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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 The British Empire[1] | ||
국기 | 국장 | |
17세기 ~ 1947년[2](1997년[3]) | ||
위치 | 영국, 세계 각 지역에 퍼져있는 식민지[4] | |
수도 | 런던 | |
국가원수 | 왕[5] | |
언어 | 영어 | |
통화 | 파운드 | |
면적 | 약 33,700,000㎢(1922년) | |
인구 | 약 458,000,000명(1938년) |
목차
1 개요
Empire: The sun never sets |
세계정복, 천하통일에 근접한 몇 안되는 사례
16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군림한, 한때 세계 육지 면적의 1/4과 인류의 1/5을 속령으로 삼은 초대형 국가.
식민제국의 끝판왕
앵글로색슨 제국이라고도 한다. 흔히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이 대영제국이다.
파일:C9XXoGI.jpg
참고로 한국이 빨간색으로 칠해져 있는 이유는 거문도 점령 사건 때문. 중국은 아편전쟁, 일본은 태평양 전쟁.
아직도 그 일부가 영국의 속령으로 남아 있다.지브롤터를 빼면 전부 다 섬이다 위 그림에서 남극은 남극조약에 의해 어느 나라의 영유도 인정되지 않는다.
2 평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식민제국
이 한 마디로 정리 가능하다. 지금 당장 우리가 배우는 영어, 민주주의, 과학, 사고방식, 자본주의, 심지어 복식인 수트까지 말 그대로 인류의 표준 문화 를 만들어놓은 엄청난 문화력, 경제력, 그것을 실현 가능하게 했던 군사력의 주인공이다. 현대 세계의 여러 방면의 표준이 영국식이 된 것도, 현재 세계에서 앵글로색슨족이 세계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영제국의 영향력 때문이다.
대영제국에 의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은 한국에서는 인식이 덜한 편이나, 사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제국이라는 특성상 상술한 세계 최대의 규모라는 것은 달리 말하면 전 세계의 식민지인들을 고루 착취하였다는 것[6]과 다를 바 없는 말이기 때문에 부정적이면 부정적이었지 긍정적으로 보기는 어려운 국가이다. 이렇게 터트린 병크는 하나같이 큼지막한 것들이라 몇백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당장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식민제국과 함께 민족, 종교 구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편의상의 경계선으로 세계 각지를 쪼개먹고는 대충 독립시켜서 민족 분쟁과 종교 분쟁들을 유발하게 만든 만악의 근원이며, 북아일랜드와 팔레스타인 문제는 현재까지도 영국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이라크는 영국이 쿠르드인과 아랍인,수니파 이슬람교와 시아파 이슬람교등 민족, 종교의 분포를 고려하지 않은 체 종교적으로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이답시고 국경을 일방적으로 그려 단일국가로 묶어버리면서 이라크가 영국에서 독립 후 이슬람교 시아파와 수니파, 아랍인과 쿠르드인이 한 나라 안에서 민족,종파 갈등으로 싸워대고 있다.지금은 IS 때문에 사이 많이 좋아졌다. 키프로스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후 아주 서로 죽이고 죽이며 싸워대다 결국에는 마침내 그리스와 터키까지 자기네 동족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키프로스의 그리스계와 터키계 싸움에 끼어들어 두 인종 싸움에 편 들고 지원하면서 결국 전쟁이 벌어졌고 이후 북키프로스와 남키프로스로 갈라져 그 조그마한 섬나라 안에서 불구대천지간처럼 아주 죽어라 대립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나이지리아의 경우 이슬람교를 믿는 하우사족과 기독교를 믿는 이보족을 하나의 단일 국가로 강제 통합시켜 식민지배를 하다 1960년대 나이지리아가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한지 8년도 채 안돼 참혹한 내전이 일어났으며 또한 동아시아에서 아편전쟁이라는 병크를 제대로 터트려 홍콩을 중국으로부터 뺏어가기까지 하였다.
프랑스 식민제국, 네덜란드 제국,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왕국, 오스만투르크, 벨기에 식민제국처럼 끝까지 식민지를 부둥켜안으려다 항쟁에 밀려 꼴사납게 밀려난 경우와는 다르게[7] 독립을 꽤나 신사적으로 허락해줘서 옛 식민 국가들이 보는 이미지는 타 식민제국에 비교하면 그나마 비교적 낫다.
