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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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군인, 외교관

1 생애

1956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났다. 광주일고를 거쳐 공군사관학교 27기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특기는 조종이었으며 주기종은 F-5이다. 동기로는 참여정부에서 NSC 사무차장을 지낸 류희인과 공군 작전사령관을 지낸 박신규 등이 있다.

장관급 장교로 진급한 이후에는 공군사관학교 생도대장, 제18전투비행단장, 남부전투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2010년, 동기 중 처음으로 중장으로 진급, 공군작전사령관, 공군 참모차장, 합동참모차장, 공군사관학교장 등을 역임했다. 공군 중장이 맡을 수 있는 보직 중 교육사령관을 빼고는 모두 맡은 셈이다. 공사 교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4년 후임인 최차규가 참모총장에 임명되자 중장으로 전역한다.

전역 후에는 김영옥평화센터를 설립, 김영옥 대령의 기념사업에 나선다. 2016년 4월, 주 레바논 대한민국 대사에 임명되어 재임 중이다.

2 사건사고

군내 여러 요직을 거쳤으나 그만큼 여러 사건에 얽혀 구설수에 올랐다.

작전사령관으로 재임 중이던 2010년, 작전계획과 비행훈련계획 등의 내용이 담긴 비밀 두 건을 열람했는데 당번병이 집무실을 정리하면서 이를 쓰레기차에 버려 논란이 되었다. 사령부에서는 문건 정리가 있기 전까지 6개월 간 분실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비밀 문건의 분실로 인해 공군은 관련 비밀을 전면 개정해야 했다. 이영만은 이 일로 전역의사를 표명했으나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김관진은 그의 사의를 반려하였고 공군 측에서도 징계 유예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비서실장, 정책보좌관 등 부하 장교들에게는 경징계가 내려져 불공평한 징계가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한편 공사 교장으로 재임하던 중에는 성차별 논란에 말려들었다. 체력검정 성적 저조 등의 이유로 수석졸업자인 여성 생도 대신 차석졸업자인 남성 생도에게 졸업식의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시상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성 생도가 공군 내 주류인 조종 특기가 아니라는 점도 의혹을 부추겼다. 이 사건으로 이영만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타를 받아야했고 결국 재심의를 약속, 원래의 수석졸업자가 대통령상을 받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