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장외룡 (張外龍 / Chang Woe-Ryong) |
생년월일 | 1959년 4월 5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지 | 전라남도 고흥군 |
포지션 | 풀백 |
유스팀 | 불광초-경성중-경성고-연세대 |
소속팀 | 대우 축구단/대우 로얄즈 (1982~1987) 도스 퓨처스 (1989) |
스태프 | 대우 로얄즈 코치 (1987) 아주대학교 코치 (1988) 도스 퓨처스 코치 (1989~1991) 도스 퓨처스 유스 (1992~1994) 도스 퓨처스 코치 (1995) 도스 퓨처스 (1995~1996) 부산 대우 로얄즈 코치 (1997~1999) 부산 대우 로얄즈 (1999) 베르디 가와사키 (2000) 콘사도레 삿포로 코치 (2001~2002) 콘사도레 삿포로 (2002, 2003) 인천 유나이티드 코치 (2004) 인천 유나이티드 (2004~2006, 2008) 오미야 아르디자 (2009~2010) 칭다오 중넝 (2011) 다롄 아얼빈 (2012) 칭다오 중넝 (2012~2013) 충칭 리판 (2016~ ) |
국가대표 | 30경기 1골 |
2005년 K리그 감독상 | |||||
차범근(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장외룡(인천 유나이티드) | → | 김학범(성남 일화 천마) |
인천 유나이티드 역대 감독 | ||||||
베르너 로란트 (2004) | → | 장외룡 (2005~2006, 2008)[1] | → | 일리야 페트코비치 (2007) |
1983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박윤기 | FW 이길용 | FW 이춘석 | FW 김용세 | ||||||||
MF 조광래 | MF 박창선 | ||||||||||
DF 박성화 | DF 김철수 | DF 장외룡 | DF 이강조 | ||||||||
198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
FW 김용세 | FW 피아퐁 | FW 강득수 | |||||||||
MF 박상인 | MF 이흥실 | MF 박항서 | |||||||||
DF 장외룡 | DF 한문배 | DF 최강희 | DF 김철수 | ||||||||
GK 김현태 |
전 축구선수 및 지도자, 현 충칭 리판 감독
1 커리어
전남 고흥군 출신으로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대우 축구단에 입단하였다. 1983년 프로축구리그가 창설되자 대우 로얄즈의 창단멤버가 되었으며 1984년, 1987년의 팀의 우승에 공헌하였고, 1983년과 1985년에는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무릎부상으로 1987년 이른 나이에 은퇴하였다. 대우에서 67경기에 출장하였다. 은퇴이후 도스 퓨처스에서 잠깐 플레잉코치로 1989년 뛰기도 하였다.
국가대표로는 1979년 성인 대표로 데뷔하였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본선 멤버로 합류가 예정되었으나 무릎 부상으로 하차하였다. 1980년 AFC 아시안컵에 뛰었고, 30경기에 나서 1골을 넣었다.
2 지도자 생활
은퇴이후 1987년 대우 로얄즈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1988년 아주대학교 코치를 하다가 1989년 도스 퓨처스의 코치가 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1992년 도스 퓨처스 유스팀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1995년 도스 퓨처스의 코치를 거쳤고, 감독대행과 감독직을 맡게 되었다. 1997년 한국으로 넘어와 부산 대우 로얄즈의 코치로 부임하였다. 1999년 신윤기 감독대행의 사망으로 임시 감독대행이 되어 팀을 준우승까지 이끌었다. 1999년 일본축구협회 공인 S급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2000년 베르디 가와사키 감독직에 부임하였다. 2001년부터는 콘사도레 삿포로의 코치로 이동하였으며, 2002년과 2003년 감독을 맡기도 하였다.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의 수석코치직을 맡았고, 베르너 로란트 감독이 성적 부진과 개인 사정으로 사임하자 감독대행을 맡다가 2005년 정식으로 인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특히 악조건이었던 시민구단의 얇은 선수층을 이끌고 전기리그 7승 3무 2패 2위, 후기리그 6승 3무 3패 5위를 기록하며 통합 13승 6무 5패로 우승을 기록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플레이오프에서 전기리그 우승팀 부산 아이파크를 2-0으로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였다. 아쉽게도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 현대 호랑이에게 통산스코어 3-6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게 되었으나 프로축구연맹은 그의 지도력을 인정해 그해 감독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 감독상은 우승팀이 아닌 팀의 감독이 최초로 수상한 사례로 기록되었다. 인천의 2005년 시즌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2006년 10월 임유철 감독이 비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여 개봉하기도 하였다. 2006년 시즌 종료후 영국으로 1년 축구연수를 다녀왔고, 2008년 다시 인천의 지휘봉을 잡았다.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오미야 아르디자의 감독직에 부임하였다. 이후 2011년 칭다오 중넝, 2012년 다롄 아얼빈을 거쳐 다시 칭다오 중넝의 감독직을 맡았다. 이후 2014년 9월 대한축구협회의 수석 기술위원으로 선임되었다.#
2016년 충칭 리판의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3 해설자 생활
2014년 K리그 클래식 시즌 초반에 [[MBC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했다.- ↑ 2007시즌에는 장외룡 감독이 유학을 다녀오면서 한시즌 통째로 박이천 감독대행이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