젝스키스/해체

1 해체와 경과

2000년 5월 18일, 기자회견을 갖고 갑작스럽게 해체를 발표했다. 별다른 조짐없이 이뤄진 일방적인 해체인터라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는데, 당시엔 이유가 명확하게 언급되지 않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훗날 밝힌 이유를 보면 이 목차 밑에 서술되어 있는 바와 같다.

이 당시 해체의 충격으로 젝스키스 팬들은 패닉 상태에서 시위를 벌이며 젝스키스 해체를 반대했지만 대부분 미성년자인 팬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던 터라 이 상황을 되돌릴 수 없었다.

이때 팬들이 보낸 목소리가 전해져 카메라 출동에서 연예부로 배치받게 되었던 MBC기자 (現 고발뉴스의) 이상호기자가 MBC의 10분짜리 아침 시사프로 '피자의 아침'을 통해 팬들이 주장하는 기획사의 의혹 및 팬들과 기획사와의 갈등에 대한 내용을 취재한 것이, 4부작에 걸쳐 방송되었다. 보러가기 1 보러가기 2 보러가기3 이상호 기자의 취재 기록 회고 다만 나무위키의 이상호 기자 문서에서 보듯이, 이상호 기자는 취재 과정 중 왜곡이나 과장을 하는 경우가 있어 일각에서 비판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위 영상도 무조건 100% 진실로만 받아들이기는 무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 보도를 계기로 이호연은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무혐의처분이 나왔다.이 프로 자체가 젝키 팬들의 제보로 시작됐으니, 소속사 사장을 경찰조사까지 받게 만든 젝키 팬들의 위엄이다ㄷㄷ 이상호 기자가 몇년후 후일담이라고 글을 올렸는데, 이상호 기자의 말이 맞다면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탈세와 관련해선 수억원의 추징금을 냈다고 한다.

한편 이때 젝스키스의 마지막 콘서트를 취재하던 조영구 리포터의 차를 팬들이 이호연 사장의 차로 오인하여 박살내버린 사건도 있었는데 그것도 차종이 그랜저 XG로, 산 지 보름도 안 된 것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차 안에 있던 조영구씨의 옷가지나 소지품 등도 도난당했다. 기사, 기사

이로 인해 현장에서 몇 명의 팬들이 경찰에 잡혀 파출소로 연행되었을 때 조영구가 차마 학생들을 처벌해달라고 할 수가 없어서 그냥 차비까지 줘가며 집에 보냈다고 훗날 토크쇼에서 밝혔고[1], 이후 팬클럽에서 공식적으로 조영구에게 사과를 하고 조영구도 용서를 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팬들이 십시일반으로 보상금을 모금하기도 했으나 모금한 인원이 20여명이었고, 어린 중고등학생들이 모은 돈인지라 액수가 적어 조영구 측에서 거절했고[2], 보상은 젝키 소속사 이호연 사장에게 받았다고 한다. 당시 수리비 견적이 1100만원이 나왔고, 1100만원 전액 이호연 사장이 보상했다고 밝혔다.기사.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고급 차종이 반파됐는데 겨우 1100만원 보상하냐고 볼 수도 있는데, 당시 그랜져 XG의 신차가격이 2000만원 할 때이다.기사 저 정도 수리비면 아예 다 갈아엎어 수리한 정도다.

참고로 신서유기에서 은지원이 "조영구형은 더 좋은 차로 보상을 받아놓고 피해자 코스프레만 한다"고 격하게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는데, 사실 이 발언은 은지원이 전후사정을 자세하게 알지 못한채 뱉은 매우 경솔한 발언이었음이 밝혀졌으므로 엄하게 조영구씨를 비난하지는 말것. 오히려 조영구씨는 팬들을 모두 용서했고, 보상은 젝키 소속사에 부탁하여 따로 받아낸 것이다. 만약 조영구씨 측에서 강경하게 나왔으면 일이 커질 수도 있는걸, 어린학생들이 벌인 일이라며 본인이 다 감수한 것이다. 애초에 무고한 사람의 차량을 반파시키고, 차 안의 물건까지 도난했던 이 건은 젝스키스 팬들이 벌인 흑역사가 맞다. 만약 조영구씨가 제대로 처벌을 요구했으면 진짜 일이 커질 것을 다 혼자서 덮어쓴것이다. 어쨌든 이후 은지원도 라디오스타에 출연하여 자신의 오해였다며 조영구씨와 따로 연락을 하면서 알게 된 전후사정이 내가 알던것과는 달랐다며 자세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으니 자세한 전후사정을 알고 싶으면 라디오스타 젝키편을 참고 할 것...

젝키가 재결합하면서 6년째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이호연은 세력화된 젝키 팬들에게 과거 일에 관해 각종 쌍욕과 패드립을 엄청 먹고 있는 중이다. 나아가 일부 팬들은 "젝키가 과거 이런 일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각 커뮤니티에 활발히 올렸다. 젝키 데뷔때는 태어나지도 않은 신규 입덕한 애들도 그 말에 따라 "개호연새끼 뒤져라"는 등의 소리를 외치고 있고, 기존 팬들은 그걸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3] 문제는 과거에 이런 일 당했다고 욕하는 것들 중 맞는 말도 있지만, 상당 부분이 과장되거나 틀렸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선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를 참조 바란다. 특히 해체의 경우 후술하는 바와 같이 강제로 해체당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DSP가 젝키를 강제로 해체시켰다고 세간에는 퍼져있다. 소속사와의 갈등, 하고 싶은 음악적 욕심, 정상에서 내려오자는 마음 등이 작용해 멤버들 중 해체를 하자는 파가 있었고, 결론적으로 해체 쪽으로 의견이 모이게 됐다.

하지만 젝키 활동 중 이호연이 잘못한 것이 있다는 점은 맞고, 특히 다음의 점이 근본적 문제라고 보인다. 전에 전혀 없던 새로운 '아이돌 팬덤'이란 것이 생기며, 90년대 당시 DSP는 SM과 함께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어온 돈에는 그만한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팬들은 좋게 말하면 진심으로 나쁘게 말하면 반쯤 미쳐서 젝스키스에 빠져 있었다.그러니 그렇게 돈이 벌린거지 이런 상황인데 3년만에 팀이 해체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멤버 중 해체를 원하는 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팬들을 생각해 소속사에서 향후 조건을 제시하는 등 해체를 적극적으로 막았어야 했고, 만약 해체를 막지 못했더라도 해체의 방식을 그렇게 팬들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됐다.

아무튼 젝키의 해체 사건 이후 벌어진 광경들은,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이 갑작스럽게 해체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덕분에 이후 연예 기획사들은 일정기간 활동의 공백을 두면서 개인 활동이나 유닛 활동 등으로 어느 정도 암시를 준다든가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멤버들이 알아서 흩어지게 하는 등 아이돌의 해체를 공식화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젝키가 드림콘서트라는 한국 최고의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에 둘러쌓여 해체를 하는 것은 극적이고 타인이 보기엔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그만큼 젝키 팬들의 감정도 격앙됐다. 훗날 후배 아이돌들이 해체하듯이 최대한 충격을 피하고 시간이 흐르며 그냥 흐지부지 되는 형식으로 진행됐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DSP가 그렇게 안했다고 탓하기 힘든 것이, 젝키의 해체 소동을 보고 이후 아이돌 기획사의 모습이 바뀐 것이기 때문이다.

2 해체 당시 각종 입장

2.1 젝스키스 해체 기자회견 전문

97년 4월 15일 '젝스키스'로 방송활동을 시작한 저희들은 3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함께 음악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리고 2000년 5월 18일 오늘 저희 '젝스키스'는 공식활동을 마감하고, 가요계 은퇴를 알리려고 이렇게 모였습니다. '젝스키스라는 이름으로 또 어떤 것을 보여줄 것인가'라는 심각한 고민 속에서 지난 4집 앨범작업을 마무리하면서 멤버들 각자 은퇴에 대한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고, 가장 좋은 모습일 때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에 특별한 사건도 누구의 설득도 없이 결정을 내렸습니다. 항상 시간에 기는 스케줄과 힘든 음반 작업의 반복, 그리고 언제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스트레스로 지난 3년간 남보다 힘든 성년식을 치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젝스키스'를 사랑하고 격려해주는 팬들과 믿음과 우정으로 서로를 감싸준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에 값지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의 '젝스키스'가 있게 해주신 제작자와 작곡가 작사가 분들 그리고 저희와 함게 동고동락한 매니저형들 그리고, 많은 방송 관계자와 기자 여러분에게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젝스키스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그동안 너무 고마웠고 또 이렇게 이별을 알리게 되어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젝스키스 리더 은지원

2.2 DSP

2.2.1 이호연

2000년 8월 3일 금요초대석에서.

Q. 젝스키스의 신화도 그 연장선상인데?

A. 하와이에서 2명, 국내에서 4명을 찾아내 구성했죠. 처음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으니까 그림이 썩 괜찮더라구요.처음부터 히트에감이 있었어요. 방송을 타기 전 PC통신에서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대단했지요. 앨범을 내놓았는데 상상외였어요. 한 앨범에서 `학원별곡' `폼생폼사' `연정' `기억해 줄게요' 등 4곡이 빅히트를 했어요. 한 앨범에서 4곡 히트는 드문일이라 더욱 놀랐어요. 본인들이 열심히 했어요. 해체할 때까지 말다툼을 하거나 싸운 적이 한번도 없었어요.


Q. 결국 젝스키스는 해체됐는데?

A. 너무 아쉬웠어요. 이 문제는 본인들과 부모들이 심사숙고한 끝에 내린 결정이에요. 갈 길이 있고 정상에 있을 때 자리를 떠나겠다는 거였죠. 일부 팬들은 저의 입김 운운 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업가의 입장에서 보면 제가 해체를 할말한 이유가 없어요. 끝까지 가고 싶었지요. 젝스키스의 해체는 이 사업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일로 기억될 겁니다.

일단 '사업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해체를 할 말한 이유가 없다'는 말은 맞다. 당시 젝스키스 인기는 여전히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체 쪽으로 돌아선 멤버들을 설득해 그룹을 존속시키려고 하는 노력은 별로 없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라디오스타에서 은지원은 해체의 원인이 이호연사장과의 관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강성훈은 2015년 러빙헨즈에서 '팬들은 (이호연을) 안 좋아하지만 DSP사장님이 젝키를 위해서 많은 일은 하신 건 맞아..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나서 그렇지..'라고 말하며 이호연의 공로는 인정하면서도 마지막이 안 좋았다고 언급하였다. 이재진은 2005년 싸이월드 방명록에 호연이란 이름의 팬이 글을 남기자 '호연이라..'라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 바 있다.

2016년 DSP 측이 멍청하게 언플했다가 욕만 엄청 쳐먹은 기사에서는 "불같은 성격의 이 대표는 젝스키스 해체 과정에서 일부 멤버들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지나간 일. 측근은 “이호연 대표의 눈물은 젝스키스에 대한 반가움과 미안함, 고마움 등이 뒤섞인, 그야말로 교차하는 만감의 표현이 아니겠느냐”고 나와있다.

그러나 이호연은 201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지금까지 말을 못하고 거동불가능한 상태로 6년째 누워있다. 그냥 기자의 상상과 소스를 제공한 직원의 생각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대중들은 이런 기사를 보고 "앞에 실컷 딴 이야기 쓰다가 궁극적 목적은 마지막 줄에 있네."라고 받아들인다. 앞 부분 내용의 경우, 이호연이 젝스키스를 키운 것은 맞으니[4] 병문안 좀 오라는 말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얘기는 개인적으로 하면 될 일이었다. 결국 이호연 이름 팔아서 "YG와 계약 소문 들리던데, DSP랑 계약하자"는 것이 목적인 기사로 비춰진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이호연의 생각 부분은 지어냈다고 보인다. 사실 현재 DSP 위상만 봐도 젝키가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최다추천 댓글을 보면 허위이거나 과장인 루머가 많은데, 일반인들은 이번 기회에 그걸 보고 믿었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참조). 사실 이호연 상태를 보면 이런 기사가 나온 줄도 모를텐데, 6년째 누워있다 뜬금없이 욕만 엄청 쳐먹었다. 즉, 아무런 이익이 없는 멍청한 언플이었다. 사장이 쓰러진 이후 여러 오판들을 일으키며 쇠퇴한 경력을 봤을 때 놀랍지 않기는 하다.

2.2.2 DSP 직원

2.2.2.1 DSP 관계자

D기획 한 관계자와의 대화 내용

Q. 젝스키스에 관한 사실을 듣고 싶어서 왔는데....

A. 공식화된 기사가 전부이다.


Q. 게시판에 올라온 여러 가지 의문은....?

A. 조그만 사실에 살을 붙여서 팬들이 과장을 한 것이다. 일단 젝키 팬들은 젝키가 해체를 했으니까 여섯 명을 하나의 그룹으로 좋아했다가 해체가 돼서 기사를 보고하는 것인데... 멤버 중에 두 명은 내년에 나온다.


Q. 언제?

A. 내년 초가 될 것 같다.


Q. 확정된 사실인가?

A. 그렇다.


Q. 어떻게 여섯 명에서 두 명으로 줄인 이유는?

A. 그것은 우리가 줄이려고 해체를 한 게 아니라 해체를 하고 나서 얘들의 향후 계획을 듣고 그것을 수렴해서 계속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멤버 둘이 남게 돼서 듀엣을 하게 된 것이다. 듀엣을 시키려고 고의로 해체를 시켰다는 소문이 있는데 인터넷이라는 것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이다. 심지어는 잭키 팬들이 어떤 일까지 하냐면 인터넷에 우리 D기획 관계자라고 해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5] 그리고 인터넷에서 퍼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자가 올린 글처럼 해서 문체를 베껴 써서 비리가 어떻다느니, 음반 판매가 어쩌느니....뭐도 모르고 통신을 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좋게, 발전적으로 애들이 10대에 가수를 시작해서 지원이 같은 경우는 나이가 제일 많은데 23살이다. 솔직히 남자면 자기 미래를 이미 설계하고도 남았을 애들인데 이때까지 가수활동 빡빡하게 하느라고... 아직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냐, 다른 것을 둘째치고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애들이고 (여섯 멤버 중에 아닌 사람도 있다). 공부를 하겠다고, 연예활동에 지친 멤버들은 계속 공부를 할 것이고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려고....... 솔직히 4년 정도 활동을 했으면 10대 댄스그룹으로 시작했는데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국내 가요계에서는 댄스 가수가 4년, 5년씩 활동을 하는 것은 한계라고 본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들이 해체를 한 것이지 ....


Q. 그럼 멤버 개인이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보였기 때문에..?

A. 두 명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의 팬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야 기획사 입장이니까 그들 마음을 다 읽을 수가 없다. 우리 앞에서는 아니라고 해도 속으로는 무슨 생각하는 지 모른다. 특정 멤버가 활동을 하기 싫어해서 가수 활동을 접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해체 얘기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해왔던 거다. 그런 걸로 문의가 많이 온다. 기자들, 방송국...,. 우리는 젝키가 해체한 마당에, 또 우연히 드림 콘서트때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알아본 결과 주동을 한 팬은 젝키팬이 아닌 걸로 밝혀졌다. 차를 부시고 우리 팬클럽 애들 아니고 팬클럽과는, 임원들은 전혀 관련이 안 되어있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 매스컴에서 자꾸 안 좋은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져서 이미 팬들과 아쉽지만 이별을 한 상태인데 자꾸 그걸 들춰서 해체와 연관을 지으려고 한다. 기사화 시켜서 이슈화하고 싶은 건 이해를 하는데 왜곡되게 표현을 하면 팬이나 본인들은 기분이 나쁘다.


Q. 팬클럽 관리는?

A. 지상 팬클럽, 인터넷 팬클럽이 있다. 비공식 팬클럽이 있긴 하다. 팬클럽 관리팀이 있다.


Q. 음반 수익은?

A. 당연히 멤버들과 회사에 일부가 온다. 멤버들한테 (수익이) 가야지 노래를 불렀는데...


Q.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A. 인터뷰를 하는 것이 유쾌하지 않다. 우리는 조용히 있다가 나중에 여섯 멤버들이 어떻게 나오는 것만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Q. 팬들의 오해를 풀어줘야 할텐데...

A. 팬들의 오해는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 때문에 더 생긴다. 많이 흥분한 상태고 젝키가 해체를 했다고 해도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팬들은 해체라는 것을 인정 안 하려고 한다. 사실도 아닌 글이 통신에 올라오는데 지금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인 것 같아서 가만히 있는 것이다.


Q. 사장이 이호연씨? 지금 어디에 계신지...?

A. 계시다. 지금 사무실에. 손님 만나고 계신다. 그리고 이렇게 올 때는 미리 전화를 하고 약속을 하고 와라.

2.2.2.2 김기영

2000년 8월 티비넷 잡지 인터뷰에서.

  • 기획사의 입장
'젝키'의 소속사였던 D.S.P는 '젝키'의 해체와 관련해 팬들과는 색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 삐걱거리고 있다. 이하는 젝키 매니저 김기영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김기영씨는 '젝키'를 발굴하기부터 해체까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매니저. 기획사와 멤버들의 입장을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Q. 팀 해체의 근본적인 원인은 뭐였나요?

A. 그건 저도 정확히 몰라요. 아니, 멤버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매니저가 모르면 누가 아나요? 그건 멤버들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저도 표면만 봤을 뿐이고, 내막을 자세히 몰라요.


Q. 해체 소식을 멤버들에게 알려준 건 누구였죠?

A. 물론 저였죠. 해체 전전날인가 사장님께 전달을 받고 멤버들에게 연락을 했어요. 기자회견을 하려고 하는데 너희 모두 참석을 해야 의미가 있다구요. 멤버들도 수긍을 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 읽은 글은 멤버들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의논해 작성한 것입니다. 모 작가가 다듬어 썼구요.


Q. 팬들의 주장은, 젝키 멤버들이 전혀 원하지 않았던 해체였다고 하던데요.

A. 정말 어이가 없어요. 해체는 멤버들이 저희보다 더 원했던 일이었어요. 특히 재덕이와 지용이가 가장 바랬구요. 그리고 애들 자체가 아무런 의욕이 없었어요. 연습도 잘 안하고, 방송도 힘들어 하고. 네.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네요. 의욕 자체가 없었다는 거 말예요.


Q. 해체 얘기는 작년 연말부터 나왔다면서요? 그리고 팬들은 '핑클'을 키워주기 위해 '젝키'를 죽인 거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A. 네. 연말 시상식을 즈음해서 얘기가 나왔어요. 그걸 두고 팬들은 '핑클' 홍보 때문에 젝키를 소홀히 한거라고 하던데, 그런 말에는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기획사와 매니저들은 젝키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 이리저리 뛰어 다니면서 홍보 했어요. '젝키' 망신 당하지 않게 하려고 방송사랑 음반사 쫓아 다니면서 한군데라도 좋은 상 받게 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세요? 지들이 힘이 딸려 자꾸 떨어지는 걸 어떡해요. 저희도 영문을 몰랐어요. 왜 그렇게 인기가 떨어지는지 말예요. 그리고 '핑클'은 가만히 둬도 인기가 오르는데요. 굳이 홍보 안해도 자기들끼리 잘 하더란 말입니다. '젝키' 때문에 애 쓴 기획사 노고 생각한다면 그런 말 하면 안돼죠. 그리고 이번 드림 콘서트 보고 저는 팬들이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평소에는 응원하러 잘 나오지도 않더니 그 날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모였는지. 그 날따라 해체한 게 너무 아깝더라구요. 평소에 그렇게 많이들 왔다면 해체 안했을 수도 있죠.