이러한 평가는 주로 비교대상인 프랑스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전쟁에서 이연벙으로 걷어 차인 후 코 깬 모습에 비교해서 영국의 비교적 평화스러웠던 탈식민지 과정을 얘기하면서 나오는 말인데, 이는 반대로 아일랜드, 팔레스타인, 케냐 등 영국도 못 볼 추태 오만가지 다 겪으면서 쫒겨나오다시피 빠져 나온 곳에서는 영국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 없다. 사실 식민통치 기간 중 자국의 중앙집권적 통치에 기반하여 식민지 또한 최대한 본국에서 직접 통치하려고 했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사소한 일상적 행정 업무 다수는 현지인들에게 맡기고 간접적으로 통치를 한 경우가 많이 현지 피지배민들이 소위 중앙 권력의 철권 맛을 볼 일이 평균적으로 적었던 편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즉 위의 아일랜드나 하자르~팔레비 왕정 교체기 이란 같은 영국 또한 시대적 여건 때문에 직접 개입 하면서 볼꼴 못볼 꼴 다 겪으며 현지 사회를 쑤셔 놓았던 경우는 영국에 대한 감정 또한 좋을리가 만무하다는 소리다. 당장 식민지가 된 일이 없이 독립을 유지하며 직접 지배는 당한 적 없지만 근대에 지독하게 내정 간섭과 간접적 착취를 당했던 이란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은 그냥 덩치만 큰 바보지만 영국만은 진짜 증오한다라고 말한다.
보통 제국들이 본토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흡수하며 영토를 불려 나갔던 것에 비해, 대영제국은 정작 가까운 유럽 대륙에는 별반 영향력이 없는데도 해군력을 바탕으로 본토와 멀리 동떨어진 지역들을 원격 식민지화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틈새 시장? 이와 비슷한 해상 제국으로는 전성기 스페인 제국, 포르투갈, 네덜란드가 있다.
좋든 싫든 대영제국이 현대문명의 아버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인류가 현대문명을 갖출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거 열강들의 손이 닿지 않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지금도 수천년전과 동일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사실 역사를 배울 때는 인류의 문명이 자연스레 진화한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선진적인 열강들에 침략을 받거나 교류하며 강제로 개화된 나라들이 대부분이다. 대영제국은 위의 지도를 봐도 알다시피 건드리지 않은 나라들이 거의 없고, 따라서 현대문명을 전세계에 전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대영제국이 직접 건드리지 않은 나라들도 결국 영국의 영향을 받은 다른 나라들과 교류를 하거나 침략을 당했기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으니, 전세계가 대영제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다만 그 근대화는 자생적 근대화[8]가 아닌, 침략자 영국의 폭압적인 침투로 강제로 되었다는 점에서 열강들의 근대화, 현대화와는 형태나 본질적 속성이 완전 달랐다. 즉, 영국 때문에 근대사회로 진입하기는 했지만 피식민 정부·국가가 힘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하는 근대화가 아닌, 제국주의 국가 영국에 의해 수탈을 위해 최적화된 구조인 식민지적 근대로 근대화되었다. 현대 문명으로 전파했다고는 하지만 굉장히 부정적인 방법으로 전파했다는 점이 있으므로 영국에 의해 개화되었으니 영국에 고마워해야 한다는 논리는 일제 강점기 덕분에 우리가 근대·현대문명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는 논리와 같으니 주의하기 바란다.[9]
사실 영국은 워낙 입에 대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음식의 맛이 없어서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맛을 내는 음식을 찾아 동분서주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런 큰 제국을 건설했다 카더라.[10]
3 영향
미국과 더불어 영어가 국제 공용어가 되게 한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단, 대영제국의 절정기에 국제 공용어는 의외로 영어가 아니라 프랑스어였다.
과거 이들에 속한 국가들 대부분이 현재의 영연방에 속해 있다.[11] 뿐만 아니라 대부분 영어를 공용어로 쓰거나 영미법을 쓰고, 크리켓을 즐겨하는 등 아직까지 식민지 시절의 영향력이 상당하다.
