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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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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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 No.32
임태훈(林泰勳)
생년월일1988년 9월 28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서울특별시
출신학교역삼초-이수중-서울고
포지션투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2007년 1차지명(두산)
소속팀두산 베어스(2007~2015.6)
후쿠이 미러클 엘리펀츠(2015.8~ )
등장곡긱스 - 어때 (Feat. 하림)[1]
2007년 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
류현진(한화 이글스)임태훈(두산 베어스)최형우(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 등번호 51번
최준석(2006)임태훈(2007~2015)김동한(2016~ )

1 소개

두산 베어스의 투수. 2015년 6월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 되었고 같은해 8월, 일본 독립리그 구단인 후쿠이 미라클 엘리펀츠에 입단했다.

두산의 기대주에서 KBO 전체에 흑역사가 된 선수
문란한 사생활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사례

스캔들 전 : 두산 베어스의 희망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스캔들 후 : 인간쓰레기의 훌륭한 표본

특이한 점이라면 검은 모자가 하얀 색이 될 때까지 로진을 바르고 또 바르고 불고 또 바른단 거다.안개투구 취미손에 쥔 로진불기.

혹사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최고급 유망주와 사생활로 인해 평생 지탄받는 자라는 양면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수

2 선수 생활

2.1 프로 이전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굉장히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으나 하필 그 시기에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손을 대다가 실패하는 바람에, 어머니마저 식당일에 가사도우미까지 뛰면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고 임태훈 본인도 신문을 돌려야만 했다.

결국 형편 때문에 서울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야구를 계속했고, 공에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으면서 주변에서 프로행을 권할 정도까지 실력이 늘어가기 시작했다.[2] 출처

2.2 2007년

혜성같이 등장한 두산의 기둥.

2007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 이용찬과 입단 동기이다. 입단 첫해부터 101.1IP 7승 3패 1세이브 20홀드 ERA 2.40 93K를 기록, 2007년 신인왕을 거머쥐며 두산을 한국시리즈까지 이끄는 데에 큰 공헌을 한다. 비록 준우승에 그치긴 했지만...

참고로 임태훈 이후로 2015년까지 순수 신인 출신 신인왕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이 시즌의 기록은 역대급 혹사라고 보아도 될 정도의 심각한 혹사였다. 임태훈은 1차 지명된 투수였고, 1차 지명된 투수는 고교 시절 날리던 에이스였을 것이다. 고교 에이스는 대부분 고교 시절에 죽어라 굴려진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고 그렇기에 고졸 1년차 투수는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김경문은 고졸 1년차 투수를 순수 불펜으로 100이닝을 채운 것이다. 고졸 1년차 투수가 불펜으로 100이닝을 채운 것은 임태훈을 제외하면 없다. 그나마 가장 근접한 사례가 10대였던 2011년도의 임찬규가 있지만 임태훈과 비교하면 18과 2/3이닝이나 차이가 난다.

2.3 2008년 ~ 2009년

그리고 2008년에도 솔리드한 활약을 하며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뽑히나 했지만 직전에 윤석민으로 교체, 병역 특례를 이른 시기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 이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우승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사이테러를 필두로 그야말로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당시 대표팀 감독이 두산 김경문 감독이었기 때문에 전격 교체가 가능했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임태훈과 윤석민 모두의 병역 특례가 걸려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베이징 올림픽 우승 이후 제작된 특별 다큐멘터리에서 김경문 감독은 '엔트리 교체 이후 임태훈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코멘트를 할 정도였다.하지만 김경문감독의 선택은 적중하여 올림픽 기간 한기주가 싸지른 불을 윤석민이 진압하는 성과를 거둔다. 허구연 해설위원은 "윤석민 안데려왔으면 큰 일 날뻔했어"라 말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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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에도 맹활약하여 11승 5패 4세이브 13홀드 3.06ERA를 기록하였다. 특히 이 당시 철벽불펜으로 활약하던 고창성-임태훈-이재우-이용찬을 일컬어 KILL 라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이 라인은 2010년을 넘기지 못하고 망했다.

시즌 말 허리 통증 때문에 9월 내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SK와의 플레이오프에 필승조로 매일 출근하며 열심히 등판했다.

여기까지가 그의 리즈시절이었다.

2.4 2010년

임태훈/2010년 문서 참조.

