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문서 : 젝스키스
목차
1 개요
- 멤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트리비아 항목에서 오랫동안 서술되어 있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아래 내용이 팬들에 의해 각종 사이트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후술하는 바와 같이 틀린 정보가 많아 문제다.
- "멤버들이 고생을 무척 많이 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잡지 인터뷰에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굶어’라고 밝히기도 했으며, 심하게 얻어맞기 일쑤였다. 숙소도 없어 이재진과 김재덕은 청소 아주머니의 집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으며, 이 둘은 유독 심하게 학대당했다고 한다. 당시 미성년자인대다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었음에도 술자리나 나이트클럽 등 밤무대에 올라야 했다. 리더인 은지원이 이것을 막겠다고 하다가 많이 맞았다. 해체 당시에도 막겠다고 대들다 호되게 당했다. 컴백 활동 당시에는 너무 많이 맞아서 발이 다 망가진 상태로 무대에 올라 격한 안무를 소화하기도 했다. 앨범 제작과 의상, 액세서리, 뮤직비디오 등 활동의 대부분을 멤버들 부모님이 사비로 지원했다. 해체 후 '애들이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해서 가수 시킨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세금을 안내기 위해 음반 판매량을 말도 안되게 축소시켰다. 이래놓고 음반이 50만 장 밖에 안 팔린다며 강제로 해체시킨 거다. 그럼에도 한달에 100만원 밖에 못 벌었다. 해체 당시 멤버들이 단체로 이적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강제로 해체시켰다."
- 게다가 그런 허위 내용을 영어로 작성해서, 해외 K-POP 팬들한테 까지 퍼트리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이 정도 머리를 가지고 있으면 자기가 쓰면서도 허위와 과장이 상당히 섞였다는 점을 알텐데, 왜 이런 행동을 하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그 내용 중 문제가 되는 점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에서 퍼뜨린 루머보다 더 악의적인 면도 있을 정도다.
- "멤버들은 폭행을 당했다. 미성년자임에도 불구하고 성인 나이트클럽 술자리에 불려갔고, 이에 응하지 않으면 야단맞았다. // 타이틀 곡에 대해 뮤직비디오도 찍어주지 않았다. // 핑클이 나오자 젝키를 차버리고 핑클만 키워줬다. 이 때문에 99년도 젝스키스가 부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99년도 SBS 가요대전에서 핑클이 대상을 탔는데, 나중에 팬들이 대상 트로피에 젝스키스라고 적혀있는 점을 밝혀냈다. // 당시 소속사가 4집 판매량을 35만장이라 발표했는데, 이를 근거로 젝스키스가 낮은 보수를 지급받았다. // 2000년도 당시 젝스키스 멤버 전원이 YG로 이적하려 했지만, 소속사는 핑클의 인기에 누가 될까봐 그것을 막았다. // 젝스키스 멤버들은 단지 3년 동안 2억을 벌었다. // 해체 이후 고지용은 연기자로 전향했지만, DSP가 계속 막아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은퇴당하고 말았다. 이재진은 2005년 해체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 DSP가 활동을 막았고, 이 때문에 2016년 무한도전까지 연예계로 복귀하지 못한 것이다."
