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당

이성당 (李盛堂) / LeeSungDang

1 개요


이성당은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1가에 있는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最古) 빵집이다.[1]

군산에 있는 본점 이외에도 현재 총 3곳의 공식적인 분점이 있는데,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에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 1층(B1) 상가(테이크아웃 중심 운영)와 롯데월드몰 지상 6층(카페 중심 운영), 충청남도 천안시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B관 4층 야우리 푸드스트리트에 있다.[2] 드디어 군산과 서울 이외의 타지역에도 이성당 입성!!!

2 역사

1910~1920년대에 일본 시마네 현 이즈모시(出雲市)에 살다가 아들의 군복무를 피해 1906년 조선으로 건너온 히로세 야스타로(広瀬安太郎)(1869~?)라는 일본인이 '이즈모야(出雲屋)'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영업하기 시작하였다.[3] 메이지 유신 이후 빵문화에 익숙해진 일본인들은 이때도 빵을 즐겼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고위공무원과 무역거상(수탈자)들이 한국으로 이주하였고, 일본인 집성촌이던 이곳[4]에서 그들을 상대로 하는 고급 빵집이었기에 조선인들은 이용이 힘들었다.

특히 이즈모야는 야스타로의 장남 히로세 켄이치대에서 가장 크게 번성하였는데, 히로세 켄이치는 당시 군산내 일본제과점들의 사실상 대표역을 맡으면서 각종 제빵기구의 주문 및 구입을 대표하는 모임의 장을 역임하기도했다. 특히 야스타로대까지만해도 이즈모야에서는 주로 일본식 화과자에 가까운 상품이 주를 이루었지만 켄이치는 직접 도쿄에가서 제빵기술을 배워와 이즈모야에서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였고 동생과 협력해서 케이크와 커피판매를 주로하는 카페까지 확장해서 운영하였다.

실제로 당시 군산지역에서 이즈모야가 가진 영향력은 일제강점기 후반의 물자통제가 이루어진 시점에서의 일화에서 잘 나타나는데 당시 기초물자통제로 인해서 이즈모야 또한 빵을 만들기위한 기초재료 확보가 매우 어려워지자 히로세 켄이치는 지역의 군사식량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의 임원을 역임하면서 가지게된 영향력을 이용해 공장에서 빵을 유통해서 이즈모야에서 팔기도했다.

그러나 광복 이후 히로세 가문은 급하게 모든 제빵기구를 내버려두고 피난을 하게되었고[5] 이후 이들 가문은 히로세 켄이치의 부인의 고향인 사가현 이마리시로 이주하여, 이곳에서도 제과점을 차려서 살고있다. 여담으로 사실상 이즈모야 시절을 경험한채 생존중인 유일한 히로세 가문의 구성원인 히로세 츠루코씨[6]는 종종 이성당과 교류를 이어오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성당을 중심으로하는 관련 일상사연구들에서 중요한 구술자로 참여한 바 있다.[7]

1945년, 해방 이후 이즈모야가 사라진 자리에는 한국인 이석우씨가 자리를 잡았다. 이석우씨는 일본 홋카이도출신으로 이씨의 부모님은 본래 전라북도 남원출신이었지만 자발적으로 광산노동자가되어 돈을 벌기위해 일본 홋카이도로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반도로 돌아온 이씨의 부모님은 고향인 남원으로 돌아가지않고 군산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이석우씨는 당시 군산에서 나름 재산을 가졌던 대동사이다 공장의 사장에게 설탕살 돈을 빌려[8] 과자를 만드는 장사를 시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번 돈이 어느정도 모이자 당시 적산가옥으로 등록되었던 이즈모야의 건물을 불하받아 이성당을 차리게된다.[9]

이석우씨는 초기에는 히로세 야스지로와 마찬가지로 간단한 과자류만을 팔았지만 송씨라는 제빵기술자를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빵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10] 이후 각종 기술 공유를 통해 상품의 폭을 넓혀가던 이성당은 보다 효율적인 재료 공수를 위해 주변지역의 제과점들과 협력하여 삼영상사라는 회사를 차렸고 이를 통해 각종 제과제빵에 필요한 재료와 기구를 구입하는 일을 도맡았다.[11] 당시 이석우씨는 가장 젊고 계산에 능하다는 이유로 삼영상사의 대표직을 겸했는데 이 상사는 이후 아래에서 언급할 대두식품으로 까지 이어진다.

이성당의 주요 사업은 이석우씨 이후에는 이종사촌인 조천형 씨가 물려 받았다. 조천형 씨는 현재 이성당의 대표인 김현주 대표의 시아버지이다.