2.5 2011년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두산의 순위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자신의 인생까지 망쳐버린 최악의 한 해.
두산 베어스 역사상 최악의 흑역사

임태훈/2011년 문서를 참조.

2.6 2012년

임태훈/2012년 문서 참조.

2.7 2013년

허리 부상이 완쾌되지 않았는지 2군에서만 간간이 모습을 드러냈고, 피칭 내용도 좋지 않았다. 이 와중에 선수단이 초토화된 한화 이글스와의 트레이드 루머가 돌기도 했다. 카더라에 따르면 유창식 (+ 현금) ↔ 정수빈 or 김재호 or 고영민 + 임태훈이었다고 한다. 여론의 반응이 당연히 안 좋았기에 사실상 백지화되었다.

그런데 5월 17일,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는 소식이 떴다.#

5월 18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2회말 1사 때 핵폭탄을 구원하러 등판하였다. 첫 타자 최진행에게 밀어내기 볼넷, 김태균을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김태완에게 좌익수 앞 2타점 적시타를 맞았고, 3회말에는 오선진에게 좌중간 1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4회말에도 최진행김태균에게 볼넷을 허용한 뒤 다시 김태완에게 1타점 적시타를 맞으며 1과 ⅔이닝 동안 2자책점을 기록하고 홍상삼으로 교체되었다.

5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도 변진수를 구원하기 위해 등판했지만 1과 ⅓이닝동안 1피안타 3자책점으로 거하게 불을 지르고 내려갔다. 재미있는 것은 5월 18일과는 반대로 임태훈이 내보낸 주자들을 이혜천이 불러들이는 분식회계를 당했다는 것. 팀도 15:7로 완패.

5월 28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3:6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오현택 다음으로 등판했지만 1이닝 1실점으로 그냥 털리고 강판.

그러다가 6월 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 7:2로 앞선 상황에서 4이닝도 못채우고 강판된 개릿 올슨을 다음으로 구원 등판하여 1이닝 1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으로 앞선 경기에 비해서 비교적 잘 틀어막았으며 팀도 8:4로 승리하면서 올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다.

6월 6일 LG 트윈스전에서 8회 의장대 출신의 다리 긴 남자에게 우월 솔로포를 맞고 결국 그날 팀이 졌다.

6월 11일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8회말에 등판해서 2실점을 헌납하며 또 털렸다. 거기다 박진만에게 통산 1500안타를 헌납했다.

6월 1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1⅔이닝동안 탈삼진 4개를 잡았지만 5피안타 4실점을 당하여 강판되었다.

6월 22일 1군 엔트리에 말소되었다. 그리고 시즌 끝날 때까지 1군에 콜업되지 못했다.

2013 시즌 최종 성적은 9경기 10⅓이닝 1승 1패에 평균자책점은 11.32이라는 막장 스탯으로 끝을 맺었다.

2.8 2014년

어떤 의미로는 혜르노빌이 나간 팀의 두산 火펜의 희망

스프링 캠프에 따라가긴 했지만 고질적인 허리와 골반통증으로 중도하차했다. 팬들은 꼬시다고 입을 모아 말하면서도 불미스러운 일과는 관계없이 작년의 성적과 비교해 보며 "쟤는 야구선수 생활 오래 못 할 것 같다"며 한입모아 말하는중. 확실히 이 상태라면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

최근 사진인데 자기관리가 안 되는 것인지 살이 심하게 쪘다.

2군에서도 평균자책점 5점대를 찍으며 부진했는데 8월 21일 삼성전을 앞두고 1군 엔트리에 등록되었다.# 야구팬들은 2군에서의 이런 막장 스탯에도 1군에 올릴 정도로 두산 투수진이 이렇게 비참해졌냐는 반응. 이날 임태훈은 팀이 1:5로 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투수로 등판, 1이닝 18투구수 2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3일후에 바로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되었다. 송일수 감독은 야수보강차원에서 그랬다지만 대부분의 팬들은 이미 박살 난 불펜인데 야수보강은 핑계고 여론때문에 1군에서 말소되었다는 반응.

9월 6일 SK전에 1:7로 뒤진 상황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 1이닝 동안 사구 2개 삼진 1개 무실점을 기록.