2 폭행당하며 살았는지 여부
일단 폭행당하며 살았다고 쓴 부분에 대해서 보면 신빙성이 별로 없다. 절친노트에서 밝혀진 은지원이 매니저에게 하던 행동을 보면, 은지원이 노예처럼 얻어터지고 살았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해당영상 방송내용을 글로 설명하자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은지원이 휴대폰 안테나로 매니저 귀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고 한다. 그러자 매니저가 하지 말라고 뿌리쳤는데, 그 순간 은지원이 휴대폰을 땅에 빡 집어던졌다고 한다. 이를 본 god 박준형이 김태우한테 쟤 이름 뭐냐고 물어본 다음, 다음주 가요프로에서 만나면 화장실 데리고 가서 죽여버리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태우가 죽어라 말렸다고...[1] 기타 MBC '놀러와' 출연 당시, 옥주현이 핑클 활동 때 스케쥴이 너무 많아서 매니저를 괴롭혔던 이야기를 하자, 은지원이 저거 우리가 하던 방식 따라한거라고 말하기도 했다.영상 1분부터
특히 은지원 당고모가 박근혜인데 소속사가 미치지 않고서는 은지원을 팼을까. 사실 이것이 기타 루머들을 꺾을 가장 강력한 반증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1998년의 국회의원 당선으로 정치에 공식적으로 뛰어들었으며, 2000년에는 한나라당 부총재까지 된다. 즉 젝스키스의 활동 기간과 맞물린다는 이야기. 또한 은지원의 집안 자체가 박정희와 혈연 관계가 있다는 점은 은지원의 집안 차원에서 박근혜 외에도 알고 지내는 정관계 인사들이 있을 것이라는 점 또한 시사한다. 박정희, 박근혜 같은 정계의 거물과 혈연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고작 연예 기획사 사장이 단순 갈굼도 아닌 구타와 폭행 같은 어처구니 없는 짓을 했다는 말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셈. 팬들은 젝키 활동 당시에는 소속사가 은지원이 박정희, 박근혜와 연관된 사람인 점을 몰랐을 것이라 주장하는데 신빙성이 없는 말이다. 팬들 입장에서 몰랐던 것이지, 당시 연예계에서 이호연 대표의 위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결정적으로 해체 직후 멤버 부모[2]의 인터뷰를 보면, 전반적으로 소속사에 불만 가득한 어투로 인터뷰 하는데도 맞았다는 건 말도 안된다고 밝히고 있다#. (원문: -매를 맞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사실인가요? / 에이∼ 그건 아니에요. 매를 맞고 그냥 있나요?)
다만 이재진의 2013년 여성동아 인터뷰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매니저들에게 맞는 일도 다반사였거든요. 그땐 왜 (김)재덕이랑 저만 맞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멤버들은 다 집에 가고, 연습실에 남아 있는 아이들만 꼭 매니저한테 별일 아닌 일로 혼나고 얻어맞고 그랬죠(웃음). 그래도 참 걱정 없고, 힘든 일도 없던 시절이기도 했죠.” 이렇게 이재진 김재덕 두명'만' 맞았다는 증언을 하는데, 잘사는 집안과 못사는 집안 간의 대접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 말은 나머지 4명은 맞고 살지 않았다는 증언이 되기도 한다.
이외 멤버들이 맞았다는 증거로 팬들이 매번 말하는 것이 '매니져가 각목 들고 있는 사진'이 있다는 점이다. 그 사진을 보면 이렇다.[1] 팬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건지 모르겠지만, 일반인 입장에선 저게 어떻게 폭행당했다는 증거사진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갈 뿐이다.
한편 은지원이 4집 당시 발목 부상당한 상태로 무대에 올랐는데, 그 사실 가지고 '소속사에서 맞아서 발이 망가진거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아이돌의 춤 자체가 격하고 스케쥴도 많기 때문에, 아이돌이 부상당한 채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다. 그럼 그 사례 전부 다 소속사에서 맞아서 그렇게 된 것인가? 요즘 같으면 발목 부상당했는데 무대 올랐다는 것은, 부상투혼으로 포장하며 언플할 좋은 소재거리다. 실제로 그렇게 언플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리고 팬들이 더 잘 알테지만, 은지원 성격에 무대 서는 것이 가능하긴 한 상태인데 의사 말 듣고 그냥 입원했을지는 의문이다. 좀 참고서라도 무대에 섰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후배 한승연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부상 당했을 때 참고서 무대에 올랐었다. 물론 소속사가 애들 생각해서 무대 못 서게 금지시키고 입원시켰어야지 라고 탓할 수는 있다. 근데 그렇게 안했다고 쌍욕할 건 수는 아니라고 보인다. 