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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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丁錫
1917년 09월 01일 ~ 1990년 11월 29일
1917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태어났다. 충북행정강습소, 국립경찰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 때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경무대경찰서장 등을 역임하였다. 이승만 정권 말기 자유당에 입당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자유당에서 중앙당 선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음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1961년 초에 3.15 부정선거 등 이승만 정권 때의 행적을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결정되어 국회의원직이 상실되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인 1963년 국민의 당에 몸담았다가 국민의 당을 탈당하여 민주공화당에 입당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민당 이충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에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괴산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괴산군 출신의 김원태에 밀려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1979년 제10대 유신정우회 국회의원에 임명되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자 정치규제를 당하였다. 1983년 정치규제에서 해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