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은 일본우편의 점포화 되었으며 우체국주식회사 법인은 고인이 되었다.
일본우정 그룹 계열 3사인 일본우편, 유초은행, 간포생명.
일본우정주식회사, 일본우정그룹 일본우정공사, 우정성, 체신성우정청
JP Holdings Co, Ltd.
우정성 | → | 일본우정공사 | → | 일본우정 |
정식명칭 | Japan Post Holdings Co, Ltd. |
상장유무 | 상장기업 |
상장시장 | 도쿄증권거래소 제1부 (2015년 11월 4일) |
주식코드 | 6178 |
목차
1 개요
일본의 우정사업체로 일본우정공사를 전신으로 한다. 산하에 일본우편, 유초은행, 일본우편국, 간포생명을 가지고 있었으나, 2015년 11월 4일의 도쿄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를 단행하여 상장과 함게 일본우편국주식회사는 일본우편주식회사에 병합 처리했다. 그리하여 현재는 3개의 계열사를 가진 지주회사이다.
파일:Nihonyusei1.jpg
일본우정, 유초은행, 간포생명 3사 도쿄증권거래소 상장기념식.
2 계열사
2.1 우체국주식회사
일본우정의 100% 자회사였으나,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이후로는 일본우편주식회사에 편입되었다.
2.2 일본우편주식회사
도쿄증권거래소 상장 이전에는 지주회사인 일본우정주식회사의 100% 자회사이며 감독관청은 총무성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우편 항목 참조.
2.3 주식회사유초은행
역시 상장 이전에는 일본우정주식회사의 100% 자회사였다. 2017년까지 모든 주식을 매각 완료하여 민간은행화 시킬 예정이다. 상장 전에는 금융청이 관리감독, 후에는 일반 시중은행과 같이 금융청이 면허제로 관리 예정.
자세한 내용은 유초은행 항목 참조.
2.4 주식회사간포생명
역시 상장 이전에는 일본우정주식회사의 100% 자회사이며 금융청의 관리감독을 받았다. 2017년까지 모든 주식을 매각 완료하여 민간보험사화 시킬 예정이다. 학자보험이나 요양보험이 주력이며 우체국망을 이용해 영업해 왔다.
- 간포생명 항목 참고.
3 민영화
우정민영화의 세계적 역사는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치스코 데 타시스 2세가 시행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성로마제국에 비해 몇 배는 후진국인 일본의 경우에는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시행되었다.
민영화 이전의 일본 우편국에서는 우편배달 업무 이외에도 우편저금이라고 불리우는 은행업무와 간이보험이라고 불리우는 보험업무를 병행하여, 전국의 우편국에서는 350조엔에 이르는 자금을 관리하고 있었다. 우편국에서는 이 자금을 일본국중앙정부에 대출하여 일본도로공사와 주택금융공고 등의 특수법인에 출자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국가 수준의 주택사업이나 도로건설사업 등의 자금 부족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익성의 악화와, 다른 배송업자, 금융업자, 보험업자와의 공정한 경쟁을 위하여 우정사업체의 민영화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더욱이 민영화를 통해 지금까지 정부에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우정청이 세금부과대상인 법인이 됨에 따라 시장 경쟁에서의 정부 수입도 보전할 수 있다.
그리고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인해 총무성의 재정 상태가 심히 나빠짐에 따라 기존 2017년으로 예상했던 우정3사의 상장이 2015년 11월 4일로 앞당겨지게 되었다.
참고적으로 2004년 12월 말을 기준으로,
4대 택배회사 총매출과 일본우편의 총매출 값을 아는 사람이 추가바람.
우편저금의 총 잔고가 227.3조엔인 것에 비해 일본의 당시 4개 메가방크(미쓰비시도쿄은행, UFJ은행, SMBC, 미즈호은행)의 전 계좌 잔고 합이 225.9조엔이었으며,
간이생명보험의 총자산이 121.9조엔인데 비해 닛세이, 다이이치, 메이지야스다생명, 미쓰이스미토모생명 4개사의 총자산의 합이 121.3조엔이었으니
일본의 금융업이 아직 정부기관의 손아귀 속에 있어 평등한 경쟁이 되지 않음이라고 쓰고 거금을 매각해 떼돈을 얻을수 있다고 읽을 수 있는 현상이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일본우정에서 공사시절에 일하던 사람들은 공사직원이 아니라 국가공무원이다. 민영화로 인해 엄청난 양의 공무원조직 슬림화가 가능하다.