그렇게치면 2016년 무한도전도 쌍욕을 먹어야 한다. 몸 상태 때문에 의사가 무대 서는 것을 말리는 멤버도 있었는데, 다들 참고서 무대에 섰다. 무한도전 때는 아름다운 투혼이라 칭송하더니, 저 때는 악덕 소속사라고 쌍욕하는건 이중적 태도라고 보인다. 은지원 발목 부상의 원인은 1999년 9월 17일 99한국슈퍼엘리트모델대회에서 왼쪽 발목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젝키의 후반기에는 폭행은 커녕 아예 소속사에서 통제 자체가 안되는 시점이었다. 2015년 김재덕이 라디오에 출연해서 잠적 사건에 대해 말한 것을 보면, 어린 마음에 머리가 커지면서 회사랑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회사 말을 안 따라줬다고 하면서, 거만해졌다고 밝혔다.영상기사 2000년 초 해체한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 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해체 배경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러가지 이유가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멤버들에 대한 관리가 여의치 않았다’는 점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12월30일 열린 KBS가요대상때의 일이다. 6명의 멤버중 3명이 생방송 2시간전까지 사전 연락없이 리허설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한동안 매니저들과 방송 스태프의 애간장을 태웠다. 그 중 1명은 5분전에야 나타나 하마터면 방송 사고를 낼 뻔했다. 이 사건 외에도 지난 98년 11월에는 역시 일부 멤버들이 잠적해 라디오프로 2개를 펑크내는 등 그동안 몇차례에 걸쳐 멤버 관리에 허점을 노출시켰다."
3 노예 수준으로 혹사당했는지 여부
3.1 많은 스케줄 문제
많은 스케줄 문제를 보면, 97년 4월 15일 데뷔 이후 99년 1월 3.5집 활동마감 때까지 엄청난 스케쥴을 소화한 것은 사실이다. 팬들은 3년 내내 그런 스케쥴이었다는 말을 붙이는데, 99년 1월 이후로는 이전처럼 많은 스케쥴을 소화하지는 않았다.[3] 아무튼 이때 무리한 것이 해체를 불러왔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렇게 연달아 앨범을 내는 방식으로 H.O.T.를 따라잡을 수 있었던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은지원이 해피투게더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해당영상 6분 20초부터) H.O.T.와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뷔초에는 인기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H.O.T.는 활동 후 휴식기가 있던 반면, 젝스키스는 전혀 쉬지 않고 1년에 2~3장 씩 앨범을 내며 활동해서 팬을 늘려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렇게 쉬지 않고 활동한 기간(97년 4월 15일 ~ 99년 1월)의 마지막인 3.5집 커플에서 H.O.T.를 이겼었다. 강타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젝키의 3.5집 커플에 처음으로 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었다고 한다.
만약 젝키가 남들 하는대로 1년에 앨범을 1장씩 내고 5개월 정도 활동했다면, 97년에 1집, 98년에 2집, 99년에 3집, 2000년에 3.5집(혹은 4집), 2001년에 4집(혹은 5집)을 내며 5개월씩 활동한 셈이 된다. 이렇게 했다면 과연 데뷔초 인기 격차를 줄이고 H.O.T.와 견줄 수 있는 라이벌로 성장했을지는 의문이다. 98년에 H.O.T.와 서가대 대상을 공동수상한 것은 젝스키스 커리어의 최고 업적인데, 이는 98년 한해 동안 2집, 3집, 3.5집 활동을 하고, 영화와 뮤지컬을 하고, 음방이며 예능이며 1년 내내 TV에서 얼굴을 비췄기에 가능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 하는대로 98년에 2집 하나를 냈으면 대상을 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3집, 3.5집(혹은 4집)을 내게 되는 99년과 2000년은 god와 신화가 강력히 치고 올라오던 시기였다. 물론 그렇게 휴식을 가지며 활동했으면 멤버들 불만이 줄어들고, 뮤직비디오도 제대로 찍을 시간이 있었다(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곡 퀄리티의 경우, 그때 당시에도 최고 수준급이어서 그 이상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보인다). 그러나 그 정도의 메리트로 빡세게 활동한 것 만큼을 채울 수 있다고 보기엔 무리다.