4 최후
역사상 다른 제국과는 다르게 제국의 최후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대체로 인도가 독립한 시기를 꼽고 드물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시기로 보는 사람이 있다. 인도 독립이 제국의 최후로 꼽히는 이유는, 영국이 제국으로 불리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빅토리아 여왕이 무굴 제국을 무너뜨리고 인도 제국의 황제로서 등극한 것을 꼽기 때문이다. 덤으로 식민지 중에서 인도가 가장 알짜배기였고. 사실 영국 본토 자체로 제국(황제국)을 자처한 적은 없다는 것이 함정. 영국 군주가 황제를 자처할 수 있었던 유일한 근거가 인도 제국이었다는 점을 강조해서 볼 때,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로서의 '영국 제국'의 존속은 좁게 보자면 인도 제국의 존속 기간(1877년 ~ 1947년)과 같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영국이 식민지 팽창 정책을 펼쳐 실질적 세계 제국의 지위를 차지했던 시기가 언제냐 하는 질문을 도외시할 때만 가능한 이야기.
한편 본토에서는 BBC를 비롯해 많은 영국인들이 1997년 홍콩의 반환식을 '제국의 종말'로 간주하고 있다.
정말 드물지만 지금도 남은 일부 속령들의 존재를 근거로 아직까지도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다.
5 한자어 명칭에 관하여
한자문화권(베트남어 등은 예외)에서는 영어 명칭 British Empire에는 대응 요소가 없는 대(大) 자를 붙여서 대영제국(大英帝國)이라 관습적으로 칭하고 있다. 이에 대해선 비판적인 시각이 있으며, 때문에 영국 제국, 영 제국, 브리튼 제국, 제국주의 영국 등의 대안이 제시되기도 하지만 실제 쓰임은 일반적이지 않다. 특히 한국에선 일본 제국, 청나라 등의 예에서 보듯이 실제 정식 국호에 대를 붙였던 제국들조차 대를 빼고 부르는 것이 보통이기에, 대영제국은 꽤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명칭이 보편적으로 쓰이게 된 경위는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아래에 한자어 대영제국의 유래일 수도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한다.
5.1 비판적인 관점
대영제국은 영국을 타당한 이유 없이 높여 부르는 이름이거나 제국주의적 시각 혹은 사대주의적 습관에서 부르는 명칭이므로 무분별하게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앞둔 무렵 고려대학교 총장 현상윤은 대한민국을 국호로 정하는 것에 반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셋째로 대한이란 대 자는 대영이나 대일본과 같이 제국주의 사상을 본따서 지었던 것이니 오늘날 민주주의와 평화주의를 국시로 표방하는 때에 이것을 국호로 채용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동아일보》, 〈헌법 제정과 나의 의견〉, 현상윤, 1948.6.23.
물론 대한이란 이름을 제국주의와 연관시키는 인식은 주류가 아니므로 걸러 들어야 하겠지만,[12] 대한민국이 그러한가를 떠나서, 대영제국에 대해 대일본제국과 궤를 같이 하는 표현이라는 인식이 존재했음은 확인해 둘 만하다.
한편 일본 쪽에서 나오는 말 중 하나로는 일본 개화기에 영국을 서양 문명의 중심으로 여기던 것, 영일동맹을 매개로 서양의 위대한 대영제국과 자신들의 대일본제국를 대비시키려던 의식 등이 대영제국이란 명칭을 즐겨 쓴 배경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정설이 딱히 없기 때문에 이는 일부의 견해이며,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대영제국 명칭의 출처가 일본이라는 결론은 섣불리 내릴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서양 열강과 일본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점 때문에 묻히는 경향은 있지만 중국 역시 제국주의 범주에 들어가는 나라이며, 스스로를 대를 붙여 높여 불렀던 점 역시 일본과 같았으므로 비슷한 관점에서 대영제국을 인식했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역사 관련으로는 평판이 좋지 않은 일본어 위키백과에서 확인되는 내용이기 때문에, 그쪽에서 출처는 제대로 밝히고 있긴 하지만 일본 위주의 서술로 편향되었을 수 있음은 어느 정도 감안할 것. 링크
5.2 다른 관점
대영제국은 과거에 영국을 대영(大英)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도 칭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그 자체는 제국주의나 사대주의 등과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대영제국,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 대영백과사전[13](Encyclopædia Britannica) 등의 일부 명칭에 붙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용례가 사라진 표현이지만,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사이에는 영국을 대영 및 대영국이라 칭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조선, 청나라의 공식 외교문서에서 영국을 대영국이라 표기한 예도 있다.
