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본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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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화폐단위의 가치와 의 일정량의 가치가 등가관계(等價關係)를 유지하는 본위제도.

2 원리

금을 직접적으로 화폐로 이용한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또한 안정적이고 가치가 높은 금화의 유통은 국가의 경제를 떠받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음은 그 중 유명한 것들이다.

근대에는 패권국가(미국이나 영국과 같은)의 화폐를 일정량의 금으로 바꿀 수 있도록 교환비율을 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자국의 화폐를 그 강대국의 화폐와 연동하는 식으로 펼쳐졌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앙은행이 통화량과 같은 금을 보유하고 있고, 지폐를 가져오면 일정 비율을 금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예컨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1년까지 유지되었던 브레튼우즈 시스템의 경우, 35 미국 달러를 중앙은행에 주면 금 1온스를 얻는다. 물론 일반인이 금을 가져간다고 해서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금이 귀금속의 일종으로서 공급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기에[1] 패권국가가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개방경제체제 하에서 금본위제는 세계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제도가 된다.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영국 중심의 고전적 금본위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유지되었던 미국 중심의 고정환율제(브레튼 우즈 체제)가 그 좋은 예이다.

3 금본위제의 종류

금화금본위제도. 금화금본위제는 금화 자체가 화폐로서 시장에 유통되는 것이다. 금화와 화폐의 등가가치는 금화의 주조와 융해가 가능하기에 금의 가치가 곧 화폐의 가치가 된다.

금핵금본위제도. 금핵금본위제는 중앙은행에 금을 비축해두고, 금의 가치 만큼 지폐로 된 화폐를 발행하여 시장에 유통시키는 제도이다. 태환의 형태에 따라 금지금본위제도와 금환본위제도로 나뉜다.

금지금본위제도, 은행이 보유한 금괴와 화폐를 교환해주는 제도이다.

금환본위제. 금환본위제는 금본위제를 시행하는 국제금융중심지(ex 영국)의 화폐를 보유함으로서, 금 보유와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다. 금환본위제를 시행하는 각국은 금을 보유한 국가가 발행하는 금환을 중앙은행에서 발행한다. 따라서 이 나라의 화폐는 불태환화폐라 할 수 있다.

4 역사

1867, 유럽통화회의에서 주요 열강들은 자국 통화에 대한 금본위제를 도입하기로 약정하였고, 1890년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금본위제 전환을 마지막으로 이는 현실화되었다. 조선 또한 당오전 논쟁 당시 김옥균이 금본위제 도입으로 통화체제를 개혁할 것을 주장한 바 있었다. 문제는 1883년 당시는 일본조차 금본위제를 시행하지 못하는 등 현실성이 없었다는 점이다.금이 있어야 하지 일본의 경우, 청일전쟁과 삼국 간섭의 결과 획득한 막대한 보상금을 기조로 1897년 금본위제를 실시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통화량이 필요해지자 각국은 금태환을 일시 정지하고 통화증발에 나섰다. 이는 실물과 통화량을 연동시키던 금본위제에 대한 상당한 타격이었다. 게다가 1920년대 전후 복구 과정에서 금본위제로 복귀하던 와중 대공황 발발로 구 파운드 중심의 금본위제는 결정적으로 무너져 버렸다. 영국은 1925년 금본위제로 복귀했다가, 1931년 금본위제를 포기하였다.

일본은 열강 중 가장 늦은 1930년 금해금을 통해 금본위제로 복귀하였으나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기였던지라 대실패. 쇼와공황을 불러오면서 경제가 거의 붕괴위기에 직면한다. 결국 1931년 다시 금본위제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엔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해 금을 끌어모았다. 그 결과가 조선에서의 금광 붐이었다.

대공황 당시의 상황은 영국의 패권 소멸로 인한 무능력, 그리고 미국의 의지 부족으로 인한 부작위로 정리될 수 있다. 새로이 패권국으로써 리더쉽을 발휘했어야 할 미국이 방관하면서 2차대전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4.1 금본위제의 장점

1. 금본위제에 기반한 안정적 통화 수급은 물가를 크게 안정시켰다.
2. 금본위제에서 기반한 고정환율제도는 환리스크를 크게 감소시켰다.
3. 자유무역체제 하에서 시행되는 금본위제는 각국에 무역수지와 재정수지의 균형을 담보하였다.
4. 외부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4.2 금본위제의 단점

금본위제의 시행으로 각국은 통화 정책의 부재와 제약 상황에 처하게 되었고, 이는 내부에서 오는 경제적 충격과 위기에 대한 대응력을 크게 감소시켰다.