조천형 씨는 다시 아내인 오남례 씨(2010년 작고)에게 이성당의 운영을 맡겼고, 2003년부터 오남례 씨의 며느리인 김현주 대표가 4대 대표로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 광복 이후로 기산해도 70년, 일제강점기 시절 전신인 '이즈모야' 시기까지 포함하면 1세기, 100년의 역사를 가진 곳.

보다 자세한 이성당의 역사는 여기를 참고1 보다 자세한 이성당의 역사는 여기를 참고2 보다 자세한 이성당의 역사는 여기를 참고3

2013년 4월 15일부터 4월 21일까지 7일간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팝업스토어 형태로 초대전이 열렸고, 대표 상품 단팥빵이 일 평균 1만개 이상 판매되는 등 2억 5천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고객들은 빵을 구매하기 위해 3시간 이상 기다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러한 호흥에 힘입어 1년후 2014년 5월 5일, 롯데백화점 잠실점에 정식 매장으로 입점. 반년 후 2014년 10월 30일, 롯데월드몰 이성당 카페도 입점. 1년 후 제70주년 광복절이었던 2015년 8월 15일, 충청남도 천안시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B관 4층 야우리 푸드스트리트에도 입점.

3 단팥빵과 야채빵

첫 번째 사진에서 이성당 빵을 사기위해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까지 줄을 서서 사가는 빵은 단팥빵과 야채빵. 흔하디 흔한 팥빵이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엄청나게 얇은 결로 찢어지는 쌀가루 표피에 엄청나게 많은 단팥소가 들어가는데 다른 프랜차이즈 단팥빵 팥앙금의 2배를 넣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유의 빵 형태의 유지를 위해 중간에 작은 구멍이 나있는데 이때문에 다른 일반적으로 둥글고 도톰한 단팥빵 형태와는 달리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간 단추 모양을 연상시킨다.

이 팥앙금의 제조는 이성당 김현주 대표의 남편 조성용 씨[12]가 운영하는 군산 서수 농공단지에 위치한 중견기업인 대두식품이 담당한다. 대두식품의 브랜드 라인업인 화과자 브랜드 '화과방' 과 쌀가루 제품 브랜드 '햇쌀마루' 를 활용해서 제조한다. 빙수용 팥앙금으로도 유명하여 국내 앙금 제조 선두 업체이다. 이 업체가 국내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납품되는 단팥소의 대다수(7할)를 제공하는 업체여서 그런지 단팥소에서 그다지 기존 빵의 팥앙금과 별다른 특징을 못 느낀다는 반응이 많다.

빵집에서 팥빵과 쌍두마차를 이루는 소보로와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야채빵(양배추빵)의 판매가 이성당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양배추를 비롯한 여러가지 야채와 어우러진 속재료가 숨이 죽어 뭉개지지 않고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주된 속재료인 야채의 특성상 수분기가 많기 때문에 속재료를 대량으로 만들어 두고 쓸 수 없어서 소량씩 자주 만들어서 굽는등 여러모로 빵으로 구현하기 굉장히 까다로운 특성을 지닌 빵이다. 더불어 빵 형태를 잘 유지시켜 굽는게 노하우.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한번에 대량으로 만들어 매대에 빵을 쌓아놓고 팔지 못하고, 일정 시간 마다 소량으로 구워져서 진열되는 터라 빵이 나오는 시간에 자연스럽게 빵 쟁탈전을 벌이게 되는 결과가 발생한다.

군산까지 갈 여력이 없다면 서울이나 천안의 분점들을 이용해 보시길 바라지만 미묘하게 본점 맛이나 질감과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그 분점에서도 군산 본점에서의 줄서기 한정 마케팅은 계속된다. 본점의 경우는 평상시에도 짧게는 수십 m, 길게는 100여 m에 이르는 긴 대기줄을 자랑하며, 주말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하나의 군산 투어 코스의 한곳으로 굳어진지 오래이다.[13] 한적한 구도심 한복판에서 유난히 한곳만 북적이는데 거기가 바로 이성당.

그밖에 미원동의 복성루나 중동의 중동호떡, 미원동의 지린성, 나운동의 비행장정문부대찌개, 영화동의 안젤라분식도 대기줄이 길기로 유명하다. 이성당과 중동호떡을 제외하면 복성루와 더불어 전부 백종원과 관련이 있다는 점.[14] 특히나 3대천왕에 최근 3곳이 연달아서 방송에 나오는 바람에 원래 줄이 길던 곳도 더 길어지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맛집 줄세우기 신흥강자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백종원이 군산에 부디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랄뿐이다.(하지만 얼마전 다시 백종원의 3대천왕에서 군산의 녹두 삼계탕(개복동 '운정식당'-닭 특집)과 반지회덮밥(금암동 '중앙식당'-최고의 밥상 특집)을 소개했다.)

