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난카이 호크스에서 넘어옴)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Central League) | 퍼시픽 리그(Pacific League)
65px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Tohoku Rakuten GoldenEagles)
55px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Saitama Seibu Lions)
65px오릭스 버팔로즈
(Orix Buffaloes)
50px치바 롯데 마린즈
(Chiba Lotte Marines)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Hokkaido Nippon-Ham Fighters)
65px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과거에 참가했던 팀들
파일:TnfQGo8.png
로고[1]마스코트
해리 호크(左)&허니 호크(右)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Fukuoka Softbank Hawks
福岡(ふくおか)
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구단 법인명㈜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
(株式会社福岡ソフトバンクホークス)
창단1938년 2월 22일
연고지후쿠오카후쿠오카
현재 연고지로 이전1989년
구단 연고지 변천오사카 부 (1938~1988)
후쿠오카 현 (1989~)
구단명 변천난카이군 (1938~1944년 5월)
킨키닛폰군 (1944년 6월~1945)
킨키 그레이트링[3] (1946~1947년 5월)
난카이 호크스 (1947년 6월~1988)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89~2004)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5~)
홈 구장사카이 오하마 구장 (1938~1939)
나카모즈 구장 (1939~1947)
한신 고시엔 구장 (1948~1949)
오사카 구장 (1950~1988)
헤이와다이 구장 (1989~1992)
후쿠오카 야후 옥션! 돔 (1993~)
2군 구장후쿠오카 간노스 야구장 (1989~2015)
HAWKS 베이스볼 파크 지쿠고 (2016~)
모기업소프트뱅크
모기업 변천난카이 전기철도(1938~1943, 1947~1988)
킨키 일본 철도(1944~1946)[4]
다이에[5](1989~2004)
소프트뱅크(2005~)
구단주손 마사요시 (孫正義)
감독쿠도 키미야스 (工藤 公康)
킷 스폰서마제스틱
일본시리즈 우승
(7회)
1959, 1964, 1999, 2003, 2011, 2014, 2015
퍼시픽리그 우승
(17회[6])
1951, 1952, 1953, 1955, 1959
1961, 1964, 1965, 1966
1973 전기리그, 1999
2000, 2003, 2010, 2011, 2014, 2015
퍼시픽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3회)
2011, 2014, 2015
플레이오프 우승
(1회)
1973
세리그/파리그 교류전 우승
(6회)
2008, 2009, 2011, 2013, 2015, 2016
공식 홈페이지/한국어 공식 홈페이지
1959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58-니시테츠 라이온즈난카이 호크스1960-다이요 웨일스
1964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63-요미우리 자이언츠난카이 호크스1965-요미우리 자이언츠
1999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98-요코하마 베이스타즈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2000-요미우리 자이언츠
2003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02-요미우리 자이언츠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2004-세이부 라이온즈
2011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0-치바 롯데 마린즈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2-요미우리 자이언츠
2014년, 2015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2013-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6-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1 개요

현재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후쿠오카 현. 한국에선 소프트뱅크 호크스라고 알려져 있으나[7] 공식 이름은 한 번도 '소프트뱅크 호크스'인 적이 없다.[8]

2 구단 역사

2.1 초창기 (1938~1949)

1938년, 난카이 전기철도를 모회사로 한 난카이군(南海軍) 이란 이름으로 창단했다. 현재는 후쿠오카를 연고지로 하지만 초기부터 1988년까지 긴 시간을 오사카에 거점을 둔 구단이였다.

초창기엔 난카이군이란 이름으로 운영했으나 1944년 모회사가 킨키 일본 철도와 통합되는 바람에 킨키닛폰군(近畿日本軍)으로 개명당했다가 1946년 그레이트링(グレートリング), 그리고 1947년 다시 난카이 전기철도의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모회사에 의해 난카이 호크스(南海ホークス)로 개명되었다. 현재까지 구단명칭 호크스는 이때 난카이로 바뀌면서 처음으로 붙은 명칭으로 난카이 전기철도의 표장에 들어가 있는 매에서 유래했다.

2.2 난카이 호크스 전성기 (1950~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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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카이 호크스 시절의 구단기.(1977년부터 1988년까지 사용)

난카이 호크스 시절인 1947년부터 1988년을 반으로 뚝 잘라, 전기를 전성기 후기를 흑역사로 구분하는 올드 팬들이 많다(...). 이는 모회사가 잘나갈때 함께 잘나가다 몰락할때 같이 주저 앉은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실제로 난카이 호크스는 23년동안 장기 집권한 츠루오카 카즈토 감독 아래 1951년, 1952년, 1953년, 1955년, 1959년, 1961년, 1964년, 1965년, 1966년 퍼시픽리그 우승과 1959년, 1964년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는 등 1960년대까지 전성기를 구가하며 퍼시픽 리그를 휘어 잡았다. 당시의 대표적인 스타로는 스기우라 타다시, 히로세 요시노리, 노무라 카츠야 등이 있었다. 이 시절에 수립한 1955년 퍼시픽리그 우승 당시의 99승은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일본프로야구 한시즌 팀 최다승 기록이다. 하지만 일본시리즈 우승은 못했다

2.3 암흑기의 시작 (1978~1988)

그러나 1973년 퍼시픽리그 우승 이후 휘청하더니 1977년 당시 선수 겸 감독이었던 노무라 카츠야가 팀을 떠난 후[9] 저주에 시달려 모기업이 다이에로 바뀌어 후쿠오카로 이전한 이후인 1998년까지 단 한번도 A클래스에 못 올라갈 정도로 공인 퍼시픽 리그 동네북으로 전락한 아픈 과거가 있다.[10]

2.4 구단 매각, 그리고 후쿠오카로의 연고이전 (1988)

1988년에 모회사인 난카이 전기철도가 구단 운영 포기를 선언하면서 소매유통업체인 다이에가 구단을 인수하게 되고 이미 팬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오사카를 뜨기로 결정한다 그 당시 난카이는 창단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였지만 결국 창단 50주년 기념으로 구단을 매각해버렸다(…). 여담으로 매각조건에 '호크스' 라는 팀명을 유지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사진을 보면 시즌 중반까지 매각이나 운영포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매각 작업이 상당히 급박하게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팔려고 내놓은 구단을 창단 50주년 드립을 치면서 기념을 할 리가.

이 급작스러운 구단 매각의 내막에는 구단주이자 난카이 전기철도 회장이었던 가와카츠 덴(川勝傳)의 노환으로 인한 사망이 있었다. 팀이 장기적인 부진에 빠지자 난카이 전철 이사회와 노조는 "적자만 내고 그룹 이미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구단을 매각하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가와카츠는 꿋꿋하게 "내 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 까지는 절대 구단만큼은 못 판다."라고 완강하게 버티면서 호크스에 대한 애착을 보였다. 결국은 1988년 4월 23일 가와카츠의 눈에 흙이 들어가자마자(...) 구단을 다이에에 팔아버렸다.

<오사카 구장의 안습했던 모습>

난카이 시절의 홈구장이었던 오사카 구장은 구단 매각 후 더 안습을 달리게 됐는데. 시내 중심지, 난카이의 본거지인 교통의 요지 난바 인근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팀이 도망가면서 방치가 돼버린다. 가끔씩 타 팀들의 경기가 열리기도 했지만, 그 이외엔 쓸모없는 건물이 되버린 건 마찬가지. 심지어는 야구장 안에 '주택박람회' 같은 전시회를 해놔서 야구장 안에 견본주택(모델하우스)이 늘어선 정말 굴욕아닌 굴욕적인 장면도 연출되었다.[11]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이, 한국의 동대문운동장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청계천 지역에서 장사하던 노점상이 청계천 공원화 이후 갈곳이 없어지자 폐쇄된 동대문운동장에서 풍물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했었다. 구단매각의 이유 중 하나가 간사이 국제공항의 개통에 따른 난바역 주변 재개발이라는 명목도 있었으나 거품경제 붕괴 후로는 손을 못대고 방치에 방치를 거듭. 결국 1998년 11월에 와서야 헐리고, 지금은 난카이 그룹 계열 쇼핑센터인 난바파크스(なんばパークス)가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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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카이 호크스 기념관

다만, 호크스에 대한 대우는 떠나간 프랜차이즈 치고는 어느 나라보다는 대우가 후한게 오사카 구장 부지에 들어선 쇼핑센터에 난카이 호크스 기념관도 있고, 관중석 일부도 보존되어 있다. 전주구장에 쌍방울레이더스 기념비 하나만 세워주면 안되겠니?
하지만 난카이 구단과 등을 돌리고 원수 사이가 된 레전드인 노무라 카츠야에 관한 기록은 지금도 유니폼 한 조각, 사진 한 장 조차 전시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1959년의 일본시리즈 우승장면 사진에서도 노무라는 교묘히 지워놨을 정도. 노무라 카츠야가 난카이 호크스에 어떤 존재였는가를 생각하면... 하다 못해 롯데 자이언츠최동원의 유니폼을 전시하는 성의는 보였다

난카이의 여담을 하나 더하자면, '아부상' 이라는 만화책이 있는데, 여기 주인공이 난카이 호크스에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있어서 야구장에 광고판 까지 있었다. 때문에 난카이 호크스 해단 관련 동영상에 작가가 꾸준히 등장하며, 마지막 경기 때는 중계도 함께 했다. 아부상은 호크스가 후쿠오카로 이전하고 다이에와 소프트뱅크의 손을 걸친 지 한참이 된 시기까지도 연재되었다가 2014년에야 완결이 났고, 주인공은 은퇴 뒤 현실에서 준영구결번까지 되었다.(...) 결과적으로 80년대까지는 칸사이 지방에 한큐 브레이브스, 긴테츠 버팔로즈, 난카이 호크스 의 퍼시픽리그 3팀이 존재했으나, 지금은 그 조상도 애매해진 오릭스 버팔로즈(구 한큐 브레이브스)만 남아있게 되었다.

2.5 새로운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시작과 계속되는 암흑기 (198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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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시절의 구단기.

호크스 구단을 매입한 다이에는 당시 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기류에 편승하여 1989년 후쿠오카로 구단을 이전하여 팀명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福岡ダイエーホークス)로 개명하였고, 그 후 1993년 당시 돈으로 800억엔을 투입하여 돔구장을 짓는 돈지랄을 과시하면서 헤이와다이 구장에서 지금의 홈구장인 후쿠오카 돔으로 홈구장을 옮겼다.[12]

잠시 새 연고지인 후쿠오카헤이와다이 구장에 대해 설명하자면 1950년 서일본 철도서일본 신문이 각각 퍼시픽 리그니시테츠 클리퍼스센트럴 리그니시닛폰 파이리츠일본 프로야구에 참여, 같은 헤이와다이 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며 뛰었다. 그러나 1950년을 끝으로 니시닛폰이 GG를 쳐 니시테츠와 합병되며 해산되고 그 뒤 니시테츠 라이온즈로 이름을 바꿔 계속 뛰었다. 그리고 미하라 오사무 감독의 명지휘와 나카니시 후토시, 이나오 가즈히사, 오기 아키라, 토요다 야스미츠 등의 맹활약으로 1956~1958년 3년 연속으로 미하라의 라이벌 미즈하라 시게루가 이끌던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누르고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는 등의 황금기까지 누렸고 그 뒤에도 1963년 퍼시픽 리그 우승까지 했으나[13] 점점 약체팀이 되면서 망해갔고 결정적으로 검은 안개 사건이 터지며 구단은 완전히 ㅈ망. 결국 1972년 서일본 철도가 GG치며 경영을 포기하고 만다. 그 뒤 명명권 판매 등으로 "타이헤이요 클럽(1973~1976)-크라운 라이터(1977~1978) 라이온즈" 로 이름을 바꾸며 어찌저찌 연명했다가 1979년 세이부 철도에게 팔려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름을 바꿈과 동시에 연고지를 사이타마로 이전하여 후쿠오카와 헤이와다이 구장은 빈 터가 되어버렸다. 자세한 것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참고. 그 10년 사이에 후쿠오카에서 그냥 멍하니 있었던 건 아니었고 어떻게든 새 구단을 유치하기 위해 서명 등의 방법을 동원했고, 그 결과 후쿠오카에 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 연고이전 이후 10년만에 프로야구팀이 생겼다.