4.3 금본위제의 종말,브레튼 우즈 체제

2차 대전 후 신 통화제도에 대한 논쟁에서 케인즈는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국제 통화인 방코르(Bankor)를 도입할 것을 지지하였으나, 해리 덱스터 화이트[2]는 패권국이 된 미국USD를 통용할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미국의 입장이 받아들여져 달러화를 기축으로 한 금본위제인 브레튼 우즈(Bretton Woods) 체제가 성립되었다.

고전적 금본위제와의 결정적인 차이는 각국의 중앙은행이 금태환을 독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만이 독점적으로 금태환을 실시하는 것으로써, 타국 통화는 모두 USD와의 환전을 통해 간접적으로 금과 연결되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화폐가 (주기적으로 변경되는) 고정환율로 달러와 고정되고, 달러는 35달러당 1온스로 교환할 수 있게 고정한 것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2차대전동안 유럽의 각국이 미국의 물자를 금으로 구입하고 패전국들이 전쟁배상금을 금으로 지불하면서, 종전 당시 미국이 전세계 금의 무려 70%를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크

전후 서유럽 국가들은 재건을 위해 막대한 양의 돈을 찍어 유통시켜야 했는데, 자체적으로 금본위제도나 은본위제도를 실행할 만큼의 금은이 국고에 없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신용화폐'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므로, 전시도 아닌 평상시에 금이나 은으로 태환이 안 되는 화폐가 신용을 얻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전쟁 직후 이들이 발행한 지폐는 사실상 미국이 대리로 보증을 서준 셈. 미국은 미국대로 서유럽의 동맹국들을 쑥대밭으로 내버려두면 당시 떠오르는 강자였던 소련에 의해 전 유럽이 공산화될 위험이 있었고, 어느 국가의 통화도 아닌 방코르는 위험했기 때문에 미국 달러를 기축 통화로 민 것이다. 그러나 금본위제도에는 결정적인 문제점이 내포되어 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금본위제 하의 주요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충격에 따라 경제 불안이 가중되면, 사람들의 기대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형성된다.
  2. 세계 경제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국가가 "우리는 수출만 하고 수입은 안 함 ㅇㅇ"과 같은 정책을 견지하거나 자기 세력권 내에서 블록을 형성하여 자기네끼리만 무역을 할 경우, 협력시스템이 순식간에 무너지고 여러 강대국을 중심으로 한 제살깎아먹기 폐쇄경제 시스템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 대공황 시기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의 삽질이 대표적이었다.
  3. 트리핀의 딜레마
Triffin's dilemma. 국제정치학 및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미국의 35달러를 금 1온스와 연동하고 다른 나라의 화폐를 달러와 연동함으로써 형성된 환율제도 하에서 세계경제가 활발히 돌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끊임없이 달러를 세계시장에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는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국가간의 거래도 늘고, 이에 필요한 화폐는 세계의 표준화폐인 달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사 해야 되는데 중앙은행이 돈을 안 찍는 꼴.
그런데 미국이 달러를 세계시장에 공급할수록 1달러의 상대적인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물론 금을 그만큼 더 가지면 되겠지만, 금이란 건 땅 속의 광물이라서 항상 원하는 만큼 캐거나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미국이 보유한 금보다 달러 발행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다른 나라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달러를 모두 미국에 주고 금을 요구하는 것이 된다. 이것이 실제로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정책[3].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금 1온스 = 35달러의 원칙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게 되고... 이걸 가만히 내버려두면 세계 경제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즉, 통화가치와 통화량은 반비례한다. 다만, 트리핀의 딜레마가 딱히 달러화 위상 추락의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기축통화가 되려면 화폐가 일정 가치를 보장받고 유통량도 일정 이상 되어야 하는데, 그 때나 지금이나 달러화가 이 요건을 넘사벽으로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리핀의 딜레마보다 더한 것은 미국의 국제 수지 적자라 할 수 있다. 미국은 40년대까지는 무역 수지 흑자국이었으나, 50년대 들어 유럽, 일본 등의 추격으로 국제 수지는 적자가 되었다. 그에 따라 외국의 달러 보유고는 늘어난 반면, 미국의 금은 지속적으로 유출되어 달러화의 가치는 계속 추락하게 되었다. 더욱이, 존슨 행정부의 '위대한 사회' 계획이라는 대규모 복지 프로그램과 베트남 전쟁 전비로 정부 지출이 폭증했고 이는 무역 수지 적자를 심화시켰다.
  1. 불가능의 삼각정리
옵스펠드, 크루그먼 등에 따르면 '고정 환율', '자유로운 자본 이동 보장', '자주적인 통화 정책' 세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것은 불가능하고[4] 기껏해야 두 개 정도만 충족할 수 있다. 금본위제는 고정 환율 제도라 볼 수 있는데, 이 경우 한 나라의 통화 정책은 그 통화 가치 유지에만 쓰이므로 자본 이동을 제한하지 않고서는 자주적인 통화 정책을 사용하기가 어렵다.[5]
  1. 가격-정화-유출입 메커니즘
경제학이 제대로 생기기 전에 흄 등이 제시한 개념이다. 가령 금이 많아지면 인플레이션으로 자국 상품 가격이 상승하여 국제 수지에 악영향을 초래한다. 처칠이 대장상을 맡았던 20~30년대 영국이 금본위제를 복귀시키려다가 덕분에 크게 피해를 본 바 있다. 그리고 무역흑자는 죄다 프랑스가 챙겨갔지.
  1. 금광이 많은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금 보유 측면에서 유리하므로 국제적인 부의 분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물론 해당국들이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자원의 저주라는 현상 때문에 장담은 못한다. 특히 그 옛날 에스파냐 제국이라든가.