영국이란 표현은 본래 잉글랜드(England)의 음역인 영길리(英吉利)에서 유래했다. 과거부터 영국 밖에서는 연합왕국(United Kingdom)인 영국을 잉글랜드로 대표해 부르거나, 혹은 둘을 잘 구분하지 못해 영국을 잉글랜드로 부르거나 하는 경우가 흔해 왔으며, 한자문화권 역시 같은 사정으로 잉글랜드뿐만 아니라 연합왕국에 대해서도 영길리·영국 등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잉글랜드와 영국을 같은 한자어로 표기하면 필요할 때 둘을 구분할 수가 없으니 잉글랜드와 구분하여 대영·대영국 표현이 같이 쓰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조선왕조실록에서 처음 대영국이란 표현이 등장한 기사이다.
"6월 25일 어느 나라 배인지 이상한 모양의 삼범 죽선(三帆竹船) 1척이 홍주(洪州)의 고대도(古代島) 뒷 바다에 와서 정박하였는데, 영길리국(英吉利國)의 배라고 말하기 때문에 지방관인 홍주 목사(洪州牧使) 이민회(李敏會)와 수군 우후(水軍虞候) 김형수(金瑩綬)로 하여금 달려가서 문정(問情)하게 하였더니, 말이 통하지 않아 서자(書字)로 문답하였는데, 국명은 영길리국(英吉利國) 또는 대영국(大英國)이라고 부르고, 난돈(蘭墩)과 흔도사단(忻都斯担)[14]이란 곳에 사는데 영길리국·애란국(愛蘭國)·사객란국(斯客蘭國)[15]이 합쳐져 한 나라를 이루었기 때문에 대영국이라 칭하고, 국왕의 성은 위씨(威氏)[16]이며, 지방(地方)은 중국(中國)과 같이 넓은데 난돈(蘭墩)의 지방은 75리(里)이고 국중에는 산이 많고 물은 적으나 오곡(五穀)이 모두 있다고 하였고, 변계(邊界)는 곤련(昆連)에 가까운데 곧 운남성(雲南省)에서 발원(發源)하는 한줄기 하류(河流)가 영국의 한 지방을 거쳐 대해(大海)로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순조실록 32권, 순조 32년(1832년) 7월 21일 을축 4번째기사)
조선에도 이미 영국의 존재는 중국에서 들어온 서적 등을 통해 알려져 있었고,[17] 영국 배가 다녀간 적[18]도 있었으나, 필담이나마 조선의 관리와 문답한 기록은 이것이 최초이다. 영길리국을 대영국이라고도 부른다는 사실은 이 기사에서 처음 알려진 것으로, 이 기사에 한해서 보자면 대영국은 연합왕국인 영(길리)국을 강조하여 부르는 말로서 쓰였다. 다만 이 기사에서도 대영국이라 부르는 이유에 관한 인용 이후에는 다시 영국이라 부르고 있으며, 실록 전체적으로 아주 드물게 쓰인 표현이라는 점은 주의가 필요하다. 외국인과 한자로 나눈 필담이 실록에 실린 것들을 보면 프랑스인이 자신을 '대불란서에서 왔다'라거나 미국인이 '대미국에서 왔다'라고 했다는 경우가 보이는데, 그들이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조선 측이 일일이 대불란서, 대미국으로 불러 주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위 기사를 근거로, 대영국은 여러 나라를 통일한 국가라는 의미에서 대를 붙인 것이므로, 이는 훗날 고종이 대한이란 국호를 선포할 때 "삼한(三韓)이 하나로 통합된 나라이니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해서 안 될 것이 없다."(1897)라고 했던 감각과 같은 것이라 보는 시각이 있다. 다만 이 해석은 아래 최남선의 해설에 따르면 부정된다.[19]
대한이라 함은 한(韓)은 한이지만 옛날 같은 작은 한이 아니라 지금은 커다란 한이라는 뜻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대한'이란 것은 두 자가 다 합하여 나라 이름이 되는 것이요, 결코 대명이나 대영과 같이 높이는 뜻으로 대자를 붙인 것이 아니며 '한국'이라 함은 실제 대한을 간단하게 부르는 것이다.《조선상식문답》, 최남선, 1946.
