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참모차장

대한민국 국군참모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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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자: 合同參謨次長
  • 영어: Vic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

1 개요

합동참모본부의 장관급 장교로, 합동참모의장을 보좌하고 부재시 대리한다. 합참의장과 소속 군이 다른 중장이 보임된다. 육방부의 전통에 따라 합참의장을 육군이 맡고, 합참차장은 해군과 공군이 번갈아 맡았다.[1]
1990년 노태우 정권의 818 국방개혁으로 군정권군령권이 나뉘기 전까지 합참의장은 국방장관을 보좌하는 제복군인 서열 1위지만 명예직이었다. 합참의장이 그럴진대 합참차장이야 뭐…그러던 게 남북 장성급 회담에 내보낼 최선임 장교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잠시 계급이 대장으로 격상된 적이 있었다. 물론 군정권·군령권이 나뉜지 얼마 되지 않은데다가 인사권을 틀어쥔 것은 각 군 참모총장이기 때문에 여전히 합참의 영향력은 크지 않던 시기였다(그래서인지 이 시기 합참의장과 합참차장을 모두 육군이 맡은 적도 있었지만 문제시되진 않았다.).

사상 최초의 비(非) 육군 출신 합참의장인 공군대장 이양호 장군이 국방부 장관으로 영전하면서 합참차장의 계급은 대장에서 중장으로 조정되었다. 남북 장성급 회담도 끝났고, 이제 육군이 (다시 합참의장을 배출하게 되었으니)합참차장의 계급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고, 해·공군도 합참의 참모장 역할밖에 할 게 없는 합참차장 자리를 크게 신경쓰지 않았기 때문이다.[2]
그러다가 2007년, 노무현 정권은 전시작전통제권 단독 행사를 주장하며 합참차장의 계급을 대장으로 다시 조정한다. 전작권을 가진 한미연합군사령부사령관부사령관이 모두 대장인데, 전작권을 회수할 경우 평시 작전권만 갖던 합참이 평시와 전시를 막론하고 작전권을 행사해야 한다. 그런데 한미연합사와 달리 합참은 합참의장 한 명만 대장이기 때문에, 합참의장의 지휘 부담이 커질 것을 우려하여 합참차장을 대장으로 만든 것. 노무현 정권에서도 여전히 합참의장은 육군 대장이 보임되었기에, 합참차장은 해·공군 대장이 번갈아 보임되었다.

2008년 전작권 공동 행사를 표명한 이명박 정권이 출범하며 합참차장은 다시 중장으로 조정되었다. 평시작전통제권만 갖는 합참에서 굳이 실권도 없는 합참차장을 대장으로 보임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으로 3군의 합동성이 문제로 떠오르자 합참차장을 다시 대장으로 조정하자는 말이 나왔지만 이내 흐지부지되었다. 해·공군도 계급만 올라간 합참차장 자리를 딱히 바라지 않았고. 합참차장이 대장이라는 이유로 본부장 자리에 해·공군 자리를 줄이기라도 하면 그게 더 큰일이거든.[3]
2013년, 해군참모총장이었던 최윤희 제독이 합참의장에 임명되면서 간만에 육군의 김현집 장군(중장)이 합참차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육군은 합참차장을 제1차장·제2차장으로 나눠 제1차장에 육군 대장을 보임하자는 떡밥을 풀기 시작했다. 김현집 장군은 1년만에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3야전군사령관으로 영전했고, 이후 육군참모차장이었던 육군중장 김유근 장군이 임명되었다가 다시 합참 작전본부장이었던 육군중장 신원식 장군으로 교체되었다. 합참차장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드러낸 장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4]

2 서열

이런 연고로 참 계륵과 같은 존재인데 의전 서열마저 해병대사령관-국군기무사령관-육군참모차장-해군참모차장-공군참모차장 다음으로 중장 중에서만 여섯번째이다. 해병대사령관과 국군기무사령관은 그렇다쳐도 3군 참모차장보다도 서열에서 후달린다. 역시 차장 탈을 쓴 참모장 대장을 보임했을 땐 당연히 서열이 올라갔다.
90년대 초 남북회담 대표로 나설 적에는 대장 계급을 단 합동참모차장의 서열을 짜는 게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노무현 정권에선 말썽이었다. 합참에서는 의장을 대리하는 만큼 서열이 육·해·공군참모총장에 우선한다는 입장이었는데 각 군에서는 당연히 반발했기 때문. 결국 공군참모총장과 (공군 출신의)합참차장을 함께 임명하면서, 공군참모총장의 공사 선임을 합참차장에 앉혀 족보를 꼬아버렸다(선임이니까 알아서 잘 대우하라는 압박).

대장 계급으로 합동참모차장을 역임한 사람은 총 5명이다.

