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1TV


한국방송공사의 송출 채널
라디오 방송중파
초단파
제1라디오제2라디오 (Happy FM) ‧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
제1FM (Classic FM) ‧ 제2FM (Cool FM) ‧ 한민족방송
EBS FM
단파월드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지상파
DMB
1TV (U-KBS STAR) ‧ 2TV (U-KBS HEART)
EBS 1TVEBS 2TV
인터넷KBS 24
폐지된 방송라디오서울KBS 3TV교육 FM
† 위탁송출

△2001년 3월 3일부터 한국방송공사 9시 정각 뉴스 시작하기전에 항상 틀어주는 영상. 직후에 9시 시보가 이어진다.[1]

△ 1993년 9월~2001년 3월 2일까지 쓰였던 로고송.[2]

△1993년 대전 엑스포 특집 버전[3] 성당 음악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 버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4]

한국인의 중심채널.

원래는 대한방송이라는 HLKZ 소속으로, 불의의 사고로 방송이 중단되었다가, 1961년 KBS-TV로 재개국한 방송,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인해 TBC-TV가 KBS-2TV로 바뀌면서 KBS-1TV로 명칭을 변경하고, 1994년 10월 1일에 상업광고를 폐지했다. 주로 보도 프로그램, 교양 프로그램을 편성한다.[5] 공중파 텔레비전의 방송 시간 규제가 풀리고 2012년 10월 8일에 국내 지상파 방송 최초로 상시 24시간 방송을 실시하였다.[6]

1 연혁

한국방송공사/역사 문서 참고.

1.1 언론통폐합과 컬러화

1980년 11월과 12월, 광주민주화 운동과 서울의 봄을 유혈진압한 전두환 정권이 보다 효과적인 언론통제를 위해 전면적으로 언론통폐합을 단행했다.[7] 이로 인해 933명의 언론인들이 해직당하고, 236개의 정기 간행물이 등록취소 당했으며, CBS의 보도기능과 상업광고가 폐지되었고, TBC, DBS가 KBS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KBS는 TV채널 2개,[8] 라디오 채널 7개를 가지게 되어 초 거대 방송사로 등극하였고, 이에 따라 기준 KBS-TV는 KBS-1TV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와 동시에 수출의 날 기념식 중계방송을 컬러로 중계함으로써 세계에서 81번째로 컬러방송을 시작하였다.[9] 이후 1980년 12월 9일, 컬러화비용과 TBC, DBS를 인수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상업광고 재개를 허용받고, 동시에 시청료 인상을 추진하였는데, 흑백TV 시청료 인상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각종 로비로 컬러TV 시청료를 월 2500원으로 정하는데 성공[10]하고 동시에 1981년 3월 7일에 광고방송 재개를 하면서 재정을 충당하게 되었다.

1982년 1월에 재정충당을 위해 KBS-2TV의 광고시간을 확대하면서 공영성 강화를 위한다고 개소리를 하면서한다는 명분으로 1TV의 광고시간이 축소[11]되었다가 당년 4월에 평일 오전시간대에 블록광고를 편성하게 되어 광고 시간이 늘어났다.[12] 물론 당시엔 편파방송으로 시청료도 아까워 죽겠는데 광고도 같이 늘어났으니 시청자들이 KBS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거의 명절에나 편성해주던 상황이었으며 그것도 영화방 재방으로 TV용은 결코 아니었다. 이게 곪아 터진게 1985년 시청료 납부 거부운동[13]이었는데, 1985년 총선과정에서 KBS는 당시 여당인 민정당을 노골적으로 치켜세우고 야당인 신민당을 대놓고 비하하자 시청료 거부운동이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하며 1985년부터 시청료 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이에 KBS는 1985년 5월에 술광고를 폐지하고, SA시간대(20:00 ~ 22:30)의 광고를 줄였다.[14] 하지만 정작 가장 문제가 되었던 편파보도가 개선되지 않으면서 시청료 거부운동이 확산일로를 걷게 되고, 거기에 시민단체까지 나서서 KBS 시청거부운동까지 벌이자 1986년 7월에 평일 오후 블록광고(20:30 ~ 20:35)를 폐지하였다. 물론 당연히 미봉책에 불과했고 이후에도 KBS 시청료 징수율은 1988년까지 계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한 편 이 시기 편성 가운데서 두드러진 점이 있었는데 스포츠 중계방송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 특히 주말 낮 시간대를 거의 스포츠 중계방송으로 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15] 이는 5공의 스포츠 장려정책[16]도 있었지만 KBS입장에서는 2TV와 다르게 1TV에서는 정규 프로그램에 따로 광고를 붙일 수는 없었고 프로그램 사이에 방영하는 블록광고도 일정 횟수[17]이상 편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포츠 중계방송의 편성이 훨씬 이득이었던지라 당연히 1TV의 스포츠 중계방송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이다. 이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내려왔고, 현재까지도 그 영향이 상당히 남아있어서 현재도 KBS 1TV에서 스포츠 중계 프로그램[18]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19] 그리고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때 개막식과 폐막식은 주로 KBS 1TV를 통해 중계된다. .[20]