최남선의 인식으로는 대한과 달리 대영은 영국을 높여 부르는 의미였다는 것으로, 앞의 항에 소개한 현상윤의 주장과 비교했을 때 그 취지는 반대되지만 대영에 관한 인식은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일본에서 메이지 덴노 시절 대일본제국헌법을 만들 때 헌법에서의 일본 국호 앞에 대를 붙여야 하는지에 관해 논의하던 중 나온 발언이다. 초안엔 대가 없었기 때문에, 넣어야 한다는 요구에 대해 헌법 기초자 중 한 명인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는 이렇게 답변했다.
皇室典範には大日本と書けども、憲法は内外の関係もあれば、大の字を書くこと不可なるが如し。若し憲法と皇室典範とは一様の文字を要するものなれば、叡旨を受て、典範にある大の字を削り、憲法と一様にせんことを望む。英国に於て大英国(グレイト・ブリタン)と云ふ所以は、仏国にある「ブリタン」と区別するの意なり。又大清、大朝鮮と云うものは、大の字を国名の上に冠して自ら尊大にするの嫌いあり。寧ろ大の字を削り、単に日本と称すること穏当ならん。황실 전범(典範)에서는 대일본이라 쓰지만, 헌법은 대내외의 관계도 있거니와, 대 자를 쓰는 것은 불가할 듯하다. 만약 헌법과 황실 전범이 같은 글자여야 한다면, 말씀을 받들어, 전범에 있는 대 자를 지우고 헌법과 일치케 하길 바란다. 영국에 대해 대영국이라 하는 까닭은 프랑스에 있는 브르타뉴와 구별하려는 뜻이다. 또 대청, 대조선이라 하는 것은 대 자를 국명 앞에 붙여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이는 경향이 있다. 오히려 대 자를 지우고 단순히 일본이라 칭하는 것이 온당하리라.[20]
《明治憲法制定史(下)》, 淸水伸, 1973.
프랑스의 브르타뉴와 구분하여 불렀다는 것은 영어에서 영국을 가리키는 명칭 중 하나인 Great Britain에서 앞에 Great가 붙은 유래에 관한 것이다. Great Britain은 좁게는 아일랜드를 제외한 영국 본토 섬의 지명이자, 넓게는 영국 전체의 통칭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브리튼 항목 참조.) 즉, Great Britain에서 Great를 '대'로 번역하여 대영국이라 한다는 것. 단, 여기서는 영국(Great Britain)을 가리킬 때 대영국이라고도 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으로, 일본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영국과 맺은 조약 등에서는 영국을 대불렬전국(大不列顛國)이라 표기했었다. 대불렬전 또한 Great Britain의 역어로, 대는 Great의 직역, 불렬전은 Britain의 중국어 음역이다. 물론 현재 일본에서는 Great Britain을 グレートブリテン(그레토부리텐)으로 가타카나 표기하지만, 중화권에서는 지금도 공식적으로 大不列颠(dà bù liè diān)이라 표기한다.
다음은 대영국이라는 표기는 일치하지만 문맥상 국호를 높여 부르는 의미에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예이다.
대조선국 대군주(大君主)와 대영국 대군주 겸 오인도 대후제(五印度大后帝) 양국의 우호(友好)를 영원히 돈독하게 하기를 간절히 염원하여 피차 왕래하면서 오래도록 통상하기를 의정(議訂)한다.(중략)
조선에 있는 영국 인민 및 그 재산은 영국에서 파견한 법률과 소송을 처리하는 관원이 전적으로 관할한다.조영수호통상조약, 1883.