원래 후쿠오카니시테츠-타이헤이요 클럽-크라운라이터 라이온즈의 연고지였고, 호크스는 난카이 시절 라이온즈와 치열한 라이벌 관계였던 탓에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10년만에 후쿠오카에 프로야구 구단이 들어오는 것이었던지라 환영 무드가 더 컸다. 하지만 이 시절의 호크스는 1978년 이후로 계속 비밀번호를 찍었던 탓에 점차 관중석에 빈자리가 속속 보였다(...) 심지어 이 전 후쿠오카의 주인이었던 라이온즈의 원정 시합에서는 라이온즈 팬의 비율이 더 많을 정도였다(...)

결국 후쿠오카 이전 이후에도 1997년까지 B클래스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결과적으로 전신이었던 난카이 호크스 시절 노무라 카츠야가 팀을 떠난 1978년부터 무려 20년 동안 A클래스(1위~3위)에 한번도 못 올라갔다. 이 정도면 엘롯기는 장난. 숫자로 써보자면 6-5-6-5-6-5-5-6-6-4-5-4-6-5-4-6-4-5-6-4. 참고로 센트럴 리그, 퍼시픽 리그 모두 각각 6구단 체제이니 6이 꼴찌.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나마 같은 동네에 살던 어떤 콩라인 야구단과는 달리 오사카 시절 일본시리즈 우승을 2번 거둔 걸 위안으로 삼자. 게다가 그 팀은 해체당했고

참고로 20년 연속 B클래스는 도통 깨질 기미가 안 보이는 일본프로야구 최다기록(...). 한때 그 기록을 깰 가장 유력한 후보로 센트럴리그의 동네북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자급자족형 구단 히로시마 도요 카프가 거론되었으나, 2010년대 초중반부터 두 팀 모두 모기업의 투자 성공 및 자체 육성 성공으로 히로시마는 15년, 요코하마는 10년만에 B클래스를 탈출에 성공 하였고, 둘다 앞으로 몇년은 먹고 살 전력이 갖춰진 상태라 향후 몇년간은 다시 불멸의 기록 취급 받게 생겼다(...).

2.6 강팀으로의 재도약 (1998~2003), 구단 매각(2005)

그러다가 1993년에 취임한 이 팀의 GM네모토 리쿠오 전무[14]의 공격적인 선수 영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세이부 라이온즈의 투타의 주축이었던 쿠도 키미야스를 FA로, 아키야마 코지를 대형 트레이드로 영입한 것이나, 큐슈 지역 거물 유망주였던 조지마 겐지를 과감하게 영입한 것은 현재도 자주 회자되는 얘기. 또한 오 사다하루 감독의 지도력으로 난카이 시절의 암흑기(...)에서 벗어나면서 팀이 다 리빌딩 된 이후 충실한 유망주 육성으로 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를 배출하며 퍼시픽 리그의 강호로 떠올랐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그간의 울분을 풀듯, A클래스에 연속으로 들어가며 완전한 부활에 성공한다. 1997년까지 20년 연속으로 B클래스에 머물던 팀이 1998년 이후 16년 동안 딱 2번을 제외하고는 전부 A클래스를 기록했다. 그나마 그 두번의 B클래스도 9월까지 2위를 유지하다가 시즌 막판 1달동안 분위기를 잘못타서 최하위로 떨어진 2008년[15][16] 하고 3위와 불과 1게임차이로 4위로 밀린 2013년.

1999년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등의 한국인 삼총사가 있던 주니치 드래곤즈를 물리치고 1964년 이후 35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 것을 시작으로,[17] 2000년 퍼시픽리그 우승,[18] 2003년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한신 타이거즈와 7경기까지 가는 접전[19] 끝에 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한다. 현재도 '산요(山陽) 신칸센 시리즈'후쿠오카의 하카타역과 오사카의 신오사카역을 잇는 신칸센의 노선명이 산요신칸센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메이저리그의 서브웨이시리즈와 같은 개념, '호응(虎鷹) 시리즈' 등으로 불리며 역대 일본시리즈 명승부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이 시기의 성적은 3--1-1-2-2-1. 그 전까지 20자리 비밀번호를 찍었던 팀이라는 게 안 믿겨질 정도로 환골탈태했다.

그러나 거품경제가 붕괴되고 일본에 불경기가 찾아오면서 소매업이 주력이었던 다이에가 파산하게 되고 이온으로 흡수되면서 구단 매각을 선언[20], 2004년 시즌이 끝나고 재일동포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오너가 구단 운영을 선언하여 2005년 시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탄생하게 된다.

난카이 시절 경험이 있던 현역 선수들은 2010년 오미치 노리요시를 끝으로 이미 모두 은퇴하였고, 다이에 시절 경험이 있는 현역 선수는 이구치 타다히토, 스기우치 토시야, 와다 츠요시, 가와사키 무네노리, 아라카키 나기사 등 총 11명.

2.7 그리고 가을 야구의 비극 (2004~2010)

2(*)-2(*)-3-3-6-3-1(*)

별표 표시를 한 건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 해놓고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해서 일본시리즈를 못간 해이다. 보시다 시피 원래대로라면 1을 세 번을 찍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놈의 플레이오프에 발목이 잡혀서.

그놈의 포스트시즌제도가 문제인데, 2004년에 퍼시픽리그에 1973년~1982년 시행하다 중단했던 플레이오프 제도가 재도입된 이래[21] 2008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참가했는데 2010년까지 단 한번도 일본시리즈에 진출하지 못했다 (...). 이를 두고 호크스 팬들은 플레이오프의 비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른 팀 팬들은 가을의 풍물시라고 비웃는다 2004, 2005년에는 정규시즌 1위였으나 각각 세이부 라이온즈,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두번다 2승 3패로 일본시리즈 진출권을 내주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리고 2005년 그렇게 올라간 마린즈는 한신에게 이것보다 더한 짓을 했다

퍼시픽 리그측에서는 이거 1위하고 두번이나 마지막 경기까지 가서 발리니 불쌍하지 않음? 이라고 해서 정규시즌 1위팀에게는 퍼시픽 리그 우승 타이틀과 무조건 1승을 주는 어드밴티지를 적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데 2006년시즌에는 역으로 호크스가 3위로 레귤러 시즌 통과. 이건 뭐 제도가 바뀌니 역으로 호크스에 불리한 규정이 되고 말았다(...). 결국 2006년도는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격돌했으나 어드밴티지 1승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패퇴했다.

역사적 명승부로 꼽히는 플레이오프 최종전에서는 유리어깨로 소문난 에이스 사이토 가즈미가 4일휴식 후 등판을 강행하며 [22] 최후까지 저항했지만 사이토의 역투에도 불구하고 양팀 모두 9회까지 1점도 내지 못했고, 결국 9회말 투아웃 1,2루 상황에서 니혼햄의 이나바의 2루방향 타구를 2루수가 호수비로 막아냈지만 2루 송구가 옆으로 빗나가며 1루 주자가 2루에 세이프되는 사이 2루 주자가 그대로 홈까지 내달리며 결승점, 소프트뱅크는 또다시 패전하고 만다. [23]


사이토는 결승점이 들어오는 순간 마운드에 쓰러져 대성통곡했고 팀동료들이 부축해주기 전까지 일어나지도 못하는 찡한 장면을 연출했다. 포수 마토바 나오키는 홈플레이트에 주저앉은 채로 울음을 터뜨렸고 4번타자 마츠나카 노부히코는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망연자실한 채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파일:Attachment/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saitoh2.jpg

통곡하면서 동료들의 부축으로 간신히 그라운드를 떠나는 사이토[24]

2007년에는 치바 롯데 마린즈에게 밀려서 아예 1스테이지에서 탈락. 2008년은 9월1일까지 2위를 달리고 있었으나 9월 이후로 6승 21패를 꼴찌까지 수직낙하하면서 진출 못했고 2009년 또 다시 클라이막스 시리즈 진출 후 이와쿠마다나카 단 두명의 투수에게 틀어막히면서 도호쿠 라쿠텐에게 1스테이지에서 발렸다.

안습의 절정은 2010년으로 정규시즌 1위로 1승 어드밴티지까지 먹고 진출했으나 1승만 남긴상황에서 충격의 3연패로 또 일본시리즈에 못갔다. 이로써 호크스는 04년부터 10년까지 7년간 총 6번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단 한번도 일본시리즈에 가지 못했다. 잠시 눈물좀 닦고(...). 결국 2010년 시즌 끝나고 긴장감 없는 요코하마로부터 FA를 선언한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사이타마 세이부의 주전포수 호소카와 토오루, 오릭스에서 자유계약으로 풀린 알렉스 카브레라 등을 지르면서 절치부심. 우치카와가 역대 FA 최고 성공사례 중 하나라고 해도 무방할만한 성적을 찍어주면서 팀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한 덕분에 7수만에 일단 클라이맥스 시리즈의 저주는 풀었다. 하지만 이범호는...

결국 2011년에서는 일본시리즈의 저주도 풀었지만 정작 아시아 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일본 프로팀이 단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던 아시아 시리즈 우승컵을 내준다(...). 이것도 저주라면 저주겠다(...). 괜찮아.. 2013년엔 얘네들도 우승 못했어... 더군다나 결승도 아닌 4강에서...

2.8 2008년 이후의 동향

2.8.1 2008년 시즌

오 사다하루 감독이 마지막 해를 선언한 이해에, 팀 주력들이 줄부상및 부진크리와 베이징 올림픽 차출 크리로, 9월부터 시즌 끝날 때까지 한달동안 6승 21패의 기록적인 수직낙하를 보이며, 2위에서 한달만에 6위까지 굴러떨어지는 역사적 수모를 기록 2008년에는 결국 최하위로 시즌을 끝내고 말았다. 이에 대한 책임 및 건강상의 이유로 인해 오 사다하루 감독이 사임하고 후임 감독으로 아키야마 코지가 부임하게 된다.

2.8.2 2009년 시즌

2009 시즌에는 2위를 줄곧 유지하다 시즌 막판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역전을 허용하면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시리즈에서 또 1스테이지 참패. 라쿠텐에서 내보낸 투수는 딱 두 명. 이와쿠마와 다나카. 이 정도면 저주다.

2.8.3 2010년 시즌

2010년 시즌 역시 투타 모두 안정적인 성적을 보이며 상위권을 엎치락 뒤치락 하더니, 막판에 수위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직접대결 3연승으로 한방에 추격후 계속해서 연승 + 사이타마 세이부의 캐삽질 6연패로 4.5게임차를 뒤집어, 2010년 퍼시픽리그 우승팀이 되었다. 참고로 직접대결 3연승 직전에 세이부는 매직넘버 4를 남겨두고 있었다. 그리고 클라이막스 시리즈에 1차전에서 혈전을 벌이고 기어올라온 3위 치바 롯데 마린즈를 맞아, 어드밴테이지 1승을 가진 상태 + 홈에서 모든 경기를 하는 상황에서 3승 1패로 1승만 더하면 드디어 저주를 깨는 일본시리즈 진출직전까지 갔었으나 4차전부터 포풍 3연패를 당해 최종스코어는 어드밴테이지 1승먹고도 3승 4패로, 또 일본시리즈 진출에 실패했다. 이정도면 굿이라도 해야 할 지경이다(...).

