쿠나카 카츠야에 2점짜리 적시 3루타를 허용하는 등 아웃카운트를 한 개도 잡지 못하며 강판되었다. 이후 시즌종료후 FA자격을 얻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로 이적하였다.

2.2.2 치바 롯데 마린즈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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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재능을 도쿄 만으로 가져가겠습니다.

12월에 세이부 시절의 은사인 이토 츠토무 감독이 이끄는 치바 롯데와 FA 계약을 하며 이적하였다. 이후 12월 20일 세이부 구단을 방문해 인사를 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

2.2.2.1 2014 시즌

4월 15일 친정팀인 세이부 라이온즈전에 선발 등판, 7이닝 5피안타 8탈삼진 1사사구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되며 치바 롯데로 이적 후 첫 승리를 기록했다. 또한 세이부전의 승리로 역대 13번째로 전 구단 상대 승리를 기록했다.

2014시즌은 8승 12패 4.21의 방어율로 시즌을 마감했다.

2.2.2.2 2015 시즌

3월 27일 개막전에 소포트뱅크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6이닝 6피안타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된다.
4월 4일 라쿠텐 이글스전에서는 롯데 이적 이후 처음으로 무사사구 완투승을 기록했다.
이후 순조롭게 승수를 쌓아 갔으며 8월 14일 오릭스전에 선발 등판 7이닝 6피안타 2실점의 호투로 2010년 이후 5년 만에 두 자리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괴물같은 13연패후 정신차린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순위싸움이 격화된 상황에서 꾸준히 이닝을 소화하며 1선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10월 1일 니혼햄전에 등판하여 7이닝 3피안타(1홈런) 6삼진으로 호투하며 시즌 14승을 챙겼다.
10월 6일 라쿠텐전에 등판 하여 10이닝 137구로 시즌 15승을 챙기며 오타니 쇼헤이와 함께 2009년 이후 6년만에 다승왕을 차지했다. 최종 성적은 15승 9패 방어율 3.39.
10월 12일,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니혼햄 전에서 6.1이닝 '143구' 4삼진 1자책점으로 철강왕의 위엄을 과시하며 팀의 퍼시픽리그 챔피언 시리즈 진출을 견인했다. 아쉽게도 2015시즌 평화왕 소프트뱅크에게 롯데가 스윕당하면서 더 이상의 등판은 없었다.
시즌이 끝난후 일본 퍼시픽리그 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2.2.2.3 2016 시즌

7월 19일 현재, 7승 4패 방어율 2.53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승과 방어율 순위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3 플레이 스타일

스리쿼터 폼에서 나오는 평균 구속 142 km/h, 최고 구속 151 km/h 의 직구를 가지고있다. 보통 140 km/h 정도에만 머물러 있지만 2012년에는 마무리로 기용되었을 때에는 평균 구속 약 145 km/h를 기록했다. 공의 릴리스 포인트가 좋고 밸런스가 잡힌 폼에서 날카로운 구속과 직구 와 다양한 변화구를 던지는 정통파 우완투수이며, 거기다 평소 러닝을 많이 한 덕분에 하체의 힘도 강해 9회에도 140 km/h를 넘기며 구속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혹사당했지변화구는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체인지업 등 던지며 “어느 구종이라도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어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타자에게서는 상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라고 말하는 반면 “삼진을 잡을 수 있는 결정구가 없기 때문에 한 경기의 투구 수가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탈삼진율은 2015년 기준 통산 6.66이다.
  1. 절묘한 컨트롤과 독특한 디셉션을 자랑하는 좌완 투수. 치바 롯데에서 활약 후 FA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했으나 그곳에서는 먹튀화.
  2. 나중에 이시이 타쿠로로 개명하고, 타자로 전향하여 10여년간 요코하마의 주전 유격수-1번타자로 활약한다. 1998년에는 도루왕을 차지하며 요코하마의 현재까지 마지막 일본시리즈 우승에 공헌하였다.
  3. 8월부터 9월에 걸쳐서 5경기 연속 9회까지 던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경기에서만 승리 투수가 되었고 그 중 두 차례는 동점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와 완투로도 기록되지 않았을 정도다...
  4. 이때 오른쪽 팔꿈치에서 유리 연골이 발견되었다.
  5. 이때 스기우치 도시야도 스캔들 문제로 곤혹을 치뤘다. 근데 그쪽은 유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