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2010

이대호의 2010년 시즌 기록.

이 사진 하나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세상의 모든 산해 진미를 다 먹고 나서, 최고로 맛있다는 KBO를 씹어먹었다.
도루부분 만은 이대형에게 개평을 줬다. 물론 이름이 비슷해서 자기랑 혼동할 수 있을거라 착각
여담으로 홍성흔은 왼쪽에 있는 네 부문 2위를 기록했다. 이대호만 아니었으면 4관왕 콩성흔

1 개요

시즌 내내 리그를 지배한 최고의 타자. 홍성흔, 카림 가르시아 등과 함께 매우 높은 타점 능력을 보여주었다. 약간의 침체기를 겪었던 08~09 시즌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고, 특히 09 시즌보다 컨택 능력이 훨씬 더 좋아졌다. 결혼하고 난 뒤 정신적으로 안정된 것이 또한 야식을 끊게 된 것이 좋은 성적의 원동력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시즌 기록은 2006, 2007 시즌을 능가하는 커리어 하이 기록으로, 단순히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넘어서서 한국프로야구 역대 최고 시즌을 들라면 항상 꼽히는 2001년의 펠릭스 호세(출루율이 0.503), 2003년의 심정수(OPS가 1.198), 1999년(홈런 54개)/2003년(56개, 홈런 신기록)의 이승엽, 1994년의 이종범(타율 0.393, 196안타, 84도루) 등과 비교될 정도로 그란도몬스터 시즌을 보냈다.

시즌 중에는 2006년 함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던 류현진과 함께 다시 한 번 투수/타자 동시 트리플 크라운 등극 얘기가 나왔으나, 류현진이 팔꿈치 부상으로 다승왕을 김광현에게 내주면서 동반 트리플 크라운에는 실패. 타자로서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사람은 이만수와 이대호 둘뿐이며, 두 번 기록한 선수는 당분간은 이대호가 유일할 듯하다.

무엇보다 이대호가 이번 시즌에 세운 가장 대단한 기록은, 타율 0.364, 홈런 44, 타점 133, 안타 174, 득점 99, 출루율 0.444, 장타율 0.667, OPS 1.111으로 도루를 제외한 모든 타격 부문(7개)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OPS는 공식 집계 대상에서 제외 근데 출루율 1위 장타율 1위면 당연히 그 합인 OPS도 1위라는 건 누구든지 안다). 한 마디로 리그를 씹어먹었다. 대개 고타율의 타자들은 홈런이 부족한 경우가 많고, 홈런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다 타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 경우가 많다(KBO 리그 통산 최다 홈런을 기록 중인 이승엽의 통산 타율은 정확히 3할 정도). 이렇게 메커니즘이 다르기 때문에 트리플 크라운마저도 쉽게 나오지 않는 기록인데 하물며 타격 7관왕은 정말 ㅎㄷㄷ한 기록. 일본 프로야구는 고사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네 번밖에 없었고[1] 게다가 마지막으로 나온 지 몇십 년은 됐을 정도로 대단한 기록이다.

특히 대단한 것은 이대호가 발이 느린 거포 타입의 선수라는 점. 발이 빠른 선수에게서 간혹 나오는 내야 안타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선수가 타율이 3할 6푼이 넘는다는 것은 그만큼 잘 쳤다는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발이 느려서 잃어버리는 2루타도 많다는 걸 감안할 때 장타율 1위 역시도 미스테리. 실제로 2루타는 13개로 리그 56위, 전준우보다도 적다. 대신 홈런이 압도적으로 많다(1위니까).

2 페넌트레이스

2010년 올스타전에서는 1번 타자로 나왔다. 3년 연속 테이블 세터로 출전하는 충공깽한 상황을 연출했다. 사실 이대호의 출루율은 리드오프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는 출루율이다(1위니까). 물론 다리는 느려서 2루타나 도루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10 시즌 올스타전 동군 타순은 덩치 순이었다. 기사 참조. 참고로 동군의 감독은 3년 연속 김성근이었는데, 의외로 이런 장난을 좋아하는 듯하다. 2008년에는 이대호에게 기습 번트를 지시하기도 했고(당시 영상을 보면 번트가 파울이 된 후 투수에게 자기 쪽 벤치를 가리켜 보이는 손짓을 하는 것이 보인다. 본격 빈볼 유도 장난), 2009년에는 이대호를 1번, 김동주를 2번에 넣기도 했다.
그리고 첫 타석에서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도루를 감행하다 아웃됐다.[2][3] 이대호 도루 시도 동영상 참조. 당시 서군 포수는 조인성. 아마 도루를 허용했다면 아무리 올스타전이라고 해도 평생의 굴욕이었을 듯. 나중에 이대호는 "자기는 재미로 뛰었는데 조인성 선배가 죽기 살기로 공을 던지더라. 섭섭했다."라고 술회했다. 그런데 저 영상을 보면 처음 세 개를 초저속 변화구로 던질 때는 안 뛰다가 갑자기 빠른 공 던질 때 뛴 이대호의 잘못 같기도 하다