1, 2번은 세계 대공황의 핵심 원인이었고, 3번은 브레튼우즈 체제가 붕괴하는 원인이었다. 금본위제의 문제점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다음을 참고. 1 2 브레튼우즈를 유지하는 방식은

  1. 미국의 공식적인 달러 가치 절하
미국선진국들과 합의하여 이를 어느 정도 실천하기는 했으나 그 정도는 너무 더뎠다.
  1. 달러의 대대적인 긴축
가뜩이나 심각한 국제 수지 적자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1. 미국 중앙은행이 금 보유를 늘리는 것
자산 비중 조정 등 방법은 무관. 자원이 많은 소련이 좋아했다.

결국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이 금태환 정지를 선언(닉슨 쇼크)하며 금본위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으며, 이후 세계 화폐 시장은 기본적으로 변동환율제에 의해 굴러가게 되었다. 지금은 전 세계 GDP가 전 세계 금 매장 추정량의 가치보다 크고 금이 원자재로 쓰이기 때문에[6] 금본위제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상황.

4.4 이후

1990년대부터 이상한 조짐이 여기저기서(동아시아, 러시아) 보이기 시작하더니 2009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세계를 휩쓴 후 변동환율제의 근본적 문제인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이 가장 심각하다. 아직 이 문제에 완벽한 답은 없으며 찾는 사람은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다.
  1. 그렇다고 다이아몬드처럼 지극히 제한되어 있지도 않다.
  2. 브레튼우즈 체제의 아버지로 역설적이게도 훗날 소련의 스파이로 밝혀진다.
  3. 당연히 이런 생각만으로 드골이 미국에 금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드골 정부는 68운동이라는 정치적 위기에 처해서 프랑스 경제가 침체할 조짐을 보이자마자 외환시장에서 환투기 세력에 의해 프랑스 프랑화 가치가 폭락해버려 프랑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고정환율제이므로) 계속 외환시장에 개입, 14일만에 금보유고를 탕진했기 때문이다. 14일만에 금보유고를 탕진하기 전에는 영국보다도 프랑스가 금보유고가 많았으나 프랑화 가치 폭락때문에 단 14일만에 금보유고가 제로(0)로 녹아버리고 만다.(...) 결국 외환보유액도 없고 금보유고도 없는 상황이니 달러를 갖다주고 금을 가져와서 프랑화를 계속 방어해야 했던 것. 다만 이 행동이 금본위제 자체의 붕괴를 유발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는 것이 문제다.
  4. n개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n개의 수단을 써야 한다는 틴버겐의 법칙, 혹은 IS-LM 모형을 확장한 먼델-플레밍 모형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5. 이 문제는 굳이 브레튼우즈 체제나 금본위제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니고, 최근 유로존 위기에도 적용된다.
  6. 연성이 뛰어나서 전자 회로의 전선으로 쓰인다. 2011년에 전 세계에서 2700톤의 금이 생산되었는데, 그 중 10% 이상이 전자 회로 제작에 투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