터미널에 외지 관광객들이 손에 손에 든 노란 종이봉투를 자주 목격할 수 있는데, 바로 이성당 종이봉투이다. 빵을 대량으로 사가는 경우가 많아서 종이봉투 여러개를 손에 들거나 차에 싣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인기빵인 단팥빵(앙금빵)과 야채빵을 위해 대기줄을 유지하는 가이드라인은 기본이고, 가끔 가다 불미스러운 대기줄 시비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질서 유지 요원이 아예 배치되어서 관리할 정도.[15] 1박2일 이나 무한도전 같은 지상파 및 케이블 방송, SNS, 각종 미디어에 빈번하게 노출 되고 있으며, 덕분에 본점의 경우 날이 갈수록 외지 관광객의 유입으로 현지인이 더더욱 가기 힘들어지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4 여담

  • 매달 첫번째, 3번째 일요일은 휴무이다. 모르고 갔다가 낭패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으므로 주의.
  • 광복, 해방의 1945년을 실질적인 창립 연도로 여기는 듯하다. 포장지와 간판 곳곳에 'Since 1945' 가 매우 강조되어 표기되어 있다. 이성당이 위치한 구시청 사거리는 인구가 줄어가는 전형적인 구도심이라 사람이 매우 한적하고 인파도 드문데, 막상 이성당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늘 북적이며 가득 차 있고 평일에는 100명, 주말에는 항상 3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따라서 매우 혼잡하며 주변에는 주차하기 매우 힘들다. 반대편 에넥스텔레콤 주차장을 이용하라는 안내문구가 버젓이 있지만 이걸 주의 깊게 신경 쓰는 사람은 그다지 없다.
  • 빵을 살 때도 줄을 서야 하고 계산할 때도 줄을 서야 한다. 그냥 들어가서 빵을 고르고 바로 계산해서 나오기 때문에 전혀 기다릴 필요가 없는 일반 빵집과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개점부터 폐점까지 항상 붐비며, 한적한 시간은 거의 없다. 이성당에 가면 최소한 30분 이상 기다릴 것을 각오해야 한다. 특히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서 있는 줄의 길이가 상상을 초월하는데, 이 때는 적어도 2~3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다만, 인기빵인 단팥빵(팥앙금빵)과 야채빵이 아닌 다른 빵들은 대기줄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 그렇게 줄을 안 서는 방법은 갈 날은 물론이고 정확한 시간(...)까지 미리 예측하여(...) 전화로 예약하면 야채빵이랑 단팥빵 살때 줄을 안서고 바로 계산대로 직행할 수 있다!!! 나머지 빵들은 그다지 줄을 안 서므로 이게 가장 현명한 방법. 하지만 전화예약이 밀리는 경우면 이마저도 힘들 수 밖에 없다. 아무튼 여기는 기본적으로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한 인내심 함양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계속 기다리니까...
  • 이성당은 1시간당 내놓는 빵의 갯수를 제한하고 있는데 어느정도 마케팅의 일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낙에 항상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에 단팥빵과 야채빵은 1인당 판매수량을 5개 혹은 10개로 제한한다. 그러니까 예약을 하라고!!!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들의 경우 앞에서 싹쓸이 하듯 몽땅 사가버리면 그때문에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수량 제한은 자의반 타의반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 이성당의 빵은 모두 쌀가루로만 제조한다고 마케팅 하지만 기존 밀가루 빵과 맛의 차이는 없다.(건강에 좋을것 같은 마케팅) 블루빵 같은 쌀빵의 질감이 떡과 같은 쫀득함이 있는게 특징이라면 특징. 2006년부터 쌀가루를 이용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 니가타 현의 '겐리치' 제과점에서 그 기술을 전수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철도와 선박을 이용해 피땀 어린 식민지 백성들의 쌀 수탈의 전진기지 신세로 전락했던 항구도시 군산. 역설적이게도 일본과 군산의 쌀로 이어지는 기묘한 인연이 새삼 아픈 상처로 다가온다.