조선은 후기 들어 국호를 대조선·대조선국으로도 표기했는데, 조약 등에서 조선과 상대국을 나란히 쓸 때는 상대국에도 으레 대를 붙여 표기했고, 그 아래 줄에서 보듯이 조선을 조선이라고 표기하면 영국도 영국이라고만 표기하는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다. 대를 붙여 부른 다른 나라의 예는 아래와 같다.
대조선국과 대아메리카 합중국〔大亞美理駕合衆國〕은 우호관계를 두터이 하여 피차 인민들을 돌보기를 간절히 바란다.(중략)
이후 대조선국 군주와 대미국 대통령 및 그 인민들은 각각 모두 영원히 화평하고 우애 있게 지낸다.
(중략)
미국 선척이 조선의 근해에서 태풍(颱風)을 만났거나 혹은 식량·석탄·물이 모자라고 통상 항구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졌을 때에는 곳에 따라 정박하여 태풍을 피하고 식량을 사며 선척을 수리하도록 한다.조미수호통상조약, 1882.
대조선국(大朝鮮國) 대군주(大君主)와 대프랑스 민주국〔大法民主國〕 대통령〔大伯理璽天德〕은 양국의 영원한 우호를 간절히 염원하여 피차 왕래하면서 오랫동안 통상하는 일을 의정하였다.(중략)
조선에 있는 프랑스〔法國〕 인민과 그들의 재산은 프랑스에서 파견한, 형명(刑名)과 사송(詞訟)을 처리하는 관원에게 돌려보내서 전적으로 관할하도록 한다.조불수호통상조약, 1886.
청나라는 본래 세계의 상국을 자임하던 태도로부터 외국에 칙유(勅諭) 외에는 보낸 일이 없다가, 20세기에 들어서야 평등한 입장에서 외국에 외교 국서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스스로를 대청국이라 하듯이 상대국 국호 앞에도 대를 붙여 표기하였다.
위는 영국에 보낸 국서, 아래는 프랑스에 보낸 국서로, 오른쪽 세 번째 줄에 각각 대영국(大英國), 대법국(大法國)[21]이라 표기되어 있다.
또한 조약에 있어 19세기 아편전쟁 이후의 청나라는 상대국 국호에 거의 항상 대를 붙여 표기했다. 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조약으로는 청나라가 무려 11개국과 동시에 맺은 조약인 신축조약이 있다. 원문 상단을 보면 순서대로 독일(大德), 오스트리아-헝가리(大奧斯馬加), 벨기에(大比), 스페인(大日)[22], 미국(大美國), 프랑스(大法), 영국(大英), 이탈리아(大義), 일본(大日本國), 네덜란드(大和)[23], 러시아(大俄)의 이름 앞에 일일이 대를 붙여 표기하고 있다.
6 피지배국
사실 이 중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는 영국이 식민지 무역으로 수탈하려고 차지한 영토가 아닌 본국 직할 속령으로서 완전한 자국 영토로 생각하고 개발한 영토다.
아일랜드(아일랜드 공화국)도 일시적이지만 자치령으로 있었다.
미국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영국이 자국 생활의 어려움(전쟁 등으로 인한)과 미국과의 여러 가지 마찰로 인해 미국에게 관세를 매김으로써 미국은 폭풍 분노했고 결국 미국 독립 전쟁을 일으켜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다.
6.1 동아시아
- 홍콩
- 중국남부 지방 (2차아편전쟁이후 영향권)
6.2 동남아시아
6.3 남아시아
6.4 서남아시아
6.5 오세아니아
6.6 북아메리카
6.7 중앙아메리카
6.8 남아메리카
6.9 아프리카
그 유명한 종단 정책(지도의 연도는 영국에서 독립한 연도).
6.10 유럽
7 관련 문서
- ↑ 이것은 영국 정부가 썼던 공식 호칭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전성기 대영제국과 그 막대한 식민지들을 통칭하기 위하여 편의상 붙여진 명칭이다. 영국은 입헌군주제 하에 왕이 다스리는 나라이며 황제가 통치하던 일반적인 제국과는 별개의 대상으로 분류된다. 단, 영국 국왕은 식민지였던 인도가 독립할 때까지 인도 황제를 겸임했다.
