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즙벌국

音汁伐國

1 개요

원삼국시대 진한(경상도) 지역의 소국들 중 하나.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노당리 일대에 위치했다.[1] 경주에서 시작한 초기 신라(사로국)의 성장과정에서 조연에 해당한다.

2 역사

신라 파사 이사금 23년(서기 102년)에 음즙벌국과 북쪽의 실직곡국(悉直谷國,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과 대강 영덕군이나 울진군쯤에서 영토 분쟁이 일어났는데, 당시 이 지역에서 잘 나가던 제3자인 신라[2]에 찾아와 파사이사금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파사이사금은 금관국(金官國) 수로왕(首露王)은 나이가 많고 지식이 많다."라고 떠밀었고, 김수로는 의논 끝에 분쟁지역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했다.

이후 파사이사금이 김수로를 위한 연회를 개최하고 신라 6부에 명해 모이게 했는데, 나머지 5부는 이찬을 접대 주인을 삼았는데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은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주관하게 하였다. 이에 가야왕 수로가 노하여 종(奴) 탐하리(耽下里)를 시켜 한기부의 우두머리 보제(保齊)를 암살했다. 그 종은 음즙벌국의 왕 타추간(抒鄒干)의 집에 도망가 의지하고 있었는데, 파사이사금이 종을 벌하기 위해 사람을 시켜 그 종을 요구했으나 타추(抒鄒)가 보내주지 않았으므로 파사이사금이 노하여 군사로 음즙벌국을 침공했고, 결국 타추간은 스스로 항복하였다. 음즙벌국이 본보기로 당하자 위에서 음즙벌국과 땅따먹기 다툼을 했던 실직국(悉直國)에 추가로 압독국(押督國) 두 나라의 왕까지 알아서 신라에 항복하였다.

이 때까지는 금관국(가야)의 국력이 꽤 강했는데 죽 쒀서 개 준 꼴. 수로왕이 영토 분쟁에서 음즙벌국 편을 들어준 것이나 수로왕의 자객을 보호해 준 것 등 음즙벌국과 금관국은 친밀한 사이였던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정작 신라가 음즙벌국을 공격할 때 가야는 별다른 개입도 하지 못했고 이 사건으로 신라는 진한의 맹주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신라에 합병된 이후 이 지역은 음즙화현(音汁火縣)으로 개명됐고 지금의 이름인 안강은 삼국통일 이후 경덕왕 시대에 지어졌다.
  1. 지금 경주시 시가지 바로 북쪽이라는 위치에서 알 수 있듯 극초창기에는 신라 역시 지금의 경주시 면적도 다 지배하지 못한 아주 작은 나라였다. 조금씩 면적을 넓힌 것.
  2. 다만 이 시기까지 신라(사로국)가 강력한 영토국가였던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이 일대에서 좀 잘 나가던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