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삼국시대의 인물 劉穎
劉穎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 오나라의 인물.
광릉 사람으로 재능에 따라 겸양할 줄 안다면서 사람들에게 좋게 평가를 받은 엄준과 교분이 있었다고 하며, 한가롭게 집에 있으면서 학문에 정통했다. 손권이 그에 대한 평판을 듣고 초빙했지만 질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가 동생 유략이 임지에서 죽은 것을 알고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는데, 손권은 이 일을 통해 유영이 꾀병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손권이 유영을 황급히 체포해서 심문하도록 명령했으며, 엄준이 유영에게 급히 달려가 손권에게 사죄하도록 설득했다. 결국 손권은 노여워해 엄준을 면직시켰지만 유영을 죄를 사면받았다고 하며, 이로 인해 잘 나가서 승진을 하던 엄준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복직되어 상서령에 임명되었다.
2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 劉永
『촉서』 「이주비자전(二主妃子傳)」 | ||||||||||||||||||||
감부인 | 목황후 | 경애황후 | 유영 | 유리 | 유선 |
劉永
생몰년도 미상
황제가 된 자신의 형 유선에 비해 별다른 활약이 없었다. 형과 나이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고 나이가 어려서 이복동생인 유리와 함께 비중이 전혀 없는 인물이다. 유비가 황제가 된 후 노왕(魯王)에 봉해졌지만 오나라와 동맹을 맺고 위를 멸한 후를 가정하여 땅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노나라가 속한 예주가 오나라 소속이었기 때문에 촉령 기주에 소속된 감릉왕(甘陵王)으로 옮겨졌다.
환관 황호와 사이가 좋지 못해 형 유선을 몇십 년동안 알현하지 못하고 촉 멸망 후 봉거도위로 임명되고 향후에 봉해져서 낙양으로 이주했다. 후에 유선의 후손이 영가의 난 때 모두 몰살되자 유영의 손자 유현은 난을 피해 촉 지방에 숨어들었다.
당시 촉 일대를 장악한 저족의 왕조 성한(成漢)이 있었는데 성한의 황제 이수는 큰할아버지 유선의 작위인 안락공에 봉하고 촉의 문신이었던 이복의 손자이자 성한 황제의 장인인 이수[1]를 유현에게 붙여 주었다. 347년, 동진의 환온이 성한을 멸하고 성도가 함락되었을 때 유현은 동진의 역사가인 손성을 만났다. 그 후 유현의 소식은 알 수가 없으나, 중국 각지에 자손이 퍼져 대부분의 유씨가 그의 자손이라고 자칭하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유리와 함께 목황후의 아들이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삼국지 3에서는 이보다 넘사벽으로 활약이 많은 문앙을 제치고 등장했고 삼국지 6, 삼국지 7, 삼국지 8에 등장했으며, 전반적으로 능력치는 쓰레기로 정치나 매력이 가장 높지만 이마저도 50대 정도이다.그래도 이복형에 비하면 휠씬 낫다.
진삼국무쌍에서는 6부터 클론무장으로 나왔으며 7에도 당연히 클론무장인데 촉나라 if마지막 전투인 허창전투에서 형인 유선옆에 딱붙어있다.
3 서진의 인물 劉伶
劉伶
(221 ~ 300)
죽림칠현 중의 한 사람. 자는 백륜(伯倫).
패국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건위참군을 지냈으며, 제멋대로 자유분방하게 놀면서 우주도 좁다고 여겼다. 혜강이 죽은 후에 관직에 출사했으나, 사마소에게 도가 정치를 권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무능하다고 해서 파직되었다.
술과 관련해서 일화가 많기 때문에 죽림칠현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지만, 이 사람이 술 마시던 일화의 대부분은 죽림칠현 해체되고 한참 뒤에 사마의에게 파직된 상황에서의 이야기다.
지독한 술꾼이고 술버릇이 좋지 않아 취하면 옷을 벗어젖히는 일이 많았는데, 누군가가 집을 찾아와 이를 비난하자 자신은 천지가 옷이고 집이 속옷인데 허락도 없이 자신의 속옷까지 들어왔냐고 했다. 아내가 술을 마시는 것을 말리자 유령은 스스로 끊을 수 없어 귀신에게 맹세하겠다면서 아내에게 술과 고기를 준비하게 하며, 꿇어앉아서 아녀자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면서 다시 술을 마셨다.
늘 작은 수레를 타고 술 한 병을 차고 다니면서 종자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고서 종자에게 자신이 죽거든 곧장 땅을 파고 묻으라고 했으며, 육체를 흙이나 나무처럼 여기면서 즐겁게 세상을 돌아다녔다.
어떤 일에도 마음 쓰는 바가 없었으며, 어떤 사람과 서로 다투다가 그 사람이 소매를 흔들면서 일어나 치려고 하자 유영은 태연한 얼굴로 어찌 이 계륵 같은 자에게 존귀하신 주먹을 쓰려 하냐고 말하자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화를 풀고 돌아갔다. 문장을 지을 때 생각을 가다듬지 않았으며, 죽을 때까지 주덕송 한 편만 지었다.- ↑ 위의 황제 이수와 동명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