2.2.2.3 기타

2016년 6월 1일 방영된 라디오 스타에서 해체에 대해 더 구체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젝키 멤버 간 사이는 좋았고, 이호연 사장과의 관계가 아니라 본인들과 가장 가깝게 붙어지내던 매니저(김기영으로 추측됨)와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이재진은 2013년 여성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멤버 중 자기랑 재덕이만 매니저(김기영으로 추측됨)한테 맞고 살았다고 발언한 바 있다. 빈부에 따른 차별 대접을 한 것으로 보인다.[6]
한편, 2013년 라디오스타에 출연한 김재덕의 발언에 의하면 매니저(김기영으로 추측됨)가 멤버들의 (군기를 잡고자) 스스로 엎드려 뻗치고는 내 잘못이라면서 멤버들에게 자신을 때리라고 했는데, 그때 번개 같이 이재진이 한 대 때려서(...) 놀란 나머지 멤버들이 이재진을 말렸다고 한다.깨알 복수 성공?

참고로 이 매니저는 젝키의 소녀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고, 그 피해자들 중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녀도 있었다고 한다. 본인이 아래 인터뷰에서 '내가 때렸던 여자아이를 청와대 공연 갔을 때 마주쳤다. 알고 보니 대통령의 손녀더라.'라고 말했다. '전혀 안면도 모르는 소녀팬을 팰 정도면 담당 연예인들에게는 어땠을지'라며 팬들은 싫어했다. 하지만 젝스키스 인기 만큼 워낙 극성 팬도 많았던 탓에 멤버 보호 차원에서 팬들에게 물리력이 행사되는 것은 불가피하긴 했다. 당장 오늘날 아이돌 사생팬 모습을 봐도 그렇다. 장수원은 2014년 12월 18일 해피투게더에 출연했을 때, 과거 활동 당시 어떤 팬이 한 멤버의 남자 그 부위를 꽉 움켜쥐고 안 놨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김기영 매니저의 해당 인터뷰 원본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영화 개봉날 바리케이트가 무너져서 때리게 됐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에 갔는데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꼬맹이가 사인받고, 사진 찍으며 왔다갔다하더라. 경호팀에 누구냐고 물었더니 '어르신 손녀딸'이라고 하더라. 김 전 대통령의 손녀였다. 순간 날 보더니 '할아버지, 저 사람 아는 사람이다'고 하더라. 알고 보니 영화 <세븐틴>이 개봉했을 때, 대한극장에서 저지선이 무너져 내게 맞았던 학생이었다. 순간 대통령과 영부인이 쳐다보는데 어쩔줄 몰랐다.

관련 기사

아무튼 당시 현직 대통령의 손녀를 때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코렁탕

2.3 가족

2.3.1 김재덕 어머니와 여동생

부모와 멤버들과의 접촉을 시도하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 우선 각 멤버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모두 핸드폰을 꺼놓거나 집 전화기도 자동 응답기로 돌려놓은 상태였다. 해체 후 상당한 충격을 다스리기 위한 일종의 '도피'였다. 쏟아질 팬들의 전화공세 때문이기도 하다. 어렵게 연락된 멤버 둘 중 한 명은 아버지와 함께 서울에서 지낸다고 했다. 그의 어머니는 '기자'라는 말에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도 해체 이유를 모른다"면서 서둘러 여동생에게 수화기를 넘겨줬다. "그의 여동생은 '오빠가 너무 불쌍하다. 얼른 제대로 된 해체 이유가 밝혀졌으면 좋겠다. 돈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고생만 많이 한 모습이 안쓰럽다.'"고 말해 기자회견문이나 기획사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띄었다.

2000년 8월 티비넷 잡지 인터뷰

해당 인터뷰의 어머니는 김재덕의 어머니이다. 젝스키스 멤버들 중 여동생이 있는 멤버는 이재진과 김재덕 두 명인데, 당시 김재덕만이 아버지와 서울에서 따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2.3.2 장수원 어머니

여러차례 접촉을 시도한 끝에 멤버들 중 한명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해체 사실에 대해 연거푸 한숨을 쉬며 "아들이 하고싶은 일이라 내버려 뒀는데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이하는 그녀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Q. 해체한 이유가 뭔가요?

A. 해체 얘기는 작년 연말부터 나왔어요. 그때 엄마들끼리 모여서 사장님한테 '해체 하려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라' 고 얘기하곤 했어요. 애들이 인기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으니까요.


Q.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A. 사장님이 밤 늦게 애들을 부르곤 했어요. 어떨 땐 새벽 2시 넘어 부르기도 하고, 자고 있는 애들 깨워서 불시에 나오라고 하는 거에요. 애들이 새벽에 불려가서 뭘 배우겠어요? 자꾸 애들 정서에 맞지도 않는 이상한 걸 막 하게 하고 그러니까 애들도 싫어하죠. 신인 때야 아무말 못하고 불려가고 했지만 인기를 좀 얻고나니 반항도 하고 그러는거죠. 그걸 가지고 기획사에서는 건방지다고 하고. 그러면서 매니저랑 사이가 안좋아지고 사장님 눈 밖에 나기 시작한거죠.


Q. 팬들 말로는 돈을 제대로 못받았다고 하던데. 인세도 안주고 말예요.

A. 돈이요? 많이 못벌었죠. 애시당초 계약이라는 게 없었어요. 그러니까 인세도 마음대로 주는거죠.


Q. 계약이 없다뇨?

A. 다른 가수들은 계약서를 쓰잖아요. 그런데 얘들은 그런 게 없었어요. 음반이 팔리면 한 장당 얼마를 준다느니, 수입은 어떻게 나누다느니 그런 계약 말예요. 물론 계약금도 없었죠.


Q. 그럼 돈을 얼마나 번거예요?

A. 모르겠어요. 얼마 못벌었죠.


Q. 매를 맞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A. 에이∼ 그건 아니에요. 매를 맞고 그냥 있나요?


Q. 가수로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을 텐데…

A. 기획사에서는 더 이상 미련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해체를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들이 좋다고 하니까 내버려 뒀는데, 안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미련 많이 가지고 있죠. 어차피 '젝키'야 처음부터 지원이랑 성훈이 이렇게 2인조로 하려던 거니까 걔네들은 다시 '젝키'로 나오겠지만 다른 애들은 기획사에 남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계약으로 묶인 게 아니니까 자유로운 몸이죠. 의리를 생각해서 남을 수는 있어요.


Q. TV에서 '젝키' 해체 문제를 다룬건 알고 계시죠?

A. 네. 방송이 미뤄졌던 걸로 알고 있어요. 엄마들이 입을 안열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거죠. 엄마들이 한마디만 해주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누가 함부로 방송에 나가 그런 말을 하고 싶겠어요? 그리고 성훈이와 지원이는 기획사에 계속 남아있을 거니까 엄마들끼리 쉬쉬 하기로 한거죠. 기획사에 남아있는 애들한테 피해가 되니까. 그리고 '젝키'의 주요 인물이 그 둘이니까 뭐든 두 멤버가 주축이 되잖아요.


Q. 다른 기획사에서 '젝키'를 스카웃 하려고 하지 않나요?

A. 그런 제의도 있었죠. 다른 기획사에서는 스카웃 조건이 '6명 모두' 였어요. 그런데 성훈이와 지원이가 듀엣으로 나올거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죠.


Q. 요즘 다른 멤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다들 평범하게 지내죠. 학교 다니면서. 친구들도 만나고. 그런데 하나같이 가수에 미련은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2000년 8월 티비넷 잡지 인터뷰

우선 이 인터뷰의 내용으로 보아 해당 인터뷰의 어머니는 고지용 아니면 장수원의 어머니로 보인다. 왜냐하면 은지원강성훈을 객체로 언급하였으며, 전술했듯이 김재덕의 어머니는 이미 같은 잡지에서 따로 인터뷰를 짤막하게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재진 어머니는 무한도전에서 알 수 있듯이 해체에 대해서 완강하게 반대를 하였는데, 해당 인터뷰의 어머니는 해체에 대해서 반대를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위 인터뷰에서 아들이 가수가 좋다고 하니까 내버려뒀으며 여전히 젝키 멤버 활동에 미련이 있다고 한 점을 비추어 봤을 때, 고지용이 아닌 장수원 어머니로 볼 수 있다. 고지용은 젝키 활동 당시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위 인터뷰에서는 아들이 '젝스키스 멤버 활동에 미련이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했다는데, 실제로 십수년이 지난 방송에서 장수원은 당시 속으로는 썩 해체하고 싶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인터뷰에 의하면 해당 젝스키스 멤버는 여전히 DSP 잔류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멤버는 장수원이 유일하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하는 장수원 목차에 있다.

2.3.3 장수원 어머니2

팬클럽 사이트에 올라온 인터뷰 - 다만 본 인터뷰는 출처가 불명확해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 현재 팬들이 모은 정보력이면 출처는 물론 원본 사진까지 찍는게 가능할테니 정보 추가 바람.

젝스키스 멤버 중 한 어머니와의 전화 인터뷰가 있었다. 젝스키스의 해체 이후로 젝스키스 팬들과의 아픔 이외에 어머니들의 아픔도 무시할 수 없다. 여러 가지 루머가 생기면서 젝키 멤버들의 집에는 전화가 끊이지 않았고 신문과 방송의 오보로 팬들이나 어머니들의 불만이 많다. 젝스키스의 해체 이유는 많은 설이 있었다. 어떤 이유들인지 문제의 대성 기획사와의 관계는 어땠는지 어머니에게 직접 들어 보았다. 그러나 어머니가 걱정을 하신 바 젝스키스가 해체를 했지만 다음 일이 진행 중이고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말씀하시기가 힘드시다는 것.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는 통화였다. 어떤 나쁜 소문이 있다 하더라도 젝키 멤버들의 보다 나은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셨다.

Q. 멤버들과 전화를 하고 싶은데 젝키가 억울한 것이 있을 것 같아서...

A. 그걸 어떻게 풀 수 있느냐...


Q. 지금 젝스키스 팬들이 서명운동이 한창인데...

A. 서명 운동 해가지고 대성을 이긴다는 보장이 어디있냐....


Q. 젝키 해체의 이유

A. 첫째는 멤버 중 한 명이 안 한다고 한 것도 있고 둘째는 스케줄은 많은데 수입이 영 아니고 셋째는 돈도 잘 안 주면서 애먹이고 그런 이유겠지.


Q. 월급으로 받으셨나?

A. 수당으로 받았다.


Q. 해체한다는 말은 언제 들었나?

A. 멤버 한 명이 안 한다고 해서, 그 멤버가 누군지는 모른다. 사장한테 그 얘길 들었다. 만나서 들었다.


Q. 명예회복차원에서 보도를 하고 싶다.

A. 명예회복이 쉽게 될까 모르겠다.


Q. 둘이 듀엣 설은?

A. 사장 혼자 신문에 냈다. 부모들은 허락을 안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Q. 이호연 사장이 젝키에게 함부로 한다던데 들은 사실이 있는지..

A. 안 봤으니 모른다. 우리는 일 한 것 돈으로 달라고 전화를 하면 겨우 늦게 준다. 우리 애가 계속 활동할지 안 할지 모르는데 대성이 어떻다고 말하기가 곤란하다.


Q. 팬들한테는 ....?

A. 기다리라는 말 밖에..


Q. 음반비리에 대해서는 아시는 것 없으신지

A. 그런 얘기는 엄마들 보다 팬들이 더 잘 안다. 엄마들은 몰라도 팬들은 조금만 말라도 한 눈에 알더라.


Q. 대성이 잘 못해주나?

A. 예를 들어서 스케줄은 많이 뛰고 돈은 못 받고...


Q. **군은 계속 활동하고 싶어하는지?

A. 계속하고싶어 한다.


해당 인터뷰의 어머니 역시 은지원강성훈을 객체로 언급하였으며, 자신의 아들은 계속 젝스키스 멤버로 활동하고 싶어한다는 것으로 보아 해체 반대파 멤버(이재진, 김재덕, 장수원 중 한 명)의 어머니인데, 장수원의 어머니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해당 인터뷰의 젝스키스 멤버는 DSP에서의 활동여부가 불투명한데, 이재진김재덕은 해체 직후에도 수개월 동안 DSP에 잔류했으며, 고지용은 학업으로 진로를 정했기 때문이다. 기사에서도 해체 직후 장수원만이 진로를 정하지 못한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7] 한편, 이호연이 언급한 젝스키스 활동을 거부한 멤버는 가장 적극적으로 해체를 주장한 은지원으로 보인다.

3 은지원, 강성훈 듀엣 시도

3.1 젝스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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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은지원과의 듀엣설도 있었는데…

A. 네. 얘기가 있었어요. 사실, 여섯 명중 한명이었던 제가 오랜만에 나와서 혼자 무대에 서는 게 겁나죠. 솔로로 부족할 것 같았고 또 지원이 형도 저와 의견이 같아서 함께 해보자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서로의 메리트를 잘 배합하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함께 활동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어요. 그러다 지원이 형이랑 술자리를 가지며 허심탄회한 얘기들을 나눴는데.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지원이 형이 그럼, 우리 각자 활동하자… 그래서 각자 솔로 활동을 결심하게 된거예요.

Q. 솔로 활동 결심, 워너뮤직 계약… 등등 곁에서 도와주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는지

A. 어머니요. 사실, 음악 욕심도 나고 무대도 그리웠지만 솔로 활동에 대해 쉽게 결정을 못했어요. 지원이 형이랑 듀엣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다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어머니가 많은 도움이 되어 주셨어요. 어머니랑 얘기도 많이 했고 이번 활동도 어머니가 많이 알아봐주신 거예요. 어머니의 힘이 컸어요.


2001년 1월호 주니어, 강성훈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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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지원: 근데 저희가 이제 회사랑 합의를 본 게 성훈이랑 저는 남아라는 얘기를 (사장님이) 하셨어요.

장수원: (나머지 멤버들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저희는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강성훈: 이게 절대 오해 소지가 없어야 되거든요. 저희끼리는 사이가 굉장히 좋았어요.근데 이제 회사 입장에서는 은지원, 강성훈은 남아라 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저희가 화장실에서 얘기를 했어요. '남긴 뭘 남냐, 나머지 멤버들도 있고 그건 말이 안 된다.' 저희 둘이 합의를 보고 우리도 그냥 그 회사를 나와버린 거죠. 나오게 된 거죠.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3.2 장수원 어머니

팬클럽 사이트에 올라온 인터뷰 - 다만 본 인터뷰는 출처가 불명확해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 현재 팬들이 모은 정보력이면 출처를 정확히 아는 것은 쉬운 일일테니 정보 추가 바람.

Q. 둘이 듀엣 설은?

A. 사장 혼자 신문에 냈다. 부모들은 허락을 안 했는데.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2000년 8월 티비넷 인터뷰

Q. 가수로서 미련을 많이 가지고 있을 텐데…

A. 기획사에서는 더 이상 미련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해체를 결정했다고 말하고 있어요. 아들이 좋다고 하니까 내버려 뒀는데, 안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미련 많이 가지고 있죠. 어차피 '젝키'야 처음부터 지원이랑 성훈이 이렇게 2인조로 하려던 거니까 걔네들은 다시 '젝키'로 나오겠지만 다른 애들은 기획사에 남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계약으로 묶인 게 아니니까 자유로운 몸이죠. 의리를 생각해서 남을 수는 있어요.


Q. TV에서 '젝키' 해체 문제를 다룬건 알고 계시죠?

A. 네. 방송이 미뤄졌던 걸로 알고 있어요. 엄마들이 입을 안열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거죠. 엄마들이 한마디만 해주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누가 함부로 방송에 나가 그런 말을 하고 싶겠어요? 그리고 성훈이와 지원이는 기획사에 계속 남아있을 거니까 엄마들끼리 쉬쉬 하기로 한거죠. 기획사에 남아있는 애들한테 피해가 되니까. 그리고 '젝키'의 주요 인물이 그 둘이니까 뭐든 두 멤버가 주축이 되잖아요.


Q. 다른 기획사에서 '젝키'를 스카웃 하려고 하지 않나요?

A. 그런 제의도 있었죠. 다른 기획사에서는 스카웃 조건이 '6명 모두' 였어요. 그런데 성훈이와 지원이가 듀엣으로 나올거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었죠.

3.3 김기영

Q. 그럼 기획사에 남게 되는 멤버는 누구누구인가요?

A.우선 재진이는 직원으로 남았어요. 지금도 안무 짜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성훈이랑 지원이는 둘이 작업 중이구요.


Q. 2인조 젝키는 어제 나오나요?

A.내년 초쯤 나올거예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대충 그 정도로 잡고 있어요. 저 솔직한 심정으로는 걔네들 안하고 싶어요. 별로 애정도 없고, 될 거 같지도 않고. 팬들도 부정적이구요.

Q. 게시판에 올라온 여러 가지 의문은....?

A. 조그만 사실에 살을 붙여서 팬들이 과장을 한 것이다. 일단 젝키 팬들은 젝키가 해체를 했으니까 여섯 명을 하나의 그룹으로 좋아했다가 해체가 돼서 기사를 보고하는 것인데... 멤버 중에 두 명은 내년에 나온다.


Q. 언제?

A. 내년 초가 될 것 같다.


Q. 확정된 사실인가?

A. 그렇다.


Q. 어떻게 여섯 명에서 두 명으로 줄인 이유는?

A. 그것은 우리가 줄이려고 해체를 한 게 아니라 해체를 하고 나서 얘들의 향후 계획을 듣고 그것을 수렴해서 계속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멤버 둘이 남게 돼서 듀엣을 하게 된 것이다. 듀엣을 시키려고 고의로 해체를 시켰다는 소문이 있는데 인터넷이라는 것은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도는 것이다. 심지어는 잭키 팬들이 어떤 일까지 하냐면 인터넷에 우리 D기획 관계자라고 해서 글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퍼왔다고 한다. 심지어는 기자가 올린 글처럼 해서 문체를 베껴 써서 비리가 어떻다느니, 음반 판매가 어쩌느니....뭐도 모르고 통신을 하는 사람은 그런 말을 사실로 믿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좋게, 발전적으로 애들이 10대에 가수를 시작해서 지원이 같은 경우는 나이가 제일 많은데 23살이다. 솔직히 남자면 자기 미래를 이미 설계하고도 남았을 애들인데 이때까지 가수활동 빡빡하게 하느라고... 아직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냐, 다른 것을 둘째치고 계속 음악을 하겠다는 애들이고 (여섯 멤버 중에 아닌 사람도 있다). 공부를 하겠다고, 연예활동에 지친 멤버들은 계속 공부를 할 것이고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려고....... 솔직히 4년 정도 활동을 했으면 10대 댄스그룹으로 시작했는데 인정을 하고 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 국내 가요계에서는 댄스 가수가 4년, 5년씩 활동을 하는 것은 한계라고 본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들이 해체를 한 것이지 ....