민주화 이후에 1988년에 올림픽 특집-중계프로그램을 집중적으로 편성하였으며, 떠돌이 까치[21], 아기공룡 둘리, 까치의 날개,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국산 애니메이션들이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되었다.[22] 이후 1989년 3월 봄개편 들어, KBS는 1TV를 보도,교양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면서 지금과 비슷한 편성 패턴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1990년 3월 평일 블록광고를 폐지했다. 하지만 1TV 광고수입은 오히려 급증했는데, 1TV에 스포츠 중계, 특집 프로그램을 대량 편성해서 이전보다 광고수익은 증가했다.[23] SBS의 개국 이후 한 동안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늘어났다가 1992년 가을개편과 1993년 봄개편 들어 다시 보도 프로그램,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높아져 갔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아나운서가 나와서 방송순서를 안내하는 유럽식 방식을 쓴적도 있었다.

△ 1989년 당시 영상. 당시 오후 방송 시작하고 10분 뉴스가 끝나면 아나운서가 나와 저녁 7시까지 방송될 프로그램을 안내했다.

1.2 상업광고 폐지와 그 이후

1993년 수신료 인상드립을 쳤지만 되려 시청자들에게 냉소를 듣는 등 여의치 않자 수신료 합산징수로 징수액수를 절감하고 징수율을 높여 매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 1994년 7월에 상업광고 폐지가 결정되었다. 이후 1994년 10월 1일부터 광고방송을 편성하지 않게 되었다. 이후 징수방식 변경에 따라 징수율이 50%대에서 90%대까지 치솟으며 KBS 수신료 수입이 급증하고 1TV의 공영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 당시 1TV의 오락 프로그램의 비중이 10% 초반까지 하락한다. 이 전략은 당시 보도 프로그램의 중립성 강화와 맞물리면서[24] 대성공을 거두었고, 이는 현재까지도 KBS 1TV가 평균 시청률 1위 채널이라는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다. 물론 이건 중년층 이상에서의 시청률이 높기 때문이고 젊은층 사이에서의 시청률은 크게 낮다.

물론 그로 인해서 부작용도 있는데 KBS 2TV의 시청률이 부진할 경우에는 1TV에서 광고를 따로 붙일 수 없게 되니 KBS 입장에서 상당히 손해가 된다. 물론 1990년대 당시에야 늘어나는 수신료 수입이 엄청 불어났기에 KBS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이기는 했지만 2000년대 와서도 수신료가 인상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덕택에 2008년에 정연주 사장이 쫓겨나게 된 이유로 경영부실이라는 이유로 내세워지기까지도 했을 정도이다. 사실 이 때의 적자는 그냥 2TV의 시청률이 안 나오다보니 광고가 안 팔려서 그런 거인데 만약 1990년대 초식으로 1TV에서 상업광고가 편성되었더라도 주말 9시 뉴스, 대하사극 사이에 광고를 넣는 건 가능할테니 대충 적자는 안 났을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물론 케이블TV 채널도 있지만 케이블TV에서 걷는 수입이 적은 편인지라...

