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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左慈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중국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 는 원방(元放). 여남 사람.

2 정사

박물지에서는 조조가 초대한 방사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오각선생이라는 별호로도 불린다.

어려서부터 오경과 아울러 천문과 참위설에 밝았고, 당시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한나라의 국운이 쇠해 천하에 대란이 얼아난 것을 알았다. 그는 벼슬이 높은 자는 위험하면서 재물이 많은 자는 죽을 것이라 탄식했으며, 도술을 배워 귀신을 부리고 앉은 자리에 음식을 차려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을 천주산에 있었던 석실에서 참선과 기도로 보냈다. 수행의 끝에 그는 구단금액경을 얻어 온갖 변화를 부렸으며, 이 사실을 안 조조는 좌자를 불러 그를 방에 가두면서 사람을 시켜 지켜보게 했다. 곡식을 일체 끊고 하루에 물만 두 되만 줬는데, 1년이 지나 나왔을 때 좌자의 얼굴은 변함없이 여전했으며, 이에 감탄한 조조가 도술을 배우고자 했다. 이에 좌자는 거절했고, 이에 노한 조조는 그를 죽이려고 했다.

이 같은 반응을 예상한 좌자가 떠나려하자, 조조는 전송을 핑계로 술자리를 마련했다. 좌자가 조조에게 술잔을 나눠마시자고 했는데, 그 날은 날씨가 추워 술을 데웠지만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았다. 좌자가 칼을 뽑아 술을 저었더니 순식간에 칼이 다 녹아 없어져 마치 사람이 을 가는 것과 같았다. 곧 이어 좌자는 비녀를 뽑아 술잔의 가운데에 금을 그었고 술잔은 반으로 잘린채 나뉘어졌다.

이를 불쾌히 여긴 조조는 그 잔의 술을 굳이 마시지 않으려고 했는데, 좌자는 다른 반쪽의 술도 자신이 마시겠다면서 다 마셨고, 마신 뒤 그 잔을 대들보로 향해 던졌다. 던져진 잔은 부딫힌 뒤 떨어지지 않고 대들보에 매달려 흔들렸지만 떨어지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들이 그 술잔을 쳐다보는 사이에 사라졌다.

겁을 먹은 조조가 좌자를 잡아 죽이도록 사람을 시켜 명령했는데, 좌자는 양의 무리 속에 양으로 변신하여 그 무리 속에 섞였다. 추격하던 자는 그 광경을 보고 좌자가 으로 변신한 후 몸을 숨긴거라 여겼지만, 도저히 분별할 수 없어 잡으러 온 관리가 꾀를 내어 "천제께서 좌 선생을 보고자 하니 잠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주어도 힘들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때 양의 무리 가운데 큰 양이 무릎을 꿇더니 말을 하자,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 양을 좌자라 여겨 잡으려고 했지만, 갑자기 모든 양들이 무릎을 꿇었고, 동시에 좌자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면서 결국 추격하는 자는 잡는 것을 포기했다.

어떤 이가 좌자가 있는 곳을 알고 있다고 조조에게 말하자, 그는 그 말을 따라 곧 좌자를 잡아 가두었다. 조조의 명에 의해 옥의 관리가 그를 심문하고자 했지만, 건물 안과 문 밖에 두 사람의 좌자가 있어, 구분을 못하자 끌어내 죽이려고 했다. 그런데 순식간에 좌자가 일곱 사람으로 변했고, 관리들이 그중 여섯 사람을 잡고 한 명은 놓쳤다가 나머지도 모두 도망갔는데, 곧 시장의 사방 관문을 모두 닫고 사람들의 통행을 수색하자, 곧 어떤 이가 좌자를 알지 못해 생김새를 물었다. 사람들은 좌좌는 애꾸눈에 푸른 갈건을 썼고, 홑겹의 짧은 옷을 입었다고 전해줬다고 한다.

곧 사람들이 주변을 수색하니, 시중 사람들이 모두 홑겹의 짧은 옷을 입고, 외눈에 갈건을 모습으로 변해 누가 진짜 좌자인지 구분할 수 없었으며, 어떤 사람이 그를 찾아냈다며 그의 머리를 잘라 조조에게 바치자, 그 머리는 하나의 묶은 풀 한 묶음일 뿐이었다.