3.4 정리

강성훈- 2001년 인터뷰: 강성훈 생각에 솔로로 나오면 부족할 것 같았음. 은지원도 강성훈 의견과 같았음. 이에 은지원이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함. 다만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솔로 활동을 결심함.
은지원, 강성훈-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 은지원, 강성훈이 원해서 남겠다고 한 DSP의 입장과는 반대로 은지원, 강성훈이 DSP로부터 듀엣 제의를 받고 듀엣을 하기로 합의를 보았으나, 최종적으로 거절
장수원 어머니 - 다른 기획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는데, 그 조건이 6명 모두 였음. 하지만 강성훈과 은지원이 듀엣으로 나올거기 때문에 불가능했음. / (출처 불명확한 인터뷰에 따르면) 듀엣에 대해 부모들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사장 혼자 신문에 냄.
DSP 입장- 해체를 하고 나서 향후의 계획을 듣고 그것을 수렴해서 계속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멤버 둘이 남게 돼서 듀엣을 하게 됨.

3.4.1 팬들 입장

이에 대한 팬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은지원은 듀엣을 회사와의 합의라고 표현했는데, 무엇에 대한 합의인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방송의 문맥상 해체 관련한 합의일 가능성이 높다. 은지원은 훗날 계약서가 없는 게 더 무서웠다면서 DSP를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회고하였는데(후술), 이 합의에 대한 부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DSP의 은지원, 강성훈 듀엣제의는 타회사의 젝스키스 스카웃 제의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되기도 했는데, 이 증언은 듀엣논의 시점이 해체 이후라는 회사의 입장과는 반대로 해체 이전으로 볼 여지가 있다. 통상적으로 팀 전체로서의 스카웃 제의는 팀으로써 유지가 되고 있을 때 행해지기 때문이다. 이미 공식적으로 해체 된 팀에게 해체 직후 전원 이적을 제의하는 것도 이상하고, 도의적인 측면이나 상업적으로 볼 때 비효율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강성훈, 은지원 듀엣 기사는 해체 당일인 5월 18일에 언론에 보도됐는데,[8] 그 시점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 듀엣제의는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 무엇보다 은지원, 강성훈 듀엣설은 DSP가 이를 언론에 공식화하기 전인 해체 이전 몇 달 전부터 있었다는 것도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한다.[9] 결론적으로 해체 이후에야 은지원과 강성훈의 의견을 수렴해서 듀엣결성 논의를 했다는 DSP의 입장은 신뢰하기 어려우며, 이는 DSP가 성난 팬들을 무마하기 위한 거짓말이 분명하다.
한편, 장수원 어머니는 DSP의 은지원, 강성훈 듀엣 기사가 나간 것에 대해 이호연이 독단적으로 행한 것이라고 하였다. 듀엣에 대해 어머니들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은지원, 강성훈이 듀엣제의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장수원의 증언에 의하면 해체 이후인 8월 경 장수원은 여전히 DSP에 잔류할 가능성도 있었고, 또한 2인조 젝스키스에 대한 문제 때문에 DSP의 추문에 대해 적극적으로 언급 할 수 없다고 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기영의 인터뷰에 의하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8월 경에도 DSP에 남아 음악 작업을 하고 있었으며, 이재진은 안무를 짜고 있었다.[10] 즉, 2000년 5월경 해체는 했지만, 강성훈, 은지원, 이재진, 김재덕은 회사에 남아있었고, 장수원은 DSP 잔류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나머지 멤버들이 최종적으로 DSP를 떠날 준비를 하고, 은지원과 강성훈도 멤버들과의 의리를 생각해서 최종적으로 듀엣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1년 뒤 은지원은 인터뷰(후술)에서 기자에게 회사에 불만이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는데, 나 혼자 살겠다고 회사에 남는 것은 배신아니냐는 반문을 하기도 했다.

3.4.2 반대 입장

이에 대한 반대입장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보자면, 위 입장은 "강성훈, 은지원 듀엣 기사는 해체 당일인 5월 18일에 언론에 보도됐는데, 그 시점 또한 지나치게 빠르다. 듀엣제의는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재진이 2016년 무한도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해체는 원래 4월달로 예정되어 있었다. 자기가 지방으로 잠적해버린 바람에 기자회견이 한달 미뤄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을 보면, 나머지 4명 멤버들은 듀엣제의 시점에 이미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미 해체가 결정된, 혹은 해체가 거의 확실시 된 상황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듀엣 제의는 해체 이전이 아니라 해체가 이미 거의 결정된 시점 혹은 해체 이후에 있었을 것이다.[11]

그리고 위 입장은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의 발언을 근거로 서술하며 DSP가 거짓말을 쳤다고 비판을 하는데, 2001년 강성훈의 인터뷰에서는 분명 은지원과 강성훈이 듀엣을 하려는 의지가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강성훈 생각에 솔로로 하면 부족할 것 같았는데, 은지원이 강성훈 의견과 같아서 함께 해보자고 듀엣 제안을 했다. 다만 각자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생겨 솔로 활동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의 발언은 좀 부정확한 면들이 보인다. 16년이나 지났으니 기억이 정확하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보인다. 예를 들어 고지용에 대한 발언을 봐도,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은 '고지용이 먼저 강성훈한테 가수를 하고 싶다고 진지하게 부탁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러나 고지용은 자서전에서나 인터뷰에서나 늘상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다고 언급해왔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에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즉, 강성훈의 말에서 '고지용이 가수를 하고 싶어했다' 라는 것은 먼저 가수를 하고 싶다고 자기 의견을 낸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강성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뒤 설득 끝에 승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3.4.3 팬들 입장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듀엣 논의가 하루 아침에 나오고 결정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듀엣 논의는 적어도 해체 이후인 8월 경에도 계속 되었으며, 7월 경에도 고지용과 장수원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DSP에 남아있었음이 확인된다.[12] 따라서 장수원이 언급한 듀엣 논의 시점에 나머지 멤버들이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은 적어도 8월 이후여야 한다.
팬들은 듀엣 제의 시점에 대해 라디오스타를 근거로 삼은 적 없으며, 라디오스타라는 글자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관계 왜곡은 지양하길 바란다. 본 입장이 일관되게 근거로 둔 것은 다음과 같다.
1. 듀엣 기사가 해체 당일인 5월 18에 보도된 것. 이는 듀엣 제의가 이미 해체 이전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정황증거가 된다. 상식적으로 해체한 당일에 듀엣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의문이다.
2. 그리고 이미 팬들 사이에서는 그 전부터 은지원 강성훈 듀엣설이 2000년 초부터 해체설과 더불어서 크게 퍼져있었다. 이것이 두 번째 정황증거이다.
3. 듀엣 기사는 이미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에도 젝스키스 5집은 은지원, 강성훈만이 참여한다는 내용이 텐텐클럽을 통해 알려졌다.[13]

따라서 듀엣 논의가 해체인 5월 18일 이후에야 있었다는 DSP의 공식 입장은 거짓말인 것이다.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에도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와 해체 당일에 듀엣 기사가 떴다는 것은 해체 이전에 듀엣 논의가 있었다는 것과 2000년 초에도 팬들 사이에서 듀엣에 대한 설들이 퍼졌다는 것이 정황증거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강성훈이 듀엣 의지가 있던 것이 본 듀엣제의 시점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수개월동안 은지원과 함께 듀엣 논의를 했는데,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 되려 이상하다. 듀엣제의를 받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긍정적인 의지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본 입장은 이를 부정한 적이 없다.

3.4.4 반대 입장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일단 사실관계에 대해서 보면, 위 입장은 4명이 계속 [DSP]에 남아있었다고 말하는데, 잡지 기사를 제대로 보면 김재덕과 이재진만 DSP에 남아있다고 했지 강성훈과 은지원이 DSP에 남아있다는 말은 없다. 그리고 7월에 김재덕과 이재진이 DSP에 남아있다는 사실 가지고, 이 둘이 DSP를 떠날 준비를 8월 이후에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이전부터 떠날 준비는 얼마든지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정황상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이재진은 4월달에 지방으로 잠적해버려 소속사의 해체 기자회견을 한달 미루는 사태를 만들기도 했는데, 그가 8월 이후에야 DSP를 떠날 준비를 했을까? 실제로 그 둘이 하고 있던 일은 안무 만들기 정도였다. 그 정도야 프로젝트 개념으로 소속사가 '이거 안무 만들면 얼마 줄게'라고 제안해, 그 둘이 응한 수준일 것이다. 애초에 이재진은 젝키 멤버들의 춤을 가르쳐주는 안무 선생님 같은 역할이었다. 그러다 김재덕과 은지원이 사장을 설득해 멤버로 뽑혔었다.

3.4.5 팬들 입장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다음과 같다. 8월에 한 김기영의 인터뷰에 따르면 은지원과 강성훈은 분명히 DSP에서 듀엣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그 이전의 언론에서도 이 둘은 DSP에서 듀엣준비를 하고 있었다. 7월 기사에서 구체적인 언급을 안 했다고 해서 없던 일이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해체 이후 김재덕은 DSP에서 프로듀서나 작곡가로 남겠다는 기사만 확인될 뿐 안무가로 남았다는 언급은 전무하다.[14] 김재덕이 안무가로 남았다는 것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또한 이재진은 김기영의 인터뷰나 언론에 의하면 분명히 직원으로 남았다. 프로젝트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반대입장은 폭넓은 자료를 찾지 않고 자신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맞추어 자의적인 추측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있는데, 확실한 팩트는 다음과 같다.
은지원, 이재진, 강성훈은 DSP에 적어도 8월경까지, 김재덕은 7월경까지 남았으며 듀엣논의는 수개월 동안 있었다. 결국 라디오스타에서 장수원의 언급이 언급한 나머지 멤버들이 떠날 준비를 한 시점은 은지원, 강성훈 듀엣 논의 시점으로 적어도 이재진과 김재덕이 직원으로 남아있던 7, 8월 이후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3.4.6 반대 입장

폭넓은 자료를 찾지 않고 자신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맞추어 자의적인 추측에 의존하는 경향은 팬들 입장에 있다고 보인다. 당장 강성훈의 2001년 인터뷰 자료가 중요한데도, 이를 빼놓고 다른 자료에 추측을 더해 결론을 내렸다.

위 반대입장에서 링크를 걸어 근거로 들은 기사의 문구가 다음의 것이다. 이 문구만 봐서는 강성훈과 은지원이 회사에 남아있다고 볼 수가 없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좀 더 정확한 근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소속사와 면담을 갖고 ‘발전적인 해체’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룹에서 안무를 맡아온 이재진(21)과 김재덕(21)은 계속 DSP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남아 후배들을 양성할 예정이며, 올 초 미국 비자를 받은 고지용은 유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장수원(20)은 좀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진로를 결정하기로 했다.또한 강성훈(20)과 리더 은지원(22)은 본인들의 의사에 따라 가수와 프로듀서 활동을 병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머지 안무가라든지 프로젝트 등의 말을 한 것은, 전술했듯이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당연히 반론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옳다고 끝까지 주장할 생각은 없다.

지금 위에서 서술한 것은 "7월에 김재덕과 이재진이 DSP에 남아있다는 사실 가지고, 이 둘이 DSP를 떠날 준비를 8월 이후에 했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라는 점이다. 이전부터 떠날 준비는 얼마든지 하고 있었을 수 있고, 실제로도 정황상 그렇게 보는 것이 근거없는 추측이 아니다. 이재진은 4월달에 지방으로 잠적해버려 소속사의 해체 기자회견을 한달 미루는 사태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그가 8월 이후에야 DSP를 떠날 준비를 했을까?

사실 멤버들이 8월달에 떠날 준비를 했는지 안했는지 여부는 부차적 문제고, 지금 논의의 핵심은 다음의 점이라고 보인다. 일부 팬들은 DSP의 듀엣 제의가 해체 결정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듀엣 제의 같은 DSP의 이간질 때문에 젝키가 해체된 것이지 멤버들 잘못은 없다는 논리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을 보면 DSP가 듀엣제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4명 멤버들이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 시점은 해체가 거의 결정되거나 혹은 결정된 이후 시점이다.

일부 팬들이 또 이걸 가지고 강제해체 당했다는 주장으로 이끌어가길래, 반대입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끝으로 팬들 입장은 위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은지원은 듀엣을 회사와의 합의라고 표현했는데, 무엇에 대한 합의인지는 정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해당방송의 문맥상 해체 관련한 합의일 가능성이 높다. 은지원은 훗날 계약서가 없는 게 더 무서웠다면서 DSP를 마음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회고하였는데(후술), 이 합의에 대한 부분으로 볼 여지가 있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건지 이해가 안간다. DSP가 못 나가게 막았으며, 해체를 하고 싶으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반드시 남으라고 협박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인가. 그러나 결과론으로 보면 강성훈과 은지원은 둘다 DSP에서 잘만 나왔으며, 솔로 활동도 jtL이 이수만의 방해를 받아 크게 문제가 된 것 같은 사건 없이 잘 하고 다녔다. 일부 팬들은 DSP랑 이호연이 막아대서 솔로 활동 성적이 안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전혀 근거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참조 바란다.

3.4.7 팬들 최종 입장

김기영이 8월에 은지원과 강성훈이 DSP에 남았다는 것은 이미 예전에 이 문서에 서술되어 있다. 반대입장은 본인이 찾아볼 노력도 이미 올려놓은 자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미 예전에 올려져 있는 자료이기 때문에 재차 언급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근거 요구나 섣부른 단정은 자신이 찾아볼 수 있는 선에서 찾아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논의에 앞서 자료수집과 확인은 기본이다. 2001년 강성훈의 듀엣 발언과 라디오스타의 은지원, 강성훈의 발언도 상충하는 부분은 전혀없다.
이전부터 계속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반대 입장이 계속 가장 필자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가지고 자꾸 과하게 추측한다는 것이다. 반대입장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정도면 피해의식 수준으로 의심이 될 지경이다. 필자는 DSP루머에 대해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거의 반론을 단 적이 없으며 오히려 1999년 은지원의 무릎부상이 이호연의 폭행이 아니라는 근거 기사까지 추가한 것이 그 반증인데, 이전부터 계속 필자가 하지도 않은 주장을 굳이 갖고 필자가 한 것마냥 거론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번에는 은지원의 회고에 대해 쓴 글에 일부 팬들 운운하면서 온갖 추측을 늘어놓았는데, 필자는 은지원이 DSP를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다, 계약서 없는 게 더 무서웠다는 회고에 대해서 무어라고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문맥과 흐름상 해체에 관한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다는 것 뿐 그 이상의 무리한 추측은 소설과 망상이 되므로 논의를 않는 것이다.정확히 알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반대입장은 괜히 자신이 겪은 팬들을 물타기로 삼아 논점을 흐리지 말고 필자와의 논의에만 충실하길 바란다. 그것은 지나친 경험의 맹종이다. 그리고 적어도 은지원은 DSP로부터 잘만 나간 것이 아니다. 은지원의 회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사천리로 나간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언급을 않는 것 뿐이다. 여기서 DSP루머 문서는 이 논의에 불필요한 문서이다. 필자는 이호연이 한 게 없다느니, 강제해체를 주장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물론 이러한 입장 표명을 굳이 그런 주장을 하지도 않은 필자가 해야 하는 의무와 당위성은 없지만, 반대입장이 자꾸 온갖 추측과 상상으로 필자를 재단하고 오해하므로 번거로움을 감수하며 밝힌다. 사실 반대입장의 이러한 경향은 필자를 대하는 태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이 보고 싶은 그림에 맞추어서 멤버들과 기획사의 심리 상태까지 상상하여 재단하는 경향이 지나치다. 부디 이러한 경향은 지양하고 팩트만을 갖고 발전적인 논의를 갖길 희망한다.

본 논의의 발제자로서 새로운 주요 논점 및 본인 입장을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다.

1. DSP의 듀엣제의 시점(해체 이후 혹은 해체 이전) 발언 진위여부
본 입장- 이미 2000년 초에 듀엣설이 해체설과 함께 퍼졌고, 2000년 4월에 라디오에서 기자에 의해 이것이 구체적으로 드러났고 2000년 5월 해체 당일에 듀엣 결정 기사가 보도 됐으므로 적어도 듀엣 결정은 해체 이전이어야 한다. 따라서 듀엣 결성이 해체 직후에 있었다는 DSP의 공식입장은 완전히 거짓이라는 것이다.

2. 듀엣제의를 어느 측이 먼저 했는지에 대한 여부
본 입장- DSP는 2000년 해체 이후 강성훈과 은지원의 의견을 수렴해서 듀엣 결성을 해서 2001년 초에 컴백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1년 1월 강성훈은 인터뷰에서 은지원의 제의로 듀엣 논의를 했으나 음악적 견해 갈등으로 불발됐다고 한다. 그러나 라디오스타에서 은지원과 강성훈은 DSP에서 먼저 회사에 남으라고 제의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DSP가 은지원과 강성훈은 회사에 남으라고 제의한 후 은지원이 강성훈에게 듀엣할 것을 제의 그리고 DSP는 이 둘의 의견을 수렴하여 2001년 초를 목표로 소위 2인조 젝스키스를 준비했으나, 최종적으로 불발.

3. 은지원, 강성훈 이외의 멤버들이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시점
본 입장- 라디오스타에서 장수원은 은지원, 강성훈이 DSP에 남기로 합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멤버들은 떠날 준비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작 당시의 기사들을 보면 김재덕은 7월경까지 DSP에 프로듀서를 할 계획으로 잔류하기로 한 것이 확인되나, 이 무렵 퇴사하고 부산으로 잠적한 것으로 보인다.[15] 그리고 장수원은 다른 멤버들과 달리 해체 직후의 다른 보도들에 의하면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고 한다. 다만, 스포츠서울 11월 21일자에서 보도한 젝스키스 근황에서 이재진이 DSP에 남은 것과 달리 김재덕과 장수원은 11월 경에는 학교를 다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보도에 의하면 장수원은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보도에 의하면 장수원은 10월 경 이미 학교를 다니면서 작곡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 인터뷰에는 DSP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다.[16] 다른 일반인 후기를 보면 김재덕과 장수원은 9월 경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17]

우선 해체 당일인 5월 18일 공식입장은 은지원, 강성훈 그리고 이재진과 김재덕을 포함한 4명이 남게 된 것이다.[18] 그리고 해체 기자회견 당시 젝스키스는 4명은 DSP에 남을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때 은지원은 듀엣 가능성이 있다고까지만 언급했다. [19] 2000년 초에 DSP가 은지원과 강성훈에게만 잔류를 제의한 것은 사실로 보이며, 이후 어떠한 과정을 통해 5월 18일 이전에 이재진과 김재덕도 잔류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위를 토대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은지원- 10월 13일 G프로덕션을 설립한 것[20]으로 보아 적어도 9월 말경에는 DSP를 퇴사한 것으로 보인다.

