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공군의 참모총장 | ||||
33대 | → | 34대 | → | 35대 |
성일환 | 최차규 | 정경두 | ||
2014년 4월 11일 ~ 2015년 9월 17일 |
최차규(崔且圭) | |
1956년 6월 9일 ~ | |
복무 | 대한민국 공군 |
기간 | 1980년 ~ 2015년 |
임관 | 공사 28기 |
최종계급 | 대장 |
최종보직 | 공군참모총장 |
1 개요
천하의 똥별. 대한민국의 전직 군인으로, 공군참모총장을 지냈다.
2 경력
1956년 6월 9일 태어났다. 경상남도 마산 출신이다. 마산고를 졸업했으며 1976년에 공군사관학교 28기로 입학하였고 1980년 4월 4일 졸업과 동시에 소위로 임관하였다. 특기는 조종이며 주기종은 F-5E/F. 2006년에 똥별으로 진급했고 제2롯데월드 건설에 공군이 이의를 제기할 때 뉴스를 탄 적도 있다. 동창생의 회고
제10전투비행단 비행단장, 방위사업청 정밀타격방공유도사업부장, 항공기사업부장, 신특수사업부장,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 연습훈련부장, 공군참모차장, 공군작전사령부 사령관 등을 거쳤다. 비행시간은 2700시간이다. 부인 윤재옥과 슬하 1남 1녀.
2014년 4월 11일부터 공군참모총장을 맡았으며 2015년 9월 17일 이임하였다.
3 여담
최초의 1980년대 군번 대장이다. 즉, 동기급인 육사 36기보다 4달정도 대장진급이 빨랐다. 육사 36기는 2014년 8월과 9월에 각각 김현집, 장준규 장군이 대장으로 진급했다. 해군에서는 2015년 2월에 동기급인 정호섭 제독이 대장진급을 했다.
작전사령관으로 있던 때 예하 부대 전장병이 매일 아침 하루에 3㎞씩 구보할 것을 명령한 적이 있다. 그리고 2014년 참모총장이 된 이후 이 명령을 공군교육사, 공군군수사 등 공군본부 직할부대를 포함한 전 부대로 확대시켰다. 그러나 전 부대가 악기상, 체감온도 강하 등의 특수한 사정이 없으면 아침마다 구보를 뛰어야 하는 까닭에 아침 구보에 대한 문제가 2014년 공군 인트라넷 내에서 진지하게 공론화되기도 했다.
공군이 타군보다 1980년 임관자 대장을 일찍 배출한 탓에 시기적으로 후배 기수를 중장 진급시키기가 애매해[1] 동기 2명과 같이 근무하였다. 공사 28기인 김영민 중장(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김형철 중장(공사교장)이 최 총장의 취임에도 전역하지 않고 계속 근무했다.
현역인 시절부터 공군 내부에서는 인격에 결함이 있는 인물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입소문이긴 하지만, 작전사령관일 당시 참모진 회의 시중을 들던 병사가 뒤에서 깜빡 졸았다는 이유로 '쟤 영창 보내'라고 말했다던지, 참모총장 재직 당시에 운전병을 거의 3~4주에 한 명씩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갈아치운다던지… 아래의 사건사고 항목에 언급된 사실을 보면 이것이 단순 모함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게 중론. 덕분에 이 사람이 참모총장이었던 시기에 공군본부에서 근무했던 병사들은 이 사람을 안 만나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했다고 한다. 무언가 꼬투리 잡히면 괴로워질 게 뻔하므로.
정옥근과 사진이 거의 똑같이 생겼다. 얼굴만 닮은 게 아니라 직위나 하는 행동도 닮은걸 보면 도플갱어일지도?
4 사건사고
2015년 4월에 공관병 출신이 인터넷에 글을 올린 것 때문에 해명을 하기도 했다. 해당 공관병은, 최 총장이 정수기 물이나 수돗물은 절대 마시지 않고 오로지 뚜껑을 개봉하지 않은 생수만 마신다는 증언도 했다.