6월 29일 강동우에 이어 통산 10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14일 양현종 대신 올라온 KIA의 김희걸을 상대로 9경기 연속 홈런을 날렸다. 당시 홈런을 내준 투수들은 차례대로 김선우, 임XX, 정재원, 노장 안승민, 류현진, 배영수, 안지만, 아킬리노 로페즈, 김희걸이다. SK를 만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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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유니폼이 저거냐
세계 신기록 수립! 8월 14일 김희걸 상대로 홈런 치는 장면. 그러나 8월 15일 홈런에 실패하여 연속 홈런 기록은 9경기에서 멈췄다. 그리고 그 다음 경기에서 또 홈런을 쳤다 MLB.com에서도 기사가 뜨는 등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월드 돼지 대호


롯데 구단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황금 배트를 선물했다. 기사
그런데 이 황금 배트 덕에 세금을 300만 원 넘게 냈다고 한다. 이 뭐... 하긴 배트 자체의 가치가 당시로서도 3천만 원은 되었으며, 전 세계적으로 금값이 올라 현재는 그 두 배 이상이라고 한다. 홍성흔은 자기가 끝까지 경쟁해 준 덕에 대호의 기록이 있었다며 "배트 손잡이라도 달라"고 농담을 날렸다는 후문

3 포스트시즌

팀이 시리즈 전적 1승으로 이기고 있었던 9월 30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 스코어 1:1로 맞선 10회 초 1사 1, 2루에서 정재훈을 상대로 결승 3점 홈런을 날리며 이날 팀의 4:1 승리를 이끌어 MVP가 되었다.
이날 이대호는 5타수 1안타 1홈런 3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김경문 감독이 10회 말 1사 2루에서 3번 타자 조성환을 거르고 이날 4타수 무안타로 부진하던 이대호를 상대했다가 쓰리런을 맞았다고 턱거돼 스리런이라고 했다 카더라.

그러나 이후 3, 4, 5차전에서는 조급한 마음과 커진 스윙을 이기지 못하고 잉여로 전락,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0타수 5안타 1홈런 2볼넷 1몸에 맞는 공 6타점[5] 1득점에 그치며 팀의 포스트시즌 역스윕에 일조하고 말았다.

4 시즌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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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5일 59표를 얻어 30표를 얻은 류현진을 제치고 2010년 MVP로 선정되었다. 이 날 도루왕 이대형이 불참함에 따라 타자 부문 시상은 이대호 하나로 끝났다. 투수 부문이 해당 부문 시상자를 발표하고 불러서 시상을 했던 것에 비해 타자 부문은 먼저 이대호를 부른 다음 7개의 트로피를 한꺼번에 안겨주었다. 다 들지 못해 바닥에 내려놨어야 할 정도. MVP까지 최종적으로 8개의 트로피를 얻었다.

이날 인터뷰에서 '로이스터 감독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여 롯데 팬들을 짠하게 하는가 하면 '좋은 새 감독님 오셨으니 우승을 향해 뛰겠다'는 각오도 밝혔으며, 또 '2006년에는 상 네 개 받고 쓸쓸히 퇴장했다. 상 네 개 받았는데도 쓸쓸히 퇴장한 건 나밖에 없을 것'이라거나, '성흔이 형한테 미안하다라고 하면서 '성흔이형에게 4년 연속 타격 2위라는 세계 기록을 안겨주겠다', '사인 안 해 주는 건 컨셉이다' 등의 발언으로 많은 웃음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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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여 5게임 동안 19타수 7안타 1홈런 6타점을 기록. 조금은 미흡한 모습을 보였으나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대형 홈런으로 체면치레는 했다. 결승전 이후 달나라에서 살토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신혼의 단 꿈에만 부풀었는지 5게임 동안 2루타 하나밖에 못 친 친구보다는 낫다?
  1. 근데 메이저리그는 그 중 하나가 전설의 8관왕이다. 데드볼 시대의 황제 타이 콥의 1911년 기록. 홈런이 잘 안 나오던 시대라 한자리수 홈런으로 홈런왕
  2. 여기서 주로 나오는 떡밥은 이대호 도루 vs 이대형 홈런. 참고로 2010년 상반기까지 양 선수 통산 이대호 7도루, 이대형 4홈런.
  3. 홍성흔 선수가 포수 자리에서 밀려나게 한 결정적인 사건 둘 중 하나가 이대호에게 도루를 허용한 것이다. 2007년 4월 29일 해당 영상을 찾아보면 홍성흔의 표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물론 홍성흔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이대호가 도루할 거라고 꿈도 꾸지 않았던 야수들의 커버가 늦은 것이 잘못이라 하겠다.
  4. 이대호는 유독 SK에게,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대현에게 유독 약했다. 심지어는 리그를 씹어먹은 2010년에도 vs SK전 타율이 2할이 채 되지 않을 정도.
  5.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 출장한 모든 선수 중 가장 많은 타점이기는 했지만, 이대호가 2010년 준플레이오프 3~5차전 동안 기록한 타점은 달랑 1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