형주 목사 유표가 좌자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자라 여겨 죽이려고 하는 것을 좌자를 이를 알고 있었는데, 유표가 많은 군사를 자랑했다가 도술을 보고 싶어해 좌자를 초대하자 좌자가 유표의 군사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유표가 좌자의 요청에 따라 술 한 그릇과 포 한 묶음을 가져왔는데, 십 여명이 함께 들어도 들어올리지 못하자 직접 들고 와서 칼로 포를 베어 땅에 던지면서 백 명에게 술과 포를 날라 군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했다.[1]

사람마다 석 잔의 술과 포 한 조각씩 먹었지만, 그 맛은 보통의 술이나 포와 똑같았으며, 만 여명에게 나눠줬는데도 술과 포의 양은 줄어들지 않았다. 빈객도 수십 명이 있어 모두가 크게 취할 정도로 마시고 먹었으며, 이에 크게 놀란 유표는 끝내 좌자를 해칠 뜻을 버리고 좌자를 며칠간 우대했으며, 그 후 좌자는 동쪽의 오나라로 들어갔다.

오나라에 도착한 그는 도술에 능한 서수라는 자를 찾아갔는데, 그의 손님이 도술로 서수가 없다고 속이자, 그 손님들의 소가 버드나무 꼭대기 가지 위를 걷게 했다. 이는 곧 착시현상으로써, 나무 위로 올라가서 소를 보면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지만, 다시 내려가서 나무 위를 보면 소가 그 위를 걷고 있는 기이한 현상이었다. 또한 좌자는 그 손님들의 수레바퀴에 가시가 나서 베어도 끊임없이 자라나게 하면서 물러났다. 손님들은 좌자가 찾아온 것이라는 서수의 말에 뒤쫓아 머리를 조아리면서 죄를 빌었더니, 수레와 소가 제자리에 돌아와 묶여 있었으며, 수레바퀴에서 자라던 가시들이 사라졌다.

손권을 만나게 되어 좌자에게 도력이 있다는 것을 안 손권은 그를 예로 존중했다. 하지만 손권의 신하 사송[2]이 조조, 유표가 좌자가 민중을 미혹한다고 미워했다는 상소를 손권에게 올려 좌자를 죽이도록 유도했는데, 이에 손권은 좌자에게 나들이에 함께 나서기를 청하면서 몰래 뒤에서 찔러 죽이려고 했다. 나들이에서 좌자는 나막신을 신고 청죽장을 짚으면서 천천히 앞서 걸었는데, 항상 뒤따르는 말과 1백의 거리를 유지했으며, 말에 채찍을 가하면서 무기를 들고 쫓았지만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냥 손제리가 우길 죽인 손책꼴 나면 안되나

좌자는 갈현에게 곽산에 들어가 구전단을 만들어야 겠다고 했고, 단약을 완성하자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고 하며, 위의 일화들은 모두 신선전에서 나온 내용들이다.

이익이 저술한 성호사설의 11권에서는 우길과 함께 괴이하면서도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무리라고 까였다.

북위 시절의 승려인 혜생과 송운의 인도 유학담을 담은 승혜생사서역기에도 언급된다. 왕이 중국은 어떤 나라이냐고 묻자, 혜생은 주공, 공자, 장자, 노자를 논하고, 이후 봉래산 꼭대기에 있다는 신선과 성자와 은으로 된 신전과 금으로 된 신당을 논했다. 그리고 그는 화타의 의술, 관로의 점복술, 좌자의 방술을 논했다. 이로 미루어 보아 북위 시절에 좌자는 이미 대표적 방술사 중 하나로 여겨졌던 듯하며, 최소한 혜생의 주변 지역에서는 최고의 방술사로 여겨졌던 듯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정사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다.

한 쪽이 눈이 멀었고 한 쪽 다리를 절며, 머리에 흰 덩굴로 얽은 관을 썼고 푸른 옷을 걸친 것으로 나온다. 또한 조조와 같은 고향인 초군 패현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라고 소개되어있다.

조조가 강동의 온주에서 나는 [3]을 얻으려고 하자, 손권은 큼직한 귤 40여짐을 골라 다른 선물들과 함꼐 업군으로 보냈다. 이를 호송하며 나르던 짐꾼들이 산기슭에서 잠시 쉴때 계산해보길, 쉬기전 각자 짐을 진채 5리씩 걸었는데, 도사가 지던 짐은 오히려 가벼워져 사람들이 놀라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좌자는 짐꾼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면서 위왕과 같은 안휘 사람이니 위왕을 만나면 인사드린다고 전해달라고 했으며, 짐꾼들이 업군에 이르러 조조에게 귤을 바쳤는데, 귤을 까보니 속에 살은 없는 빈 껍질 뿐이었다.

