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이 마사토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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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吉井 理人
생년월일1965년 4월 20일
국적일본
출신지와카야마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3년 드래프트 2위
소속팀킨테츠 버팔로즈(1984~1994)
야쿠르트 스왈로즈(1995~1997)
뉴욕 메츠 (1998~1999)
콜로라도 로키스 (2000)
몬트리올 엑스포스 (2001~2002)
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 (2003~2007)
치바 롯데 마린즈 (2007)

2 간략한 소개

요시이 마사토(吉井 理人)는 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투수 코치이며, 메이저리그를 경험한 일본 프로야구 선수중에 하나였다. 한편, 일본 프로야구의 통산 251승을 자랑하는 히가시오 오사무와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요시이 마사토는 히가시오의 등번호인 21번을 희망했다.

3 킨테츠 버팔로즈

프로 1년차(1984년)에는 1군 등판 없이 2군에서만 기나긴 훈련을 받았다. 1985년 9월 16일, 세이부 라이온즈 22차전, 1이닝 무실점 피칭을 기록했다. 같은해 9월 18일에는 선발 등판을 하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2이닝 8실점을 기록했던 것이다. 결국 1985년 2경기 등판에 그친다.

1987년 드디어 첫승을 기록한다. 난카이 호크스전에서 6.1이닝동안 3실점을 하면서 다소 좋은 피칭이라기에는 애매했지만 타선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프로 첫 승리투수의 감격을 맛본다. 10월 13일에는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26차전, 9이닝 1실점 투구를 하면서 프로 데뷔 첫 완투승을 기록한다.

1988년, 요시이는 마무리 투수로 전향본래 릴리프+선발이였지만한다. 결과는 성공적이였다. 50경기를 등판해서 10승 2패 24S를 기록한 것. 방어율도 리그 상위권이였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그 포지션 활약이 가장 좋은 선수를 뽑는 상이 있는데, 그 중에서 요시이는 최우수 구원 투수 부문을 차지했다. 한편, 일본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구원투수에게 상을 주는 파이어맨 상을 수상했다.[1]1989년에는 5승 20세이브로 좋은 활약을 보였고, 킨테츠 버팔로즈의 리그 우승에도 기여한다. 그러나 긴테츠는 일본시리즈에서 교진군에게 리버스 스윕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1990년, 45경기 8승 9패 15세이브 방어율 3.39를 기록했다.블론세이브가 쩔어 팀 승리를 제대로 지킬줄도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1991년 마무리 투수에서 중간 계투로 보직을 변경, 1992년에는 9경기만 등판하고 2군에서 머문다. 1993년 이후로 선발투수로 보직을 변경했다.

1993년 이후 선발투수로 보직을 변경한 이후 초기에는 좋은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1993년 6월 17일 세이부를 상대로 완봉승을 기록한다. 1993년 최종 성적은 5승 5패 방어율 2.67로 선발투수로서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1994년 7승 7패 방어율 5.47로 부진하였다.

4 트레이드 논란

요시이는 스즈키 케이시와의 의견 갈등으로 인해 투수 니시무라 다쓰지와의 트레이드를 추진하였고, 결국 1995년 이후로는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이적한다.

5 야쿠르트 스왈로즈

야쿠르트로 이적 후, 요시이는 여전히 선발 투수로의 보직을 계속 이어간다. 결과는 평타 이상급이였다. 킨테츠에 있던 것보다 더 좋은 활약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규정이닝을 채우고 1995년 10승, 1996년 10승, 1997년 13승으로 3년 연속 선발 두자릿수 승수를 기록한다. 한편, 야쿠르트 시절, 이때까지의 완투와 완봉은 22완투로 5완봉으로 킨테츠에 있었던 것보다 철완급이 되어버렸다.

요시이가 95년 이후 야쿠르트로 이적하면서 90년대 초반 거의 강팀급이였던 기세를 90년대 후반에도 이어갔다. 그 당시 야쿠르트는 센트럴리그 강팀이라고 불릴만 했다.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야쿠르트가 센트럴리그에서 5번이나 차지했을 정도로 말이다.[2]

1995년에는 야쿠르트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일본 시리즈 3차전, 오릭스는 선발 투수로 좌완 똥볼 에이스 호시노 노부유키를 선발로 내 보내고 야쿠르트는 요시이를 보내지만, 5회 초 스즈키 이치로에게 우익수 희생플라이를 맞으면서 1실점. 동점 상황이 되었다. 5회초 까지 마운드에서 투구하고 내려온다. 결과는 5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보여줬지만, 5회말 이나바 아츠노리의 대타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다시 1점을 리드하여 승리투수 조건을 가까스로 채웠다. 하지만 좌완 중간계투 카토 히로토다구치 소에게 1실점, 다음으로 마운드에 올라온 미야모토 켄지가 다시 더그 제닝스[3]에게 2실점을 하는 바람에 요시이의 일본 시리즈 첫 승리 투수는 무산되었다. 실점하지 말라고 불펜 시발들아

