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대 영부인 | ||||
10대 홍기 | → | 11~12대 이순자 | → | 13대 김옥숙 |
5공시절
파일:NISI20111214 0005591342 web 59 20130722103403.jpg
최근
1 개요
李順子. 전두환의 아내. 만주에서 아버지 이규동과 어머니 이봉년의 1남 6녀 중 차녀로 출생했다.
경기여자중학교와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했으나 재학 중에 전두환을 만나 중퇴했다.[1] 그리고 1958년 전두환과 결혼했다. 전두환의 입장에서는 줄타기성 결혼이다(이 때문에 전두환은 결혼 이후 여자관계가 꽤나 복잡했다). 당시 이순자의 아버지 이규동은 장군(육군본부 경리감, 준장)이었는데, 전두환은 이규동 장군의 전속부관이었다.
2 상세
권력자 부인 중 남편의 재임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는 영부인일 것이다. 남편 못지 않은 비자금과 친정아버지 이규동, 숙부 이규광 등의 친인척 비리 문제 등으로 악명을 떨쳤다. 다른 영부인들이 공식 석상에서 다소곳하게 있는 거와는 상반되게 자신은 손을 흔들며 자신이 집권자라도 된 양 의기양양하게 행동하여 눈총을 사기도 했다.
전두환이 권력을 잡기 전인 박정희 정권 시절에, 현역 군 장성의 마누라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연희동 빨간바지"라는 별명으로 땅투기꾼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고 전해진다.
외모 때문에 "주걱턱 여사"라고 불렸으며, 당시 KBS 1TV 9시 뉴스와 MBC 뉴스데스크에서 전두환 소식을 전한 뒤 바로 "한편 이순자 여사께서는…"이라는 멘트가 붙었기 때문에 한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두환은 '오늘' 당시 이순자에 대한 여론이 무척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5공 치하의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당시 피플파워로 쫓겨난 필리핀 대통령 마르코스의 영부인 이멜다를 비판하는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피고인이 '전두환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가족에 대한 명예훼손은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판례다.
또 당시 방송에서 "순자"라는 이름을 가진 배역은 비천한 역할을 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2]
1979년에 <순자야 문 열어라>라는 영화가 개봉했는데 하필 그 시기가 12.12 군사반란 무렵이었다. '무엄하게도' 권력자의 마누라 이름을 제목에 넣었던 영화는 제대로 상영도 못하고 간판을 내려야 했고, 동명의 주제곡까지 금지곡이 돼 버리는 바람에 노래를 부른 '김철'이란 신인가수도 활동의 길이 막혀서 몇년 후에 '김현준'이란 이름으로 겨우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가수 심수봉은 79년에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만들었던 <순자의 가을>이란 곡을 이듬해에 자신의 앨범에 실었다가 금지곡이 돼 버렸다. 버리기엔 아까웠던지 심수봉은 이 곡을 나중에 슬쩍 제목만 바꿔서 방미에게 주었고 이게 방미의 대표곡 중 하나인 <올 가을엔 사랑할 거야>이다.
더 웃기는 사례는 코메디언 김명덕. 주걱턱이라는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당했다. 박용식씨는 전두환과 정말 많이 닮아서 그렇다 쳐도, 김명덕은 닯은 부분 하나 없이 그냥 주걱턱이라고 방송금지당했다.
친인척들을 이용하여 강남 땅투기 바람을 불러일으킨 원흉이라고 지탄을 많이 받는다. 또한 만화란 애들이나 보는 것이라면서 한국 만화의 발전을 저해한 이력이 있다. UFO로보 그렌다이저의 더블하켄을 보고 폭력적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대한민국 해군 장병들에겐 관례를 깨고 함정 시승시 함장석만 골라 앉아댄 시건방진 집권자이라며 가장 미움받는 남편과 함께, 가장 미움받기도 했다. 재임 중 해군 장교들의 정복 수장과 견장을 자기가 볼 줄 모른다며 육군식 철제 정장을 정복에 패용시키는 만행을 저지른 바가 있기 때문이다.
슬하에는 3남 1녀를 두었으며 배우 박상아는 전두환과 이순자의 둘째 며느리이다. 차남 전재용의 아내(전재용에게는 3번째 결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