시즌 종료후 FA로 풀린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교섭하여 입단시키는데 성공했다.

참고로 치바 롯데와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벌이던 당시, 구단주인 손정의 회장이 직접 구장을 방문해 이기면 페라리 쏜다 라고 말한 사건도 유명하다. 결국 포풍 3연패로 페라리의 주인은 안 나타났다.

2.8.4 2011년 시즌

시즌전부터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 팀 답게 초반부터 선두를 달렸다. 특히 교류전에서는 10연승을 깔고 시작해서 끝나고 나니 18승 2무 4패. 승률 .858 이라는 캐사기 우승을 달성했다. 단 교류전에서 힘을 좀 뺐는지, 이후 조금 버벅이면서 전반기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동률 선두로 마감했다. 후반기도 사실상 이 두팀의 싸움이 될것으로 예상 되었었다 그도 그럴게 전반기 종료시점 기준으로 2위와 3위인 치바 롯데 마린즈와 승차가 12.5(...).

그러나 막상 후반기 되니 홋카이도 닛폰햄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수직낙하에 가까운 곤두박질을 치기 시작하여 일찌감치 매직넘버를 켰고, 결국 10여경기 남은 시점에서 우승을 확정짓고 정규시즌 2연패를 달성하였다. 시즌 종료 후 2위인 홋카이도 닛폰햄과의 게임차만 무려 17.5, 3위인 세이부와는 20.5. 이로써 7번째 플레이오프 진출 확정.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예상을 뒤집고 홋카이도 닛폰햄을 2연승으로 꺾고 올라온 3위 사이타마 세이부를 상대로 한단계 위의 전력을 과시하면서 깔끔하게 3연승으로 일본시리즈 진출확정. 플레이오프, 클라이맥스 시리즈 7수만에 돌파에 성공하면서 일단 클라이맥스 시리즈와 관련된 저주는 풀었다. 그리고 맞붙는 상대는 주니치 드래곤즈. 12년만에 리턴매치다! 치열한 투수전 끝에 7차전 홈에서 승리하며 8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에 성공했다. 이 와중에 이범호는 공수 양면에서 전혀 활약이 없다가 시즌 끝나고 방출되었다

2011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퉁이 라이온즈에 6대5로 승리를 거두었으며 삼성 라이온즈에 9대0 완승,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 히트를 3대2로 누르고 결승전에 진출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심판의 오심의 도움(김상수 2루 세이프 과정)에도 불구하고 정형식에게 역전타를 얻어맞아 5대3으로 패해 2007년 SK 와이번스 이래 4년 만에 예선에서 3경기 전승하고도 준우승하는 팀이 되었다. 더군다나 기자들과 네티즌들에게 신나게 까였는데 기자들은 "대한민국 왕자의 ‘하극상’에 무너졌다", 이에 네티즌들은 "일본 야구 역사상 최악의 패전이다", "1년간 쌓아온 것이 단 1경기에 무너졌다" 게다가 이번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지금까지 4번의 우승을 일본 팀들이 모두 차지했기 때문에 이번 결승전 패배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결승전이 열리기 직전에 선수들이 흡연을 해버리는 것이 들통나 더욱 까였고 일본시리즈 우승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야구 팬들에게 두고두고 씹혔다. 그나마 오승환을 상대로 2점을 내긴 했지만 무사 만루에 분위기 한창 올랐을 때 병살타를 치고 2점 밖에 못 낸거라(...).

그리고 2년 뒤 어느 구단이 더 처참한 성적표를 들고 오게 된다.[25]

문제는 투수왕국 호크스가 1,2,3선발 스기우치, 와다, 홀튼이 전부 한번에 이적하는 바람에 다음 해 투수진이 절망적인 수준으로 추락했다. 1선발을 2011년 처음 선발전환한 셋츠 타다시에게 맡겨야 할 실정. 세이부의 FA 호아시 카즈유키를 따내는 데 성공해서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이긴 했는데 그래도 구멍을 메우기엔 부족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2011년에 우승해서 정말 다행인 듯.

2.8.5 2012년 시즌

2012시즌에 앞서 팀 선발진의 원투쓰리펀치와 부동의 톱타자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헬게이트가 펼쳐졌다(...). 에이스스기우치 토시야와 외국인 투수 D.J. 홀튼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 좌완 선발 와다 츠요시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건너갔으며 이치로 빠돌이 주전 유격수 가와사키 무네노리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저 선수들이 빠져나간 대신 메이저리그 119승 & 다승왕 출신이라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브래드 페니를 연봉 400만달러 + 옵션 350만달러[26]이라는 크고 아름다운 조건으로 영입했고[27] 타선엔 파워툴만큼은 미국에서도 최고로 평가받던 공갈포 AAAA리거 윌리 모 페냐를 추가했다. 강력한 타선과 불펜만큼은 건재하니 새롭게 개편된 선발진의 활약 여하에 따라 여전히 상위권을 노릴 수 있는 전력으로 전망되었다.

메이저리그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1, 2, 3 선발에 주전 유격수까지 털린채로 지난 해 4선발이었던 셋츠 타다시를 에이스로 내세워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그래도 처음에는 오릭스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면서 선두권을 유지했으나 다승왕이었던 홀튼과 좌완 에이스 와다, 스기우치의 공백을 메워줄 것을 기대하고 데려온 브래드 페니와 호아시 카즈유키는 사이좋게 먹튀 인증. 철벽 계투조를 형성했던 마하라와 폴켄보그가 부상으로 각각 시즌 아웃과 시즌 도중 장기 이탈. 2011년에 양대리그 수위타자에 MVP를 획득하면서 돈이 아깝지 않은 활약을 보여줬던 우치카와 세이이치마저 이유를 알 수 없는 부진의 늪에 빠지는 등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그러면서 그동안 호크스의 독무대나 다름없었던 인터리그에서 간신히 꼴찌를 면하는 등 리그 5위까지 추락. 2011년의 성과는 현실에서 프로야구 매니저를 하는 듯한 사기에 가까운 선수빨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샀다.

그러나 7월경부터 젊은 야수들을 과감하게 기용하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스기우치, 와다, 홀튼의 이탈에 페니와 호아시까지 먹튀가 된 선발진은 부상에서 부활한 오토나리와 갑툭튀한 고졸신인 다케다 쇼타의 맹활약으로 메우고 마하라와 폴켄보그의 연달은 부상으로 생긴 마무리 공백을 전년도 일본시리즈에서 MVP급의 활약을 보여준 모리후쿠[28]로 대체하는 등 수습에 들어가 8월중순부터 7연승을 거두면서 폭풍질주, 다시 순위경쟁에 뛰어들었다. 올라갈 팀은 올라간다. 한대 선두권도 넘보기는 했으나 8월 말에 사이타마 세이부가 질주를 하고 9월달에 홋카이도 닛폰햄이 상승세를 타면서 결국은 3위로 정규시즌을 마감. 클라이맥스 시리즈 제1스테이지에서는 2위였던 사이타마 세이부를 꺾고 파이널 스테이지에 진출했으나, 파이널 스테이지에서 또다시(!) 홋카이도 닛폰햄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탈락. 뭐 일단 그 전해에 일본시리즈 우승까지는 해 봤으니 그렇게 안타깝지는 않으려나.

2.8.6 2013년 시즌

전년도 시즌 후반기에 혜성과 같이 나타나서 팀을 구원했던 고졸신인 다케다 쇼타가 2년차 징크스에 빠지고, 투수진의 한 축을 이루던 오토나리가 부상으로 1, 2군을 왔다갔다 하는가 하면, 20홈런을 날리면서 쏠쏠하게 활약해준 윌리 모 페냐도 예전의 공갈포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게다가 어려운 상황에서 팀의 정신적 지주가 됐던 고쿠보는 은퇴한 상황. 팀 순위도 한 때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교류전에 들어오자 전년도에 FA 먹튀가 된 호아시가 귀신같이 부활하고 윌리 모 페냐의 공백은 신 외국인 브라이언 라헤어가 메워줬으며, 그동안 약간 실망스러운 성적이 이어진 중견수 하세가와가 교류전에서 4할대 타율을 기록하면서 수위타자를 차지했다. 시즌 초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외야수 야나기타, 요시무라, 투수 이와사키 등이 적절하게 활약해 주면서 2년만에 교류전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상위권으로 뛰어 올랐다. 교류전 종료 후에는 라쿠텐, 롯데와 더불어 상위권을 형성했으나, 2012년에 팀 투수진의 주축들이 빠져나간 공백은 여전히 메우지 못했고 올스타 브레이크 때는 다시 5위로 추락했다. 올스타전 이후 8월 초에 잠시 반짝했지만 에이스인 셋츠 타다시 외에는 믿을만한 투수가 없는 상황에서 서서히 힘이 빠지면서 3위 싸움으로 밀려났다. 결국 시즌 최종전에 패하면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퍼시픽리그 3위 자리를 내 주고 2008년이후 5년 만에 포스트시즌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2008년 시즌 이후 오랜만에 B클래스로 떨어지면서 2013년 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이란 소식이 알려졌고 실제로 45억엔(약 450억원)을 풀어서 외국인 선수와 FA선수를 잡을 것이란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MLB 보스턴 레드삭스오클랜드 어슬레틱스등에서 뛴 베테랑 좌완 불펜투수 오카지마 히데키를 1년 5500만엔에 잡았고#, FA를 선언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와 주니치 드래곤즈의 투수 나카타 켄이치를 영입하였다. 외국인 선수로는 올해 활약이 미미했던 비센테 파디야, 윌리 모 페냐(오릭스 버팔로즈행), 브라이언 팔켄보그(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행)를 떠나보내고 한신 타이거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한 선발투수 제이슨 스탠드릿지와[29],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의 선발 투수 브라이언 울프, 히로시마 도요 카프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구원투수로 활약한 데니스 사파테를 영입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최근 오릭스 버팔로스와 결별 후 MLB 진출과 NPB 잔류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대호를 잡으려고 호크스가 3년 14~15억엔을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 2013년 12월 3일 기준으로 이대호가 호크스와의 계약에 합의하고 세부 조정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나왔다.# 12월 23일 이대호와 3년 19억엔 계약을 맺었다.

2.8.7 2014년 시즌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2014년 항목으로.