또한 1997년에도 13승 6패 방어율 2.99로 팀을 리그우승과 일본시리즈까지 올리는 등 많은 활약을 했다. 일본시리즈 3차전에 등판해서 4이닝 3실점. 야쿠르트는 마나카 미츠루도바시 카즈유키가 3점을 얻었지만 오오토모 스스무의 적시타 다카키 다이세이에게 희생플라이로 도합 3실점을 하게되어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지 못하고 동점 상황에서 강판되었다. 결국 요시이는 일본시리즈에서 첫 승을 챙기지 못하고 투수 교체를 선언하고 맙니다.....

6 FA, 그리고 메이저리그로

1997년 시즌 종료후 요시이는 FA 자격을 취득했다. 그 후 일본 몇개 구단이 요시이를 노릴려 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메이저리그로 이적을 하겠다고 선언을 한다. 뉴욕 메츠와 1년 20만 달러 계약 + 성과금 지급으로 메이저리그로 이적했다. NPB 선수가 미국으로 이적한 것은 노모 히데오 이후로 두번째이다.

7 뉴욕 메츠

1998년 3월, 요시이는 다저스 소속의 노모 히데오와 선발 맞대결을 펼친다. 결과는 요시이의 완승이였다. 2이닝 3실점을 한 반면, 요시이는 3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4] 1998년 4월 5일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하였다. 자신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였다. 결과는 꼴츠버그 피츠버그 타선을 상대로 7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하여 메이저리그 데뷔전은 성공적으로 치르게 되었다. 한편, 5월 21일에는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완투승을 거두면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써 전반기에는 16경기 4승 4패 평균자책점 3.42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13경기 선발 등판, 2승 4패 평균자책점은 5.02로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11월 12일에는 2년 간 500만 달러로 뉴욕 메츠와 재계약을 맺었다.

1999년, 요시이는 오른쪽 무릎 부상에 시달려 전반기에는 6승 7패, 평균자책점은 5.02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1999년 8월에만 2승, 평균자책점은 2.51를 기록하여 월간 최우수 투수로 선정되었다. 그 이후 9월 5일에는 10승을 달성하였고, 12승 8패 평균자책점 4.40을 기록한다. 한편, 팀은 포스트시즌에 진출 하여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차전에서 상대팀 선발 투수 빅 유닛 랜디 존슨을 만났다. 팀은 5회까지 4득점을 하는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요시이도 5.1이닝 동안 4실점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 첫 승리투수는 다시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팀은 3:1로 디비전 시리즈에서 승리하면서 메츠는 챔피언십 시리즈로 올라갔다. 상대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였다. 당시 1차전 선발은 그렉 매덕스가 등판했는데, 요시이는 1차전 선발로 나서게 되는데, 4.2이닝 동안 2실점을 한다. 결국 패전투수가 되고 팀은 2승 4패로 패하면서 브레이브스에게 월드시리즈를 내줘야했다.[5]

8 콜로라도 로키스

2000년, 요시이는 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한다. 2000년 4월 26일 피츠버그전에서는 홈런을 기록한다. 게다가 6월 24일에는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도루를 기록한다. 7월 20일에는 한-일 선발투수 경기가 있었는데 상대는 LA 다저스에서 리즈시절을 보내고 있었던 박찬호였다. 하지만 요시이가 4실점을 하면서 시즌 11패.

전반기 성적을 보면 6월에 3연승 행진을 달려 기대감을 올렸지만. 난조를 보인 경기가 많아 전반기 17경기 4승 9패 평균자책점 5.55를 기록하였다.

9 몬트리올 엑스포스

10 일본 프로야구로 복귀 & 오릭스 블루웨이브/오릭스 버팔로즈

11 치바 롯데 마린즈

  1. 야스다 생명보험이 협찬했고 1981년부터 2002년까지 상을 수여했다. 포인트 산출방법은 (구원승리 + 세이브 수)*2 - 구원 패전 수
  2. 하지만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순위를 나열하면 5-3-1-1-4-1-4-1-4-4-4-1인데 강팀이라고 부르기에는 약간 애매하다. 물론 1위를 찍은 시즌의 포스는 김성근 감독 시절 SK 와이번스만큼이나 어마어마했다.
  3. NPB 등록명은 D・J였다.
  4. 서재응과 같은 팀메이트였기도 했다. 서재응이 요시이에게 포크볼을 배우기도 했다.
  5. 참으로 대단한게 당시 메이저리그 전설들과 상대를 했다는 것. 비록 그들 상대로는 승리를 챙기지 못했지만, 그들과 맞대결을 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