10월 16일 SK전에서는 선발 이현승을 구원하기 위해 등판해서 5:1로 이기던 경기를 3피안타 2볼넷 4실점(이닝 없음)으로 동점을 만드는 승부조작급 졸전을 펼쳤다.

2.9 2015년

미국 전지훈련에는 허리 부상으로 불참했다고 한다.#

5월 4일까지 2군에서 1승 1세이브 방어율 0의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5월 6일 한화 이글스와의 2군 경기에서도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따냈다. 5월 9일 기준 1승 2세이브 4피안타 7K 2사사구 WHIP 0.75라는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년 이맘때엔 2군에서도 탈탈 털렸다는 걸 감안하면 엄청 발전하긴 한 것. 물론 딱 8이닝만 소화하긴 했지만, 이 페이스대로라면 1군에 올라올 가능성도 있다. 다만 1군 등록 시 팬들의 반응이야 뭐...

그리고 바로 다음날인 5월 10일 기아전에서 1⅔이닝 39투구수 4사사구 4실점(4자책)으로 탈탈 털렸다. 방어율도 0에서 3.86으로 폭등.

5월 12일 1군 복귀 기사가 떴다. 그리고 기사가 뜬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이버 실검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네팔에서 또 지진이 벌어지며 얼마 가지 않아 네팔 대지진이 실검 1등 자리를 먹었다.

12일 당일에 경기 출장 가능성이 있었으나 정지훈이 등판해 등판하지 않았고, 15일엔 두산이 7:1로 리드하고 있어서 등판 가능성이 생겼으나 경기 후반 갑자기 정상호에게 3루타를 맞는 등 게임이 개판이 되며 스코어가 7:6이 되자 또 등판하지 못했다. 결국 18일부로 홍성흔과 사이좋은 2군행.

2군에선 계속 출장했고, 5월 30일 기준 세이브 4개로 2군 1위지만 방어율은 4.96. 이건 딱 한 게임 삼성전에서 1이닝 5실점으로 탈탈 털렸기 때문이다. WHIP는 1.35로 준수한 편. 게다가 두산 불펜의 상태가 전부 메롱이라 콜업 가능성은 충분하다.

6월 중순까지 콜업되지 못했고, 2군에서 계속 세이브를 쌓아 세이브 6개로 전체 세이브 4위에 올랐다. 6월 16일 기준 성적은 1승 1패 ERA 4.29 6세이브 1홀드. 방어율만 좀 높지 볼삼 비율도 괜찮기 때문에 양현과 함께 계투 중에선 유력한 콜업 후보다.

2015년 6월 25일, 본인 요청에 의해 두산 베어스에서 임의탈퇴되었다. 두산 구단은 본인 요청에 의한 것이었으며, 쉬고 싶다고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 말이 은퇴를 암시하는 지는 불명확하나, 웨이버 공시가 아니라 임의탈퇴이기 떄문에 이대로 은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은퇴라는 표현을 쓴 기사도 있다. 결국 허리부상이 발목을 잡았나 생각하던 의견은 하단의 사건으로 사라졌다.

하필 같은 날엔 최진행의 약물 복용이 적발되어서 묻어가는 거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선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병역 특례가 확정되었고, 기초군사훈련을 다녀온지 4년이 경과되어 군대 가기 싫어서 버틴 거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는데 이미 예술체육요원의 복무 기간 34개월을 채워 예비역이 됐기 때문에 군대 가기 싫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34개월만 딱 채워선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해 기간을 더 채웠다는 의견도 있는데 당연히 진실인지는 불명.

2.10 그 이후

며칠 뒤 사회인 야구에 가입했다는 자료가 올라왔다. #

#]]아카이브#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doosanbears_new&no=5347648&page=1

7월 11일 새벽 2탄이 올라왔지만 삭제되었다. 캡처

7월 12일 저녁 3탄도 올라왔지만 삭제되었다. 캡처 이쯤되면 임태훈 본인만의 문제는 아닌 듯. 그리고 임태훈은 해당 여성을 고소했다고 한다. 누가 누굴 고소해

8월 6일 일간스포츠 단독 근황 기사 3부작으로 이는 모두 사실로 드러났다. 본인은 임의탈퇴 전 해외로 나가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 이 여자친구는 대만 프로야구 정보를 찾아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줬다. 그런 여자친구에게 낙태 종용, 다른 이성과의 만남 등 씻을 수 없는 상처만을 남겨줬다는 점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는 것만 증명했다.