김재덕- 이미 해체 이전인 2000년 4월무렵은 물론 해체 당일인 5월 18일의 보도와 기자회견, 7월 무렵까지 DSP에 프로듀서를 할 계획으로 잔류했었으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부산에 잠적한 것이 확인되므로 7월 중순 이전에 DSP를 퇴사한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9월 경 김재덕은 장수원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이후 2000년 말에 김재덕은 장우혁과 만나 맥주를 마시면서 사업에 대한 조언을 얻은 것이 확인된다.

이재진- DSP에 11월 말경까지 직원으로 남았음이 확인된다. 이재진이 4월에 잠적을 했다고 해서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야 말로 논리적 비약이다. 그렇게 볼 근거는 전무하다. 오로지 추측일 뿐이다.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입장은 변할 수 있다. 결국 가장 오랜 시간 동안 DSP에 잔류한 멤버는 이재진이다.

강성훈- 11월 7일에 워너뮤직과의 계약성사가 보도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DSP를 퇴사한 것으로 보이는데, 라디오스타의 발언으로 보아 은지원과 합의하여 동반퇴사한 것으로 보인다.

장수원- 9월경에 김재덕과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10월경에는 작곡공부를 하고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김재덕은 7월경, 은지원과 강성훈은 9, 10월경, 이재진은 11월에 DSP를 퇴사하였다.

해체 기자회견에 이미 DSP에 남을 것을 밝힌 김재덕과 이재진이 반대입장처럼 해체 당시부터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고 보기 어려우며, 특히 이재진은 DSP에서의 활동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당시 은지원, 김재덕, 이재진, 강성훈, 장수원 모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이 초지일관적이지 않고,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각자가 DSP를 떠난 시점도 다르다. 라디오스타에서의 장수원 발언은 사실 굉장히 모호하고 정작 본인은 DSP에 잔류하지 않았고, 오히려 잔류할 여지를 남겨둔 멤버로 어폐까 있는 것이 사실이며, 강성훈의 거절 과정도 모호하다. 이는 당시의 복잡했던 상황을 함축적으로 현재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위의 상황들을 보았을 때 장수원이 말한 떠날 준비 시점은 본인이 DSP에 잔류여지가 있던 8월 이후로 보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이다.

3.4.8 반대 입장

위 입장은 "본인이 찾아볼 노력도 하지 않고 이미 올려놓은 자료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이며, 논의에 앞서 자료수집과 확인은 기본"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이 그 말 그대로 팬들 입장에게 하고 싶은 상황이다. 팬들 입장은 위 잡지 기사가 2000년 8월에 나왔음을 근거로 8월에 은지원과 강성훈이 DSP에 남았다고 말하고 있다. 8월달 잡지 기사라는 이유만으로 7~8월달 상황이라고 단정했다. 그러나 해당 잡지 기사의 제목은 "6Kies 소문 실체 대특집 완결판! 은퇴전 '극비10일"이다. 은퇴날짜는 5월달이다. 내용을 봐도 7~8월달의 상황은 아니다. 왜 8월달에 되서야 이 인터뷰를 실었나 찾아봤더니, 8월달에 창간된 잡지였다.# 이전 달에 실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반대 입장이 위 2000년 8월 인터뷰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위 입장은 "듀엣논의는 우선 그 둘이 남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므로 순서상 잔류제의와 듀엣논의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고 있는데, 논리적인 근거가 빈약하다. 2001년 인터뷰만 보면 은지원이 강성훈에게 듀엣제의를 했다. 듀엣논의 후에 잔류제의가 있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팬들 입장은 반대 입장을 추측일 뿐이라고 몰아세우는데, 물론 추측이 맞다. 당사자가 아니고 자료가 부족한 이상 추측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팬들 입장은 자기들이 추측한 것은 팩트라고 확정하니 문제를 삼은 것이다. 99년부터 다들 소속사와 불화가 있었는데, 2000년 8월 이후에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 팩트라고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 떠날 준비는 몇달 전부터 하고 있었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전술했다시피 이런 논의는 부차적인 문제다. 다시 말하자면, 일부 팬들은 DSP의 듀엣 제의가 해체 결정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며, 이런 듀엣 제의 같은 DSP의 이간질 때문에 젝키가 해체된 것이지 멤버들 잘못은 없다는 논리로 이끌어간다. 그러나 2016년 라디오스타 발언을 보면 DSP가 듀엣제의를 한 시점에 나머지 4명 멤버들이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하며, 그 시점은 해체가 거의 결정되거나 혹은 결정된 이후 시점이다. 일부 팬들이 또 이걸 가지고 강제해체 당했다는 주장으로 이끌어가길래, 반대입장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위 입장의 필자는 피해의식 수준이 의심될 지경이라고 말한다. 위 필자가 루머가 사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데, 피해의식 같은 소리 들었다고 이쪽에서 발끈할 생각은 없다. 애초에 젝스키스 나무위키 항목이 이렇게 방대해진 계기가, 팬들이 유포하는 과거 내용 중 허위사실이 많길래 필자가 근거를 찾아 반박한데 있다. 그쪽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인상을 받아 한 말이다.

위에서 언급한 논점에 대해서 쓰자면
1. DSP의 듀엣제의 시점(해체 이후 혹은 해체 이전) 발언 진위여부: DSP가 듀엣 제의를 한 시점은 소속사 내부에서 해체가 결정된 이후, 혹은 이후가 아니더라도 이미 해체가 거의 결정난 것과 다름없는 시점이다.

2. 은지원, 강성훈 이외의 멤버들이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시점: DSP를 떠날 준비를 한 시점은 7~8월보다 몇달 전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위 팬들 입장은 7~8월이라고 확실시하며 주장하는데, 99년부터 멤버들이 DSP와 불화가 있었던 점 등의 정황을 봤을 때 그렇게 확실시 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은 부차적인 문제이니 그쪽 입장을 설득할 생각은 별로 없다.

3.4.9 팬들 입장

은지원과 강성훈이 잔류했다는 기사는 찾아보면 더 많다. 반대 입장은 99년부터 다들 소속사와 불화가 있었는데, 2000년 8월 이후에 DSP를 떠날 준비를 했다는 것이 팩트라고 어떻게 확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으나, 본 입장은 이를 팩트라고 확정한 적 없다. 다만, 여러 메체에서 보도된 바 있는 멤버들의 동향으로 보아 7, 8월 이후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을 뿐이다. 사실관계 규명 사안에서 심리상태까지 추측하여 해당 사건의 성격을 단정짓는 행위는 추측의 범주를 벗어난 상상의 영역이다. 알 수 없는 부분 특히 당사자가 아닌 이상에야 인간의 심리상태 같은 경우 함부로 추측하고, 단정하는 것은 매우 섣부르고 위험하다. 보여지는 자료에 한해서 논하는 게 합리적이기에 이를 권장하는 것이다. 필자 역시 여러 매체(멤버들의 발언과 보도 등)에 의거해서만 추측할 뿐 어떤 사안이나 심리 상태를 추측하여 이를 팩트라고 단정한 적은 없다.(필자가 즐겨 사용하는 타당하다, 합리적이다, 보인다는 단정의 표현이 아닌 견해로서의 표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4 멤버들이 직접 해체이유에 대해 발언한 것들

시간이 흐른 뒤 각종 방송에서 멤버들이 해체에 대해 스스로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팬들 일부는 아래 발언들을 부정하며 이호연DSP가 뒤에서 억압해 강제로 내뱉는 거라 하는데, 신빙성이 없는 말이다. 애초에 이호연은 뇌졸중으로 2010년 이래 계속 거동이 불가능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다. 이호연이 쓰러진 뒤 아내가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기존 직원들이 대거 쫓겨나거나 나갔다. 그래서 현 DSP에 젝키 시절 직원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DSP는 오늘 내일 하는 암울한 처지인데, 그 정도 권력이 있을리 만무하다.

4.1 은지원

젝스키스의 리더였기도 하고, 해체 이후 가장 방송활동이 활발했던 만큼 해체에 대해 언급한 바도 제일 많다. 시간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2001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해체될 즈음 기획사에 불만이 많았던 건 사실이에요. 원하는 음악을 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생활에 지친 거죠. 어차피 젝키로 영원히 갈 수는 없었고, 인기 절정에서 헤어지자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솔직히 해체 때만큼은 HOT 뒤를 따라가고 싶지 않았거든요. 기획사 역시 같은 생각이었겠죠."

"기획사에 대한 불만이 직접적인 원인이 됐지만 어찌됐건 젝키는 멤버와 기획사가 합의해서 해체됐어요. 하지만 HOT는 다르잖아요. 계속하겠다는 멤버들의 의지가 강하고 아직 상품성도 있다고 봐요. 지난 2월 콘서트 때 몰려든 팬들 보세요. 4만명의 팬들이 잠실주경기장을 꽉 메웠는데 그들의 힘을 간과해선 안되죠. HOT는 그대로 남아줬으면 합니다."

해체설이 나도는 HOT의 강타, 문희준이 같은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서 솔로로 나설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과 달리 은지원은 전 기획사와 거래를 끊었다. 대신 자비를 들여 새 기획사 G프로덕션을 차렸다. “기획사에 대한 불만이 해체의 이유였는데 혼자 살겠다고 옛 기획사와 손을 잡는 건 배신 아니냐”는 반문이다. 곱상한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의리 빼면 시체”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2001년 3월 22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2008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당시 젝스키스의 음악이 자기가 하고 싶던 음악이 아니어서 힘들었었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젝스키스로 데뷔했잖아요.(이)

= 전부 H.O.T 때문이에요.

▲무슨 말이죠.(김)
= 하와이에서 함께 온 (강)성훈이 하고 데뷔를 준비했어요. 그런데 H.O.T가 인기를 모으면서 제 모든 계획은 무너졌죠. 4명을 추가해서 젝스키스로 데뷔했으니까요. 그렇다고 H.O.T가 밉진 않아요. 사실 전 요즘도 '젝스키스' 멤버들 보다 H.O.T 생각이 더 나요. 요즘도 (문)희준이를 보면 '짠한' 마음이 들어요. 동병상련이랄까요.

▲젝스키스 활동이 싫었겠어요.(이)
= 제 의견을 정말 (손가락 마디를 보이며) 요만큼도 안 냈어요. 어차피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아니었으니까요. 단 1%도 안 보여드렸죠. 솔직히 거부하기에는 판이 너무 커졌죠. 젝스키스가 그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젝스키스' 멤버 중에 혼자서 활동하면서 구심점이 되고 있어요.(김)
= 처음에는 팬들이 절 얼마나 욕했는데요. 저 때문에 '젝스키스'가 해체됐다고 믿고 계세요. 다들 재결합 하기를 원했는데 그것도 제가 막았다는 얘기도 나왔죠. 당시 멤버들 의견이 통일이 안됐어요. 아쉽죠. 그래도 지금은 추억으로 남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다시 나왔다가 잘 안되면 가지고 있던 추억도 없어지는 거잖아요.


2008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08년 9월 1일 방송된 놀러와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은지원은 이내 “과연 언제까지 젝키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서로 생각했다”며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는 말로 해체 이유를 밝혔다. 젝키의 해체는 아이돌 그룹의 현실이었고 한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던 셈.

뉴스엔미디어 기사 내용 중

2011년 1월 22일 방송된 KBS 2TV '백점만점'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젝스키스 활동 당시 리더인 내가 먼저 팀을 해체하자고 말을 꺼냈다"며 "대중들과 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으며 박수를 받고 있을 때 떠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른 멤버들 또한 같은 생각이었지만 말을 꺼내기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 리더인 내가 총대를 메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은지원은 "서로 잘 되기 위해 해체를 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젝스키스 은퇴 무대에서 눈물 흘리는 팬들을 보며 더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 팬들마저 없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해체를 결심했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했다.

2011년 2월 28일 방송된 밤이면 밤마다에서는 계약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은지원은 "젝스키스는 계약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계약이 있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고 말해 출연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은지원은 중간 탈퇴하면 쓴 돈을 내고 나가야 했냐는 질문에 "계약이 없으니 그럴 이유도 없었다"며 "언제든지 나가도 되지만 나갈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탁재훈은 "문을 열어놓고 밖에서 저격수가 기다리고 있었던 거 아니냐"고 농담을 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티비리포트 기사 내용 중

2012년 2월 28일 승승장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젠가는 우리가 헤어져야 될때가 온다. 하지만 인기가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해체하는 것 보다는 최고로 잘되고 있을때 그만두자'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멤버들과 상의해보니 전원 동의를 해서 일이 그렇게 진행됐다고 한다. 누구 한명이라도 반대를 했으면 해체를 안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3월 29일 땡큐에서는 해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오상진 아나운서의 계약서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상진은 “회사를 나오면서 여러 곳과 접촉이 있었다”며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만난 지금의 소속사가 운명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적으로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계약금은 없지만 오히려 믿음이 갔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는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도 결혼도 해야하고 집도 마련해야하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믿음으로 구두계약을 했고, 계약서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함께 출연한 은지원은 “나랑 똑같은 경우다. 젝스키스 활동 당시 계약서가 없었다. 혹시 모르니까 좋은 출발 위해 계약서는 써라”고 조언했다. 이같은 말에 오상진은 “사람과의 신뢰로 이뤄진 곳에 동료로 들어가게 됐지만, 계약서는 써야 될 것 같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일보 기사 내용 중

2013년 4월 30일 QTV 20세기 미소년에서 해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정산 금액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만 2억 보다 더 벌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른 멤버의 발언이 존재하기는 한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 참조 바람.

은지원은, 자기는 젝키 활동 당시 오히려 돈을 많이 썼다며, 그때 막 철없고 연예인병도 있어서 말도 안되는 명품을 사곤 했다고 한다. 이에 토니안이 "내가 알기로 얘네 수입 괜찮았다"고 말하자, 은지원은 "해체까지 다해서 한명당 2억씩 벌었을걸?"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멤버 당 2억씩이라 치면 회사에서 12억을 준거니까, 우리는 되게 많이 벌은 줄 알았다."고 말했다.

2013년 4월 30일 QTV 20세기 미소년 3화에서

2013년 12월 10일 방송된 미소년 통신 은희상담소에서 은지원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장수원: 그쪽(소속사)에서 저희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은지원: 참 직설적이야. 그게 아니라 우리는 재계약이고 뭐고를 떠나서, 해체하자라고 이야기 했어.
장수원: 그쪽(소속사)에서 강제로 (해체를) 시킨 것은 아니에요. 저희끼리 생각이 있었던 것을 그렇게 한거지, 그쪽에서 '해체해'라고 하진 않았어요.
은지원: 근데 나는 회사 책임도 있다고 봐. 지금에서야 10만장 나가면 대박이라는데, 4집 50만장 나갔다고 "망했어" 이러면 누가 하고 싶겠어. 나는 김 빠지는거지. 그러면서 "더 망가지 전에 빨리 박수칠 때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거지. 그래서 (멤버들에게) 얘기를 해보고 또 그 얘기에 동의를 해서 진행이 됐던 것 같아.


2013년 12월 11일 QTV 미소년 통신 은희상담소에서

2016년 4월 16일 무한도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회사에 불만이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음반 판매량이 옛날보다 좀 덜 나왔을 때 너네 망했어, 망했어 근데 그게 망한 수치가 50만 장이고.. 너무 화가나더라고요. 그럼.. 뭐.. 끝났다는데, 해체하자. 뭐 이렇게 해서 좀 욱한 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

2016년 6월 1일 라디오스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회사의 직접적인 사장님(이호연)과의 관계가 아니라 저희랑 가깝게 붙어있는 매니저와의 사이가 굉장히 안 좋았던 기억이 나요."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4.2 김재덕

2013년 3월 13일 라디오스타에서 김재덕이 밝힌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MC가 “해체는 멤버들이 원했다. 특히 재덕이와 지용이가 주장했다.”는 담당 매니저의 2000년도 인터뷰에 대해 김재덕에게 물었다. 이에 대해 김재덕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자신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며 “가족이었고 영원할 줄 알았다. 해체한다고 했을 때 많이 울었고 끝까지 반대를 주장했다.”고 말해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하지만 각자 음악색깔이 다르다 보니 하고 싶었던 음악이 달라서 해체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편 이 날 방송에서 그동안 소문으로 돌던 멤버간 빈부격차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다. 강성훈, 고지용, 은지원이 잘 살았고 명품을 애용했긴 하지만, 그래도 딱히 괴리감은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저희가 좀 배고팠으면 해체를 안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한다”고 말하며 “배고팠으면 더 끈끈하지 않았을까 한다”고 이야기했다.

2013년 6월 11일 20세기 미소년에서 김재덕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바 있다.

김재덕은 은지원에게 "형, 사실은 우리 때가 지금 때 같았으면 해체하지 않고 각자의 음악 스타일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그 시대가 그게 아니었잖아. 무조건 함께였잖아. 함께가 아니면 안되는 시기였으니까. 그러니까 좀 아쉽지. 그때 해체하지 않고 원하는 음악들을 할 수 있었더라면 참 좋았을거란 생각이 들어."라고 말했고, 은지원은 "그러니까 진짜 그게 안되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답했다.

2013년 12월 11일, QTV 미소년 통신 은희상담소에서 계약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DSP 후배 김재경이 정말 계약서를 쓰지 않고 활동했냐는 질문을 하자, 김재덕은 “계약서가 없었다. 주는 만큼 믿고 받았다”고 인정했다. 이에 대해 김재경은 “근데 왜 재계약을 안 하셨냐”고 반문했다.해당영상

2015년 1월 27일 택시에 출연했을 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김재덕은 “저는 그때 반대했다. 정말 많이 반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반대하긴 했지만 회사 사람들도 있고 멤버들도 있으니 그 의견이 그렇게 전해지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장수원은 '형은 해체랑 동시에 부산으로 내려가야 되니까 그렇게 반대했겠지'라고 대꾸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재덕은 이에 대해 “아니다. 그때는 우리가 평생 함께 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반대했지만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2016년 4월 16일 무한도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는 사실 계속 (해체를) 반대를 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때 당시 저희가 활동도 같이 했지만, 스무 살, 스물 한 살 한창 놀 때잖아요. 게임도 같이 하고, 놀기도 같이 놀고 항상 거의 뭐 가족보다 더 친하게 지냈었는데, 이게 한 순간에 갑자기 없어지는 거잖아요. 헤어지는 거잖아요, 일종의..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고 했을 때는 제 스스로 조금 그때 당시에는 못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

4.3 이재진

2005년 엠넷의 한 방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래 '중략' 부분과 '후략' 부분이 편집되어 말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데, 다른 멤버들의 발언과 맞추어 봤을 때 해체를 하자는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좀 많은데 나한테는.. 가깝게는 우리가 해체했을 때.. 원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해체가 아니었고, 회사와의 결별이었는데 회사에서 해체를 시켜버린 거지.[21] 도망갔지. 그때 그냥 끝까지 도망갈 걸..(중략) 또 나는 이제 그 다른 친구들 이제 그 의견들을 되게 많이 들어주는 편이고..하도 그러니까.. 확고하니까..나도 어쩔 수 없이.. (후략)

2005년 엠넷의 한 프로그램 에서

2016년 4월 16일 무한도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재진의 잠적 때문에 해체가 한달 미뤄졌다는 사실은, 여태까지 멤버들 조차 모르고 있어 매우 놀라워했다.