[4] 다만 그렇게 활동했으면 팬덤 크기는 작아졌을지 모르지만, 멤버들이 덜 힘들게 활동하며 더 오래 팬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그렇더라도 당시 아이돌의 한계상 5~6년을 넘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97년 4월 15일 데뷔 이후 99년 1월 3.5집 활동마감 때까지 엄청난 스케쥴을 소화한 것은 사실이다. 정규 앨범 3개[5], 스페셜 앨범 1개[6], 영화, 뮤지컬, 광고, 콘서트 등으로 매우 빡빡하게 활동을 했고, 최근 예능에서 멤버들이 당시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언급하기도 했다. 영화는 아예 내용을 모르는 채로 현장에서 대사 외워서 찍었고, 노래 녹음도 다같이 모여서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소속사에서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냥 일방적으로 스케줄 통보만 계속 했다고 한다. 은지원은 매니저가 조금 자라고 집에 데려다 주길래 씻고 잘 준비를 했는데 매니저가 금방 다시 데리러와서, 빡친 나머지 뒤돌아 누운 채로 'XX, 너 같으면 일어나고 싶겠냐?'라고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출연 안한 예능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후 99년 9월 4집으로 컴백했는데, 그동안은 그렇게 활동이 많다가 마지막 4집 앨범 때는 전에 비해 스케쥴도 적어지고 활동기간도 짧아졌다. 그래서 팬들 사이에 불길한 예감이 돌기도 했다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결국 휴식기간 등 제외하면 2년여 빡세게 활동한 것인데, 이런 짧은 기간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될 임팩트를 남긴 것은 어떤 의미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오늘날 톱아이돌의 스케쥴도 살인적인 것을 보면 소속사의 입장도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스케쥴 굴린 만큼 케어나 대우를 해주며 잡음을 최대한 줄이고 있는데, 당시 젝스키스의 경우 그런 잡음을 없앨만한 환경을 갖추진 못했다고 보인다. 결국 이는 해체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고 일반인 입장에서 동정하며 볼 수준으로 살지는 않았다.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에서 나와있듯이, 활동 당시 명품 옷과 차를 가지고 다녔고, 행사 한번에 멤버당 300만원씩 받으며 다들 여자친구가 있을 정도는 됐다. 심지어 2명은 톱 연예인과 사귀었다.[7] 노예 같은 수준의 생활은 아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강성훈이 2016년 박소현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활동 당시 뒤에서 할건 다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소현도 그건 자기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박소현의 당시 소속사가 DSP였다.[8]해당영상 1분15초부터 인터넷 명언 중 "연예인 걱정은 하는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딱히 이때라고 다르지는 않다고 보인다.
이외 팬들은 젝키의 98년 12월 스케쥴표를 올려놓고 쌍욕까지 하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는데#, 그 정도 스케쥴표의 활동량은 다른 가수들에게서도 꽤 발견된다. 2016년 8월 20일 JTBC 아는 형님에서, 걸그룹 여자친구가 하루 스케쥴이 많을 때는 6개씩 있다고 말하자, 김희철은 데뷔하고 나서 생활을 떠올리며 당시 스케쥴이 새벽 4시에 끝나면 차에서 30분 자고 바로 샵가서 머리하는 식으로, 맨날 30분씩만 자고 일했다고 밝혔다. 핑클은 하루 평균 2시간을 못잘 정도로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했다#. 젝키와 동시대 활동했던 그룹 벅도 당시 "하루 스케쥴이 8개였던 적도 있다. 한 달에 50개의 스케쥴을 소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캔 배기성은 당시 "바쁠 때는 하루에 7개나 스케쥴이 있었다"며 "그때는 자가용, 비행기 할 것 없이 왔다갔다 이동했다"고 밝혔다.# 또한 동방신기의 2008년 7월부터 2009년 7월까지 1년간의 스케줄을 정리한 스케쥴표가 공개됐는데, 입국과 출국을 반복하며 거의 쉬는 날 없이 매일 일정이 3~4개씩 잡혀 있고, '잡지 촬영, 음반 녹음, 뮤비촬영, DVD 촬영, 화보집 촬영, CF 촬영 등은 빠져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돼 있어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의 스케줄을 소화했음을 알 수 있다. 동방신기의 경우 각 나라를 오가며 스케쥴을 한 것이니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기사만 검색 해봐도 계속 나오는 정도다.