  • 빵 이외에도 여름철 계절메뉴인 팥빙수와 밀크쉐이크가 매우 맛있어서 이것을 먹으려 들리는 현지인들이 생각보다 많다. 단순히 블로그를 보고 빵이 맛있다는 소문으로 찾는 사람이 많으나, 정작 현지인들은 모닝메뉴와 팥빙수/밀크쉐이크 같은 주력 메뉴 이외의 제품을 선호한다. 과거에 이성당은 가까운 곳은 직접 구운 수제피자를 배달하기도 했다. 모닝메뉴의 경우는 서구의 조식 개념이 우리나라에 아직 널리 보급되기는 이른 시점인 1980년대 초에 개발되어 저렴한 가격에 한정된 아침시간에 제공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모닝메뉴를 점잖은 노신사가 이른 아침에 식사로 즐기는 광경을 그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 빵집 안쪽으로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구비되어 있는데 현지인들은 주로 이곳에서 먹는다. 주방과 매장을 두세 차례에 걸쳐서 리모델링을 해가며 늘린 탓에 매장이 생각보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깊고 넓은 편이다. 빵 뿐만 아니라 쌀가루 제품이나 각종 빙수재료, 만쥬, 화과자, 전병, 조각케이크, 케이크류 같은 제품도 구비하고 있어서 도시 규모에 비해서 윈도우 베이커리 치고 매장이 꽤나 큰 편. 그 때문에 외지사람들도 매장 규모가 꽤 넓은 것에 종종 놀라곤 한다.
  • 다 떨어졌던 팥빵과 야채빵이 새로 구워 나오는 시간대가 되면 종업원이 매대에 진열하기 위해 카트를 끌고 나오면서 빵이 나오는 것을 큰 소리로 알려주는데, 이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빵을 사러 달려나가는 모습이 매우 흥미롭다.그러니까 예약을 하라고!!! 사실 매대에 진열하기가 무섭게 동이 나기 때문에 엉겁결에 더 사게 되는 충동을 일으킨다. 또한 치열한 쟁탈전을 통해 빵을 차지하고 나서도 계산을 위해 다시 계산대 대기줄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종업원들의 신기에 가까운 빵 포장신공과 빠른 계산능력 때문에 비교적 계산 대기줄의 회전률은 좋다. 계산대를 두세곳으로 분산해놨지만 가끔은 한꺼번에 밀려 오는 계산줄을 감당 못할 때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게 알려져 전국 방방곡곡 예약된 택배 박스들이 주소지가 적힌 채로 택배 전담 코너에 한가득 쌓여있다.[16] 택배의 경우는 통상 1달 이상의 발송 대기 시간이 밀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택배 주문을 하고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나중에 집에서 받아 본다거나, 누군가에게 선물로 빵 택배 잘 받았다는 안부인사를 받으면 그제서야 예약구매 했던 사실을 기억을 하는 웃지 못할 경우를 종종 볼 수 있기도... 여름철 같은 경우 제품의 변질 문제 때문에 야채빵 같이 택배 발송이 제한되는 품목이 몇몇 있다. 제공되는 카탈로그를 통해서 보낼 수 있는 택배빵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다.
  • 군산 사람들은 단팥빵이나 야채빵보단 고로케와 꽈배기를 좋아한다. 야채빵은 사실 생긴지 얼마 안된 메뉴다. 또한 군산의 여타 다른 빵집들 역시 단팥소(팥앙금)를 이성당 단팥소를 제조하는 대두식품의 제품을 납품받아 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단팥빵이 비슷비슷하니 맛있다. 사실 같은 팥앙금이 들어가 있지만 더불어 생크림이 빵빵하게 들어가 있는 생크림앙금빵 또한 숨겨진 메뉴인데 이걸 아는 사람이 드물다. 더욱이 이 빵은 긴 줄 서서 겨우 살 수 있는 앙금빵과 달리 줄 안서고 살 수 있는데 말이다. 크고 아름다운(?) 소세지가 통으로 들어가 있어서 마치 천조국 전형적인 미국핫도그의 비주얼을 연상시키는 보스턴 소세지빵도 숨겨진 메뉴.
  • 이성당에서 제조/생산 책임 담당자로 십수년간 종사한 이인호 쉐프가 독립해서 자신의 윈도우 베이커리를 차린 케이스도 있다. 나운동의 '리베이커리' 이다.[17] 군산에는 이성당과는 달리 쫀득쫀득한 차진 식감의 군산 특산품종인 '흰찰쌀보리'를 활용한 '보리진포' 라는 브랜드로 뭉친 20~30여곳의 윈도우 베이커리 연합이 있다. '리베이커리'도 그중 한 곳. 이성당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지만 보리 롤케익과 저렴하고 푸짐한 테이크아웃 팥빙수가 좋은 신풍동의 '영국빵집' 도 마니아층을 거느린 군산의 대표적인 곳.[18]