그리고 요즘들어서 MBCSBS와 마찬가지로 중간광고 해야하다는 내용을 계속 보도 하고 있어서 1TV 상업광고을 다시 재개할려는 징조가 보이고 있다.

2 특색

  • KBS의 시사, 뉴스, 교양 대부분, 오락은 주로 공익성이 있고 건전한 프로그램들, 음악 프로그램은 가요무대, 콘서트 7080, 전국노래자랑, 열린음악회와 같은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클래식 프로, 국악 프로, 드라마는 중장년층을 위한 막장 일일드라마, 사극을 편성하고 있다. 한마디로 라디오로 말하자면 KBS 제1라디오, KBS 제2라디오, KBS 1FM의 컨셉이 합쳐진 존재이다.
  • 위에 적혀있듯이 지상파 TV 채널 가운데 상업광고가 없는 얼마 안 되는 채널이다.[25] 그러나 이미 1960년대에 상업광고를 편성했던 적이 있고 1981년부터 1994년까지 제한적으로 상업광고를 편성하였다.
  • 상징색은 1993년 가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KBS 전체의 상징색을 녹색으로 설정하면서 녹색이었으나 2003년부터 채널 이미지를 '한국인의 중심채널'로 설정하면서 쪽빛 계열의 푸른색으로 고정하여 이 무렵부터 ID나 KBS 뉴스 9 등에서 푸른색 큐브를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방송 권역

3.1 본사

경인방송센터 발족으로 인천광역시, 경기도 지역 송신소, 중계소가 경인방송센터 관할로 넘어감에 따라 인천광역시, 경기도 지역은 IPTV, 케이블TV에서 본사 1TV 대신 경인 1TV가 나오지만 경우에 따라 본사 1TV 전파의 직접 수신이 가능하다.

