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웅렬

df0fe2d1_yun_ungryols_family.jpg
尹雄烈
1840년 5월 18일 ~ 1911년 9월 22일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개화파이다.

그는 박규수, 오경석, 유대치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그는 특이하게도 점진적인 개화를 주장하였으나 친청파가 아닌 친일파였다. 그래서 급진개화파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온건개화파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윤웅렬은 별기군의 총책임자였다. 윤치호는 그의 아들이었고, 그의 친구였던 어윤중의 제자였다.

그는 1884년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가담했으나 온건개화파인 그로써는 못마땅한 방법이었고 처음부터 실패할 것이라며 굉장히 소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1894년 갑오개혁 때 군부대신으로 있던 중 춘생문사건(春生門事件)에 가담하였으나 실패하자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그는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벌어지자 여기에 참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실패하고 만다.

그리고 나서 1910년 한일합방조선귀족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 이후에는 안정적으로 살다가 1911년에 7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