제가 알기로는 해체를 하기로 한 날짜가 원래는 4월이었어요. 근데 제가 도망갔었어요. (해체를) 하기 싫어가지고.. 저 때문에 좀 연기가 됐었어요. 잠수 탄 거.. 그렇게까지 반대를 했었어요. 제가..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

2016년 4월 23일 무한도전에서는 부모님이 심하게 반대하셨다는 점을 밝혔다. 전술한 부모님의 인터뷰에서 " 해체 얘기는 작년 연말부터 나왔어요. 그때 엄마들끼리 모여서 사장님한테 '해체 하려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라' 고 얘기하곤 했어요. 애들이 인기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으니까요."라고 말한 것과 완전 상반되는 내용이다. 부모님들 입장도 갈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재진은 "두 분 다 돌아가신지는 꽤 됐다"며 "2005년에 아버지 돌아가셨고, 2008년에는 어머니도 돌아가셨다"고 털어놨다. 또 그는 "젝스키스 은퇴했을 때 많이 원망하셨었다. 부산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며 씁쓸해했다.

2016년 4월 23일 MBC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의 위 발언은 앞에 서술된 다른 다수의 멤버들의 강제로 해체당한 것은 아니라는 발언과는 상반되는 내용이어서, 이재진이 거짓말을 한 꼴이 된다. 그러나 해당 방송을 정확히 보면 이재진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엠넷이 중간을 편집해 왜곡했음을 알 수 있다. 이날 방송을 정확히 보면, 해체 대한 내용 이후 이재진은 분명 "또 나는 다른 친구들 의견을 되게 존중하는 편이고, 하도 그러니까, 확고하니까, 어쩔 수 없이" 라고 말하는데, 앞 뒤 부분을 잘라버려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위 발언이 그냥 확 지나가버린다. 위 발언은 해체를 하자는 멤버들의 의견을 말한 것으로 보인다. 이재진은 분명 해체 당시 상황을 허심탄회하게 말했는데, 엠넷 측에서 자극적 방송을 위해 나머지 발언을 그냥 편집해버린 것으로 여겨진다.

결국 다른 멤버의 발언과 이재진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해체에 대한 의견이 갈린 와중에 이재진은 해체에 대해 완강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 점은 2016년 무한도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재진은 해체를 막기 위해 지방으로 도망쳐서 잠수를 탔다고 밝혔고, 그 때문에 해체 예정일이 한달 넘게 미뤄졌음을 고백했다. 멤버들은 이 사실을 이날 방송을 통해 알게되어 매우 놀라워했다. 이재진과 다른 멤버 의견이 갈린 점은 2016년 10월 17일 일간스포츠 인터뷰에서도 다시 확인됐다.#

4.4 강성훈

2000년 해체 직후 마지막 음성사서함 메세지에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안녕하세요. 젝스키스 강성훈입니다.. 여러분 소식 듣고 저희 6명 모두가 마음이 아파서... 성훈이가 대표로 여러분께 메세지를 띄웁니다.

우선적으로, 갑작스럽게 해체 선언을 하게 된 점에서 정말 죄송스럽구요. 저희 6명의 마음은 모두 그래요... 저희가 젝키라는 그룹 이름으로 여러분들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점에 조금 더 나은 모습의 변신을 위해서 이렇게 활동을 마감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4집까지 활동하면서 여러분의 사랑에 정말 감사드리구요... 앞으로 저희 6명 모두가 좋은 모습으로 자기 생활에 충실할 것을 오늘 여러분께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우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저희가 이렇게 메세지를 남기는데 좀 걱정이 되는데요... 조금만 더 여러분들이 저희 모두를 이해해주셨으면 좋겠구요...

아직 저희가 드릴 선물이 하나 남아 있어요. 젝키로서는... 마지막이 될 것 같은데.. 20일 드림콘서트에서 여러분들과 만나길 바램이예요... 잠실주경기장에서.. 저희 모두가 여러분들과 만나고 싶어서 합의하에 꼭 한번 하자고 매니저 분께 말씀드렸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일정이 잡히게 됐습니다. 그날 우리 서로 만나서... 좋은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정말 죄송스럽구요.. 여러분의 행복과 좋은 나날이 가득하길 6명 모두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주셨던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게요... 감사합니다.


2000년 해체 직후 마지막 음성사서함 메세지

2001년 솔로 활동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은 인터뷰를 하였다.

각자 더욱 좋은 생활을 하기 위한 ‘발전적인 해체’ 였지만 막상 마음이 그렇질 않더라구요.

(솔로활동은 언제부터 추진됐는지라는 질문에)음… <젝키> 활동 내내 생각을 많이 했죠. <젝키>만의 음악 색깔은 있었지만 멤버 개개인이 다 추구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으니깐요. 진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스페셜 앨범 내면서 솔로 활동에 대해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됐구요. 어떤 구성이면 <젝키> 팬과 대중성을 동시에 안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었죠. 하지만 해체 당시는 가수 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을 확고히 갖고 있진 않았어요. 오히려 음악 생활을 안 할 수도 있었거든요. 근데 해체 이후 힘든 생활을 하면서 음악 욕심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여러 곳에서 제의가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활동에 대해 알아봤죠.

2001년 인터뷰에서

2015년 1월 30일 러빙핸즈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팬들은 (이호연을) 안 좋아하지만 DSP사장님이 젝키를 위해서 많은 일은 하신 건 맞아.. 마지막에 안 좋게 끝나서 그렇지..

2015년 1월 30일 러빙핸즈에서

2015년 5월 19일 EBS 리얼극장에서는 해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레이션: 팬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훈씨는 해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 강성훈: 정상에 있을 때 해체를 하자고 멤버들하고 최종적으로 좋게 합의가 되었었어요. 근데 그 당시 '쟤네 해체했잖아' 이 말 듣는게 너무 두려웠던 것 같아요. '더 이상 젝키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누군가로부터 듣는 것이 버틸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해당영상 12분10초부터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정도일때 쯤에 해체를 해야지, 그래도 어떻게 보면 팬들한테 더 실망을 안 주는 격이 될 수도 있겠구나. 정상에 있을 때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이 좀 더 잡혔던 것 같아요.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핑클과의 차별을) 많이 느꼈죠. 솔직히.. 그때는..

(김구라의 '나갈 때 순순히 놔줬어요?'라는 질문에)저희는 계약서가 없었어요. 서면 계약이 없었어요. 그냥 구두계약..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

2016년 6월 25일 부산 팬미팅- 2000년 2월 28일 콘서트에 부른 솔로곡 약속은 해체할 것을 알고서 만든 곡이라고 하였다. 이는 이미 2000년 콘서트 이전에 해체가 기정 사실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1999년 연말시상식 즈음에 본격적인 해체 이야기가 대두되었다는 부모님의 증언과도 부합한다. 그러나 DSP는 해체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인 1999년 말에 DSF 4기를 모집하였다. 물론 해체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것이지, 해체가 확정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말로 창렬한 행동이었다고 볼 수는 있다. 해체 이후 팬들은 DSP의 비리라며 투서를 보냈고, 그 내용에는 탈세 목적의 음반판매량 축소, 팬클럽비 유용 등이 담겨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상호 기자가 취재해 방송을 내보냈고, 결국 DSP 이호연 사장은 경찰조사를 받게된다. 다만 무혐의처분이 나왔다. 팬클럽비 유용의 경우 창렬하다고 볼 수는 있어도 사법처리 될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이상호 기자의 말에 따르면 탈세와 관련해선 나중에 수억원을 추징당했다고 한다.

4.5 장수원

2013년 12월 11일 QTV 미소년 통신 은희상담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쪽(소속사)에서 저희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쪽(소속사)에서 강제로 (해체를) 시킨 것은 아니에요. 저희끼리 생각이 있었던 것을 그렇게 한거지, 그쪽에서 '해체해'라고 하진 않았어요."

2013년 12월 11일 QTV 미소년 통신 은희상담소에서

2014년 1월 7일 방송된 비틀즈코드3D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회사에서 해고당한건 아니고 멤버들 간 하고 싶은 음악적 색깔이 맞지 않고 회사랑 갈등도 있어서 해체했다."

2015년 1월 24일 방송된 세바퀴에서는 해체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99년도 말이 해체 이야기가 오고가던 타이밍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멤버들이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장르가 달랐던 점이다. 회사와 약간의 트러블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약간의 빈부격차도 있었던 것 같다.[22]

2015년 1월 27일 택시에 출연했을 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수원은 해체를 썩 받아들이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다들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어서 자기가 나선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런 장수원의 말을 듣고 김재덕은 '얘는 관심이 없다'고, 강성훈은 분위기 맞춤형이었다고 회상했다.

2016년 4월 16일 무한도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당시에 뭐 그렇게 해체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2016년 4월 16일 MBC 무한도전에서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저희가 생각했을 때는 저희에 대한 회사의 관심과 사랑이 좀 약간 핑클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나.. 그런 것도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2016년 6월 1일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에서

4.6 고지용

(단독 인터뷰)젝키 고지용, 해체 관련 말문 열어!

젝스키스 고지용 군과 함께 그룹 해체와 관련된 자신의 생각과 항간에 떠도는 음반에 관한 질문을 나누었습니다. 다음은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스타이야기) 젝스키스 해체는 사실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습니다. 언제 이 결정을 내렸으며 재결합 가능성은 없는가...
(고지용) 사실상 4집을 시작하면서 결정을 내렸다. 우리 멤버 전원이 4집까지 오면서 음악적 한계에 부딪혔었다. 힘들었었다. 누가 들으면 배부른 소리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나름대로 우리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소망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멤버 중에는 가수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다. 다만 시기를 놓고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멤버들끼리 다시 합칠 가능성은 미안하지만 없다.

(스타이야기) 중간에 베스트음반과 5집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고지용) 그런 것에 대해 모른다. 우리가 알기로는 우리의 해체사실이 중간에 모 언론을 통해 퍼져 나가면서 이를 무마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베스트 앨범은 나올수 있겠지만 5집 이야기는 우리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없었다.


2000년도 인터뷰##

5 불화설

일각에서는 멤버간의 불화설이 원인으로 대두되었으나 무한도전이나 기타 방송에서 멤버들이 이야기한 것을 종합해보면, 항상 6명이 몰려 다니며 재미있게 놀았다, 다른 팀에 비하면 우리는 사이좋게 지냈다는 등, 멤버들 사이에 있었던 불화라고 얘기하는 거라곤 슈퍼맨배트맨 중 누가 더 강한지, 혹은 음식으로 다툰 수준이 전부다. 즉, 싸워도 친한 친구끼리 장난식으로 티격태격한 수준이였으며 대부분은 별 시덥잖은 이유가 원인이였다는 의미. 당연히 금새 화해했다고 한다. 게다가 해체 후에도 꾸준히 교류하고 활동을 지원하는 등 사이가 좋다.

젝스키스의 해체는 소속사와의 마찰, 정상에 있을 때 멋지게 끝내고 싶은 마음 등이 작용해 해체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4집 활동이 끝날 당시 멤버들이 DSP를 나와 당시 힙합 전문인 모 기획사로 소속사를 옮기려고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고 16년이 흐른 후 그 소문은 현실이 되었다. 응??? 그런데 카더라에 의하면 당시 컨택했던 힙합 전문 기획사가 바로 현 YG였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YG의 위상이 이 정도로 높지는 않았던 시절이다. 원래 해체 전에 젝키 한마당이라는 콘서트를 준비중이라고 하거나 핑클과의 합동 공연에 대한 소문이 도는등, 나름의 스케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던 듯하다. 그런점에서 보아 해체 결정은 꽤 급박하게 이뤄졌던 듯.

은지원은 2001년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그룹활동은 젝키 친구들이 다시 모이는 것 말고는 상상할 수 없다고 단언하기도 했다.인터뷰

장수원은 2015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Q. 젝스키스 활동이 그립나?

A. 물론이다. 그때 인기가 그립다기 보다는 그 시절, 여섯 명이 함께였던 때가 그립다. 물론 당시에 스케줄도 정말 많고 바빴지만, 차안에서 멤버들끼리 수다 떨면서 스케줄 하러 갔던 게 꼭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놀면서 일하는 기분이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정말 재밌었다.


2015년 1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6 최종 정리

6.1 각자의 입장 요약

  • 은지원
    • 회사와의 갈등 및 불만(이호연이 아니라 김기영). 하고 싶던 음악적 방향이 젝스키스 음악과 달랐음. 회사가 4집이 망했다는 소리를 하자 욱하는 마음에 해체한 면이 큼. 정상에 있을 때 박수받으며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해체를 제안함.
  • 강성훈
    • 이호연 사장님이 젝키를 위해서 많은 일은 하신 건 맞지만, 마지막엔 안 좋게 끝났음. 정상에 있을 때 해체해야지 실망을 안 주는 격이 된다고 판단함. 정상에 있을 때 해체를 하자고 멤버들하고 최종적으로 좋게 합의가 되었음.
  • 이재진
    • 회사와의 결별을 원했으나, 회사가 강제 해체시킴(그리고 해체 의향의 멤버들 의견도 확고). 원래 해체는 2000년 4월 예정이었으나, 이재진 본인이 도주하는 바람에 5월로 미뤄짐. 그 정도로 해체를 완강하게 반대함.
  • 김재덕
    • 해체에 반대함. 하지만 회사 사람들도 있고 멤버들도 있으니 그 의견이 그렇게 전해지진 않았다고 밝힘. 이재진과 달리 해체로 결론이 나자 수긍하고 따름.
  • 장수원
    • 속마음은 해체를 하고 싶진 않았음. 다만, 다들 그런 분위기로 가고 있어서 자기가 나선다고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았음. 회사와의 갈등(핑클로 관심이 옮겨짐)과 음악적 성향 차이 문제도 있었음. 회사가 강제로 해체시킨 것은 아님.
  • 고지용
    • 우리 멤버 전원이 4집까지 오면서 음악적 한계에 부딪혔고 힘들었음. 그런 상황에서 비슷한 음악을 계속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었음. 멤버 중에는 가수보다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사람도 있었음.
  • 장수원 어머니
    • 사장(이호연)이 모멤버가 활동을 원치 않았다고 부모들에게 직접 만나서 전달함. 소속사는 젝스키스가 미련과 의욕이 없다고 전달. 스케줄이 과했으며, 수익이 적었음.
    • 해체 얘기는 99년 연말부터 나왔음. 그때 어머니들끼리 모여서 사장한테 '해체 하려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라' 고 얘기함. 애들이 인기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음.(반면 다른 어미니들과 달리, 이재진 어머니는 해체를 완강하게 반대함)
  • 이호연
    • 멤버들과 부모님들과의 합의 하에 해체, 해체 과정에서 일부 멤버들과 감정적 대립. 모멤버가 활동을 원치 않는다고 부모들에게 직접 만나서 전달.
  • 김기영
    • 젝스키스의 인기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며, 멤버들의 의욕도 없었음. 평소에 팬덤도 많이 오지 않았음. 해체는 멤버들이 원함(특히 김재덕, 고지용).[23]
  • DSP 관계자
    • 젝스키스 멤버들이 미련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해체를 결정했음을 부모들에게 전달. 특정 멤버가 활동하기 싫어서 해체한 것은 아님.[24]

6.2 입장을 통한 해체 원인 정리

해체를 원하는 멤버가 있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멤버들 공통적으로 회사와의 갈등은 분명히 있었음을 밝혔다. 회사와의 불화는 과도한 스케줄이 원인으로, 젝스키스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멤버들이 반항도 좀 하고 예전처럼 말을 안 따라주면서, 사장이나 매니저들과의 감정적인 대립과 갈등이 생겼다. 이 점의 대표적인 예가 젝스키스/음반 및 활동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멤버들의 잠적 사건일 것이다. 아마 이런 사건들 이후 더욱 관계가 나빠졌을 것이다. 물론 소속사가 과도한 스케쥴을 잡은 것이 원인이었다고는 하지만, 멤버들의 잠적으로 인한 스케쥴 펑크를 수습하고 복귀 후의 뒷처리를 하던 소속사 직원들도 화가 쌓였을 것이다.[25]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어머니 인터뷰의 뉘앙스상 계약서가 없다는 것에서 비롯된 수익문제에 대한 갈등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세바퀴에서 회사가 핑클과 차별을 했냐고 질문했을 때 장수원은 즉답을 피하고 단지 회사와 갈등이 있었다고 했는데, 라디오스타에서는 '당시 소속사의 관심과 사랑이 핑클 쪽으로 옮겨가지 않았나 싶다'고 밝혔고, 강성훈도 이를 거들었다.

그리고 전술한 바와 같이 각자 하고 싶은 음악적 방향이 다른 문제도 있었다.

이런 현실적인 이유 말고 이상적인 이유도 분명 있었다고 밝혔다. 훗날 방송에서 '언젠가는 우리가 헤어져야 될때가 온다. 하지만 인기가 없어져서 어쩔 수 없이 해체하는 것 보다는 최고로 잘되고 있을때 그만두자'라는 마음이 있었다고 발언했는데, 이를 방송용 멘트라고만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도 정상에 있을 때 해체함으로써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는 16년후 재결합할 때 대중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것으로 증명된다.

해체에 대한 멤버별 입장을 정리해보면, 이재진은 지방으로 잠적해버려 해체 기자회견을 무산시킬 정도로 완강하게 반대했다. 김재덕은 해체에 반대하긴 했지만 이재진 만큼은 아니고, 해체로 결론이 나자 수긍하고 따랐다. 장수원은 속마음은 그렇게 해체를 하고 싶진 않았다지만, 밖으로 그런 의사를 적극 표명한 바는 없고 해체결론에 수긍해, 김재덕 보다 해체 반대 의지가 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는 정상에 있을 때 내려오자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2016년 10월 17일자 일간스포츠 기사에 이에 대한 멤버들의 발언이 나왔다.[1]

-해체 당시를 떠올려 볼까요?

지원 "3.5집과 정규 4집까지 성적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제부터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참 인기 많을 때 해체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물론 동의하지 않는 멤버도 있었고요."

재진 "동의 못 했어요. 동의하지 않은 채로 해체됐죠.(웃음)"

지원 "과반수가 문제에요. 과반수 이상이 동의를 해 해체했어요."

성훈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해체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고 더한 특별함도 없었겠죠."

이재진은 끝까지 동의하지 않은 것이 무한도전에 이어 다시 확인됐다. 과반수가 해체에 동의를 했다고 하므로, 은지원,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의 4명과 김재덕, 이재진의 2명으로 입장이 갈렸을 것이다.

여기까지는 멤버들의 증언이 있는 부분이다. 나머지 해체에 대한 정확한 일은 당사자만이 알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설령 당사자들을 모두 불러 앉혀 취조한다 해도, 십수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기억하고 있는 당시 모습이 각자 다를 것이다. 아무튼 멤버들 발언 이외의 일은 추측이 들어갈 수 밖에 없고, 서로의 의견이 갈릴 수 밖에없다. 이 밑은 그에 대한 서술이다.

6.3 DSP 책임여부

6.3.1 DSP에 비판적인 입장

젝스키스를 지금까지도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크게 3가지 정도가 있는데, 모두 H.O.T.와 관련있으며, 이에 대한 DSP의 책임도 적지 않다.

