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본위제도

(은본위제에서 넘어옴)

Silver Standard
銀本位 制度

1 개요

서로 다른 화폐를 쓰는 여러 국가가 공동으로 채택하는 환율제도의 하나. 화폐의 가치를 (銀)과 직접 연동시키는 것이다. 금본위제도에서 넘어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가치가 연동되는 대상이 금에서 은으로만 바뀌었지 세부 내용은 똑같다.

2 예시

2.1 한국

한국은 역사상 화폐경제가 대단히 발달한 국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본위제도라는 개념 자체도 비교적 늦게 도입된다. 애초에 19세기 중반까지 상평통보 쓰고 있었으니 1894년갑오개혁을 통하여 조선 조정은 최초로 은본위제를 도입하였으나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동전 찍어낼 재정조차 없어서 국가 차원에서 악화를 발행한 판국에 화폐를 은으로 바꿔줄 여력은 있었으려나 이후 일본이 본격적으로 한반도 점유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한 1904년 화폐정리사업을 통해 일방적으로 은본위제도를 폐지하고 금본위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물론 이는 이 당시 일본이 1897년부터 금본위제도를 채택했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적 침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한 사전작업.

2.2 중국

은본위제를 채택한 가장 대표적인 국가였다. 지금은 세계적인 대세가 금본위제이기때문에 채택을 포기했지만, 명청대부터 중화민국 시기[1]까지 중국은 은본위제를 시행했다. 명나라, 청나라 시기의 경우 과장을 좀 보태자면 은 공급이 절단나서 나라가 망조로 접어들었다라고 말할수까지 있을 정도.

명나라 중/후기였던 16세기, 신대륙에서 은이 대량으로 발견되면서 각종 교역을 통해 중국으로 은이 쏟아져 들어왔었는데 1585년 스페인의 무적함대가 영국에게 패한 이후로 스페인 제국이 점차 내리막길을 타면서 은의 공급이 17세기에 이르면 뚝 끊겨버렸고, 이로 인해 국가 경제가 휘청거리다가[2][3] 결국 후금에게 멸망당하게 된다. 물론 단순히 은이 모자라서 정복당했다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청나라 시대 역시 마찬가지여서 소위 마제은이라고 불리는 은화가 각종 거래에 사용됐는데[4] 19세기에 이르면 영국이 비단 등의 거래 덕분에 엄청난 은을 청나라에 바쳐야했고, 이에 꼭지가 돈 영국이 은을 다시 회수하기 위해서 청나라에 팔아버린 것이 바로 인도산 아편. 그리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아편전쟁. 한편 청의 멸망 이후 수립된 중화민국도 기존의 은본위제를 고수해서 1930년대에 이르면 거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은 은본위제 채택 국가였지만 대공황의 여파로 결국 1935년 금본위제를 채택한다.

2.3 유럽

고대 로마 무렵부터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동시에 채택하는 복본위제도를 시행했다. 다만 금의 희귀함 등으로 인하여 실질적인 기축통화는 은화였기 때문에 사실상 은본위제였다. 하지만 19세기에 은의 가치가 금에 비해 폭락했고[5] 이 무렵이 전성기였던 대영제국금본위제를 채택하였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19세기 말에 이르면 대부분 금본위제를 시행한다.
  1. 정확히는 1935년까지였다. 1935년 이후로는 중화민국에서도 금본위제를 실시.
  2. 이 시기 명나라의 사회상에 관련된 기록을 보면 은을 찾으려고 백성들의 집과 무덤까지 관료들이 멋대로 파헤치는 상황이었다. 흠좀무.
  3. 또한 명나라의 은 부족은 단순히 명나라의 혼란에 그치지 않고 조선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쳤다. 알다시피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의 빚 덕분에 17세기 초반 명나라에게 절절 기던 상황이었고, 명나라 사신이 한 번 조선을 왕복할 때 마다 막대한 은을 뇌물사례로 바쳐야만 했다. 그 결과 명나라 조정 사이에서 조선행 사신은 최고의 재태크(...) 방법으로 인기를 모았고 점점 부담해야하는 은의 양이 천정부지로 치솟아서 마지막에는 조선의 1년 예산에 가까운 은을 바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
  4. 물론 고액화폐이다보니 일반 백성들은 은보다 동전을 주로 쓰긴 했다.
  5. 은의 가치 하락 자체는 16세기 신대륙에서 은이 대량 발견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