8월 14일, 일본 독립리그BC 리그 소속 후쿠이 미라클 엘리펀트(福井ミラクルエレファンツ) 입단 기사가 떴다. 이제 그만좀 나오면 안되냐 링크 일단 임태훈이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 자체에 팬들은 격분했고, 위의 사건이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웃는 표정으로 유니폼을 입은 사진까지 올라왔다. 이제는 빼도박도 못하게 인간 쓰레기 확정.

독립리그 데뷔전에서 2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2015년 성적은 2승 무패 방어율 4.13.

위키백과의 임태훈 문서가 반달당하기도 했다.

3 동정론(?): 혹사 피해자론

김경문의 혹사로 인한 피해자로 재평가하는 관점도 존재한다. 임태훈의 통산 등판기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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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이야 5월부터 선발로 전환했다고 쳐도, 2007년은 순수 계투로 100이닝을 먹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2015년 권혁과 비교해 보면 된다. 권혁은 78경기에 나와 112이닝을 소화했는데, 경기당 이닝수를 계산해보면 권혁보다도 임태훈이 더 높다. 게다가 2007년도는 1시즌의 126경기로 현재 144경기 체제에 비해 열 경기이상 적다. 이뿐 아니라 10년 이상의 경험치가 축적된 권혁과 달리 2007년 당시 임태훈은 중고 신인도 아닌 고등학교 막 졸업하고 입단한 1년차 신인이었다.[3][4] 혹사 강도로만 보면 2015년 김성근살려조를 저리가라 할 수 있을 급의 더 악질적인 혹사인 셈이다.[5] 심지어 임태훈은 시즌 내내 불펜으로 구르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계속 핵심 계투로 뛰다가,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리오스를 3일 휴식만 시키고 4차전에 등판시키는 승부수가 실패, 자멸해버린 김경문이 팀에 올릴 선발 투수가 없다는 이유로 이미 5차전에 구원등판해서 패전투수가 되었던 임태훈을 한국시리즈 6차전에 선발로 등판시켜 버리는 역대급 혹사를 저질렀다. 선발로 뛴 2010년을 제외하면 임태훈은 3년동안 4600구 가까이를 던졌는데, 한국프로야구 사상 이 정도로 굴려진 중간계투는 없다. 결국 임태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2011년부터 비실대다 초라하게 은퇴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송지선 사건이 없었어도 진작에 퍼졌을 선수였던 것.

임태훈은 데뷔년도인 2007년에 무려 100이닝 가량을 던졌고 2008, 2009년에도 90이닝 가량 등판을 했다. 선발 자원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문제는 임태훈이 계투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09년도 말부터 허리통증 때문에 퍼지기 시작했고, 2010년 초에 결국 탈이 나 부랴부랴 선발로 전환시켰다가 결국 그 해의 홈런공장장으로 만들어놓고 말았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야 선수 본인에게 탓을 돌릴 순 있어도, 선수의 컨디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은 명백한 김경문의 실책이다. 불미스러운 일로 야구판에서 사라진게 아니었다면 류현진 이후 씨가 마르다시피 한 KBO에서 손에 꼽히는 대형신인이 선발이나 철저한 관리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한 감독의 욕심 속에서 혹사로 사라진 가장 큰 사례 로 가장 먼저 꼽혔을 것이다.