6.3.1.1 저예산 뮤직비디오

뮤직비디오가 저렴하기로 유명했다. 라이벌인 H.O.T.는 멤버들의 비주얼과 적절한 스토리를 조합하여 드라마틱한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반면[26], 젝스키스는 멤버들의 비주얼에 의존한 단순한 뮤직비디오가 대다수였고, 배경도 소속사 옥상이나 폐창고, 심지어는 노래방(...)에서 찍기도 했다.[27] 4집 활동 곡 '예감'이 그나마 스토리를 첨가한 뮤직비디오였으나 스토리 자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게 함정이다.[28] 라디오스타에서 강성훈의 말에 의하면, "저희는 뮤직비디오에 한이 있어요" 데뷔곡이었던 학원별곡과 폼생폼사는 뮤비가 두 개씩 존재했는데, 퀄리티는 처참한 수준이고, 2집에서는 타이틀곡 기사도를 비롯한 그 어떤 곡도 뮤직비디오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4집 타이틀 곡 Com'Back은 진원석 영화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규리(당시 김민선)를 주인공으로 섭외하여 나름 해외 촬영에 헬기까지 동원한 액션극으로 촬영했지만 공개되지 않고 4집 수록곡인 Summer in Love의 뮤비로 바뀌어 콘서트에서 공개돼버렸다.

6.3.1.2 팬덤 동원력

DSP는 젝스키스 팬덤의 화력을 드림콘서트 기준(2000 제외)으로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 1997년(세종문화회관)- 3,500명X2회= 7,000석
  • 1998년(올림픽 체조경기장)- 11,000석
  • 1999년(88체육관)- 3,800명X5회=19,000석
  • 2000년(올림픽 체조경기장)- 11,000석

젝스키스는 4차례의 대규모 콘서트를 진행했는데, 총 48,000석으로 2000 드림콘서트 때의 48,000명과 일치한다. 사실 H.O.T.의 팬클럽이 각종 콘서트에 수만~10만 이상 단위가 올 때, 젝스키스 팬덤은 1만 명 정도 밖에 오지 못했다. 물론 1만 명도 적은 규모는 아니나, 이 규모마저도 H.O.T. 로 인해 늘 2위였다. DSP는 젝스키스 팬덤에게 앨범 판매량과 팬들의 숫자는 비례하지 않다는 핀잔을 대놓고 준 바 있으며, 2000년 드림 콘서트 때 김기영은 젝스키스 팬덤을 두고 평소에 이렇게만 왔어도 해체 안 했을 것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는 젝스키스 팬덤의 동원력이 해체 원인의 하나로 보여질 수 있으며, 젝스키스 또한 이러한 부분에 있어 압박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상정할 수 있다. 특히 팬덤 동원력은 최근 은지원(2016 콘서트 원래 1회만 하려 함, 장수원(2016 막콘에서 전성기 때도 올림픽체조경기장 채우는 것도 힘들었다고 발언)은 팬덤동원력에 자신이 없어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DSP의 미숙한 팬클럽 운영 및 관리가 책임이 크다. 그 당시 공개방송은 기획사에서 티켓잡고 팬클럽에 푸는 식이었는데, SM은 원래 비공식 팬클럽이었던 Club H.O.T. 를 공식 팬클럽으로 흡수하여 15만 명으로 확장할 만큼 체계적인 관리를 하였다, 반면에 젝스키스 팬덤은 DSP에서 제대로 주는 팬클럽 혜택이 없어 공식 팬클럽인 DSF에 가입하지 않는 대신에 그 당시에 팬덤이 많았던 게장꿀타파, 백합질식파, 난향월태, 원카인 등 수많은 개인 팬클럽에 의지했다. DSP의 실수는 SM처럼 그러한 개인 팬덤을 공식으로 못 끌여왔고 해체 이야기가 오가는 와중에 DSF 4기를 뽑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공식 팬클럽인 DSF가 운영되지 않았던 2000년 드림 콘서트 때 48,000명에 이르는 팬덤이 몰려들었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6.3.1.3 H.O.T.와의 끊임없는 비교

김기영은 젝스키스를 두고 불우한 2인자라고 불렀으며,[29] 은지원의 발언에 의하면 회사에서는 50만 장을 판매해도 망했다고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러나 당시 50만 장도 적은 것이 아니고 중박 이상에 속하며 이 50만 장이라는 수치도 축소 혐의가 있는 수치이다. DSP는 1집 때부터 끊임없이 음반축소를 이행하였는데, 4집 판매량이 반토막났고 9월 이후 한 장도 안 팔렸다는 언플 등의 그 과정과 결과를 보았을 젝스키스가 기가 죽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음반 판매량을 지속적으로 축소 발표하고 중박 이상~대박의 성과를 두고 망했다고 몰아간 기획사의 책임은 무시할 수 없으며, 기획사의 이러한 행태는 젝스키스의 사기 진작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30] 다만, H.O.T.의 음반판매량은 절대적인 거대 팬덤 크기의 측면이 높지, 대중적인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H.O.T. 4집에서 1위를 한 곡은 I Yah! 한 곡으로 후속곡이었던 환희, 투지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반면 젝스키스의 후속곡이었던 예감은 조성모를 상대로 치열한 1위 다툼을 벌이면서 가요 프로그램에서 근소하게 우위를 차지할 정도로 성공했다. 물론 이것은 젝스키스 팬덤이 조성모보다 거대했던 측면도 있으나, 예감이 대중적으로도 반응이 좋았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젝스키스의 대중성은 조성모의 압도적인 대중성을 따라갈 수는 없었으며, H.O.T.의 거대한 팬덤을 넘을 수는 없었다. 애당초 3.5집의 성공은 당시 마니아적인 팬덤이 아니라 엄청난 대중성을 확보했기 때문으로 4집의 대중성이 3.5집 만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31] 설령 젝스키스 4집의 판매량이 120만 장이 맞더라도 H.O.T.조성모의 음반 판매량을 뛰어넘는 수치는 아니다.
이것이 단적으로 크게 부각됐던 게 재결합 후 라디오스타 출연 때였다. 이번에는 H.O.T.를 이길 수 있도록 양현석에게 부탁했다는 것이다. 이에 MC들이 정확한 지적을 하였다. H.O.T.는 아직 재결합도 안 했고, 실체도 없는데, 무슨 이기고 지냐고.. 이는 젝스키스가 아직도 H.O.T.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32]

6.3.1.4 DSP와의 결별 과정

원래 젝스키스는 해체가 아니라 DSP와의 결별을 원했다는 이재진의 발언, 타회사의 6인 전원 이적 제의, 해체 이전 은지원, 강성훈 듀엣 논의, 듀엣은 회사와의 합의라는 은지원의 발언, 나가고 싶어도 마음 대로 DSP를 나갈 수 없었다던 은지원의 회고 모두 연관이 있다고 보여진다.
이를 종합해서 볼 때 젝스키스는 회사와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아 이재진의 발언처럼 처음에는 회사와의 결별을 원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적 시도에 대해서는 이재진 외에 언급한 멤버는 없지만, 언급이 없다고 해서 이것을 이재진이 거짓말한 증거로 볼 수는 없다. 이재진은 분명 우리가 원래 원래 원했던 것은 해체가 아니라 회사와의 결별이었다고 회고하였다.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은 우리를 멤버의 일부일 것이라고 단정하나, 그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이며, 오히려 문맥상 일부가 아닌 전체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다른 멤버들이 이재진이 언급한 이적 시도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정하지 않는 이상 현재로서는 이재진의 발언을 신뢰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반대 입장은 이재진의 이적시도 발언이 사실이라면 방송에서 언급했을 법도 하나, 그렇지 않음을 부정의 논거로 든다. 그러나 이적시도를 언급했던 당사자인 이재진도 이후 방송에서 이적시도에 대한 발언을 하지 않았으며, 다른 멤버들도 굳이 언급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반드시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 당위성도 없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그림을 보고 싶을 뿐이므로 지나친 추측은 지양해야 한다.[33]

분명한 팩트는 이재진이 우리는 원래 회사와의 결별을 원했다고 언급한 것이다. 즉, 젝스키스의 단체 이적 시도가 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일부 멤버라는 추측이 근거없이 미리 내려놓은 결론에 입각해서 판단한 자의적인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지원이 해체를 생각한 계기는 회사가 망했다고 몰아간 것이 계기이고 그 시점은 가족과 DSP에 의하면 1999년 연말 시상식 즈음이다.

이 두 사안은 별개로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 이재진의 발언에 의하면 이적시도의 주체는 우리이며, 은지원이 언급한 해체 원인에서 해체를 가장 먼저 거론한 멤버는 은지원 자신이다. 주체(우리와 은지원)와 논의(이적과 해체)가 다르다. 따라서 당연히 두 사안이 거론된 시기 또한 별개로 보는 것이 당연하다. 엄연히 주체와 논의가 다른 사안을 굳이 근거없이 엮여서 보려고 하니, 모순 투성이고, 억지로 맞추려다가 자의적인 추측이 생기는 것이다. 시기가 다르므로 당연히 사건의 선후관계는 분명히 해야한다. 여기까지가 팩트이다. 따라서 본 입장에서는 이러한 팩트를 전제한 후에야 젝스키스의 이적시도가 해체논의 이전에 있었다고 추측한 것이다.
한편, 젝스키스의 이적시도는 여의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34] 결국 연말 즈음에 은지원을 필두로 하는 정상에 있을 떄 해체하자는 해체파와 이재진을 필두로 하는 해체 반대파가 나뉘어졌으나, 4:2 과반수로 해체하기로 합의되고 마지막 콘서트를 진행하였다. 한편, 해체 논의와 듀엣 논의는 동시에 행해졌는데, DSP는 은지원과 강성훈만 남을 것을 요구하였고, 이 때문에 이 즈음에 있던 타소속사의 이적제의도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00년 젝스키스는 5월 18일 해체를 선언하였고, DSP는 해체 당일 은지원과 강성훈 듀엣을 언론에 일방적으로 내보냈다. 해체 직후에 은지원, 강성훈은 듀엣을 하기로 하고 이재진은 안무가 및 프로듀서, 김재덕은 작곡가, 고지용은 학업에 충실, 장수원은 DSP 잔류 여부를 분명히 결정 하지 않았지만, 최종적으로 적어도 8월 이후 은지원, 강성훈은 듀엣 제의롤 거절하고, 김재덕, 이재진도 DSP를 완전히 나온 것으로 보인다.

6.3.2 위 비판의견에 반대하는 입장

6.3.2.1 DSP와의 결별 과정 - 이재진 의견이 멤버 전원 입장은 아니었음

위 비판 의견은 이재진의 '소속사를 옮겨서 젝스키스를 계속 하려고 했다'는 입장이 원래 멤버 전원의 입장이었다고 추측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아 이후 해체찬성파가 생겨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멤버들 발언을 보면, 그런 식으로 파악할 증거가 없고, 단지 팬들의 추측일 뿐이다. 위 입장은 어떻게든 다른 멤버들 발언과 맞추려고, 멤버 전원이 단체로 소속사 이적을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은지원이 해체하자는 이야기를 꺼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여러 방송에서 수없이 해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도, 이재진 외에 그런 발언(다 같이 어느 소속사로 이적해 젝키를 하려고 함)을 한 멤버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젝스키스를 계속 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 의견을 가졌었다는 발언들이 존재한다. 더 떨어지기 전에 해체를 해야지 실망을 안겨드리지 않는 격이 된다고 했으며, 은지원은 젝키 시절 자신이 하고 싶던 음악과 맞지 않아 힘들었음을 밝히기도 했었다.# 젝스키스를 계속 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 입장인데 어디서 "소속사를 옮겨서 젝키를 계속 하자"는 의견이 멤버 전원에게서 나오겠는가.

물론 이재진이 '우리'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전술한 멤버들의 발언을 봤을 때 다수는 아니었다. 위 비판 입장은 이에 대해,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말아야 하며 '우리'는 멤버 전원을 가르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오히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봐서 이런 논의를 일으킨 것 자체가 위 팬들 입장이다. 엄연히 젝키를 계속 하는 것에 부정적 발언들이 존재하는데, 어떻게 "우리"를 멤버 전원으로 확정할 수 있는가. 위 팬들 입장이야 말로 근거없이 엮여서 보려고 하니, 모순 투성이고, 억지로 맞추려다가 자의적인 추측이 생기는 것이다.

이 모든 논의의 출발점은 이재진이 2005년에 한 한마디인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좀 많은데 나한테는.. 가깝게는 우리가 해체했을 때.. 원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해체가 아니었고, 회사와의 결별이었는데 회사에서 해체를 시켜버린 거지."라는 말에 있다. 그러나 애초에 이재진의 이 말 자체가 다른 멤버들의 발언과 상충된다. 전술한 다른 멤버들의 수많은 발언들을 보자. 분명 다른 멤버들은 해체를 하자고 제안을 하고 그것에 동의를 했으며, 회사가 해체를 시킨 것은 아니라고 확실히 말했다. 이렇게 다른 멤버와 상충되는 발언 하나를 두고 저런 추측을 사실로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시 한번 상기할 점은, 이재진이 혼자 유독 심하게 해체에 반대했다는 점이다. 이재진 혼자 지방으로 잠적하는 바람에 해체 기자회견이 한달 미뤄졌는데, 그 사실을 나머지 멤버들은 2016년 무한도전 촬영일까지 전혀 모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날 무한도전을 보면 이재진의 이 발언 이후 은지원은, '이재진 없었어도 이재진 빼고 해체 기자회견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유재석이 곧 '그게 네가 할말이냐. 분위기 좀 잡자고.'라고 말하며 웃음 포인트를 만들어내긴 했다. 하지만 뼈있는 농담이었다고 보인다. 뼈가 있는 말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선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 각자 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160416일자 편의 40분 경이다.

이재진이 끝까지 해체에 동의하지 않으며 나머지 멤버들과 의견이 맞지 않았던 점은 위 2016년 10월 17일자 신문 인터뷰에서도 다시 확인되었다.#

위 주장의 의도를 보면, '젝스키스 멤버들은 해체에 책임이 없으며, 소속사가 젝키를 강제해체 시킨 것이다'는 결론으로 어떻게든 이끌어 가는데 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한 믿음은 해체 당시의 각종 소동으로 잘 나타난다. 훗날 멤버들이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았고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여전히 강제해체 당했다고 인터넷에 퍼뜨리고 다닌다. 올해만 해도 그런 글들을 수십개는 찾을 수 있다.

2015년, 2016년 방송에서도 매번 해체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데, 만약 위 의견이 사실이라면 멤버들이 그런 얘기를 했을 것이다. 내용 자체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다. 하지만 그런 얘기를 한 멤버는 없다.[35]

은지원과 강성훈이 계속 남아달라는 DSP의 제안을 거절했다고 해서, 이재진의 입장과 같다고 볼 수는 없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거절한 시점은 이미 해체가 확정된 혹은 거의 결정된 상태였다. DSP가 그 제안을 한 시점에 이미 나머지 4명 멤버들은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성훈과 은지원이 이후 솔로를 할 생각으로 DSP 제안을 거절했지, 젝스키스를 계속 하려고 DSP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6.3.2.2 일부 멤버들의 그룹 활동 의지 결여 및 빈부격차

사실 냉정히 말해 인기 멤버들의 솔로 욕심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젝키와 음악적 성향이 달라 힘들었다는 내용은 전술한 바와 같이 멤버 본인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몇번 있다.[36] 현실적으로 말해 수입 면에서도 멤버별로 6분의1로 나누면 파이가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반면 솔로를 하면 자기가 다 먹을 수 있었다. 이는 훗날 여러 아이돌들의 해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해왔다.

당시 소속사와 갈등이 있었던 점은 맞다. 여기에 각자 하고 싶은 음악적 방향과 솔로 욕심이 겹쳐져, 결론적으로 해체 하자는 의견으로 모였다고 보인다.

그리고 인기가 많아지며 멤버들 행동을 통제할 수 없던 점도 부정할 수 없다. 2000년 초 해체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해체 배경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멤버들에 대한 관리가 여의치 않았다’는 점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열린 KBS가요대상때의 일이다. 6명의 멤버중 3명이 생방송 2시간전까지 사전 연락없이 리허설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한동안 매니저들과 방송 스태프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 중 1명은 5분전에야 나타나 하마터면 방송 사고를 낼 뻔했다. 이 사건 외에도 지난 98년 11월에는 역시 일부 멤버들이 잠적해 라디오프로 2개를 펑크내는 등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멤버 관리에 허점을 노출시켰다." 잠적 사건의 경우 훗날 멤버들이 밝힌 바 있다.영상기사 당시 인기가 많아지며 머리가 커져서 소속사 말을 안 따라주기 시작했다고 한다.[37]

세간에는 멤버 집안의 재력 차이에 따라 해체에 대한 찬반 여부가 갈렸다고 보는 의견이 있다. 은지원 강성훈 고지용이 금수저, 장수원이 중산층, 이재진 김재덕이 흙수저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전술한 라디오스타나 세바퀴에서 김재덕과 장수원에게 이 점에 대해 물어보기도 했다. 둘 다 빈부격차가 있었던 점 자체는 인정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 점이 해체이유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보긴 어렵다. 금수저 멤버의 입장에선 DSP의 대접에 불만이 있고 그렇다고 돈을 엄청나게 주는 것도 아닌 상황이면 젝스키스를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후 솔로로 데뷔한다 해도 그 리스크를 감수할 기반이 갖추어져 있었다. 반면 흙수저 멤버의 입장에선 젝키 해체는 큰 데미지로 다가온다.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부모님들 입장도 갈렸는데, 빈부격차가 요인이라는 점을 부정할 순 없을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2016년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밝힌 바를 보면, 이재진 부모님이 오히려 절대 해체해서는 안 된다며 결사 반대했다고 한다. 해체했을 때 많이 원망하셨었다고 하며, 부산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고 밝혔다.# 반면 전술한 다른 부모님의 잡지 인터뷰를 보면 "해체 얘기는 작년 연말부터 나왔어요. 그때 엄마들끼리 모여서 사장님한테 '해체 하려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라' 고 얘기하곤 했어요. 애들이 인기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으니까요."라고 말하고 있다.

6.3.2.3 소속사가 해체 분위기로 몰아간 것인가

위 비판 의견은 은지원이 "회사에서 4집이 망했다며 (해체) 분위기를 몰아간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은지원이 이어서 한 말을 보면, 그 말에 화가 나 자기가 욱해서 해체로 나아간 면이 있다고 밝혔다. 무한도전에서는 그 말을 하기 전에 "어린 나이에 회사에 불만이 좀 많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사실 위 의견은 저런 회사의 발언 때문에 강제해체를 당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뉘앙스의 말인데, 그렇게 취급할 건수는 아니라고 보인다.[38] 99년 9월 젝스키스H.O.T.가 4집을 동시에 내며 맞붙었는데, 당시 H.O.T.한테 밀린 것은 맞기 때문이다. 젝스키스의 탄생한 이유 자체가 H.O.T.때문이었고, 데뷔 전 연습생 때부터 벽에 ‘타도 H.O.T.’를 붙이고 있었다. 데뷔 이후에는 H.O.T.가 휴식기에 들어갈 때 젝키는 휴식기 없이 바로 앨범을 연달아 내며 쫓아갔다.해당영상 6분 20초부터 그렇게 해서 3.5집 커플로 처음 H.O.T.를 이겼고, 소속사도 이제는 H.O.T.를 따라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후 처음으로 휴식다운 휴식기를 가졌고, 그 사이 잘나가는 프로듀서를 섭외해 4집을 공들여 준비해서 H.O.T. 4집과 정면승부를 펼쳤다.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니 다시 격차가 벌어졌다.[39] 소속사로서는 힘이 빠질 수 밖에 없고, 망했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40] 물론 멤버들이 20대 초반 애들이니 소속사에서 그럴수록 기를 살려줘야지, 왜 망했다는 반응을 보였냐고 탓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기를 살려줬으면 칭찬 받을 일이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소속사에 해체 책임을 돌리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기획사도 엄연히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다. 해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소속사가 해체로 몰아간 것이라고 단언할 문제는 아니다. 단적으로 "만약 소속사에서 4집 흥행에 대해 멤버들에게 아무 말 안했으면 해체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그랬으면 해체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전술한 바와 같이 해체에는 여러 이유들이 작용하고 있었다.