조조가 깜짝 놀라 정황을 묻자 짐꾼이 이전의 좌자에 대한 기이한 일을 알려줬는데, 마침 자신을 찾아온 좌자에게 어떤 요사한 술법으로 과일을 채갔냐고 묻자, 좌자는 손권으로부터 진상된 귤 하나를 집어 벗겼더니 안에는 맛 좋은 속살이 있었다. 조조가 크게 놀라 자리를 내주어 앉게 하자, 좌자는 술과 고기를 청했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술과 고기를 가져왔다. 놀랍게도 좌자는 술 다섯 말을 마시고도 취하지 않았고, 양 한 마리를 다 먹고도 전혀 배불러 하는 기색이 없었다.

조조가 어떤 술법이 있어서 그 정도에 이르렀냐고 묻자, 서천의 가릉 아미산에서 30년간 도를 배워 둔갑천서 세 권을 얻은 사실을 얘기하면서, 조조에게 아미산에 들어가 수행할 것을 권했다. 조조가 천하를 걱정하자 그는 유비에게 천하를 내주라며 조조를 타일렀고, 이에 진노한 조조는 좌자를 유비가 보낸 간첩으로 몰아 사람을 시켜 좌자를 고문하고 힘껏 때리게 했다. 그러나 좌자는 오히려 꾸벅꾸벅 졸기만 했고 이에 분통이 터진 조조는 좌자에게 큰칼을 쓰 게하고 그 칼을 쇠못과 쇠사슬로 고정시킨 뒤 독방에 넣어 감시하게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좌자로부터 큰칼과 사슬들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고, 그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었다.

좌자는 7일 동안 굶었음에도 불구하고 땅 위에 단정히 앉았는데, 얼굴은 오히려 붉어지며 홍조를 띠었다고 한다. 이를 관찰한 옥졸이 조조에게 보고해 조조가 좌자에게 이에 대해 물었더니 좌자는 "수십 년을 먹지 않아도 별 탈이 없거나 하루에 양 천 마리를 줘도 다 먹을 수 있다"며 조조를 안심시켰다. 어느날 조조가 왕궁에서 큰 잔치를 벌이자 그의 요청에 따라 좌자는 먹과 붓을 가져와서 회칠한 벽에 한 마리를 그린 뒤 도포의 소매로 스쳤는데 용의 배가 갈라졌고 그 갈라진 틈으로 좌자는 손을 넣어 피가 흥건하게 흐르는 을 꺼냈다고 한다. 조조는 이를 못 믿겠다고 했으나, 좌자는 현란한 말빨로 버로우시켰다.

어느 날에는 날이 비정상적으로 차가운 나머지 풀과 나무들이 얼고 메말랐는데, 조조가 모란꽃을 보고 싶어했다. 이제 좌자는 그의 능력을 발휘해 물에 입을 머금었다가 커다란 화분에 뿜자 모란꽃이 자라났다고 한다. 어느 날은 조조의 요청으로 1000리나 떨어진 송강(松江)의 농어[4]를 가져오기 위해 낚싯대로 연못에서 큼직한 농어 수십 마리를 낚아올렸다. 조조가 자기 연못 속의 농어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으로 말을 바꾸니, 송강의 농어만이 오로지 아가미가 넷이라 이를 가려볼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조조가 사람을 시켜 농어의 속을 보니 정말로 아가미가 넷이었다고 한다. 그 농어들을 요리하기 위해 특별히 생선의 비린내를 없애줄 땅의 명물 중 하나인 자아강(즉 생강)을 위해 옷을 대야 위에 덮자, 자아강이 대야에 가득찼으며, 조조가 손을 내밀어 자아강을 쥘 때 대야 안에 맹덕신서가 함께 나타났다. 이를 확인하니 전에 자기가 불태운[5] 맹덕신서와 한 글자도 틀리지 않았다.