- ↑ 인도 독립
- ↑ 홍콩 이양
- ↑ 전성기 때는 세계 지역에 자리잡지 않은 곳이 거의 없었다. 아시아를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서아시아 등으로 나눠도 마찬가지. 그나마 없는 곳은 러시아가 차지한 북아시아 정도.
- ↑ 단, 인도제국에 한하여 황제로 국가원수를 칭했다.
- ↑ 홍콩이란 예외사례가 하나 있는데, 사실상 예외는 그뿐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 이식의 경우는 홍콩이 유일무이하다.
- ↑ 프랑스는 알제리와 아이티, 베트남,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 앙골라, 기니비사우, 모잠비크등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 오스만 제국은 그리스, 불가리아 등 발칸반도 국가들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누르려고 들었다가 식민지 독립 운동이 과격한 독립 전쟁으로까지 초래되었다.
- ↑ 에티오피아나 일본, 태국 등
- ↑ 말이 안되는게 애초에 제국주의 국가의 근대사회와 식민지 국가의 근대사회는 구조나 특징이 완전히 다르다. 자세한 비판 논리는 식민지 근대화론 참조
- ↑ 사실 영국 요리도 아예 못 먹을 수준은 아니라는 평도 있다..자세한건 영국 요리 항목 참고
- ↑ 아일랜드, 이라크, 요르단 등은 제외
- ↑ 이외에도 여러 이유를 더해 대한민국 명칭에 대해 당시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 ↑ 한국에서는 낡은 표현이라 요즘 세대는 생소할 수 있다.
- ↑ 난돈(런던), 흔도사단(힌두스탄 즉, 인도).
- ↑ 각각 잉글랜드·아일랜드·스코틀랜드. 당시는 아일랜드 전역이 영국에 합병된 상태였으며,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일부로 인식됐다.
- ↑ 윌리엄 4세를 말함.
- ↑ 실록상에서 영길리국 기록이 최초로 나오는 때는 정조 17년(1793년)이다.
- ↑ 순조 16년(1816년)의 일로 이때는 말이 통하지 않아 책 세 권을 받고 그냥 보냈는데, 그 책 사이에 있던 편지의 한자를 해석해서 간신히 영길리국 배라는 것만 알아낸다.
- ↑ 그러나 현재는 대한민국의 줄임말이 거의 대부분 '대한'이 아닌 '한국'으로 쓰이게 된 시점에서 Great의 의미로 쓰이는 대(大)의 용례와 차이가 없어져버렸다. '대한'이라는 줄임말이 공공기관/단체의 명칭 등에 아예 안 쓰이는 건 아니지만 보편적이진 않으며(ex: 대한약사회 등) 그나마도 Great의 의미로써 사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점차 공공기관/단체의 명칭에도 '대한' 대신 '한국'을 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ex: 한국방송공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등) 다만, 베트남에서는 줄임말로 '대한(Đại Hàn)'도 사용하고 있다. 일단 베트남어 위키 백과에서는 대한민국이 '대한(Đại Hàn)'이 아닌 '한국(Hàn Quốc)'으로 등록되어 있다.
- ↑ 물론 이는 당시로도 소수 의견이었고, 결국에는 알다시피 헌법에서도 대를 붙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 ↑ 법국(法國)은 프랑스의 중국식 한자 표기이다.
- ↑ 에스파냐의 옛 음역 日斯巴尼亞(일사파니아)의 앞 글자를 딴 것.
- ↑ 홀란드의 음역 화란(和蘭)의 앞 글자를 딴 것. 한국과 일본에서는 蘭을 약자로 써서 영란전쟁 등과 같이 표기하며, 현대 중국어에서는 和 대신 荷를 쓴다.
- ↑ 당시 13개 주+버몬트+메인+웨스트버지니아
- ↑ 여기에 워싱턴 주+아이다호+몬태나 북서부+와이오밍 일부 포함
- ↑ 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이 하나둘씩 독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본토-식민지 개념이 아니라 정치-경제적 이권을 위해 영국 아래로 다시 헤쳐모인 하나의 국가 연합체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