이에 대해 팬들은 젝스키스의 스케쥴은 동시대의 가수나 현시대의 가수에게서도 찾기 어려운 정도라고 말하며, 한창 때 하루에 7~8개의 스케줄#이나 많을 때면 17개의 스케줄을 소화#한 점을 근거로 든다. 물론 젝키가 많은 스케쥴을 소화해 힘든 생활을 보낸 것은 맞다. 하지만 그렇게 스케쥴 숫자 경쟁으로 가자면 다른 인기 가수들에게서도 그런 사례는 계속해서 발견된다. 2013년 10월 21일 SBS 힐링캠프에서 장윤정은 신인 시절 "행사"를 12개까지 뛰었다고 밝혔다.[9] 2014년 5월 8일 tvn 택시에서 태진아는 행사를 하루 15개까지 해봤다고 밝혔다. 2008년 9월 1일 MBC 놀러와 방송에서 옥주현은, 당시 하루 스케줄이 10개이고 새벽 3시에 나와 밤 12시~1시에 스케줄이 끝났다고 말했다.1분부터 2010년 4월 7일 MBC 무릎팍도사에서 엄정화는 "스케줄이 바쁠 때는 하루에 10개가 넘었다"며 "라디오, 무대가 각각 4~5개씩 있었다. 이런 생활을 6~7년 계속했다"고 말했다.# 2015년 9월 2일 컬투쇼에서 투투 황혜영은 “하루에 스케줄이 12개 정도였다”라며 “차량으로 이동하는게 힘들어서 헬기와 보트, 오토바이로 이동할 정도로 바빴다”라고 밝혔다.# 황혜영은 채널A 풍문쇼에서는 "음반이 하나 나오면 6개월 활동하는데, 음반 활동을 안 하는 6개월은 드라마, 연극, 광고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스케줄하면 밤부터 또 개인스케줄을 했다. 한 번은 4일간 밤을 새고 주차장에서 쓰러진 적이 있다. 그때 수익은 전부 다 똑같이 나눴다. 당시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했다."고 밝혔다.# 2013년 1월 17일 KBS 해피투게더에서 백지영은 DASH 활동할 때 하루 스케줄이 13개 정도였다고 말했다. 채리나는 룰라 시절 하루 스케줄이 14~15개 정도였다고 밝혔다.# 2015년 1월 26일 SBS 힐링캠프에서 김종국은 터보 시절 하루에 스케줄이 17개였다고 말했다. 워낙 바빠서 비행기만 하루에 5번 탔다며, 화보부터 무대, 예능, 행사 등 정말 많이했다고 설명했다.# 2011년 12월 15일 KBS 해피투게더에서 김건모는 '잘못된 만남' 앨범 성공후 “하루에 라디오까지 합하면 스케쥴이 18개 정도 됐다”고 말했고, “심지어는 그 당시 대구에서 부산을 가는데 헬기를 탔다”고 털어놔 엄청났던 스케줄을 짐작케 했다.# 영턱스클럽 임성은은 하루에 19개 스케쥴을 소화했다고 한다.#
3.2 굶기며 스케줄을 돌렸는지 여부
팬들이 단체로 쌍욕하는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가 이것이다. 팬들은 DSP가 멤버들을 굶기며 스케줄을 돌렸다고 퍼뜨린다.# 팬들은 젝키 멤버들이 인터뷰에서 대놓고 "제일 듣기 싫은 말은 '굶어', '오늘 밤새', '내일 아침부터 스케줄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당시 출연한 방송 중에는 도시락을 먹으려는 젝키 멤버들에게 매니저가 '밥 그만 먹고 다음 스케줄 가자'라고 해서 고지용이 화를 내는 장면이 나간 것도 있다고 말한다.