조조는 맹덕신서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좌자는 술잔을 꺼내 이 술을 마시면 천년을 살 거라면서 마시게 했다. 조조는 좌자가 독을 풀었을까봐 거부했고 좌자는 비녀를 꺼내 술잔을 반으로 쪼개고 반은 자신이 마시면서 이렇게 하면 믿겠냐고 말했다. 이에 조조는 분노했고 좌자는 술잔을 던지고 갑자기 사라졌다. 조조는 허저에게 300명을 주어 좌자를 붙잡도록 했지만 좌자가 천천히 걸어가도 도저히 붙잡을 수 없었다. 이미 앞서 설명한 양떼의 무리에 관한 도술을 보였지만 연의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허저가 양치기 아이가 이끄는 양들을 모두 죽이자 양의 머리가 "양의 목을 도로 붙여라"라고 말했다. 양치기 아이가 도망가자 "당황하지 말아라. 양은 모두 살았다."라고 말했는데, 그 말에 양치기 아이가 돌아보니 양들을 모두 살아나 있었다.[6]

조조가 사람들에게 명해 좌자의 얼굴 생김새를 종이에 그리게 하고, 여러 곳에 붙이게 하며 좌자를 붙잡게 하자, 좌자처럼 생긴 도사가 3, 400명이 잡혔다. 이에 조조는 사람들이 요사한 술법을 깨는 힘이 있다고 믿었던 돼지와 양의 피를 도사들에게 뿌리게 했다가 별다른 효과가 없자, 무장한 무사 500명에게 그 도사들의 목을 전부 베었다.

베어진 도사들의 목에서 푸른 기운들이 솟아나더니, 하늘로 올라가 모여 좌자 한 사람으로 변했고, 허공에서 학 한 마리를 부르며 말하길,

"흙쥐가 금호랑이를 따라가니 간웅이 하루 아침에 끝나는구나."[7]

(土鼠随金虎,奸雄一旦休 - 토서추금호, 간웅일단휴)[8]

이에 격분한 조조가 장수들에게 활을 쏘라고 명령하자, 갑자기 휘몰아친 세찬 돌풍에 돌멩이가 굴러가면서. 모래가 흩날렸고, 목 잘린 시체들이 모두 일어나 자기 머리를 들고 오면서 조조를 때렸다고 한다.

4 관련 사료

5 미디어 믹스

좌자/기타 창작물 항목 참조.
  1. 주석 : 유표는 요상하거나 바른말을 하는 선비들을 참형에 처했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사마휘는 그의 인재를 보는 뛰어난 안목을 철저하게 사적으로 남겨두며, 좀처럼 남의 부탁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고 한다. 물론 그가 마음을 터놓고 지내던 사람들인 방덕공, 최주평, 공명 등의 넓은 식견이 필요한 인재들에게는 아마도 조금은 관대했을 것이다.
  2. 謝送이라는 사람으로 사섭의 아들 士頌과는 다른 인물이다.
  3. 일부 판본에서는 감자(柑子)라고 하기도 해서 당연히 감자하면 potato를 떠올리는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 감(柑)은 을 뜻하는 것이므로 귤이 맞는 표현이다. 감자는 천 오백년 뒤인 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오는 것이다.
  4. 정확히는 강동땅 오강의 농어회를 말한다. 그런데 사실 백년 이상 뒤 시대인 동진 시대에 유명해진 말이다.
  5. 장송양수가 건네 준 맹덕신서를 한 번보고 그대로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암송했다. 더불어 장송은 이 책은 형편이 없으며 어느 듣보잡 선비의 글을 조조가 표절한 거라고 까자 양수는 그대로 조조에게 말했다. 조조는 남의 글과 비슷할 수도 있지 않겠냐고 태연한 척 했지만 굉장히 기분이 상했는지 맹덕신서를 그대로 불태웠다.
  6. 삼국지평화에서는 한 마리 양이 무릎을 꿇고 사람 같이 일어서서 "당황하는 것이 허저와 같구나"라고 말했는데, 허저가 죽이려하자 나머지 양들도 일제히 일어나 "당황하는 것이 허저와 같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7. 흙쥐는 토서, 금호랑이(쇠범)은 금호다. 이걸 뒤집으면 금서 토호. 쇠가 들어간 쥐띠 해인 경자년(220년) 흙이 들어간 호랑이 달인 무인달(1월) 조조가 사망한다는 뜻이다.
  8. 일단 휴(休)는 삼국지6 이벤트처럼 직역하면 '일단 쉬다'가 되므로 이런 오역도 많지만 바르게 번역하면 "하루아침에 끝이 난다"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