박인용 대장 이후 합참차장이 중장 계급으로 환원된 표면상의 이유는 군 규모에 비해 대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육군이 합참차장 자리를 둘로 나눠 제1차장을 육군 대장에게 주자는 떡밥을 풀었을 땐 '해·공군이 번갈아 차지할 대장 자리 하나를 날려놓고 자기들이 아쉬우니까 대장 자리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여론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유사시 합참의장을 대리할 합참차장이 육군본부 휘하의 야전군사령관보다도 떨어지는 계급을 달고 어떻게 육·해·공군참모총장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겠냐며 대장 계급으로 돌려놔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육군은 타군이 합참의장 할 때 아니면 빠져주겠지? 저 이유대로라면 육참차장도 대장으로 올려줘야 되는데 나쁠 거 없잖아

3 타국의 사례

3.1 미군

합동참모차장(Vice Chairman of the Joint Chiefs of Staff)에도 대장이 보임된다. 다만 이쪽은 우리나라보다 합참이 더 명예직에 가까운 보직으로, 자기네 직속 부대에 지휘권이 있는 합참의장과 달리 그것마저 없다. 근데 그런 주제에 상원의 동의는 얻어야 된다. 명예는 크지만 임명되기는 까다롭고, 그러면서 실권도 별로 없는 자리. 누가 해
미국도 약간은 육방부 기질이 있는지라[10] 합참의장 중에는 육군 출신이 가장 많은데(반절이 약간 안 된다), 합참차장은 1987년에 취임한 초대인 공군대장 로버트 헤레스 장군부터 10대(후보자)인 공군대장 폴 셀버 장군까지 10명 중에 공군이 4명, 해군이 4명이고, 해병대도 2명인데 육군 출신은 아직 없다. 대체로 전략 무기나 국제 정치 전문가들 위주로 인선을 하기 때문. 해병대 보병 출신으로 합참차장을 거쳐 합참의장까지 영전한 피터 페이스 장군은 오히려 상당히 이례적인 사례.[11]

3.2 자위대

2006년 3월 27일에 초대 통합막료부장(統合幕僚副長)인 가토(加藤 保) 중장이 취임했으며 8대인 마쓰무라 고로(松村 五郎) 중장이 2013년 8월 22일부터 재직하고 있다. 마쓰무라 중장은 방위대학교 출신이 아닌 첫 통합막료부장이다.[12]
9명 중에 육자대 출신이 4명, 해자대 출신이 3명, 공자대 출신이 1명이다.

3.3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이 비슷한 역할을 맡는데 5명이나 임명된다. 상장 2~3명에 중장 2~3명 수준.
  1. 해병대는 사령관이 최선임 중장이기 때문에 합참차장으로 보임되면 모양새가 좀 이상해진다.
  2.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각 군은 실권이 강한 본부장 보직을 선호한다. 합참에선 작전본부장(중장) 자리가 실세.
  3. 실제로 당시 합참차장이었던 해군중장 김중련 제독이 물러난 뒤, 해군에서 원한 것은 요직인 작전본부장이었다. 그러나 워낙 육군이 강세인 탓에, 전력발전본부장을 해군 중장이 맡고 작전본부 예하 작전부장을 해군 소장이 맡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4. 육군이 합참차장을 맡으면 해·공군이 정말 반가워한다. 다시 말하지만 해군이나 공군에서 합참차장을 배출하면, 실권을 가진 본부장 자리에서 해군이나 공군의 자리가 하나 줄어들기 때문이다. 2015년 현재는 전략기획본부장과 군사지원본부장을 해·공군 중장들이 맡고 있으나, 차기 인사에서 최윤희 제독이 임기를 마치고 전역하면 '또 육군에서 합참의장이 나오고→ 해군이나 공군 중 하나는 실권 없는 합참차장 자리를 맡아야 하며→ (둘 중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해군이나 공군 중 하나는 그 댓가로 합참의 본부장 자리를 하나 털리는' 테크를 타야 한다. 이건 뭐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5. 송응섭-김재창 시절에는 합참의장도 육군에서 나왔다. 육방부 끝판왕
  6. 당시 합참의장은 이양호
  7. 참 이상한게 김명립 장군하고, 김성일 장군하고 같이 대장으로 진급했는데 공사 후배인 김성일 장군은 공군참모총장이 되고, 김명립 장군은 합참차장이 됐다는 것이다.
  8. 초대 국민안전처 장관
  9. 해군작전사령관을 지내다 중장으로 보임되고, 재임 중에 대장으로 진급
  10. 단순히 육군이 쪽수가 제일 많다고 육방부라 하긴 좀 그렇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육군은 만들기 쉬워서 군사력의 기본이며 영국 같은 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2014년 현재 영국의 국방참모총장이 육군 출신 닉 호턴 장군이며 샌드허스트 영국육군사관학교도 다트머스 영국해군사관학교보다 먼저 생겼다. 다만 이는 해군의 교육 방식이 범선 시대 말기까지 수 년간 말단 수병처럼 배에서 구름과 동시에 공부를 하며 시험을 통과해야 임관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사관학교라는 체계가 늦게 등장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오히려 예산 규모로 따지면 미군은 기술군인 해군과 공군이 많은 돈을 쓰는데다 전략사령부 등 통합군사령부 상당수도 해·공군 출신들이 차지하고 있는지라 해방부 내지 공방부다. 외계인 고문을 통해 크고 아름다운 외계의 기술을 셀 수 없이 보유한 미군의 특성을 감안하자
  11. 페이스의 후임인 마이크 멀린 제독의 러닝메이트였던 제임스 카트라이트 장군은 해병대 출신이긴 하나 보병이 아닌 항공장교 출신이며 전략사령부에서 핵전쟁, 사이버전 임무를 관장했던 인물이다. 셀버 장군의 경우는 수송 외에도 국제 정치 전문가 쪽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위한 인사 조치다. 클린턴의 국무장관 재임기에 보좌관 노릇을 하며 자주 붙어다녔던 사람인지라.
  12. 도쿄대학을 졸업했고 1981년 4월에 입대했다. 1982년에 임관해 방대 25기에 상당한다. 기갑 특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