2.8.8 2015년 시즌

대정의, 리그 깡패, 승률 7할도 못찍는 쓰레기팀[30]

3년만에 일본시리즈 우승 후 2년 연속 우승과 통산 7회 우승을 위해 야심찬 준비들을 하였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2년동안 에이스 역할을 해주며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견인한 릭 밴덴헐크를 2년 4억엔에 영입하였고, 2007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2014년까지 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에게 러브콜을 보내 4년 16억으로 영입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시즌에 들어서자 육성과 투자, 외부영입등이 마쓰자카만 빼고 모두 긍정적인 방향으로 폭발하면서 타팀에게 그야말로 대정의라고 평가받을 정도의 강력함을 보여주고 있는 중. 이미 주전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이번 시즌에 들어 장타력까지 만개하면서 일약 리그 최고의 화제 선수가 된 야나기타 유키[31]를 비롯해 작년의 시원찮던 성적을 훌훌 털어버리고 야나기타와 함께 리그를 씹어먹고 있으며 5월 MVP까지 수상한 이대호, FA를 앞두고 역대 최고의 페이스를 보여주고 있는, SB라 6번이지(...) 타구단이면 여유롭게 4번을 차지하고도 남는 성적의 마쓰다 노부히로, OPS는 8할도 못 되지만 그래도 타율은 3할을 넘기고 있고, 호크스 4번의 저주를 뒤집어쓰고 있다는 걸(...) 고려하면 용납할만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3~6번은 말 그대로 리그 최강. 1번타자를 주로 맡는 나카무라 아키라도 리그 최상위권의 테이블세터이고 하위타선의 2루수 타카다, 아카시 등도 나쁘지 않은 성적이라 그야말로 지뢰밭이다. 유일한 구멍이 1할대 타율에 OPS 5할조차 간당간당하고 리그 최다실책을 기록중인 유격수 이마미야 겐타 뿐. 호소카와, 츠루오카, 타카야의 1할대 3명이 돌려막고 있는 포수자리도 있는데? 그러한 타선의 파괴력이 바로 타율, 홈런, 팀OPS, 팀득점 모두 양리그 통틀어 1위(6월 10일 시점)인 타격지표로 나타나고 있다.

투수진은 2012년의 대재해 이후 리그를 압도할만한 에이스가 없다는 약점은 여전하지만 선발과 불펜, 마무리가 전부 탄탄해서 종합 성적으로는 역시 리그 최상위. 특히 외국인 투수는 선발의 스탠릿지, 중간계투 바리오스, 마무리 사파테 전부 맡은 바 활약을 다 해주고 있어서 2군을 폭격하고 있는 릭 밴덴헐크를 올릴 자리가 없을 정도이다. 결국 스탠릿지와 밴덴헐크를 1군과 2군에 올렸다내렸다 하는 방식으로 로테이션을 만들었지만.[32]

이렇게 말 그대로 투타 모두 완벽한 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어째 스탯에 비해서는 연승이 별로 없어서 3연전 스윕은 6월 첫째주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이 되어서야 처음 이뤄냈고, 리그 순위는 닛폰햄 파이터즈와 거의 대등한 수위싸움을 벌이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따라서 패하는 날이 의외로(어디까지나 팀 스탯에 비해 의외로) 많지만, 패전 스레드가 세워지더라도 워낙 투타가 잘해주고 있어서 막상 깔 곳은 없기에 스레드는 당일 경기에서의 활약상과는 아무런 관계 없이(...) 위에 언급된 이마미야 겐타와 쿠도 감독을 까는 글들로만 가득 채워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7월 28일부터 8월 6일까지 8연승을 기록하며 2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승차를 11.5경기차로 늘리면서 매직넘버를 조기에 가동시켰다. 퍼시픽리그 최고의 투수인 오타니 쇼헤이도 6과 1/3이닝 7실점으로 털어버린건 덤. 웬만하면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처럼 괴물같은(..) 13연패를 하지만 않는다면 사실상 퍼시픽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8월 11일, 드라마틱한 경기를 승리로 마무리했다. 오릭스 버팔로스의 에이스 가네코 치히로에게 7회까지 2점으로 묶이며 9회까지 6:2로 지고 있었다. 그리고 맞이한 9회말,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 투수 사토 다쓰야에게 요시무라 유키가 3루타, 다음타자 혼다 유이치가 볼넷을 얻어냈다. 후쿠다가 플라이 아웃을 당해 패배가 확정된다고 생각한 순간, 아카시 켄지가 볼넷을 얻어내며 1사 만루를 만들었다. 다음 타자 나카무라 아키라가 2타점 2루타를 날리며 6-4로 따라붙었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는 야나기타 유키가 3구만에 우월 쓰리런 라뱅 쓰리런을 날리며 6-7로 게임을 끝냈다. 9회말에 무려 5점을 만드는 괴력을 발휘하며 니혼햄과의 승차를 10.5경기차로 다시 벌렸다. 13일, 전날의 아쉬운 패배를 분풀이라도 하듯 막강한 화력을 선보였다. 4번 우치카와가 부상으로 결장하긴 했지만, 이대호의 3점 홈런 포함 13안타를 몰아치며 12-5로 승리했다. 이로써 닛폰햄과 9.5경기차를 유지했다.

매직넘버가 켜진 이후로 꾸준하고 위닝시리즈를 거두면서 착실하게 매직 넘버를 줄였고 8월말 2위 닛폰햄과의 3연전을 1승1무1패로 무난하게 넘기면서 매직넘버를 18까지 줄였다. 9월 이후에 2위 닛폰햄과 7경기나 남겨두고 있고 전년도 시즌 막판과 같은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경쟁팀들이 반쯤 포기 모드로 들어가고 2위 사수(닛폰햄) + 3위 경쟁(세이부, 롯데) + 탈꼴지 다툼(오릭스, 라쿠텐) 모드로 돌입한 상태라 남은 일정은 거의 신선놀음의 경지. 결국 9월 17일 세이부와의 홈경기에서 3-5로 승리하면서 2년 연속 파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퍼시픽리그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우승을 확정지은 기록은 덤으로 따라왔다.

그러나 우승을 확정지은 이후에는 약간 나사빠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포스트시즌을 앞두고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우승을 확정지을 때까지만 해도 100승은 무리더라도 95승정도는 하지 않겠느냐는 평이 대세였는데 우승 이후 4승 8패의 성적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만날 것이 유력시 되는 닛폰햄과의 맞대결은 물론 감독의 사임발표로 팀 분위기가 거의 와해상태인 라쿠텐을 상대로도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등 기록적인 정규시즌을 보내고도 또 가을의 풍물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그 무시무시했던 타선이 집단으로 슬럼프에 빠져서 득점력이 저하되어 있고, 이 때문에 경기 중반까지 근소하게 리드를 잡고 있다가 후반에 투입되는 불펜들이 얻어맞으면서 역전패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 이는 우승을 눈앞에 두고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였던 전년도 시즌의 재판이라 더욱 걱정이 되고 있다. 우승 때까지 무패를 자랑하던 사파테도 세이브 상황을 지키지 못하고 패전을 기록하는가 하면 모리 등 필승조들이 등판만 하면 난타를 당하면서 과연 포스트시즌을 무사히 치를 것인가 근심을 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시즌 초 팔꿈치 수술을 받은 후 내내 2군에 머물러 있던 김무영이 10월 4일 방출되었다.

10월 14일부터 펼쳐지는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는 치바 롯데 마린즈와 붙게 되었다. 전력이나 승률 차이[33]를 생각하면 소프트뱅크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지만 상술했듯이 소프트뱅크가 우승 이후 경기력이 좋지 못하다는 점, 롯데의 막판 상승세, 무엇보다도 소프트뱅크의 가을야구 울렁증과 5년 전의 악몽[34]을 생각하면 롯데가 불리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에서 선발 다케다 쇼타가 3회초에 2점을 내주는 등 4⅓이닝밖에 못버티는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2번째 투수로 등판한 센가가 1사 2, 3루의 위기를 중심타자 데스파이녜와 크루즈를 잇달아 삼진으로 잡으면서 넘겼다. 2점을 뺏긴 직후인 3회말 야나기타 유키가 동점 2점 홈런으로 부상에서 회복되었음을 확인시켜 준 것도 수확이었다. 그러나 투수들을 짧게 짧게 끊어가는 작전으로 나온 적장 이토 쓰토무의 계투작전에 말려들어 5회이후 타선이 침묵하여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10회 말 1사 만루에서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끝내기 안타로 귀중한 승리를 챙기면서 어드밴티지 포함 2승으로 앞서나가게 되었다.
다음날 벌어진 2차전에서는 2회말 이대호의 선제 솔로홈런으로 앞서 나갔으나, 4회초에 롯데 포수 다무라 다쓰히로의 적시타로 동점을 허용했다. 선발 투수인 릭 밴덴헐크는 비록 동점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6이닝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고, 이대호의 홈런 외에는 출루조차 거의 못하는 답답했던 타선이 6회 2사 후에 7명의 타자가 6안타, 1볼넷으로 연속 출루하면서 순식간에 5득점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밴덴헐크는 일본에서의 첫 포스트시즌 등판에서 승리를 거두며 일본무대 데뷔 이후 무패 행진을 이어나갔고, 이대호는 홈런 포함 2안타 2타점으로 활약했다.
그리고 이어진 3차전에서는 3회 우치카와 세이이치의 적시타와 이대호의 투런 홈런으로 3:1로 승리, 어드벤티지 1승 포함 4전 전승으로 2연속 일본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어 그간의 우려를 기우로 만들었다. 일본시리즈 상대는 교진을 꺾고 올라온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되었다.

일본시리즈에서는 대부분의 예상대로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면서 야쿠르트를 4승 1패로 물리치고 난카이-다이에 시절까지 통틀어서 구단 사상 처츰으로 2연패에 성공했다. 일본시리즈의 내용에 관해서는 2015년 일본시리즈 항목 참조.

2.8.9 2016년 시즌

11.5게임 차를 뒤집힌 역대급 DTD[35]
그래도 A클래스에서 꼴찌로 꼬라박은 왕감독님 마지막 해보다야

시즌 시작 직후에는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4월 7일 기준으로 11전 3승 6패 2무로 5위에 머무르는 중.. 시즌 초반이라 어찌될진 모르지만 작년 꼴찌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가 구단 GM감독이 바뀌자마자 시즌 초부터 치바 롯데 마린즈와 1,2위를 겨룰 정도로 선두권을 달리는 등, 영 좋지 않다.. 계속 이러면 쿠도는 일본판 양상문이 될지도?

그러나 4월 7일 치바 롯데 마린즈전에서 17대8로 시원하게 털린다음에 팀 전체가 각성을 했는지 그 후로 파죽의 6연승을 기록하며 2위로 치고 올라왔다. 비슷한 시기 옆나라의 비슷한 조류상징으로 쓰는 팀17실점 경기 이후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졌다. 특히 구마모토 대지진의 여파로 경기가 취소된 4월 16일의 다음날인 17일 라쿠텐과의 경기에서는 에이스 다케다 쇼타가 6회에 집중타를 허용하면서 대량 5실점. 앞서가던 경기를 뒤집히고 9회초에 쐐기점이 될 수 있는 1점을 추가로 내주면서 4점차로 뒤진 상황에서 9회말에 돌입했는데 2아웃에 대타로 기용된 요시무라 유키가 라쿠텐의 마무리 마쓰이 유키로부터 동점 쓰라린 쓰리런을 기록하고 다시 12회 말에 끝내기 2점 홈런을 기록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요시무라는 시즌 첫 안타와 두번째 안타가 모두 팀을 구원한 홈런. 그리고 4월 19일 선두 치바 롯데 마린즈와이 맞대결에서 승리하면서 파죽의 7연승을 기록하며 선두로 복귀했다. 올라올 팀은 올라온다. UTU이론 양상문은 무슨. 내친 김에 그 다음날까지 이겨서 8연승을 기록.