5월 4일, 제보자 발본색원을 지시하는 지휘서신을 전 예하부대에 전파한 것과 함께 헌병대를 동원해 색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상부에는 자진해서 감사를 받겠다면서 이면으론 구시대적 행태를 보여 거센 논란이 예상된다. 게다가 제보자 색출을 지시한 당일 낮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 에어 스포렉스에서 전임총장들과 공군정책간담회를 갖고 나오다가 자신을 규탄하는 예비역 공군병장의 1인 시위를 피해 뒷문으로 나가는 추태를 보였다.[2]
자군의 현역 대령이 자진용퇴를 제안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과연 현역 대령이 작성한 글이 맞는가 하는 의심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어색한 명칭으로 자신을 칭했는데, 자군 내부 문서에서는 계급, 직함에 소속군을 기재하지는 않는 관례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육군참모총장이 예하부대에 내려보내는 지휘서신에 대한민국 국방부 육군대장 김요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생각해보자, 이상하다. 매우. 이처럼 군 내부의 문서작성 관행조차 따르지 않은 채 쓰인 서신이라, 작성자가 정말 현역 장교인지조차 의심스런 대목이다.
단, 이에 대한 반론이 있는데 만약 실제 장교가 자신의 직함을 대면 바로 들킬 것이 자명하고, 이에 대한 불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에 이를 우려해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문에서 '대한민국 국방부 공군 대령'이라는 명칭을 사용했다면 당연히 이상하지만, 공문이 아니라 편지에서 그렇게 쓰인 것이고, 우리 나라에서 실명까지 밝히면서 양심선언한 군인이 어떻게 되는지는 몇년 전에 일어났던 김영수 소령의 사례에서 똑똑히 드러났기 때문에 100% 단정할 수만은 없다.[3]
2015년 5월 21일, 국방부에서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의 공금 유용, 예산 부당집행, 관용차 사적사용 등의 혐의를 두고 벌인 특별감사 결과 엄중경고 처분을 받았다. 공금 유용 부분에 대한 것만 증거부족으로 확인되지 못하고, 나머지 의혹이 모두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보직을 유지하고 경질하지 않은 것이다.
SBS뉴스 취재파일이 떴다. 치욕의 공군 참모총장…"지휘봉 부러졌다"
2015년 6월 2일, 軍검찰이 최차규 공군참모총장을 횡령·직권남용 혐의로 입건했다는 기사가 떴다.
상황 변화에 따라 계속적인 수정바람.
2015년 하반기 장성 인사에서 교체될 것이 유력하다는 기사가 나왔고,기사 결국 임기를 다 채우지 못 하고 물러나게 되었다. 상술된 사건으로 인해 교체가 불가피했던 것으로 보인다.- ↑ 2014년 4월에는 아직까지 1982년 군번 중장까지만 있었고 1983년 군번 중장이 없을 때였다. 83군번 중장은 2014년 후반기에 탄생했다. 공군만 미리 83군번들을 중장으로 올리기가 애매했을 것이다.
- ↑ 1인 시위를 하던 예비역 병장에 대한 의혹의 시선이 있다. 알다시피 장성급의 동선은 대외비에 부쳐진다. 그런데 1인 시위를 하는 예비역 병장은 참모총장의 동선은 물론, 출입시간까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이는 내부사정에 밝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사항들이다. 다만, 이전 버전에서는 이 예비역 병장에 대해 현역 시절 최 총장으로부터 간접적 영향도 받지 않았을 방공포대 복무자라고 기술했는데, 방공포대는 방공유도탄사령부에 속하고, 방공유도탄사령부는 공군작전사령부 예하 부대이다. 한편, 최차규는 공군작전사령관으로 있다 참모총장으로 영전했으며, 이 예비역은 8월 전역자라고 한다. 최 총장은 같은 해 4월에 공참총장에 취임했다. 간접적 영향도 받지 않았을 방공포대 복무자라는 서술은 문제가 있다.
- ↑ 이전 작성자는 자신이 본 것도 아닌 일을 100% 확신했는데, 이는 정황증거만을 가지고 확신한 자의적인 해석이기 때문에 그 이전의 서술로 되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