매니저가 '밥 그만 먹고 다음 스케줄 가자'라고 해서 고지용이 화를 내는 장면의 원본방송은 이것이다.영상 1분20초부터 팬들은 이를 근거로 소속사가 평소에도 굶기며 스케쥴을 돌렸다고 주장하며, 소속사 때문에 젝키의 키가 작은 것이라는 말까지 하며 단체로 쌍욕을 한다.#
그러나 막상 원본 영상을 보면 연출된 장면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어떻게 밥 먹으려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스케줄 가자고 들어오고, 게다가 카메라도 그 타이밍에 딱 맞춰서 멤버들 한명한명 반듯하게 클로즈업이 들어간다. 97년도 당시에는 방송용카메라 크기도 엄청 큰데, 리얼한 상황이었으면 카메라가 갑자기 저런 식으로 찍지 못한다. 카메라 찍는 구도만 봐도 연출이라고 생각된다. 근본적으로는 프로그램 자체가 쇼테마파크라는 예능에서 "젝스키스의 스트레스 지수는?"이라는 주제를 설정하고 촬영한 것이다. 촬영 목적 자체가 하루 동안 젝키가 고생하는 장면들을 담아내는 것이다. 애초에 저런 주제로 촬영한 예능을 다큐로 보며 쌍욕하는 태도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장 저 영상을 봐도 97년도 당시 저렇게 좋은 밴을 타고 다니는데, 평소에 차안에서 이동중에라도 충분히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특히 팬들은 소속사가 식비를 제대로 지급 안해 밥을 못 먹었다고 퍼뜨리는데, 스케쥴이 워낙 많아 밥을 제대로 차려먹을 시간이 없었을지 몰라도 식비는 제대로 줬다. 2016년 10월 12일 JTBC '이달의 행사왕' 방송을 보면, 샵 이지혜는 활동 당시 한끼 식비가 5천원이었다고 하며, 그보다 한참 후에 활동한 EXID의 혜린의 한끼 식비 역시 5천원이었다고 한다. god 박준형은 고생한걸로 워낙 유명한데, 당시 시트콤 1회 출연료 3만원 받은걸 모아서 멤버 전원이 끼니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어서 장수원에게도 젝키 당시 식비가 얼마였는지 물어봤는데, 자기들은 당시 그냥 먹었다고 답했다. 주위에서 부자라며 금수저냐는 반응이 나오자, 그렇게 먹으면 매니저가 위에서 깨졌었다고 밝혔다.[10]영상 3분55초부터 젝키 자서전을 보면, 이미 연습생 시절부터 용돈으로 수표를 쥐어주고 밥 사먹게 했다.[11]
3.3 멤버들이 잠수탔던 일화
젝스키스 시절 멤버들이 단체로 잠수를 탔었는데, 그에 대해 밝힌 방송을 보면 다음과 같다.
2008년 7월 21일 놀러와 힙합특집에서 게스트들이 잠수 탔던 일화를 밝힐 때, 은지원도 젝키 활동 중 잠수탔던 일화를 밝혔다.해당영상 당시 방송이 너무 많고 아무 상의 없이 스케쥴을 계속 잡아서 멤버 단체로 잠수를 탔다고 한다. 잠수기간은 2주정도에 생방만 한 4~5개 펑크를 냈다고 한다ㄷㄷㄷ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패널들이 놀라며 그렇게 했는데 방송가에 어떻게 복귀했냐고 묻자, 자기들은 당시 너무 어렸고 해결은 매니저 형님의 몫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기껏 잠수탄다는 것이, 멤버 집에 단체로 숨어서 매니저가 데리러 오면 부모님한테 '엄마, 나 오늘 없다 그래' '오늘 저희 안 온거에요'라고 시켰다고 한다. 패널들은 '거의 초딩수준이다' '소속사가 순진하다'는 반응이었다. 복귀 이후 방송국에 사죄하는 의미로 스케쥴이 2배 늘었다고 한다. 심지어 H.O.T.가 펑크낸 스케쥴도 대신 뛰어줬다고 한다. 제일 먼저 복귀하자고 한건 은지원이었고(리더라서 제일 크게 혼날 것 같았다고 한다. 근데 자기가 잠수타자고 제안한 것이 함정), 끝까지 반대를 하며 본때를 보여주자는 것이 고지용이었다고 한다. 패널 반응은 엄마 집에 숨어서 뭔 본때냐고 빵 터졌다.