원래도 시즌 시작하기 전에 거의 우승이 당연시 될 정도였는데 충격적인 대패로 선수단 전체가 각성하고 나서는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17점을 내주는 대패의 다음날인 4월 8일부터 5월 8일까지 1달에 걸쳐 거둔 성적이 무려 17승 2무 '2패'(...) 한 달동안 17승은 팀 전력상 당연하다 쳐도 그 기간 동안 질 경기도 연장전으로 끌고가서 뒤집어 버리거나 아니면 최소한 무승부로 끝내며 고작 2패 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도 호크스의 독주를 막겠다면서 각 팀들이 호크스전에 에이스급 투수들을 집중 투입한 결과가 이렇다. 게다가 호크스는 작년까지 4년연속 10승을 거두던 셋쓰 다다시와 미들맨 에디슨 바리오스가 부진으로 2군에 내려가 있고, 셋업맨 이가라시 료타와 주전포수인 호소카와 도오루는 부상으로 출전도 못하고 있다. 16억엔 짜리 니트 투수는 여전히 2군에서 조정 중이고, 지난 시즌 로테이션의 일각을 차지하던 제이슨 스탠드릿지와 중심타자 이대호는 팀을 떠났다. 전년도 MVP인 야나기타 유키는 상대팀 투수들의 집중견제로 한달 반동안 겨우 2할5푼대 타율에 3홈런만을 기록하면서 출루율만 높이고 있는 중. 전년도 테이블 세터 타순에서 쏠쏠하게 활약을 하던 아카시 겐지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어 있고, 유격수 이마미야 겐타는 여전히 멘도사 라인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2014~15년 동안 부상과 부진으로 주전자리에서 밀려났던 하세가와 유야가 괴물같이 부활하며 이대호가 빠진 5번자리를 메웠고, 역시 전년도 부진으로 고작 2할8푼5리에 그친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며 타선을 이끌고 있다. 릭 밴덴헐크다케다 쇼타는 전년도의 좋았던 모습을 계속 이어가고 있고 5년만에 팀으로 돌아온 와다 츠요시와 전년도 시즌에 가능성을 보여준 센가 고다이가 로테이션의 한 자리를 차지하며 선발진의 구멍을 메웠다. 그리고 2년전만 해도 모국인 베네수엘라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알바로 세미프로 팀에서 뛰던 로베르토 수아레스가 시속 160km에 육박하는 강속구를 뿌려대며 필승조로 갑툭튀. 바리오스의 자리를 완벽하게 메우고 있는 중이다. 사정이 이러니 아직 5월 중순인데 벌써 리그 내 다른 팀들에게 포기 모드가 감돌기 시작하고 있다. 골든위크가 끝난 5월 9일까지 성적이 자그마치 20승 4무 8패로 그나마 찰나의 순간 선두 경쟁을 하던 치바 롯데 마린즈만이 20승으로 승수만 겨우겨우 맞추면서 3게임차로 추격하고 있는 중이다. 롯데도 20승 14패로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는 성적이나 빛이 바래고 있고, 3승6패2무 당시 광희난무하며 상황을 즐기던 2ch의 악플러들조차 할 말을 잃어버린 상태(...)

같은 20승인 상태에서 만난 2위 롯데와의 3연전 맞대결에서 첫 두경기를 승리하면서 위닝시리즈 확정. 시즌 시작하고 한달 반 밖에 안 지났는데 시즌 두번째 8연승을 기록했다. 그나마 승수라도 쫓아가던 롯데가 맞대결에서 패하면서 벌써 2위와의 승차가 5.0게임차. 문제는 이 승차가 좁혀질 가능성이 안 보인다는 것이다. 벌써 현지에서는 사상 초유의 시즌 100승 예상까지 성급하게 나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기세가 수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셋츠의 빈 자리를 3년전의 드래프트 1위이자 2년전 일본시리즈 4차전의 수훈갑인 히가시하마 나오가 완벽하게 메우면서 전력에 빈틈을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교류전 첫 경기인 주니치 드래곤즈 전의 승리로 6월이 시작하기 전에 시즌 세 번째 8연승을 기록하면서 이제 더이상 막을 팀이 없는 상태.

안그래도 강한 교류전인데 전년도보다 다운그레이드 되어보이는 전력으로 오히려 성적은 더욱 업그레이드가 되고 있으니 센트럴리그 팀들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 소프트뱅크와 맞붙는 센트럴리그 팀들은 그저 스윕만 피하면 다행이라는 마인드로 완전히 불가항력의 자연재해 취급을 하고 있다. 그리고 교류전 기간 중에 10년동안 대주자, 대수비 요원 역할에 머물러 있던 기도코로 류마가 뜬금없이 각성하면서 교류전에서 .412, 5홈런으로 MVP급 활약을 보이며 팀 타선을 이끌며 주전자리를 차지하고 덕분에 작년 일본시리즈에서 테이블세터 자리에서 맹활약 했던 후쿠다, 아카시는 2군행 주니치 전 이후 피로 증상으로 말소된 릭 밴덴헐크의 자리는 제구 난조로 2군에 머물러 있던 나카타 겐이치가 준수하게 메워주는 등 될팀될이 뭔지 확실하게 보여주는 중이다. 6월 2째주에는 요코하마와 요미우리를 상대로 연속으로 시리즈를 스윕하면서 시즌이 절반도 안 지났는데 6연승 이상만 네 번을 기록했다. 결국 지난 해에 이어 교류전 성적 18전 13승 4패 1무로 교류전 1위를 차지하였다. 치바 롯데는 퍼시픽리그 순위도 2위, 교류전도 2위. 성적이라도 나쁘면 말을 안 하겠는데 센트럴 리그로 가면 1위를 차지하고도 남는 성적으로 리그 2위, 교류전도 2위

그러나 교류전이 끝나고 6월말부터 패전을 하나씩 적립하더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에 충격적인 스윕패를 당했다. 그동안 쌓아둔 것이 많아 여전히 수위를 유지하고는 있다. 닛폰햄이 13연승을 했는데도 아직도 5.5게임차를 유지하고 있을 정도. 사실 닛폰햄에게 스윕 당한 것 빼면 나머지는 전부다 위닝시리즈인데다 그 스윕패가 5월 초 이후로 약 한달 반만에 처음으로 당한 루징시리즈였다. 닛폰햄이 2위인데다 워낙 기세가 등등한데다 이 팀은 위닝시리즈 정도로는 도리어 승률이 내려가는 상황이라 상대적으로 위기인 것처럼 보이는 것.

8월 들어 정말로 위기다운 위기가 찾아왔다. 2위에서 바짝 쫓아오고 있는 닛폰햄을 상대로 루징하더니 하다못해 이젠 파리그 대표 동네북 오릭스에게 스윕을 당하면서 5연패를 기록하며 닛폰햄에게 3게임 차로 쫓기게 되었다. 결국 8월 18일 세이부 전에서 패하며 4연속 루징 시리즈를 기록함과 동시에 같은 시간 오릭스를 이긴 닛폰햄에게 반 게임 차로 뒤지고 있지만 승률 계산법에 의하는 순위에서는 0.001 차이로 겨우겨우 1위 수성 중이다. 그리고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적지 삿포로 돔에서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 외나무다리 싸움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 3연전에서 2경기 연속 1점차 승리를 기록하며 위닝시리즈를 달성, 일단 한 고비를 넘겼다. 허나 8월 23일부터 치뤄진 라쿠텐과의 3연전에서 루징을 기록하고 닛폰햄은 롯데 3연전을 스윕하면서 결국 8월 25일 1위 자리를 빼앗겼다.

그리고 9월 28일 니혼햄이 오타니 쇼헤이의 1안타 완봉승으로 세이부를 1-0으로 꺾고 매직넘버를 0으로 만들면서 3년 연속 리그 우승에 실패하고, 2위가 확정되었다(...) 초반에 너무 잘나가다가 우승을 놓쳐서 후반기에 팀 전력이 완전히 붕괴한 것 같지만 그래도 승패마진이 +30이다. 결코 못한 시즌이 아니다. 승수도 80승을 넘겼고 승률도 6할이 넘는다. 물론 7월 이후로는 거의 5할 승률에 머물렀지만 여기저기서 부상자가 나오는 악재 속에서도 최대한 버텨내서 6할 승률을 유지했다는 것이 이 팀이 가진 힘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단지 닛폰햄이 초인적인 시즌을 보냈을 뿐.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는 3위 지바 롯데에게 2경기 연속 역전승을 달성하며 2연승을 기록, 일본시리즈 3연패의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삿포로행 비행기에 탑승하게 되었지만 2승 3패로 패배하며 다음시즌을 기약하게 됐다.

2016년 드래프트에서 올해 나온 투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다나카 세이기를 지명했고 교섭권까지 따냈다. 내년 시즌 즉전감으로 쓸 수 있는 투수이며 빠른 강속구를 보유한 우완 투수다.

2.8.10 2017년 시즌

3 유니폼

3.1 현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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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홈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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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원정 유니폼

일병 유니폼
완장 유니폼
험멜 오신다 경례!

소프트뱅크가 새 주인이 된 후 홈경기 땐 SoftBank HAWKS가 써진 백색 유니폼을, 원정 시엔 SoftBank가 써져 있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경기한다. 그리고 얼트 킷으로 팀의 서드 컬러이자 모기업 로고 색에서 따온 노란색이나 과거 난카이 시절의 팀컬러였던 초록색, 과거 다이에 시절의 빨간색 등등 해마다 테마 컬러를 바꾼 상의를 입는다.

소프트뱅크로 새로 출발하면서 바꾼 모자의 챙 색상은 흑색이었으나, 후에 노란색으로 바뀌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3.2 난카이 시절 유니폼

난카이 시절에는 녹색 계열의 유니폼을 입었다. 중간중간 디자인의 변경은 있었지만 녹색을 기본으로 하는 건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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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유니폼으로 좌측이 홈. 우측이 원정.

3.3 다이에 시절 유니폼

3.3.1 1989 ~ 1992년

다이에로 매각된 뒤 후쿠오카 돔에 들어가기 전인 헤이와다이 구장 시절엔 빙그레 이글스이쪽도 마스코트가 조류와 비슷한 오렌지색+검은색 유니폼을 입었는데, 매의 눈(?)을 형상화한듯한 새대가리 헬멧이 압권이었다. 이 당시, 모자는 검은색 바탕이었고 앞의 FDH 로고 색깔은 테두리가 하얀색인 빨강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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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홈. 오른쪽이 원정 유니폼.

3.3.2 1993 ~ 2004년

후쿠오카 돔으로 홈구장을 옮긴 뒤에는 검은색과 빨간색을 위주로 하는 심플한 디자인으로 바뀌었고, 이 역시 소프트뱅크에 팀이 매각되기 전까지 큰 디자인의 변화 없이 10년 동안 입었다. 1990년대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유니폼 중에서 가장 멋진 유니폼으로도 꼽힌 바가 있다. 그리고 헬멧은 기존의 새대가리 매의 얼굴을 형상화한 듯한 헬멧에서 평범한 검은색 바탕에 FDH 로고가 들어가고 챙 부분이 빨간색인 형태로 바뀌었다. 모자의 FDH 부분은 빨강색에서 평범하게 하양색으로 바뀌었으나 챙 부분이 헬멧처럼 빨강색으로 바뀌었다.



위쪽이 홈. 아래쪽이 원정.

4 홈구장 : 후쿠오카 야후 오크 돔

파일:Attachment/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Example.png

후쿠오카 돔 항목 참조.