  • 이성당은 흥미롭게도 여순반란사건과도 관련이 있는데 여순반란사건 당시 이성당에 군인들이 먹을 빵주문이 대규모로 들어오는 바람에 이성당 사람들이 3일 밤새 팥빵을 만들었다고 한다. 몇만개가 넘는 빵을 만드느라 아예 그동안은 가게가 문을 닫았고, 결국 빵만 3트럭넘게 실어서 내보냈다고한다.
  1. 전라남도 순천시에서 1928년 일제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문을 열어 광복한국인에 의해 인수되어 3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화월당'과 더불어 대한민국에 보기 드문 먹거리 관련 백년기업 중 한곳으로 꼽힌다. '화월당'의 경우는 개업 당시의 상호가 그대로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기 때문에 그 시작을 1928년으로 기산하고 있다. 반면 '이성당'은 광복 후 한국인에게 인수되는 과정에서 상호를 '이즈모야(出雲屋)'에서 '이성당(李姓堂)'으로 바꾸면서 그 시작을 광복 시점인 1945년으로 기산하고 있다. '이즈모야' 때부터 가산한다면 1906년부터니 110년째가 되는 셈이다.
  2. 서울 분점 2곳에 비해 천안점의 매장규모나 메뉴규성은 본점인 군산점에 버금간다.
  3. 히로세 야스타로의 본명은 엔조 야스타로로 본래는 시마네현 마쓰에시 출신이나 성장한 후 이즈모시에서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이루었다. 이즈모야라는 이름은 그가 오래 생활한 이즈모시에서 따온 명칭이고, 성을 엔조에서 히로세로 바꾼것은 아들의 군복무 회피를 위해 군산에 넘어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다.
  4. 군산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탈의 핵심 전초기지였다.
  5. 당시 히로세 켄이치는 가게를 버리고 떠나는것을 극구 거부하여 결국 켄이치를 제외한 가족만이 군산을 떠났지만 우연히 이들이 타고가던 보트가 여수에서 고장나는 바람에 잠시 이곳에 머무는 사이 켄이치의 아내가 군산으로 돌아가 설득해서 결국 같이 귀국하였다.
  6. 히로세 켄이치의 딸
  7. 심지어 100년가까이 되어가는 이즈모야시기의 각종 기록자료를 아직도 보유중인지라 관련 연구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기도했다.
  8. 이석우씨는 우연히도 대동사이다 공장주의 딸과 학교동창이었고 그 인연을 살려서 돈을 빌릴 수 있었다.
  9. 이성당이라는 명칭은'이(李)씨 성(姓)을 가진 사람이 운영하는 빵집'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는 연구자에 따라 조금 다른 견해도 존재하는데 관련연구를 진행한 오세미나씨의 경우 당시 이석우씨는 이성당(李姓堂)이 아니라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번성하는 집이라는 의미로 이성당(李盛堂)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는 견해를 관련 연구에서 밝히기도했다.
  10. 현재는 이 시기를 경험해서 이야기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은 오씨라는 기술자밖에 없는데 오씨는 당시에 송씨를 통해서 직접 제과제빵을 배웠다고 한다.
  11. 재미있는점은 히로세 켄이치가 운영한 이즈모야 또한 당시 군산지역의 제과점대표격의 위치를 점하면서 마찬가지로 재료공수나 기구공수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었다는 점이다.
  12. '이성당 할머니'로 불리시던 故 오점례 씨(2010년 작고)의 아들
  13. 실제로 군산 시티 투어 버스의 고정 하차 코스이기도 하다.
  14. 복성루:스타킹 중식4대천왕-명가의 비밀, 비행장정문부대찌개/안젤라분식/지린성:백종원의 3대천왕.
  15. 비슷한 예로 중동호떡은 은행에서나 볼 수 있는 대기번호표 발행 기계를 가져다 놓기도 한다.
  16. 현장구매만 가능하다.
  17. 2016년 봄부터 월명동 '이인호의 화과자 공방'도 운영중.
  18. 그밖에 미룡동 군산대학교 인근에 있다가 군산의 신도심 금싸라기 번화가인 수송동 한복판으로 이전한 '홍윤베이커리' 는 군산 최초의 제과 기능장인 홍동수 기능장이 대표. 산북동에 '라셀' 이라는 곳도 최근에 뜨고 있는 곳중 한곳. 서울 '본누벨' 본점 출신의 파티쉐가 운영한다. 군산 최초의 유산균 효모 발효빵 전문점인 조촌동 '바게뜨과자점' 등등 좋은 베이커리가 생각보다 많다. 앞서 언급한 곳 모두 '보리진포' 연합.
  19. 포장지에 이성당과의 기술제휴 표기하고 있음. 사실상의 비공식 분점!!!
  20. 국내 앙금 생산량의 7할을 제조하는 선두 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