4 주요 프로그램

5 종영 프로그램

  1. 촬영을 담당한 창원총국 유튜브 계정에 올라온 공식 자료이다. 2001년 3월 3일부터 KBS 한국방송으로 약칭을 변경해서 기존 로고송에서 음색을 바꾸고 가사 뒤에 한국방송을 덧붙었다. 참고로 이 ID 영상에 나오는 길이는 2014년 현재에는 KBS 뉴스 9 전에만 볼 수 있다. 나머지 시간대에는 축약버전이 나옴. 사실 개그콘서트 시청자 의견에도 나온다.
  2. 참고로 이 시기에 KBS 2TV에서도 같은 합창단이 부른 로고송이 쓰였다. 그쪽은 "좋은 방송 밝은 세상 KBS" 였다. 영상을 보면 종전의 풍경을 배경으로 한 ID에서 벗어나 열린음악회를 관람 중인 국민이 차례대로 등장하는데, 이는 KBS가 국민과 함께 하겠다라는 걸 의미하는 듯 하다. 실은 열린음악회 홍보용 ID라 카더라.
  3. 1980년대 중반 - 90년대 중반까지 KBS 9시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쓰인 ID 로고송으로 KBS 노래를 어레인지해서 썼다. 정작 해당 영상은 9시 뉴스 시작 전에 방송되지 않았다. 참고로 90년대 초중반 당시에는 주말에 한해서지만 KBS 뉴스 9가 시작되기 전에 광고가 방송되고 나서 나왔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
  4. KBS 1TV의 슬로건이다. 위 동영상처럼 공식 로고송의 가사로도 오랫동안 쓰였다.
  5. KBS 2TV에서는 오락 프로그램을 주로 편성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교양 프로그램의 비중이 더 높다. 하지만 (공영방송치고) 강한 상업성은 사실이다.(아무래도 광고를 편성하다 보니 시청률에 신경을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 없으니...)
  6. 그 이전에 공중파 텔레비전의 24시간 방송을 허용한 나라는 있었다.(예 : 미국, 일본,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한국에서는 규제가 풀리기 이전에는 공중파 텔레비전이 새벽에 방송하려면 사전에 허가가 필요했다.
  7. 물론 겉으로는 사이비 기자 퇴치, 방송공영화를 내세웠다.
  8. KBS 3TV와 KBS 교육FM은 1981년 2월 2일에 개국했다.
  9. 이렇게 컬러방송 시행이 늦어진 건 1970년대 초반부터 컬러방송 시행논의가 있었지만 이에 박정희가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면서 반대해서라는 후문이 있다.
  10. 동시기 해외 TV시청료를 본다면 영국은 월 2.83파운드(당시 한화로 4300원), 일본은 월 880엔(2830원)선이고 뉴질랜드는 월 2300원 선이었다.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을 생각해본다면(...)
  11. 1일 3블록-> 평일 1블럭, 주말 3블럭.
  12. 평일 1블럭-> 2블럭, 주말 3블럭-> 4블럭.
  13. 사실 TV 시청료 징수 거부운동이 시작된건 1982년부터지만, 당시 여러가지 한계점들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14. 기존에 1블록당 10개씩 묶어 편성되었던 걸 1블록당 8개로 줄였다.
  15. 이는 당시 MBC도 마찬기지였다. 다만 MBC의 겨우, MBC 청룡이라는 야구팀을 소유했었다는 점이 가장 컸기는 했다(...)
  16. 이른 바 86아시안게임 - 88올림픽 유치.
  17. 1982년부터 1986년까지 4회, 그 이후에는 3회.
  18. 특히 K리그, 겨울의 V-리그(남자부), 프로농구.
  19. 물론 광고를 붙일 수는 없으니 월드컵, 올림픽. WBC나 축구국대전의 경우 2TV에서 편성하는 경우가 많다. 단, KBO 리그는 광고 수익이 상당하기 때문에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거의 2TV에서 중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20. 2006 토리노 동계올림픽 개막식, 폐막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폐막식,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식,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폐막식은 2TV에서 방송되었다.
  21. 다만 떠돌이 까치는 1987년 5월 5일에 방영되었으니 민주화 이전의 일이다.
  22. 다만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 영심이, 2020 우주의 원더키디와 같은 시리즈물은 2TV에서 첫 방송했다.(다만 아기공룡 둘리의 경우 첫 방영은 6 - 7개의 에피소드를 여러 개 묶어서 방영하였다. 그래서 1TV에서 방영했던 것이다.)
  23. 다만 1991년부터 1993년까지는 광고수입이 감소세에 접어들기도 했다.
  24. 물론 그 와중에 1995년 대구 지하철 공사장 가스폭발 참사처럼 방송위에 굽신거린다거나 한 적이 있었다. 홍두표 사장의 숨겨진 흑역사
  25. 다른 하나는 EBS 2TV. 다만 광고 폐지 이후에도 실수로 상업광고를 몇 번 방영한 적은 있다. 2TV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을 1TV로 재방송했을 때 광고 따로 편집하는 과정을 거쳐 방송했어야 되는데 모르고 편집하지 않아서 광고가 그대로 전파를 탄 일이 있던 건 물론 시간대나 채널 특성상 인터넷 이용률이 높지 않은 시청자들이 TV를 보는 시간대라 별로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물론 광고를 방영한다 해서 따로 광고비를 받아낸다거나 하는 일은 일절 없다.
  26. 채널 재조정 이전의 수신 지도라 현재는 그 지도보다는 수신 범위가 살짝 더 넓을 수 있다.
  27. 2000년부터 2001년 11월, 2002년 10월부터 2009년 봄개편 전까지 2TV에서 방영되었으나, 2009년 봄개편 때 1TV로 이동.
  28. 1998년 6월까지 2TV에서 방영, 이후 1TV로 이동.
  29. 2004년 10월까지 2TV에서 방영, 이후 1TV로 이동.
  30. 1990년 봄개편 전까지는 2TV에서 방영되었다.
  31. 시즌 1과 시즌 2 모두 포함.
  32. 2015년 개편 때 KBS 2TV로 이동했고 4개월 후에 종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