5 인기

퍼시픽리그 최고의 인기팀

엄청난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팬은 279만명인데 연고지인 후쿠오카 시의 인구수가 150만명(...)[36]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출처 요미우리 자이언츠(889만명), 한신 타이거즈(608만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292만명)[37], 주니치 드래곤즈(288만명)에이어 5번째로 팬이 많은 구단이며 1~4위 구단들이 센트럴리그 소속 구단이라는 것을 보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퍼시픽리그 구단중 1위의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고 볼수있다. 2014년 일본시리즈 우승을 한후에 열린 시내 퍼레이드에서 무려 35만명의 시민이 우승 퍼레이드를 지켜보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는 것도 이러한 인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수 있다.기사, 카퍼레이드 영상(유스트림)

퍼시픽 리그 구단 중 가장 인기가 좋으며, 센트럴 구단이라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의 인기는 호크스보다 뒤쳐지면 뒤쳐졌지 앞서진 않는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팬들의 충성도는 몰라도 홈구장 수용능력 때문에 관중동원 실적에서는 호크스에게 밀린다. 그리고 후쿠오카 팬들은 중간에 10년 동안 홈팀을 잃어버렸던 역사가 있기 때문에 팬들의 팀에 대한 충성도에서도 히로시마 못지 않다. 하지만 본거지가 일본 서쪽 끝에 박혀있기 때문에 예전 홈이었던 오사카를 제외하면 원정에서의 관중동원 능력은 그다지 높지는 않은 편. 그게 수입에 큰 상관은 없겠지만[38]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후쿠오카 돔뿐 아니라 2군 홈구장이자 1군 연습구장인 후쿠오카 간노스 야구장의 경우에도 평균관중수가 1천명을 웃도는 어마무시한 관중동원력을 보여주고 있다.

6 야빠 구단주부자 구단

돈지랄계의 신흥 강자
파리그의 요미우리

일본프로야구계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어께를 나란히 할만큼 돈지랄을 해대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2015년 기준 일본프로야구에서 페이롤(선수총연봉)이 46억34,00만엔[39]으로 전체구단 1위를 기록했다. 그 말은 돈지랄로 정평이 난 요미우리 자이언츠보다도 높다는 소리.[40] 2016년에도 페이롤 41억7577만엔을 기록하며 1위를 차지했다.

한때는 메이저리그휴스턴 애스트로스마이애미 말린스보다도 페이롤이 높게 책정 되기도 했다(...)[41][42]

용병들에게도 아낌없이 쏟아붓고, 선수단 지원도 확실하게 투자하는 편이다. 심지어 이범호의 사례처럼 계약기간 중간에 방출 시켜도 "그래도 너 잔여연봉 다 줄께"라며 남은 잔여연봉을 모두 지급하기도 하고, S급 용병에게는 "우리 100억엔 이상 줄 의향도 있음"이라며 엄청난 제안을 하기도 한다.

또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더불어 유이하게 모든 투수의 데이터를 입력해서 사용가능한 피칭머신을 보유중인 구단이기도 하고, 2016년에는 오타니 쇼헤이만을 분석하기 위해 30억짜리 비주얼 피칭머신을 도입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게다가 2군으로도 모잘라서 3군까지 운용하면서 선수를 육성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한국프로야구의 신고선수에 해당하는 육성선수도 적극적으로 선발해서 선수단 규모만 100명이 넘는다. 또한 2군 및 3군의 육성을 위하여 후쿠오카 시 근교 치쿠고 시에 자비로 그라운드 2면 및 훈련시설, 기숙사를 포함한 새 2군 구장을 2016년에 오픈했다. 여담으로 기존의 2군 구장이던 간노스 구장의 노후화로 새로운 2군 구장을 건설하기 위해서 후보지를 공모했는데 이 때 호크스의 2군 구장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규슈지역의 지자체만 무려 5개현의 29군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선수 선발 및 육성 시스템면에서 단연 일본프로야구 톱이다.

돈지랄+개념찬 구단 운영에 맞물려 구단 성적은 급속도로 상향, 2014년, 2015년 일본시리즈 2연패를 달성하며 명실상부한 일본프로야구 최강팀으로 우뚝 올라섰다.

이러한 적극적인 투자는 그룹 오너인 손정의야빠여서 가능한 일이기도 한데, 팀 전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손정의의 다음 목표가 "세계 최고의 야구단"으로 잡고 있으며 실제로 미국-일본 월드시리즈에 대한 생각을 슬쩍 내비치기도 했다.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일본 복귀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한 이유로 "세계 제일을 노리는 구단이어서 입단했다" 라는 인터뷰를 한것도 바로 이 때문. 그러나 정작 본인은 먹튀로 전락

이쯤되면 팀은 막대한 적자를 보고 그저 야구를 좋아하는 재벌 구단주의 취미와 쌈지돈(...)에 기대어 전력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구단운영은 최근 몇년간 연속으로 흑자(!)를 기록했다고 한다. 2015년에도 매출 200억엔(!)에 인건비를 포함한 운영비는 겨우 70억엔밖에 안들었다고 한다. 구단주의 화끈한 지원에 구단 임직원들도 최대한 폐를 덜 끼치려고 필사적으로 영업활동을 해온 결과라나...그리고 결정적으로 후쿠오카 돔을 매입해서 자가용으로 만들면서 구장으로부터 발생하는 매출을 모조리 구단이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 컸다고 한다. 한국 지자체들도 좀 배웠으면 좋겠다.

7 마스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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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코트, 호크스 패밀리

8 최근 5년간 관중수 추이

2012년2013년2014년2015년2016년
연 평균2,447,501명 (+6.7%)2,408,993명 (-1.6%)2,468,442명 (+2.5%)2,535,877명[43] (+2.7%)2,492,983명 (-0.3%)
일일 평균33,993명33,458명34,284명35,221명[44]35,112명

9 이야깃거리

  • NPB 통틀어 프런트들이 능력있기로 유명하다.
  • 독설로 유명한 노무라 카츠야가 바로 이 팀의 명선수였다.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난카이 호크스에서 플레잉 매니저(감독 겸 선수)까지 뛴 난카이 구단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고 양대리그 분립 이후 최초의 타격 3관왕이자 통산 홈런, 타점 2위. 하지만 부인인 사치요의 막장행각과 난카이 프런트과의 불화로 인해 결국 1977년 20년간 효력이 지속되는 저주를 날리고 시즌 막판에 감독직을 사임하고 난카이를 떠났다. 그 뒤로 난카이는 공식 자료에서 노무라의 존재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다. 후쿠오카로 이전하고 나서는 팬 베이스와 팀 컬러가 완전히 바뀌어서 그냥 언급하기가 어색해져서 언급을 안 하게 됐다. 안습.
  • 하지만 게임에서는 가장 안습인 팀이기도 했다. 이유는 주요 선수들이 유리몸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라면 5경기 뛰고 전치 일주일은 기본일 정도. 가장 강력한 건 스페랑카 타무라 히토시. 코나미의 야구게임인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에서는 특수능력인 부상정도 1이 4명이나 걸리기도 했다. 2도 3명 정도 되고.[45] 이러한 부상병동의 특징은 지금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로 옮아간 듯 하다.(...)
  • 호크스 3군의 경우 초청 팀 자격으로 2012년부터 KBO 퓨처스리그에서 초빙 경기를 20경기 가량 갖는다. 2011 아시아 시리즈에서 준우승에 머무른 것에 대한 영향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대학 팀들하고도 교류전을 치르고 있다. 3군의 한계 때문에 어째 해가 갈수록 퓨처스에서 점점 패전을 더 많이 쌓는다(...)
  • 교류전의 최강자. 센트럴 리그 팀들의 재앙. 2005년부터 2016년까지 12년동안 180승 12무 108패(승률 .625)로 교류전 우승만 6회, 교류전에서 승률 5할을 못 넘긴 것도 단 두 해[46]밖에 없으며, 통산성적에서 센트럴리그 6팀 모두를 상대로 우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요코하마, 야쿠르트, 히로시마는 거의 영양간식 취급이고 요미우리도 이 팀에게는 맥을 못춘다.[47] 통산 승리도 2위 그룹인 롯데, 닛폰햄과 무려 20승 넘게 차이가 난다. 이 쯤되면 리그를 바꿔보는 걸 고려해야하지 않나 싶을 정도.
  • 잘나가기만 할 것같은 이미지와는 반대로 제2홈구장인 기타큐슈시민구장에서는 2011년 8월 31일 이후 이후 8연패(1무 포함) 중이다. 연패 기간동안 25득점 57실점이다. 무지막지한 성적을 내는 2016년 시즌에도 여기서는 어김없이 패배를 당했으며, 일본프로야구 데뷔이후 14연승가도를 달리던 릭 밴덴헐크의 연승행진이 멈추고 첫 패배를 기록한 곳도 여기다. 그러나 2016년 7월 20일 오릭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2011년 4월 이후 기타큐슈시민구장에서 드디어 연패를 끊는 승리를 거뒀다.

10 주요 선수들

10.1 현역

10.1.1 감독

10.1.2 투수

  • 11. 나카타 켄이치
  • 13. 니호 아키라
  • 16. 히가시하마 나오
  • 17. 이와사키 쇼
  • 18. 마쓰자카 다이스케
  • 19. 모리후쿠 마사히코 : 팀을 묵묵히 지탱하는 왼손 중계 투수. 사이드암 스로에 가까운 투구를 하며 주로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했다. 2011년 일본시리즈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와의 대결에서 절체절명의 위기(2대1 리드 상황, 무사 만루)에 등판해 무실점으로 막아낸 '모리후쿠의 11구'가 유명하다.
  • 20. 데라하라 하야토
  • 21. 와다 츠요시
  • 25. 다쓰미 신고
  • 28. 오토나리 켄지
  • 30. 다케다 쇼타
  • 34. 야마다 히로키
  • 38. 모리 유이토
  • 41. 센가 고다이
  • 42. 이이다 유야
  • 44. 릭 밴덴헐크
  • 47. 다카하시 준페이
  • 50. 셋츠 타다시 : 2011년~2015년 5년 연속 두 자리수 승수를 달성한 우완투수. 현재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싱커볼러이기도 하다. 2012년에는 다승왕 타이틀과 사와무라상을 차지했다.
  • 53. 이가라시 료타
  • 58. 데니스 사파테 : 2014년부터 많은 세이브를 기록하며 뒷문을 든든히 지키는 우완 클로저.