4 기타

  • 특이하게도 포스트시즌과는 악연이 깊었다. SK 와이번스김재현에게 약한 것도 그렇고 2007년부터 시작해서 두산의 우승을 위하여 묵묵히 마운드에 올라갔지만 6차전에서 김재현에게 홈런포를 맞고 말았다.
  • 이대호무릎팍도사에서 말한 바로는, 우승하자마자 랜덤으로 고르는 도핑 테스트에 당첨, 제대로 환호도 못하고 끌려갔다고. 그 당시 임태훈이 주최측 도핑 요원에게 낙점을 받은후 시뻘겋게 열을 내면서 "나 이거 세레모니 조금 하고 들어간다고! 제발 좀 기다려달란 말야!!"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세리머니는 하고 TV에도 나왔고 도핑 테스트받으러 갔다고 한다. 당시 동료들은 얘가 왜 금메달까지 받아놓고 그렇게 똥씹은 표정인지 알길이 없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대호도 이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
  • 마구마구에는 아예 11임태훈 카드가 없고, 컴투스 프로야구 2012에서 국대를 달지 않은 선수가 되었다. 참고로 2012인 시절에는 컴투스가 임태훈 안티인건지 카드 사진이 정말 못 생겼다(...).[6]참고로 이사만루 2015 08임태훈 11성 엘리트 카드의 원래 최고구속이 147(직구가 D)이 나오고,슬라이더가 B인데,직구 한두개 꽃아넣고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하면 십중팔구 범타나 삼진이 된다.
  • 선천성 허리척추분리증을 앓고 있어서 평소에도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한다. [7] 플레이오프에도 내내 진통제를 맞고 압박붕대를 한 채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평소에도 "허리야, 버텨줘!"라고 쓴 모자를 쓰고 나온다. 하지만 그 허리가 어떤 용도로 주로 쓰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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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플레이오프 5차전에는 이 글귀가 "허리님...버텨주세요"라고 바뀌어 있는데, 잘 보면 싸인펜으로 지운 글귀는 "허리야, 버텨라!"이다. 이전 "허리야, 버텨줘!" 모자에서 새 모자로 교체했을때 "허리야, 버텨라!"라고 바꿨는데 준플 1차전에 그 모자를 쓰고 나와서 시원하게 털렸다.(...) 그래서 다시 이 문구로 바꿨다고 한다. 그거나 그거나 결국 5차전에서도 털림

  • 2013년 12월 19일 고 이두환을 기억하기 위한 일일호프에서 치킨을 서빙하는 모습이 찍혔다.
  • 2011년 9월 사과문을 두산 홈피에다 게시한 적이 있긴 하다. 이하는 사과문 전문.
안녕하십니까? 임태훈입니다.
먼저 프로야구 선수이자 공인으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염려를 끼쳐드린 점, 팬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 동안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여름 군사 훈련을 마치고 2군에 합류해 합숙생활을 하면서
오직 야구만 생각하고, 야구에만 전념했습니다.

지난 8월 말 이천에서 2군 경기에 처음 등판한 날,
감정이 복받쳐 눈물이 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토록 오르고 싶었던 곳이 바로 마운드라는걸 새삼 다시 깨달았습니다.
정말 야구가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이제 용기내어 마운드 위로 걸어가려 합니다.
오늘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그리고 제 삶이라 할 수 있는 야구를 위해 오늘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맵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그 동안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제목은 사과문인데 어째 내용은 나 힘들었다. 야구에만 전념하겠다는 말뿐이고,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이 없다.

  • 2013 시즌 이후 한 장애유기아동 보호시설에 4년간 후원을 했다는 기사가 떴지만 팬들의 반응은 냉랭하기 짝이 없다. 언플, 물타기 소리만 바가지로 먹었다.기사 게다가 2013 시즌의 삭감당해야 마땅한 개판 5분전 성적에도 불구하고 연봉 협상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팬들의 분노가 폭발, 최저연봉도 아깝다느니 방출감이라느니 무지막지하게 까였다. 이쯤 되면 구단을 아예 등쳐먹을려고 하는 수준이다. 기사
  • 2014 시즌 후 양준혁 야구재단 주최 2014 제3회 희망더하기 자선야구대회에서 종범신 팀 2루수로 출전, 혼자서 5타점을 기록해 종범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물론 대다수 야구팬들은 다 좋은데 임태훈이 왜 나왔냐면서 깠다.

4.1 광저우 아시안게임 관련 트리비아

안 좋은 쪽으로 재평가를 받은 대표적인 국대 선발 사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국가대표로 뽑히지는 못했지만,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많이 등판하지는 않았지만...다만 여기서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으나,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의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에 불가피하게 김광현 대신 정우람을 거르고대표팀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병역 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사건을 터트렸다