이 사건의 경우 아마 소속사에서 어느 정도 방조했다고 보인다. 뻔히 멤버 집에 모이는데, 집앞에서 지키고 서서 강제로 잡아오려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반발이 더 심해졌을테니 제 스스로 복귀할 때까지 기다렸다고 보인다. 위 패널들 반응처럼 그냥 평범한 연예인이었으면 방송가 복귀가 어려울 정도의 잠적 스케일이지만, 당시 DSP 이호연 사장 정도면 그 정도 무마시킬 파워는 있었다.
한편 위 영상에 대한 팬들 반응은 소속사가 썩을 놈들이라며 멤버들이 너무 불쌍하다는 의견이다. 물론 소속사가 스케쥴을 빡세게 돌린 점은 맞다. 하지만 위 사건에 대해서는 소속사가 더 불쌍해 보이는 측면도 있다. 위 방송의 패널 반응에서 보듯이, 2주 동안의 잠적은 '그렇게 스케쥴 펑크내고 방송가에 어떻게 복귀했냐'고 놀랄만한 스케일이다. 그 기간 동안 소속사는 방송가에 죽어라 사죄하러 다녔을 것이고, 이후에는 다시 방송가에 복귀시키려고 또 죽어라 뛰어다녔을 것이다. 사실 요즘 저랬으면 트와이스 급이라도 그냥 은퇴각이다.
2015년 4월 20일 김창렬의 올드스쿨에 김재덕이 출연했을때, 위 놀러와 방송에 나온 잠적 사건에 관해 김재덕에게 물어봤다.영상기사 그런데 전술한 은지원이 말한 잠적 사건과는, 기간이며 정황이 하나도 맞지 않는다. 은지원이 말한 잠적 사건 이후 또 터진 다른 사건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12] 김재덕 말에 따르면 2주는 아니며, 시기는 3~4집 쯤의 젝키 막판 상황이었다고 한다. 호텔에서 멤버 6명이 모여 이틀 정도 있다가, 비행기 티켓을 끊어서 제주도인가 부산으로 다 같이 내려가려고 했다. 사무실은 난리가 나서 잡으러 다녔다고 한다. 6명이서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에 갔는데, 그때 키 큰 매니저한테 잡혔다고 밝혔다.이 말을 들은 김창렬은 '아, 기영이'라고 바로 김기영 매니저임을 알아차렸다. 도망가려고 했던 이유는 스케쥴이 많아서 그랬던 것도 있고, 어린 마음에 머리가 커지면서 회사랑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회사 말을 안 따라줬다고 하면서, 거만해졌다고 밝혔다.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어휴 고맙습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시다니."라고 할거라고 대답했다. 당시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 스케쥴이 너무 많아 힘들었냐는 질문에는, 힘들었던 것은 맞지만 멤버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밝혔다. 놀 때도 같이 다녔다고 한다.김창렬曰 '그러니 제주도로 6명이서 튈려고 했겠지'
4 멤버들 사비로 활동했는지 여부
액세서리 관련해서는 2013년 김재덕이 라디오 스타 꼬리 특집에 출연했을 때 언급한 적이 있는데, 고지용의 부모님이 금은방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고지용뿐만 아니라 다른 잘사는집 멤버들도 부모님이 비싼 액세서리를 어느 정도 지원해주었다고 밝혔다. 이때 뉘앙스를 보면 회사에서 의상 및 액세서리를 지원하지 않아 멤버들 집안이 부담했다는 게 아니라, 단순히 부잣집 부모가 연예인 아들에게 선물을 해준 정도로 보인다.