10.1.3 포수

  • 8. 츠루오카 신야
  • 12. 다카야 히로아키

10.1.4 내야수

  • 0. 다카타 도모키
  • 2. 이마미야 켄타 : 현재 NPB 대표 수비형 유격수. 팀의 유격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타격은 돋보이지 않지만, '13~'15년 3년연속 골든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171cm의 단신에 본업이 유격수임에도, 고등학교 시절 고시엔 대회에 투수로 등판해 154km/h를 찍은 강견의 소유자.
  • 5. 마쓰다 노부히로
  • 35. 가와시마 게이조
  • 36. 아카시 켄지
  • 46. 혼다 유이치
  • 69. 마키하라 다이세이

10.1.5 외야수

10.2 OB[48]

10.2.1 투수

이나오 카즈히사와 더불어 유일하게 일본시리즈 내리 4승을 혼자서 독식한 투수이자 1959년 첫 일본시리즈 우승의 주역. 일본프로야구 역대 최고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로 꼽힌다
진 바키와 함께 일본프로야구 외국인 선수 중 유이한 100승 투수.
난카이에서 유명해졌지만[49] 밑에 나오는 에나츠 유타카와의 맞트레이드로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 선수생활은 한신 시절이 훨씬 길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한신 OB로 간주되고 있다. 1973년 한큐 니시노미야 구장에서[50] 열린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플레이오프[51] 5차전(10월 24일)에서 9회초 2점으로 앞서갔다가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대타 도긴 히데타카의 홈런으로 한큐에서 1점을 내준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출진해 한큐에서 승부수로 내보낸 대타 타카이 야스히로[52] 헛스윙 삼진으로 아웃시켜 난카이 호크스의 마지막 리그 우승에 공헌했다.[53]
밑에 있는 야마우치 카즈히로, 야마우치 다카노리와 더불어 동일한 시기에 난카이에서 뛰었는데, 심지어 등번호도 위에서부터 18-19-20으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이 셋 모두 당시 난카이의 주축 선발로 뛰었다.
난카이에서 노무라 카츠야의 권유로 마무리 투수로 전향하여 통산 201승 193세이브를 올린다. 소속한 팀마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 우승청부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일본명 가네시로 모토야스. 에나츠와 비슷한 테크로 선발투수에서 구원투수로 전향.
아이돌 그룹 HKT48 멤버 와카타베 하루카의 아버지.
2011년 시즌 종료 뒤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이적
2005년부터 7년동안 180세이브를 올린 프랜차이즈 스타 마무리 투수였지만, 부상으로 2012년 한해를 공치고 난 뒤 FA로 호크스에 복귀한 데라하라 하야토의 보상선수오릭스 버팔로즈가 지명하는 바람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오릭스로 이적하게 되었다.[55] 결국 자신을 버린 소프트뱅크의 처사에 마음이 상했는지 2014년 시즌 후에 FA 자격을 취득했음에도 사용하지 않고 오릭스에 남았지만, 2015년 시즌 부상이 도져서 결국은 시즌 끝나고 은퇴했다.
  • 양야오쉰 (2006 - 2013)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조별예선 1라운드 한국전 선발로 나온 대만 국적의 왼손 투수.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양 다이강의 형이다.
이 팀에 있었던 2011년 다승왕에 등극했던 적이 있다. 2012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 2년 뒤 KIA 타이거즈로 오면서 한-미-일 야구를 전부 다 경험하게 되었다.

10.2.2 포수

현역 시절에는 난카이의 감독-4번 타자-포수로 팀을 이끌었지만 구단과의 불화로 선수생활 말년에는 이팀 저팀 떠돌아다녀야 했다. 선수로서나 감독으로서나 레전드. 일본프로야구 통산 안타, 홈런, 타점 2위. 콩라인
  • 카가와 노부유키 (1980 - 1989)
나미쇼 고등학교(현 오사카체대 부속 나미쇼교교) 시절 동료인 우시지마 가즈히코[56] 함께 배터리를 이루어서 팀을 코시엔 준우승으로 이끈 스타 출신 선수. 고교시절부터 육중한 체형으로 유명했으며 비슷한 체형의 미즈시마 신지의 만화이자 그 만화 주인공인 야마다 타로의 별명을 딴 "도카벤"이라는 별명으로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난카이 호크스 입단 후엔 자기관리를 못해 고도비만이 되면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 결국 1989년 후쿠오카로 이전한 첫 시즌 후에 전력외통보를 받으며 초라하게 은퇴했다. 그 후에도 고도비만을 주체하지 못한 끝에 결국 2014년 심근경색으로 사망.

10.2.3 내야수

과거 난카이 시절 23년 간 팀을 이끌던 명장. 선수 생활도 난카이에서만 한 진정한 호크스맨.
통산 2,000안타, 400홈런를 돌파했고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되었던 3년 동안을 제외하면 줄곧 호크스와 함께 했던 프랜차이즈 스타. 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다이에 시절부터 팀을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거포 타자로 2004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적이 있다. 2015 시즌이 끝나고 팀을 나왔지만 오퍼를 전혀 받지못해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NPB 최초이자 유일한 3년 연속 시즌 120타점을 달성했다.

10.2.4 외야수

한큐 브레이브스의 '세계의 도루왕' 후쿠모토 유타카의 뒤로 일본프로야구 통산 도루 2위(596도루)를 기록한 리드오프. 콩라인 사실 선수생활은 이쪽이 먼저였고 후쿠모토의 롤모델도 이쪽이었지만 왠지 인지도가 떨어져서인지(...) '음지의 도루왕'이라는 비운의 별명이 이후에 붙여졌다. 이쪽도 츠루오카 카즈토처럼 선수, 코치, 감독 생활을 모두 호크스에서 보냈다. 그러나 선수 은퇴 후 바로 오른[57] 감독으로서는 재임기간(1978~1980) 동안 5위 이하만 찍으며 호크스의 20년 비밀번호 시대를 연 인물이기도 했다(...)[58]
선수 생활은 난카이에서 했지만, 그보다는 닛폰햄 파이터즈의 장기집권 감독으로 더 유명했다. 이쪽도 별명은 '오야붕'
40대에 홈런왕을 차지한 '불혹의 거포'.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 타점 3위에 랭크되어 있는 강타자로 그 위에는 오 사다하루노무라 카츠야 밖에 없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홈런, 타점 2, 3위를 배출한 무시무시한 팀이다.
재일교포로 한국명 박종률. 호크스의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중반까지 리드오프를 맡았던 선수다. 빠른 발에 통산 2,000 안타를 기록할 만큼 컨택트 능력이 좋았다. 현재 일본프로야구에서는 최고의 타격코치로 손꼽힌다. 훗날 오릭스 블루웨이브에서 타격코치로 재직했을 때 스즈키 이치로를 지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외야수, 2루수, 유격수 등으로 활약하며 암흑기였던 호크스를 지탱한 선수. 무궁한 성장이 기대되던 선수였으나 1985년 1월 급성 심부전으로 죽고 말았다.
일명 카즈 야마모토. 사사키 마코토와 더불어 80년대 중반 ~ 90년대 초반의 호크스 타선을 대표하던 강타자. 2번의 방출을 딛고 일어난 근성의 사나이로, 94년에는 37세의 나이로 시즌 막판까지 스즈키 이치로와 수위타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나 당시 에이스였던 무라타 가쓰요시와 더불어 아키야마 코지, 와타나베 도미오 등이 엮인 2대3 트레이드로 세이부 라이온즈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른바 세기의 트레이드의 주인공.
난카이 호크스의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는 최후의 현역 선수. 아울러 팀이 다이에의 팀 인수로부터 소프트뱅크로의 매각 때까지 15년간 뛴 호크스 역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은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했다. 극단적으로 배트를 짧게 잡는 타격폼으로도 유명했다.
1993년 시즌 후 위의 사사키 마코토가 포함된 이른바 세기의 트레이드로 세이부에서 다이에로 이적. 그 후 9시즌 동안 뛰면서 리그 우승 2회, 일본시리즈 우승 1회에 공헌했고, 2009 ~ 2014년까지 소프트뱅크 감독으로 리그 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 2회를 달성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왕, 타점왕, MVP를 수상한 경력이 있는 거물급 용병. 일본으로 오기 직전 해에도 타율 .326, 30홈런을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랄맞은 성질 때문에 어떤 팀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메이저리그 파업 여파로 94년 시즌이 중단되고 95년 시즌도 개막이 불투명해지자 다이에 호크스와 계약했다. 개막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리면서 일본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메이저리그가 재개되자 태업을 일삼다가 결국 시즌 중반에 멋대로 귀국해버렸다. 일본에서의 성적은 37경기 출전 타율 .300, 8홈런, 28타점. 일본야구 용병 사상 최악의 먹튀 중의 하나로 당시 다이에 호크스의 무모한 돈지랄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에 복귀해서는 99년까지 뛰었다..

10.3 준영구결번

역대급 선수이다보니 호크스 구단에서 당연히 아키야마의 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고사하고 아키야마가 은퇴한 그 다음 시즌인 2004 시즌에 시바하라 히로시(柴原洋)가 아키야마에게 허락을 받아 1번을 쓰고 시바하라가 은퇴한 후에는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그 번호를 물려받았다.
1990년대 말~2010년대에 호크스의 전성기를 이끈 3루수. 2013년부터는 일본야구 대표팀의 감독을 맡고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무상 트레이드로 잠시 호크스를 떠났던 2004~2006 시즌에 결번으로 처리했는데 후에 고쿠보가 호크스로 복귀하면 다시 이 번호를 쓰기로 약속했다. 결국 2012 시즌이 끝나고 고쿠보가 은퇴하면서 2013년부터 9번을 영구결번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일단 공식 발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2015 시즌부터 야나기타 유키가 이 번호를 물려받는다고 한다. 9번도 1번과 같이 팀내 주축 선수에게 물려주는 영광의 번호로 취급할 모양.
  • 15. 후지이 마사오
1999 시즌 '불꽃의 계투'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오래간만에 호크스가 일본시리즈를 우승하는데 공헌한 투수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0년 10월에 요절하게 되는데, 이후 그가 사용하던 15번을 단 선수가 없어 사실상 결번처리를 했다.
  • 90. 카게우라 야스타케
실존 선수가 아니라 만화 캐릭터에게 영구결번을 준 특이한 케이스. 미즈시마 신지(水島新司)의 야구만화 '아부상(あぶさん)'의 주인공으로, 이 만화가 연재된 1973년부터 현재까지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10.4 구단 출신 메이저리거