이에 대해서도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엔트리 교체때와 마찬가지로 논란이 컸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출장전 시즌 성적은 한마디로 엉망이었고, 이는 경쟁자로 꼽히던 좌완불펜투수의 이점까지 가진 정우람과 비교되어서 더욱 말이 많았다. 굳이 정우람이 아니라도 임태훈보다 성적이 더 좋은 후보군 투수는 많았다. 이닝 때문에 평균자책점 2위를 놓친 승률왕 차우찬, 팀 상황에 따라 보직을 바꿔가며 미친 듯이 굴려지면서도 좋은 성적을 올린 이승호, 딱히 좋은 성적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임태훈보다는 좋았던 장원준 등등... 게다가 이 선수들은 모두 김광현과 같은 좌완이었다! 본인도 당연히 좌완이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하지만 결국 임태훈이 승선한 것은 성적보다는, 병역면제인 김광현 대신 같은 팀의 정우람이 승선할 경우의 논란,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에 대한 보상문제[8] 그리고 대표팀 감독은 임태훈의 교체로 대신 승선한 윤석민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의 조범현 감독이었다는 것 등등 실력 외적인 면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는 평이 당시에도 일반적이었다. 여러가지로 운이 맞았다고 봐야 할 듯하다. 이전에는 농담처럼 우승팀 멤버인 것이 죄라고 적혀있었지만, 우승팀 멤버라서라는 것은 SK팬들의 피해의식이 아니라면 그다지 영향이 없었다. 앞의 3가지 이유가 가장 크게 작용했기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도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은 당연히 2010 시즌 도중에 열렸고, 2009 시즌 우승팀은 기아이고, 이것이 조범현 기아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 된 이유였다. SK가 2010년 시즌에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을 해서 페널티를 줬을리는 당연히 없다.

2010년의 정우람과 임태훈의 성적을 비교해보면, 홀드 3위+출장경기수 2위+평균자책 3점대 < 피홈런 1위+평균자책 5점대의 결과로 광저우 AG 국대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임태훈도 2008년에 윤석민에 밀려 베이징 올림픽 국대로 선발되지는 못했긴 하나, 적어도 정우람은 국대에 가서 운 좋게 면제를 받은 선수들에 비해서는 차라리 양반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러게 정우람을 선발하지 왜 하필이면 임삿갓을... 조뱀 이불킥 할 거리 더 늘었다 그나마 한기주는 혹사 전까지만 해도 특급 클로저였고 양현종은 에이스로 각성하기라도 했지만...

5 통산 성적

  • 투수성적
역대기록
년도소속팀경기수이닝ERA피안타사사구탈삼진
2007두산 베어스64101⅓73320
(2위)
2.40774193
2008578765514
(5위)
3.41692883
20095888⅓115413
(4위)
3.06672785
201036130⅔911115.3013459103
2011191911703.7916813
20122250⅓44034.65533733
2013910⅓110011.32181113
201463⅔00019.82774
통산-271490⅔393019524.00441218427
역대수상
년도수상내용
2007년한국프로야구 최우수 신인상
2010년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1. 공교롭게도 정형식의 등장곡이었다. 두 선수 다 원 소속팀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생각하면...불쌍한 긱스...
  2. 공부도 꽤 잘했던듯 하다.당시 스카우터들 평가가 책을 손에 놓지 않는 투수였다고.
  3. 갓 입단한 신인들, 특히 투수들에게는 더 확실한 관리가 필요하다. 프로경험이 부족한 것은 물론이고, 임태훈은 드래프트 1차 지명으로 입단했는데 1차 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할 정도면 소속 학교에서 거의 에이스급으로 활약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고교에서 에이스급 투수들은 엄청난 혹사를 당한다. 그렇기에 1~2년차 신인 투수들에겐 더 철저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고교 시절 날렸던 유망주라면 더더욱.
  4. 참고로 임태훈 이후 고졸출신 신인왕은 나오고 있지 않다. 임태훈의 혹사는 두산 뿐 아니라 야구계 전체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 셈이다.
  5. 이와 가장 근접한 사례로는 2011년 박종훈 밑에서 밑도 끝도 없이 굴려진 당시 10대였던 임찬규가 있다. 사실 이것도 말이 좋아 가장 근접한 사례인거지 이 둘 간에도 18과 2/3이닝이나 차이난다.
  6. 당시까진 권혁이나 송승준 같은 경우에도 국대를 달지 않았지만, 2013에서 수정되었다.
  7. 한대화도 같은 질환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6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면...
  8. 야구 관계자들은 한결 같이 어떤 형태로든 보상을 해야 한다고 언급한 문제로, 당시 대표적으로 꼽히던 선수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박기혁과 성적이 엉망이던 임태훈이었다. 박기혁은 얼마 뒤 음주운전 단속에 걸려서 말이 나왔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