6.3.2.4 DSP의 저예산 뮤직비디오와 팬클럽 운영 문제

위 비판 의견은 뮤직비디오 퀄리티가 안 좋은 점, 팬클럽 관리가 안 좋은 점 등에 대해 성토하며, 이런 점들이 해체로 몰고 갔다고 보고 있다. 물론 맞는 말도 있다. 하지만 저런 비교 자체가 H.O.T.SM엔터테인먼트를 기준으로 보고 있는 측면이 크다. 젝스키스 멤버들 문제에서는 "왜 DSP는 SM의 H.O.T.랑 비교해서 멤버들 기를 죽였냐"고 성토하면서, 정작 자신들 문제인 팬클럽 대우나 뮤직비디오 퀄리티에서는 SM의 H.O.T.랑 비교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에 대한 위 비판 의견의 입장이 여기다 서술한 내용을 보면, 먼저 젝스키스 및 젝스키스 팬덤을 H.O.T.와 H.O.T. 팬덤의 규모와 비교한 쪽은 DSP쪽이라고 한다. DSP는 해체 직전에도 팬덤에게 핀잔을 준 바 있으며, 심지어 김기영은 해체 이후 인터뷰에서 2000 드림 콘서트만큼 팬들이 왔으면 해체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푸념하였다고 한다. 회사 측에서 H.O.T.와 끊임없이 비교를 하기 때문에 젝스키스나 젝스키스 팬덤 역시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불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당시 시점에서 팬덤이 DSP에게 하던 행동을 보면, 회사 측에서 그런 발언이 나오고도 남는 상황이었다. 이미 DSP와 팬덤 간의 사이가 최악으로 치닫았을 때이다. "미친 개호연 새끼 뒈지는 날 우리젝팬들 얼굴에 비로소 웃음꽃이 핀다."는 문구로 회사 사장 이름을 대놓고 욕하며 활보하고 다녔다.사진 오늘날 "개수만 새끼, 개양석 새끼, 개진영 새끼" 등 문구를 들고 활보하면 과연 회사 반응이 어떨까. 해체날에는 조영구 그랜져 새차를 반파시켜서 사장이 1100만원을 물어줬다. 당시 그랜져 새차가 2000만원 할때다. 기타 핑클에 대한 안티활동#과 사이버테러# 등도 심했고 회사에 대한 유언비어 유포도 심했는데, 그것을 처리하는 소속사 직원들 화도 쌓여갔을 것이다. 팬들이 항상 자료로 쓰는 시사프로 피자의 아침 방송을 보면 당시 사무실 경호회사 직원이 다음과 같이 인터뷰 하고 있다. "18일..농성을 부리고 여기에다 계란 세례나 밀가루, 식초 이런 것들을...난동을 부려가지고...."[41]

추가로 이와 관련해서 말하자면, 전술한 김기영 매니저의 해체 이후 인터뷰를 두고, 팬들은 싸가지 없이 말했다는 점에 대해 오늘날까지도 분노하고 있다. 물론 싸가지 없게 말한 것이 잘못되기는 했지만, 윗 문단에서 서술된 바처럼 이미 팬덤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은 상황이었다. 저런 수모를 당한 상태인데 좋은 말이 나올리가 없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DSP가 악의적으로 저예산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팬클럽 운영을 미숙하게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게 DSP의 능력이었다. 젝스키스의 큰 성공은 자신들도 기대 밖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문제는 DSP가 아이돌 기획사 중 하위권 능력이라면 욕할만 하겠지만, 당시 아이돌 기획사 중에서는 상위권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비교 대상 자체가 SM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그렇다. 당시 SM이 선구자적인 역할로 전술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 것이지, 아이돌 기획사 전체를 놓고 보면 DSP 능력은 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SM을 따라했지만 실패한 가수는 무수히 많았고, 그중에서 DSP는 기획력 측면에서의 성공이라고 평가하고 있다.기사

그게 무슨 상위권의 실력이냐 라고 반문할지 모르겠는데, 젝키의 정산 금액이나 대우 문제에 있어 자꾸 오늘날 엄청나게 성장한 아이돌 시장을 떠올리는 점이 문제다. 당시는 업계 1위인 SM조차 순이익이 97년도 2억, 98년도 9억원, 99년도 31억원, 2000년도 12억원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SM보다 DSP가 가진 환경이 더 열악했다. 말이 대형기획사지 당시 건물 한층을 쓰고 있었고 직원 수도 적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 팬 관리와 마케팅ㆍ정산까지 모두 수기하는 것이 20대 여성 한명 몫이었다. 그 직원이 멤버들 밥도 해줬다.#

한편 위와 같은 팬들의 DSP에 대한 성토는 '젝스키스는 멤버 본인들 매력으로 성공한거지 소속사는 1도 해준 것이 없다'라는 논리로 귀결되는데, 이는 말이 안된다. 지금 아이돌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점을 잊고 있는 듯 하다. 아이돌 멤버 뽑는 것, 유명 작곡가한테 좋은 노래 받아오는 것, 방송 꽃아주는 것 등 모두 소속사의 몫이다. 오히려 DSP가 아니었으면 당시 SM의 독주에 누가 제동을 걸었을지 의문이다.

우선 그런 S급 멤버들이 한 팀에 모인건 DSP와 이호연 역할이 컸다. 2016년 라디오스타 방송(젝스키스 멤버 항목에 설명 있음)을 계기로 일부 팬들은 강성훈이 젝키 멤버를 구성한 것이지 이호연은 젝키를 만든 것에 1도 한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데, 막상 내막을 살펴보면 고지용을 제외하고는 DSP 공이 크다.[42] 그리고 젝키의 뮤비 퀄리티가 안좋긴 하지만, 대신 비싸고 좋은 작곡가는 많이 섭외해서 겨우 3년 활동인데도 명곡들이 즐비하다. 해체 후 16년이나 지나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지만 오늘날 들어도 좋은 노래가 많아 세트리스트를 충분히 채웠다.[43] 이에 대해 팬들은 작곡가가 곡을 만든거지 소속사랑 사장이 한게 뭐냐고 욕하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다. 기획사가 아이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서포트가 좋은 작곡가로부터 대박날만한 곡을 받아오는 일이다. 이 능력 여부에 따라 아이돌의 성공이 결정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16년 기사만 봐도, 젝스키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곡 폼생폼사는 이호연 인맥으로 신인 작곡가를 발굴해 대박을 터뜨린 사례다#. 이호연이 쓰러진 이후의 DSP가 레인보우에게 블랙스완같은 망곡을 주며 못 띄우는 것만 봐도, 소속사 사장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외 이호연 까는 용도로 '젝스키스라는 이름 조차 MBC PD가 지어줬는데 이호연은 한게 뭐냐'는 말이 많은데, 그 MBC 은경표 PD가 이호연 인맥이다. 하와이에서 강성훈과 은지원을 스카웃 했을 때, 이호연이 하와이에 간 이유가 은경표 PD랑 놀러간 것이었다. 사장이랑 친분이 두터우니 고민을 거듭해서 젝스키스라는 끝내주는 이름을 지어준거지, 그런 인맥이 아니었으면 이름을 지어줄 리 없었다. 애초에 데뷔하자마자 H.O.T.의 라이벌 포지션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요 방송에 출연한 것은, DSP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당시의 DSP 위상은 지금과 전혀 다르다). 이후 당시 최고로 인기있던 프로그램들에 젝키가 무수히 많이 출연했는데, 이 역시 소속사의 파워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스케쥴을 매우 빡세게 돌려 원망을 들었지만, 그렇게 쉴 새 없이 앨범을 내며 몰아부쳐 H.O.T.를 따라잡았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2011년 해피투게더 해당영상 6분 20초부터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기서 은지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H.O.T.와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뷔초에는 인기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H.O.T.는 활동 후 휴식기가 있던 반면, 젝스키스는 전혀 쉬지 않고 1년에 2~3장 씩 앨범을 내며 활동해서 팬을 늘려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렇게 쉬지 않고 활동한 기간(97년 4월 15일 ~ 99년 1월)의 마지막인 3.5집 커플에서 H.O.T.를 이겼었다. 강타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젝키의 3.5집 커플에 처음으로 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었다고 한다.[44] 근본적으로 DSP 자체가 거의 이호연 사장의 카리스마, 인맥, 그리고 감으로 유지되던 회사였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DSP가 쇠퇴하자 이 점이 더욱 부각됐고, 이호연의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도 나왔다.[45] 2016년 라디오스타에 젝키가 출연했을 때 해체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자, 사장님과의 관계 때문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당시 DSP가 잘못한 것이 있는 점은 맞다. 하지만 비판 의견에 서술되어 있는 DSP의 저 퀄리티 뮤직비디오와 팬클럽 관리가 제대로 안 된 점을 가지고, 그것들을 해체이유 항목에 서술할 건수는 아니라고 보인다. DSP가 악의적으로 그런 것도 아니고 그게 DSP 능력이었다.[46] 게다가 SM과 비교했을 때 부족한 것이지, 당시 아이돌 시장을 놓고 보면 그런 DSP 능력이 상위권에 속해있었다. 당시 아이돌 시장이 막 형성되고 있던 상황이었고, DSP와 이호연 이외에 H.O.T. 라이벌을 키워낼만한 역량을 가진 곳은 없다시피 하기도 했다.

6.3.2.5 계약서가 없는 점

젝키 팬들은 DSP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로 DSP를 욕한다.

하지만 어떤 대우를 받았느냐, 상호 신뢰가 형성됐느냐에 초점이 맞춰져야지 계약서가 없었다는 사실 만으로 깔 것은 아니다. 당시 DSP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연예계에서 계약서 없이 활동하는 일이 특이한 경우가 아니었다. SM 이수만이 당시 H.O.T.와 세밀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 새로운 모습이었다(다만 돈을 적게 주는 불공정한 면이 있어 문제가 되었다). 심지어 최근까지도 계약서가 없는 사례는 자주 보인다. 아바엔터테인먼트의 민효린, 채정안, 한지민, 채시라 등이 계약서 없이 활동했으며#, 문근영은 나무엑터스와 10년 가까이 계약서 없이 활동했고#, 송지효도 씨제스엔터테인먼트와 계약서 없이 활동했으며#, 이효리도 B2M엔터테인먼트와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그냥 의리로 남아있기도 했다#. 다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서 없이 활동한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법적으로 봐도 서면계약서를 의무화 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하도급 계약이라면 서면으로 계약을 안 한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을 수 있지만 이 부분은 하도급 계약이 아니다.# 그리고 연예인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다.# DSP의 경우도 핑클과는 계약서 없이 활동했어도 서로 사이가 좋게 끝났다. 성유리는 무릎팍도사에서 당시 신인으로서 받기 힘든 좋은 대우를 해줬다고 말했다.

팬들은 2000년 피자의 아침 방송을 근거로 이 문제를 비판하는데, 상당히 잘못된 내용이 많다. 우선 전술한 바와 같이 연예인은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가 아니다. 이후 변호사가 "설사 근로 기준법을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백보를 양보해서 가정을 한다하더라도 민사상으로 볼때에도 이 고용 연예인들 중에는 미성년자가 있습니다. 근데 이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어떤 계약 행위를 원칙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 미성년자들이나 또는 고용연예인들은 어떻게 보면 그런 경험이 없다거나 또는 그 인기를 유지하거나 자신의 연예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는 상당히 궁박한 상태였습니다. 이런 그 무경험이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해서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를, 즉 계약을 맺은 경우에는 그것이 구두 계약이든 서면 계약이든 이것은 법률상 무효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이호연 사장이 일일히 멤버 부모님들을 찾아가서 안심시키고 허락을 맡고서 데려왔다.[47] 또한 당사자의 경솔, 궁박, 무경험을 이용했다고 하여 계약이 무효라는 민법 104조가 있긴 하지만, 명백한 위법행위를 입증해야만 해서 판례를 보면 이를 통해 승소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훗날 멤버들이 밝힌 이야기를 보면 이 조항이 적용될 정도의 삶을 살지는 않았다.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 참조.

그럼 실제 얼만큼 대우 했는지에 대해서 보면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소속사가 가져가는 몫이 컸고 전술한 바와 같이 이는 해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기는 했다. 아무튼 양측 간의 신뢰가 깨졌고 이는 해체로 이어졌다. 다만 젝키 팬들이 주장하는 모습은 과장된 면이 크다. 해당 문서에서 기술되어 있듯이 3:7에서 2:8 사이의 수준으로 가수에게 배분되기는 했다. 당시 가요계에서 하위권의 대접은 아니었다.