3.1 경위
3.1.1 우정성에서 우정공사로
1996년의 제1차 하시모토내각은 행정개혁회의를 개회하여 중앙성청(대한민국의 정부부처)재편에 대한 논의를 개시하였다. 1997년 8월에는 중간보고에서, 우정민영화를 주요 주제로 제안하였다. 그러나 최종합의에서 여야 간의 알력으로 인해 공사에서 국가공무원이 일하는 이상한 체계의 우정공사가 그 결과물이 되었다. 이는 당시 자유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이 특정우편국장회(대한민국의 별정우체국의 협회라 보면 이해하기 쉽다.)이며, 민주당의 지지기반이 우편노동조합, 우정성의 관료들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999년 5월에는 우정민영화연구회를 발족하여 민영화 실시 계획을 짠다. 이 결과가 한 개의 우정특수회사 산하에 우편회사, 은행, 지역별보험회사를 각각 만드는 형태가 된다.
2001년 1월 6일에는 중앙성청재편이 실시되어, 우정성의 우정행정과 우정사업부문이 각각 총무성우정기획관리국과 우정사업청으로 분할된다.
그 뒤, 2003년 4월 1일에 우정사업청이 특수법인인 일본우정공사가 된다
3.1.2 재정관리 위탁의 폐지
구 우편저금의 자금 운용을 원래는 대장성자금운용부에 위탁하게 하였으나, 이 예탁금리가 시장의 그것보다 0.2% 높음에 따라 관리의 철저성에 문제가 생긴다. 세상 어느 나라 공무원이나 다 똑같나 보다
그런데 하시모토2차내각이 재정관리의 위탁 자체를 폐지함에 따라, 우정공사는 자금 운용을 국채로밖에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 국채란 것은 가장 이익 창출이 어려운 금융상품이다. 이로 인해 나지 않는 이윤에 대하여는 국민의 세금으로다가 충당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는 더욱 우정민영화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갔다.
3.1.3 고이즈미 내각의 깡패짓 우정민영화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면서, 우정민영화를 중요 시책으로 올렸다. 실제로 고이즈미 자신도 우정민영화를 행정개혁의 본질이라 칭하면서, 취임 이전 대장정무차관(1979년에 꿰찬 자리) 시절을 시작으로, 미야자와내각의 우정대신 시절, 제2차하시모토내각의 후생노동대신 시절에 우정민영화에 대한 주장을 굽히지 않아 왔다.
그런데 행정서비스가 저하될 것이라는 야당 반발에 부딪혀, 중의원에서는 결국 부결되어 버렸다.
다시 우정민영화 법안이 올라간 것은 162회 통상국회에서이며, 2005년 7월 5일 중의원본회의에서 5표차로 겨우 가결되었다. 그러나 참의원에서 8월 8일에 다시 부결되었다. 이는 자민당 내의 우정민영화 반대론자가 여전히 많았기 때문이며, 여기서 고이즈미는 중의원을 해산해 버리고 (후대의 정치가들은 이를 우정해산이라 칭한다) 반대파의 일부를 자민당에서 축출한다. 이들은 탈당 후에 국민신당을 차리거나 무소속으로 전환하였다. 이들은 후일 아베내각으로 바뀌고 나서야 거의 복당한다.
동년 9월 11일에는 44회 중의원선거가 행해지고 이에 자민당이 공명당을 누르고 압승한 후, 민영화 반대론자들을 제명하고, 탈당 권고하는 등 무거운 처분을 했다. 그 뒤 10월 14일의 특별국회에서 우정민영화를 가결, 성립시켰다.
3.1.4 우정민영화 동결 원래대로 돌리기
2007년 7월 29일에 여당인 민주당이 민영화를 동결해야 한다는 법안 우정민영화동결법안을 167회 국회에 제출한다. 이는 기존 법안의 민영화 실행날짜 10월 1일을 별도로 정한다라고 개정하는 법안으로, 민영화를 자체적으로 1년간 동결처리할 수 있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심의도 받지 못하고 폐안되었으며, 민주당은 당초의 국민신당을 배려하여 이 법안을 168회 국회에 재제출한다. 그러나 이도 흐지부지되어 결국에는 민주당도 단념한다.
그후 국민신당의 당내에서 검토가 이루어져, 사민당과 민주당과 공동으로 168회 국회에 동결법안을 다시 제출한다. 개정된 내용으로는 정부가 보유하고있는 일본우정의 주식을 일본우정이 보유하고 있는 유초은행, 간포생명의 양 주식의 시장에의 매각을 3년간 동결한다는 내용으로, 결론적으로는 3개사가 한 몸인 꼴이 된다.
3.1.5 아소내각
2009년 2월 5일에,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고이즈미정권 당시의 우정해산에서 일본우정공사를 소관하는 총무대신이었던 아소 다로 현 수상이 난 반대였다고 커밍아웃, 여야 모두에게 충공깽을 안겨 주었다.
4 여담
- 공사 시절에는 중고등학생을 동원하여 연하장 업무를 처리하는 관습(...)이 있었다. 현재는 민간기업화 되어 이런 일은 불가능하고, 현재는 우체국 건물에다가 연하장 알바 모집 플래카드를 아주 크게 내거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