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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于吉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중국 후한 시대의 도사. 낭야 사람.

동한의 순제(順帝) 이전부터 살았다고 하는데 이 기록이 맞다면 삼국지에서 나왔을 때 나이는 100살은 거뜬히 넘었다는 의미다.

2 정사

후한 초기에 약초를 캐다 문득 도를 깨달은 백화(帛和)라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우길에게 2부 10권으로 된 유명한 도술서 태평요술을 주었고, 그는 당시의 도교 사상들을 정립하고 민간요법 등을 폭넓게 담아 도교에선 신서(神書)라 칭해지는 태평청령도 170여 권으로 다시 펴냈다.

제자들을 거느리고 각지를 방랑하며 신비한 도술을 구사해 많은 백성들을 구했기 때문에 그 명성이 드높아 추종하는 세력이 많았으며, 그의 제자로는 궁숭(宮崇), 양해(襄楷) 등이 있어 이 책을 궁숭은 순제, 양해는 환제에게 바치려 했다고 전해진다.

이익이 저술한 성호사설의 11권에서는 좌자와 함께 괴이하면서도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무리라고 까였다.

수신기에서는 손책이 우길의 저주를 받아 죽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애초에 우길과 손책의 시대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는 만큼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손책이 그전부터 영토 내의 태평도 교단을 탄압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1]이기 때문에 손책이 요절한 것을 보고 태평도 측에서 지어내서 퍼트린 이야기로 추측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29편에서 홀연히 등장해 손책에게 죽고 나서 혼령이 되어 그를 저주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나관중손책의 죽음을 묘사하면서 우길이 죽는 과정은 강표전, 우길이 죽은 후의 이야기는 수신기의 설화를 따온 것이다.

손책이 원소와의 동맹을 축하하는 잔치를 벌이던 있는 와중에 우길이 손책의 잔치에 참석한 백성들과 장수들의 숭배를 받자 사이비 교주가 아니냐며 당장 처형하라고 한다. 그러나 신하들을 비롯해서 어머니인 오국태, 아내인 대교까지 말리니 손책은 더욱 빡친다. 그러다가 여범이 "가뭄이 들었으니 비를 내리게 하라고 하시지요. 비를 내리면 살려주고 못 내리면 죽이면 됩니다."라고 해 나중에 뒷공론을 못하게 해 그나마 살릴 가능성을 높였다.

옥에서 우길은 "내 명이 다했으니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자 간수가 "비를 내리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우길은 "아무리 비를 내리가 한 들 나의 천수가 다했으니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우길은 진짜로 비를 내려줬고 사람들이 계속 우길을 칭송하자 열받은 손책이 부하를 닥달하여 우길을 죽이게 한다. 그 이후는 우길의 환상이 현실이나 꿈에서 나타나서 농락하는 통에 손책이 시달린다.

참고로 우길을 죽였던 부하는 우연히도 손책의 손에 죽었는데, 손책이 우길의 환상을 보고 칼을 던졌다가 날아간 칼이 그 부하의 목을 잘라 머리의 일곱 구멍에서 피를 뿜으며 죽었다.

결국 손책은 임종 시에 이성을 되찾고 오국태, 손권, 대교 등에게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4 미디어 믹스

우길/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1. 사실 장각이 태평도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 시기에 태평도=황건적으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태평도 측에서 딱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고 해도 황건적과 싸잡아서 탄압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