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전 · 현직 정치인을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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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壽
1921년 3월 7일 ~ 2015년 5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개신교이다. 호는 지포(芝圃)이다.
1921년 경상남도 김해군에서 태어났다. 경성부 배재고등보통학교, 일본 주오 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김해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조규갑 후보를 꺾고 당선하였다. 이후 자유당에 입당하였고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대한민국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간사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삼풍산업주식회사를 경영하였다. 1959년 대한민국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출마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1년 3.15 부정선거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반민주행위자로 지정되어 공민권이 제한되고 피선거권이 상실되었다.
이후 정치와 거리를 두었다. 부산명인학원 이사장,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대한민국 헌정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