이호연이 정말 악마같았으면 노예계약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당시 젝키에게 해준 대우보다 더 나쁜 조건으로도 얼마든지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던 시기였고, 이를 통해 5년이고 10년이고 소속사에 묶어놓을 수도 있었다. 젝키 팬들이 근거로 드는 2001년 7월 시사매거진 2580 보도내용을 보면, 노예 수준의 계약서로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아이돌 그룹 가수들의 음반 인세가 100원도 채 되지 않았고(SM이 100원으로 H.O.T. 멤버당 20원이었다고 함), 계약금도 없이 10년 가까이를 소속사에 묶어버리기도 했다. 저런 계약서를 쓸 바에는 차라리 계약서를 쓰지 않는 편이 나았다. 특히 오늘날 재결합 하려 할때 만약 저런 계약서가 쓰여 있어서 발목을 잡았다면, 젝키 팬들에게 끔찍할 것이다. 해체 이후 장수원, 김재덕이 결성한 제이워크를 보면, Suddenly라는 곡으로 흥했지만 이후 계약한 소속사에서 제대로 활동을 안시켜주고 계약도 안 풀어줬다. 그래서 20대의 많은 시간을 아무것도 못하고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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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식으로 보험처리를 하려면 일단 학생들을 처벌해야 했는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2. 달랑 스무 명밖에 모금하지 않았다는 것은 중학생 팬 스무 명 가량이 보상금을 모아 전달한 것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와전된 것이라고 알려졌으나, 후에 조영구 본인이 놀러와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 20명 밖에 모금을 안했다고 직접 말했다. 그리고 조영구씨는 금액과 무관하게 학생들이 모은 돈이라 차마 받기도 그랬다는 듯.
  3. 요즘 악플에 대한 고소와 처벌 사례가 많아지고 있는 점을 봤을 때, 위험 수준의 글도 상당히 많이 보인다. 이호연은 어짜피 말도 못하는 상태로 누워만 있으니 자신이 직접 고소할리는 없겠다. 회사 대표로 있는 부인이 하면 할 수 있기는 하다.
  4. 팬들은 이호연과 DSP는 젝스키스에게 해준 것이 없고 오로지 멤버들 능력으로 떴다고 주장하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지금 아이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잊은 듯 하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DSP의 저예산 뮤직비디오와 팬클럽 운영 문제' 목차 참조.
  5. 이런 글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시점에서는 주작 수준이 떨어져 믿을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이런 것이 먹히던 시절이었다.
  6. 원문:"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매니저들에게 맞는 일도 다반사였어요 그땐 왜 재덕이랑 저만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멤버들은 다 집에 가고, 연습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만 꼭 매니저한테 별 일 아닌 일로 혼나고 얻어맞고 그랬죠."
  7. http://cafe.daum.net/LoveHoonEun/DyM/946?q=%C1%A7%BD%BA%C5%B0%BD%BA+%C7%D8%C3%BC+%B1%E8%C0%E7%B4%F6+%C7%C1%B7%CE%B5%E0%BC%AD+%C8%C4%B9%E8+%C0%CC%C0%E7%C1%F8+%C7%D0%BE%F7%7C해당 기사
  8. http://cafe.daum.net/FinKL/12u/4150?q=%B0%AD%BC%BA%C8%C6+%C0%BA%C1%F6%BF%F8+%B5%E0%BF%A7+%C1%A7%BD%BA%C5%B0%BD%BA+%C7%D8%C3%BC
  9. 해체설에는 듀엣설도 포함돼 있었다.
  10. 김재덕은 7월경까지 DSP에 남아 있던 것이 확인 된다.
  11.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우리도 듀엣제의는 해체 논의 시점으로 보고 있다. 해당 파트 위키러가 글 이해를 잘못한 듯하다. 반대입장은 DSP가 듀엣제의를 해체 이후에야 했다는 거짓말을 여러 자료를 들어 반박한 것이다."라고 여기 썼는데, 팬들 입장은 분명 "듀엣 제의가 해체 이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서술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은 해체 이전이 아니라 해체가 이미 거의 결정된 시점 혹은 해체 이후에 듀엣 논의가 있었다는 말을 한 것이다.
  12. http://cafe.daum.net/LoveHoonEun/DyM/946?q=%C1%A7%BD%BA%C5%B0%BD%BA+%C7%D8%C3%BC+%B1%E8%C0%E7%B4%F6+%C7%C1%B7%CE%B5%E0%BC%AD+%C8%C4%B9%E8+%C0%CC%C0%E7%C1%F8+%C7%D0%BE%F7
  13. http://cafe.daum.net/happysuwon/7mR/50?q=%C1%A7%BD%BA%C5%B0%BD%BA+%C7%D8%C3%BC+%C0%B1%B0%E6%C3%B6+%B1%E2%C0%DA
  14. http://m.cafe.daum.net/aplusdeoks/4cO/283?q=%EC%A0%9D%EC%8A%A4%ED%82%A4%EC%8A%A4%20%ED%95%B4%EC%B2%B4%20%EA%B9%80%EC%9E%AC%EB%8D%95%20%ED%94%84%EB%A1%9C%EB%93%80%EC%84%9C%20%EC%9D%B4%EC%9E%AC%EC%A7%84%20%EC%9E%91%EA%B3%A1
  15. http://cafe.daum.net/LoveHoonEun/DyC/708?q=%C1%A7%BD%BA%C5%B0%BD%BA+%C0%E5%BC%F6%BF%F8+%C7%D0%B1%B3
  16. http://cafe.daum.net/LoveHoonEun/DyC/1752?q=%C1%A7%BD%BA%C5%B0%BD%BA+%C0%E5%BC%F6%BF%F8+%C7%D0%B1%B3
  17. http://cafe.daum.net/youngbok311/FR4/174?q=%C1%A7%BD%BA%C5%B0%BD%BA+%B1%E8%C0%E7%B4%F6+%C7%D0%B1%B3
  18. http://cafe.daum.net/FinKL/12u/4150?q=%C1%A7%BD%BA%C5%B0%BD%BA+%C7%D8%C3%BC+%C0%BA%C1%F6%BF%F8+%B0%AD%BC%BA%C8%C6+%B5%E0%BF%A7+%C7%C1%B7%CE%B5%E0%BC%AD
  19. http://cafe.daum.net/ssypoto/85kU/91?q=%C0%BA%C1%F6%BF%F8+%BC%D6%B7%CE+%C0%DB%C7%B0%C1%FD+G
  20. http://cafe.daum.net/kongjin/3pD/1368?q=%B0%AD%BC%BA%C8%C6+%BC%D6%B7%CE
  21. 이 발언 때문에 일부 팬들은 이재진이 훗날 솔로 활동을 할때 DSP로부터 방해받았다고 주장을 하나, 그 실체가 없는 것을 보면 그렇게 보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팬들 주장은 솔로활동 때 DSP가 악질적으로 방해했다고 하는데, SM 이수만이 H.O.T.에서 나간 jtL의 방송활동을 막아버려 문제가 된 것 처럼 밝혀진 바가 전혀 없다. 당시 jtL의 경우 기사가 수십개 떴다. 솔로 활동 방해 여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 참조.
  22. 이 때 장수원은 핑클과의 차별 관련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23. 이 발언에 대해 김재덕은 사실이 아니라고 전면 부정하였다.
  24. 이는 이호연이 부모들에게 언급한 사실과 정반대이다.
  25. 김재덕은 잠적 사건에 대해 당시 인기가 많아지며 거만해졌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영상기사
  26. 홍종호, 김세훈 등 당시 최고 주가를 달리던 뮤직비디오 감독들이 맡았고, '아이야'는 뉴욕 촬영까지 했다. '우리들의 맹세'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만화가 천계영이 참여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었을 정도.
  27. 심지어 젝키 최대 히트곡인 '커플'은 사무실 문짝을 배경으로 찍었다고 한다. 강성훈이 라디오스타에서 이를 토로하며 치를 떠는 모습이 그야말로... "옥상이 뭐야 우리는... 사무실 문짝이 뭐야"
  28. 카더라에 의하면 로드파이터 뮤비는 감독의 사비로 찍었고, 그 뒤로 뮤비 촬영에 쓰라고 은지원의 집에서 돈을 보태주었는데 이를 DSP에서 먹었다는 루머가 있다...고 여기에 오랫동안 서술되어 있으나 전혀 사실무근의 말이다. 이게 사실이면 개막장 소속사겠지만, 전혀 증거가 없다. 단지 어떤 감독이 로드파이터 노래가 너무 마음에 들어 자기네 회사에서 비용을 다 부담해 뮤비를 찍고 싶다고 DSP에 연락을 했을 뿐이다(출처:#). 놀랍게도 그 감독이 YG 뮤직비디오 전담 감독인 서현승이다. 뱅뱅뱅, 판타스틱베이비, 내가제일잘나가 등 1억뷰 이상의 뮤비를 다수 보유한 감독이다. 해체 16년 후 젝키가 YG로 오게 됐으니 사람 인연이란 것이 참 희한하다. 참고로 김재덕과 이재진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된 계기가, 양현석이 그들의 춤추는 모습을 비디오를 보고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이후 둘은 이주노 소속사 연습생으로 있었는데, 이호연이 그 소속사로 찾아와서 젝키 멤버로 픽업해갔다.
  29. "팬클럽 분포도는 '계란 노른자'였다. 흰자(H.O.T 팬)가 고루 퍼져 있으면 노른자(젝스키스 팬)가 그 사이에 있고. 난 젝스키스에게 '불우한 2인자'라고 했다. 활발히 활동했지만 대상을 받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 다음 해에는 핑클이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또 넘어가고. 기사링크
  30. 4집은 9월 한 달채 안 되는 기간에 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달성한 것으로 볼 때, 최종적으로 최소 8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이 정도 수치는 대박에 속하는 수치이다. 4집이 망했다는 기준은 당연히 H.O.T.와의 비교일 수밖에 없다. 음반판매량을 제대로 집계해도 H.O.T.의 음반판매량을 이기기 어려운 마당에 오히려 누락된 결과물을 접했을 때는 의욕이 꺾일 것이다.
  31. 젝스키스는 3.5집 활동을 마감하면서 한 번도 H.O.T.를 넘어선 적이 없다면서 4집에서는 이겨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다.
  32. 젝스키스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화 리더 에릭의 발언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이어 최근 컴백해 크게 화제를 모은 그룹 god와의 비교에 대해 "god가 나온 건 정말 반갑다. 하지만 god만 저희의 라이벌이라고 하면 그건 이미 신화를 구세대 취급을 하는 얘기인 것 같다"며 "god 역시 현시대에 활동해 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에릭은 "저희가 추구하고 지향하는 건 물론 현재 아이돌들과 나이, 경력 차이가 있지만 현재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가장 핫한 친구들과 붙어서 이 시대에서 경쟁하고 싶다. 선배대우 받고 싶지 않다. 춤이든 노래든 우리가 잘 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만약 트렌드가 중요하다면 트렌드에도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저희 색깔을 더 낼 것인지 트렌드를 따라갈 것인 지는 고민해 볼 부분이다. 그래서 선곡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기사링크1, 데뷔 17주년을 맞아 ‘아이돌의 조상’이라 불리는 신화, 하지만 정작 에릭은 “선배 대우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손사래를 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나이와 경력은 별 의미가 없어요. 얼마 전 동 시기에 활동하던 god가 돌아와 반갑지만 그들은 신화의 라이벌이 아니에요. 신화와 god의 라이벌은 서로가 아니라 현재 활동 중인 가장 ‘핫’한 아이돌 그룹들이죠. 때문에 항상 트렌드를 파악하고 뒤처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는 ‘구세대’가 아니라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세대’입니다.”기사링크2
  33. 이재진의 발언을 신뢰한다고 해서 해체를 주장한 은지원 등의 멤버들의 발언과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은지원 등은 해체로 생각이 전환된 것은 분명하며, 이적 논의는 해체 논의가 있던 1999년 연말 이전으로 보인다.
  34. 이재진의 발언이 재조명 되는 이유는 젝스키스는 계약서 없이 활동했기 때문이다. 정식 계약서 없이 활동했던 이른 바 구두계약이었다. 기획사에서 젝스키스의 상표권을 신청하지도 않았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만약에 멤버들의 의지로 어느날 갑자기 훌쩍 다른 기획사로 6명이 모두 이적해 젝스키스로 활동을 이어갔을 경우 법적으로는 애초에 계약서가 없으니까 회사측은 계약기간 문제나 젝스키스의 이름을 사용하는 문제 등에서 클래임을 걸 수가 없었을 것이라 한다. 즉 법적으로만 보면, 해체를 하지 않았으면 회사를 옮기든 독립 회사를 차리든 해서 젝스키스가 활동하는데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실제 실행했다면 이적료 문제에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그리고 전술한 바와 같이 해체를 원하는 멤버도 있었는데, 당시 부모님들 인터뷰를 보면 타소속사의 영입 조건은 6명 전부 옮기는 것이어서 어려웠다고 한다. 물론 계약서가 없으니 법적으로는 이적료 없이 옮겨버릴 수 있지만, 그랬다가는 이호연이 가만히 두고봤을리 없고, 아마 이수만이 jtL 막아버렸듯이 방송활동을 다 막았을 것이다. 상도덕상으로 봐도 방송가에서 젝키 쪽을 탓하며 이호연 편을 들어줬을 것이다. 사실 이재진이 소속사 변경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하더라도, 냉정하게 어떤 소속사가 이걸 들어줄지 의문이다. 오래된 그룹도 아니고 3년 활동한 그룹을 말이다. 아무튼 현재는 계약서가 없는 덕분에 재결합과 관련하여서 전 소속사의 동의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되었다. 2000년 당시에는 20대 초반의 인기 절정이었을 때니 이적료 문제가 생기는 것이고, 16년이나 지난 지금 와서는 계약서가 없는 마당에 이적료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병신 짓일 것이다. 참고로 소속사 후배였던 클릭비는 당시 클릭비 팬들의 아우성으로 계약서를 작성해 활동 했으며, 결국 재결합은 다시 소속사로 돌아와서 했다. 21세기에도 소속사와 아이돌 그룹의 관계가 그렇지만, 20세기는 아이돌 그룹을 키운 소속사가 해당 아이돌 그룹에 대한 모든 권리를 행사한 시대였다. 해체 이유에 대해 일각에서는, 일부 맴버가 소속사와 결별을 원하는 것을 시작으로 젝스키스라는 브랜드를 타 소속사에서 못 쓰게 하기 위함+맴버들의 사후 연예 활동을 방해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보기도 했다.
  35. 다른 곳의 일부 팬들은 이에 대해 DSP와 이호연의 압박 때문이라는 말을 하지만, 설득력이 별로 없다. 이호연은 6년째 식물인간급으로 말도 못하는 상태로 누워만 있고, DSP는 쇠퇴해서 자기 앞가림 하기 바쁘다. 단적으로 젝키가 YG로 이적할 때, DSP에는 인사 같은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무시했다. 그렇게 해도 걸리적 거릴 것이 없음이 현실이니 말이다. 특히 은지원은 해체 직후 이호연이 정정한 시절 때 조차, 전술한 바와 같이 DSP에 불만이 있었음을 신문 인터뷰에서 말한 바 있다.
  36. 원문: ▲젝스키스 활동이 싫었겠어요? ▲ 제 의견을 정말 (손가락 마디를 보이며) 요만큼도 안 냈어요. 어차피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아니었으니까요. 단 1%도 안 보여드렸죠. 솔직히 거부하기에는 판이 너무 커졌죠. 젝스키스가 그렇게 잘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기사
  37. 사실 해체 문제 등에 있어 드라마에 나오는 것 마냥 '젝키 멤버들은 선, DSP는 악'으로 구분짓고 보려고 하는 점은 문제다. 이제는 팬들도 나이가 있어서 겪었겠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젝키 멤버들은 당시 겨우 만 20살 넘은 잘생기고 끼많은 어린 애들이다. 각자의 욕심도 있고 인기가 많아지며 거만해지던 측면을 부정할 수 없고, 소속사로서도 서서히 통제가 안되어 갔다.
  38. 이에 대한 팬들 입장은 "은지원은 분명 미소년 통신에서 해체는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책임이 있다고 말했으며, 그러한 분위기 탓에 의욕이 상실되어 해체를 결정했다고 하였다."고 말했다는 점을 든다. 물론 해체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 것은 맞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해체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작용하고 있었고, 회사의 분위기는 그 여러가지 이유들 중 하나일 뿐이다.
  39. 격차의 정도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갈릴 것이다. 일단 공식 음반판매량은 젝키가 35만장 H.O.T.가 138만장이다. 하지만 젝키의 경우 탈세 목적의 음반판매량 축소가 있다고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젝스키스/음반 판매량 축소 의혹 문서 참고. 팬들은 '최소 80만장은 팔았다'며 80만장에서 더 이상 양보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는데, 제3자 입장에서는 80만장도 동의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9월 10일자인 발매 이틀만에 60만 장 팔았다는 일간 스포츠의 기사와 9월 22일자 스포츠 투데이 기사에서 7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대목을 언플성이 섞여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판매량에 대해 언플하는 기사는 다른 가수들의 경우에도 무수히 많다. 이에 대한 비판 의견 측 입장은 다음과 같다. 각자 판단하기 바란다. "9월 초의 60만 장과 9월 말경의 70만 장 달성(컴백 활동 마무리 시점으로 예감 활동 전이다.)이 언플이라는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시기상으로도 서로 부합한다. 물론 DSP는 이에 대해 반품 때문에 35만 장이 되었다고 공식입장을 표명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유통사 두 곳 중 한 곳을 누락하고 반품은 없다는 도매상들의 인터뷰 내용과 12월에도 음반 판매량 2위를 달렸다는 기사가 있다. 또한 공식 판매량은 음협의 35만 장 뿐만이 아니라 한국 음악 통계 연감의 42만 장도 존재한다. 공식입장조차도 이렇게 일관적이지 않은 게 젝스키스 음반판매량의 현실이다. 물론 어떤 자료의 신빙성의 무게를 둘 지는 위키러들의 자유이다." 다만 아예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짚고 넘어가면 음협의 판매량과 한국음악통계연감 판매량이 차이나는 것은 다른 가수들도 다 그렇다.# 젝키에 비리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한국음악통계연감이 무엇인지 아무리 검색해도 실체가 없다. 다 어떤 개인이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 글일 뿐이다. 비판의견 측에서 달아놓은 출처도 불펜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 개인이 쓴 글이다. 이에 한국음반통계연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댓글이 달려있기도 하다.# 아무튼 젝스키스/음반 판매량 축소 의혹에 비판 측 의견이 작성해놓은 문서가 있으니, 자료들의 출처를 다 클릭해보고 각자 판단하기 바란다.
  40. 다만, 전술했다시피 망했다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H.O.T.이다. 50만 장이나 80만 장 이상은 당시의 기준으로도 결코 망한 앨범이 아니다.
  41. "DSP가 젝스키스 팬덤을 자극한 것은 해체 4달 전에도 있었으며, 그 1998년부터 종종 있어왔다. 다만, 젝스키스 팬들의 위와 같은 행동들은 해체 전후의 일이다. 시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그 행동들이 결코 정당화될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라고 위 비판의견이 여기에 적었다. 맞는 부분도 있지만 핑클에 대한 행동은 99년부터 있어왔다. 해체 4달전에 나온 해체 기사는 팬들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99년말부터 멤버들에게서 해체 이야기가 나와 해체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호연에 대한 욕설도 해체 콘서트로 갈수록 심해진 것이지, 유언비어 유포나 '뻑큐 씹탱 개호연' 정도 욕설은 해체 이전에도 있어왔다.### 해체 전후로 강도가 매우 심해져서, 오늘날 같으면 바로 고소미 먹을 유언비어나# 다음과 같은 현수막 문구들이 있었다.# D.S.P 두고 보자 / 개좇십창 창녀 썅클 / 썅클은 창녀래요 / 뻑큐 씹탱 개호연 / 이호연 죽여라 / 창녀 핑클 / 이호연 너 나랑같이 죽자 / 이호연 너의 정력에 무릎을 꿇는다 / 이호연 제삿상에 옥돼지 머리 놔주마. / - 호연씨 사랑해요. 당신의 효리가 - / 이호연 너의 그녀들을 찾으려면 창녀촌으로 오너라 / 나는 개호연이다 나는 미친놈이다 나는 오늘 뒈졌다 속보 6월18일 2시 이호연 젝키팬에게 맞아 사망.
  42. 일단 은지원, 강성훈 2명은 이호연이 하와이에 가서 직접 데리고 왔다. 이호연 사장이 하와이의 클럽 사장과 친분이 있어 둘을 발견할 수 있었다.(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 이외 4명이 문제인데 고지용 영입은 전적으로 강성훈의 친구였던 사실 덕분이지만, 나머지 3명은 강성훈 아니었으면 젝키 멤버로 뽑히지 않았을거라고 볼 수는 없다. 장수원은 기존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장도 강성훈과 마찬가지로 솔직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서 뽑고 싶어 했다. 김재덕과 이재진은 이호연이 인맥이 있던 이주노 소속사에 찾아가 직접 데려온 인물이다. 김재덕의 경우 이날 장수원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이 사실 뽑기 싫어했다. 이재진의 경우 이호연이 코가 크다며 뽑기 싫어했는데, 기존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은지원과 김재덕이 이호연을 설득해 뽑힐 수 있었다.영상 14분부터 한편 고지용의 경우도 이날 강성훈은 고지용 쪽이 먼저 가수가 하고 싶다고 자기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는데, 기존에 고지용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즉, 강성훈의 말에서 '고지용이 가수를 하고 싶어했다' 라는 것은 먼저 가수를 하고 싶다고 자기 의견을 낸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강성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뒤 설득 끝에 승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호연은 고지용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캐스팅 되는데 문제는 없었다. 핑클의 옥주현처럼 강성훈이 젝키 멤버 구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강성훈이 젝키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43. 수록곡 중에서도 명곡들이 많다. 뫼비우스의 띠 같이 '이게 젝키 노래였어?'라고 하는 곡들도 상당수 있다.
  44. 아무튼 팬들 입장에선 음악방송이며 각종 예능에서 거의 1년 내내 젝키를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때에 익숙한 일부 올드팬들은 재결합 후 젝키의 신곡 활동이 2~3주란 소리를 듣고 적응 못하고 있다.
  45. 원문: 업계 관계자들은 “DSP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는 DSP의 설립자인 이호연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DSP 설립 초부터 줄곧 기업의 경영·기획 등을 비롯해 가수의 앨범 제작까지 손수 돌보며 기업의 성장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1981년 한밭기획, 1989년 대성기획 등을 거쳐 1991년 DSP를 설립했다. 실력 있는 제작자로 유명세를 탄 후 데뷔시키는 가수마다 정상에 올려 ‘스타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큰 부침 없이 기업의 덩치를 키워내 경영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 원문: 대성기획의 수장은 80년대 소방차를 대스타로 만들었으며, 90년대 잼 젝스키스 핑클, 2000년대 SS501 등 수많은 스타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킨 이호연 대표였다. 물론 이호연 대표는 DSP의 사장도 맡았다. 추진력과 스태프 관리에 있어 가요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호연 대표가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대성기획 및 DSP는 이수만 사장의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사실상 국내 양대 가요 기획사로 군림했다.#
  46. 그러나 드라마형 뮤직비디오는 H.O.T. 말고도 유승준, 조성모 등 이미 98년무렵부터 일종의 유행이 시작되었다. 물론 젝스키스도 뒤늦게나마 99년에 시도를 했지만 그 결과물들은.. 또한 팬덤 문제는 김기영이 해체의 하나의 원인이 되었음을 푸념하였다. 결코 무관하지 않다.
  47. 컴백 자서전 강성훈 어머니 부분: "저 가수가 될래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전화에 나는 몹시도 당황했었다. 한국에 있어도 불안했을 텐데, 미국에서 가수제의를 받았다는 말에 나는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늘 아들을 믿었던 나는 무작정 반대만을 할 수는 없었다. 성훈이에게 가수가 될 것 을 제의했다는 기획사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걱정과는 달리 DSP는 평판이 좋은 기획사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마음을 바꾼 것은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의 이호연 사장님을 만나면서였다. "어머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훈이는 재능이 많은 아이입니다. 키워보고 싶습니다." 한시름 놓긴 했지만, 사실 성훈이의 첫방송을 보기 전까지 마음속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 김재덕 아버지 부분: 서울에 올라가서 가수가 되겠다고 했을 때도 차마 말릴 수 없었다. 부모로서 특별히 잘해 준 게 없이 때문에 저 좋아서 하겠다는 데 말릴만한 명분이 없었다. 더욱이 사장님께서 함께 부산에 내려오셔서 "염려하지 마세요, 좋은 가수로 키우겠습니다"하는 바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