사상 최초의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이다. 난카이 호크스 입단후 꽤 촉망받는 신인이었으며, 그 자질을 높게 평가해서 1년차 시즌인 1963년 시즌 후에 미국 야구 배워오라고 샌프란시스코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 야구 유학을 보냈는데 거기서 꽤 쓸만한 활약을 해서 자이언츠 구단이 메이저리그로 콜업을 해버렸다(...) 중간 계투로 2년 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면서 통산 6승 1패, 방어율 3.43의 성적을 남겼다. 여기에 고무된 자이언츠 구단은 무라카미를 더 데리고 있고 싶었으나 문제는 여전히 난카이 호크스와 계약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는 것. 심지어는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있던 시절에도 여전히 일본에서는 난카이 소속 선수로 등록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이중계약(...) 여차하면 난카이 구단과 자이언츠 구단 사이에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었으나 애초에 난카이 구단이 무라카미를 보낸 것도 자기 팀 소속 선수로서 야구유학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고, 마이너리그에서의 활약에 고무된 자이언츠 구단이 멋대로 메이저리그까지 콜업을 해버린 것이다. 양 쪽이 서로의 제도에 대해서 무지하고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던 1960년대니까 일어날 수 있었던 일. 결국 원 소속구단인 난카이 구단의 무라카미에 대한 소유권이 인정되었고 난카이 구단은 돈들여서 야구유학 보낸 유망주를 써먹지도 못할까봐 부랴부랴 무라카미를 귀국시켰다. 난카이 구단의 근시안적인 소인배 근성 때문에 이렇게 사상 최초의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는 불과 2년만에 짧은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해야 했다. 그 후 두 번째 아시아출신 메이저리거가 나타날 때까지 무려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야 했다. 일본에서는 18년간 3개구단에서 뛰면서 통산 103승 82패 30세이브, 방어율 3.64의 성적을 올렸다.
  1. 공간 차지 비율을 줄인 원형 로고도 존재하며, 유니폼 오른팔에 붙어있다. 4573192370535.jpg 이런 식으로.
  2. 현지 명칭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이다.
  3. 차륜(車輪)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난카이가 철도회사이니 당연히 나올 이름. 하지만 1년 6개월 밖에 쓰지 못한 이유는 그 당시 영어 속어로 여성의 성기를 지칭했다고 하니...철컹철컹
  4. 모회사 난카이가 긴테츠와 합병하며 모기업 변경. 전쟁 후 난카이가 독립한 뒤 긴테츠도 오사카프로야구단을 만들게 된다.
  5. 일본의 소매/유통업 회사. 버블경제 당시 막강한 자금력 등을 이용하며 그 강력한 위세를 떨쳤으나 버블경제 후 경제악화로 인해 흔들리다가 2004년 파산해 호크스를 소프트뱅크에게 넘겼다. 현재도 있으나 이온의 자회사로 전락했고 전성기에 비하면 꽤 그 위세가..
  6. 전후기리그제 성적도 포함.
  7. 이 명칭은 원칙에서 벗어난 표기다. 한국 스포츠 언론에서는 팀명을 2어절로 쓸 때 3어절 이상이 되면 팀명에 지역명이 있으면 지역명 + 기업명 표기를(예: 부산 KT), 지역명이 없으면 주 기업명 + 팀명 명(예: 퉁이 라이온스)로 하는 원칙이 있다. 즉, 타종목 원칙에 맞춘다면 현지 표기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가 된다.
  8. 라이온즈를 빨리 잊게 하려고 그랬는지 연고이전 직후부터 후쿠오카를 붙였다. 허나 응원가에서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라고 부른다.
  9. 노무라 카츠야는 1970년부터 1977년까지 난카이 호크스의 감독, 포수, 4번타자라는 3가지 중책을 맡으면서 팀을 이끌었다. 1973년에는 난카이에게 마지막 퍼시픽리그 우승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1977년 시즌 2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내 노무라 사치요의 막장행각으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난카이 선수들 가운데 노무라의 감독 해임에 반대하고 있던 가시와바라 준이치에나츠 유타카는 각각 닛폰햄 파이터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이적했고 코치 다카바타케 미치히로도 난카이를 퇴단하여 노무라와 함께 롯데 오리온즈로 이적했다.
  10. 참고로 구단 사상 B클래스 성적을 맞은 적이 32번인데 이 중 20번이나 차지하는 게 바로 이 기간이다!
  11. 화차(소설)에 이런 기묘한 상황이 등장 하기도한다.
  12. 홈구장으로 쓰던 헤이와다이 구장에서 보수공사 중 옛 고료칸 유적지가 발견된 탓도 있었다. 결국 헤이와다이 구장은 호크스가 후쿠오카 돔으로 홈구장을 옮긴 후 고교야구나 사회인야구 예선전 등에 쓰이다가 호크스의 20년 비밀번호(...) 마지막 해인 1997년을 끝으로 철거. 현재는 그 자리에 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3. 일본시리즈에선 카와카미 테츠하루가 이끌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패배했다.
  14. 이전에는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세이부를 강팀으로 육성한 바가 있었다.
  15. 참고로 같은 기간동안 A클래스를 딱 2번 기록한 안습 오릭스 버팔로스의 2000년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A클래스가 이 해이다.
  16. 이것 때문에 오 사다하루는 그 해를 끝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너무 많은 연세 탓도 있었지만.
  17. 그러나 정작 호크스를 강팀으로 만들어준 네모토 리쿠오는 그해 4월 급작스럽게 사망하여 이 우승을 보지 못했다.
  18. 당시 요미우리 자이언츠나가시마 시게오오 사다하루가 일본시리즈에서 만나 "ON 시리즈"라 부를만큼 드림매치였다. 결과는 나가시마의 요미우리가 4승 2패로 우승했다.
  19. 1~2차전에서 우승을 거뒀지만 이후 3연패를 당하며 역스윕을 당할 뻔했다. 그러나 6~7차전에서 겨우 우승을 하여 일본시리즈를 우승했다. 여담이지만 2009년 한국시리즈처럼 1~7차전 전부 팀이 우승한 경기였다.
  20. 다이에의 매각과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의 해체 때문에 NPB 일각에서는 10개 구단으로 프로야구를 재편하고 단일리그제로 환원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때문에 2004년 선수회와 팬들을 중심으로 거센 반대운동이 있었다. 후루타 아츠야,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오릭스 버팔로즈 등 항목 참조.
  21. 수정 전 클라이맥스 시리즈라고 되어있었으나 클라이맥스 시리즈는 2007년 센트럴리그에서 이 플레이오프제를 도입하면서 양측에서 바꾼 이름이다. 이전엔 퍼시픽리그에서만 단독으로 플레이오프를 도입했다.
  22. 당시 사이토는 마쓰자카 다이스케, 다르빗슈 유 등에게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받는 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하나였지만, 고질적인 유리몸으로 인해 6일 로테이션을 엄수하고 있었다.
  23. 이 결승점 득점 과정은 만화 다이아몬드 에이스 22권의 도쿄 지역예선 결승전 9회말에 그대로 오마쥬된다. 그리고 이 장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이 Second Heaven이다.
  24. 사이토 가즈미는 이후 어깨부상이 악화, 2007년에 6승을 올린 후 5년간의 재활끝에 은퇴하고 만다. 현재는 소프트뱅크 코치로 재직중.
  25. 그 대회에서 도호쿠를 꺾은 상대는 2년 전 후쿠오카에게 패한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스다. 적어도 우린 퉁이는 이겼다
  26. 다음해 연봉 450만달러의 옵션도 있다.
  27. 개막전 1패 후 본인이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서 매니 아이바, 브라이언 배니스터에 이은 초먹튀 인증.
  28. 전년도 일본시리즈에서 노아웃 만루를 무실점으로 막는 큰 활약을 보였다. 1,2차전 홈경기를 패배한 후 분위기를 다시 호크스쪽으로 끌어오는데 결정적인 활약이었다.
  29. 스탠드릿지의 퇴단으로 빈 한신의 외국인 투수 슬롯에 오승환이 들어갔다.
  30. 9월 21일까지 88승4무39패로 승률 6할9푼3리를 기록했었다. 그 이후에 삽질로 최종적으로는 6할4푼7리까지 후퇴하기는 했지만.
  31. 타율 .368(리그 1위) 출루율 .459(리그 1위) 장타율 .610(리그 2위) 홈런 13(리그 5위) OPS 1.069(리그 1위) WAR 4.1(리그 1위) - 6월 10일 시점
  32. 이 중 스탠릿지는 10승을 찍는 등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자리가 없어서 결국 시즌 종료 후 치바 롯데 마린즈로 갔다.
  33. 승차가 18.5 게임차다! 같은 해 KBO 리그의 1위 삼성 라이온즈와 5위 SK 와이번스의 승차가 18게임차 인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차이다.
  34. 2010년 퍼시픽 리그 3위였던 롯데가 일본시리즈를 재패한 일명 위대한 하극상 때의 퍼시픽 리그 우승팀이 소프트뱅크이다.
  35. 딱 20년 전인 1996년 센트럴 리그에서 똑같은 일이 있었다. 당시 뒤집힌 팀은 故 미무라 토시유키가 이끌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 뒤집은 팀은 나가시마 시게오가 이끌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 역전승리는 메이크드라마 라고 불리며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근데 문제는 진정한 승자되지 못했다는 것
  36. 후쿠오카 자체는 인구수 5백만이 넘는 꽤 큰 현이다. 그리고 중심 도시가 하나만 있는 다른 현과는 달리 후쿠오카는 후쿠오카시로부터 불과 1시간 거리에 인구 100만에 육박하는 기타큐슈 시가 있기 때문에 배경인구는 히로시마나 센다이보다는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후쿠오카 돔을 채우는 관중들 중에서 기타큐슈 시에서 관전하러 오는 관중의 비중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기타큐슈 시민들도 후쿠오카 소속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쿠오카의 이름을 쓰는 팀 이름에 거부감이 없는 것도 팬 베이스 구축에 도움이 되고 있기도 하다.
  37. 이쪽은 심지어 연고지인 도시 자체를 뛰어넘어 자체의 인구를 뛰어넘는다!(히로시마 시의 인구가 약 120만명, 히로시마 현의 인구는 약 282만명)
  38. 일본프로야구에서 입장권 수입은 홈팀 쪽이 거의 먹지, 원정팀에게는 원정 서포터즈석 판매 수와 상관없이 돈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39. 한화로 약 463억
  40. 2015시즌 교진군의 페이롤은 44억4,930만엔이다.
  41. 2014년 기준으로 교진군은 46M, 호크스는 40M을 기록했는데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1M(...), 마이애미 말린스는 35M을 기록했다. 뭐, 휴스턴의 경우에는 2008년에 KBO 리그 팀들보다 적은 15M을 쓴적도 있으니...
  42. 다만 2015년에는 휴스턴과 마이애미가 투자를 해서 메이저리그 최저 페이롤 구단인 마이애미가 70M으로 일본프로야구 구단들과 큰 차이를 내고 있다.
  43. 구단 신기록
  44. 구단 신기록
  45. 이 수치가 높을 수록 부상당하기 어렵다.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5거나 아예 철인이란 전용 특기가 있다.
  46. 2007, 2012.
  47. 2015년까지 통산 상대전적은 다음과 같다. 요미우리 - 32승18패, 히로시마 - 31승4무15패, 주니치 - 28승2무20패, 요코하마 - 34승1무15패, 야쿠르트 - 30승2무18패, 한신 - 25승3무22패. 그나마 한신이 5할 가까운 승률로 체면치레는 했는데 얘들은 정작 중요한 무대에서(...)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맥을 못 췄다.
  48. 괄호 안은 재적연도
  49. 이전 서술에 난카이에서 데뷔했다고 되어있었으나 사실 데뷔는 토에이 플라이어즈에서 했다. 그러나 별다른 활약을 못해 결국 난카이 호크스로 트레이드되었는데..여기서 확 각성했다.
  50. 한큐-오릭스 브레이브스의 홈구장. 코베 이전 후 경륜장(문서 수정 전은 경마장으로 되어있었음) 등으로 쓰이다 2005년 철거.
  51. 퍼시픽리그에서 단독으로 1973~1982년까지 실시한 전후기리그제의 첫 플레이오프였다.
  52. 대타 홈런 세계 최다 기록(27개) 보유자. 대타로 활약하다가 1975년 퍼시픽리그지명타자제가 생기자 지명타자로 1982년 은퇴 때까지 맹활약했다.
  53. 근데 에모토는 불과 이틀 전에 3차전(10월 22일)에서 선발투수로 출진해 우승한 바 있다.
  54. 마이니치-다이마이의 강타자이자, 오치아이 히로미츠 항목에서 언급되는 이와는 동명이인의 투수이다. 한자가 다르다.(타자:山内一弘, 투수:山内和宏)
  55. 아무리 부상이 있다고 해도 팀의 마무리 투수였던 선수를 그렇게 간단하게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냐는 까임에, 프런트는 재활때문에 2013년에도 시즌 초반에는 등판 가능성이 낮고 FA 자격 취득이 1년밖에 안 남은지라 설마 데려가겠냐는 생각에 차라리 유망주 한명을 더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전략적 선택을 했는데 정말로 데려갈 줄은 몰랐다고 답변했다(...) 스기우치 건 때도 그렇고 프런트의 병신인증. 에라이
  56.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감독. 부임 첫해인 2005년 팀을 3위로 이끌었지만(그리고 이것이 2015년까지의 마지막 A클래스였다!) 이듬해엔 도로 꼴찌로 처박으면서 해임당했다(...)
  57. 노무라 카츠야가 구단과의 불화로 난카이를 떠나면서 급히 감독이 필요해지자 프런트에서 선수 은퇴시키고 바로 임명한게 히로세였다(...) 그리고 비밀번호 개막
  58. 사실 이건 준비도 안 된 사람을 급하다고 은퇴시키고 바로 임명한 ㅂㅅ프런트가 문제지만.. 거기다 난카이도 이 시점부터 재정이 안 좋아졌다.
  59. 계약은 했으나 부상으로 계약기간 내내 한 경기도 등판 못하고 방출. 그 후 시카고 컵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고 트리플A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로 승격하여 컵스에서 메이저리그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