의상과 관련해서 은지원이 2013년 은희상담소에서 '데뷔 초에 비닐 의상 하나만 계속 입혔는데, 그게 짜증나서 엿장수 가위로 의상을 찢어버렸더니 회사에서 새 의상으로 바꿔줬다'는 에피소드를 이야기한 바 있다. 의상을 멤버들 집안에서 대부분 부담했다는 것은 확실히 루머로 보인다.
5 술자리 및 밤무대에 불려갔는지 여부
팬들은 젝키가 술자리에 불려갔다고 주장하나 증거가 없다. 증거라고 있는 것은 원문을 틀리게 옮겨적어 조작한 것이다.
당시 멤버들의 부모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2]
Q: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A: 사장님이 밤 늦게 애들을 부르곤 했어요. 어떨 땐 새벽 2시 넘어 부르기도 하고, 자고 있는 애들 깨워서 불시에 나오라고 하는 거에요. 애들이 새벽에 불려가서 뭘 배우겠어요? 자꾸 애들 정서에 맞지도 않는 이상한 걸 막 하게 하고 그러니까 애들도 싫어하죠. 신인 때야 아무말 못하고 불려가고 했지만 인기를 좀 얻고나니 반항도 하고 그러는거죠. 그걸 가지고 기획사에서는 건방지다고 하고. 그러면서 매니저랑 사이가 안좋아지고 사장님 눈 밖에 나기 시작한거죠."
그런데 이렇게 쓰여 있는 것을 일부 팬들은 일부러 "술자리에 불려갔다"라는 말을 멋대로 집어넣고 다음과 같이 옮겨 적어 각 사이트에 퍼뜨렸다. 이렇게 술자리 불려갔다고 조작해 적은 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발견된다.##
Q: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A: 사장님이 새벽에 애들을 술자리에 부르곤 했어요. 어떨 땐 새벽 2시 넘어 부르기도 하고, 자고 있는 애들 깨워서 불시에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애들이 새벽에 술자리에 불려가서 뭘 배우겠어요? 자꾸 애들 정서에 맞지도 않는 이상한 걸 막 하게 하고 그러니까 애들도 싫어하죠. 신인 때야 아무말 못하고 불려가고 했지만 인기를 좀 얻고나니 반항도 하고 그러는거죠. 그걸 가지고 기획사에서는 건방지다고 하고. 그러면서 매니저랑 사이가 안좋아지고 사장님 눈 밖에 나기 시작한거죠.
술자리에 불려간 것은 핑클이다. 당시 이호연이 새벽에 재벌 오너들과의 술자리에서 소속 가수 핑클을 불러내서 핑클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13] 사실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술자리에 핑클을 부르면 불렀지 남자아이돌인 젝스키스를 부르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나마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전술한 것 처럼 인터뷰 원본을 일부러 틀리게 옮겨적여 조작한 증거를 빼고는 찾을 수 없다.
새벽에 갑자기 부르는 것은 군기 잡는 일환의 일 등으로 추측할 수는 있겠지만, 분명한건 밤에 불렀다는 것만으로 술자리에서 시중들었다고 확정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술자리 시중을 들었으면 부모들이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이야 잡지의 스캔본이 있어 원본을 볼 수 있지만, 그동안은 “술자리에 불려갔다”는 말을 일부러 넣어 옮겨적은 텍스트 때문에 젝스키스가 술자리 시중을 했다는 것이 100% 사실인 마냥 퍼졌다.
이외 젝키가 나이트 밤무대 행사를 엄청 돌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찾아보면, 마땅히 증거가 없다. 당시 젝스키스의 어마어마한 인기를 생각하면, 게다가 밤무대 행사 엄청 돌았으면 증거가 뭐라도 있을텐데 말이다. 단지 지방 나이트클럽 전단지에 젝스키스 사진이 붙어있었다는 말만 보인다. 다들 아시다시피 90년대 당시 나이트클럽 전단지에 연예인 사진 도용해서 출연한다고 사기치는 것은 밥 먹듯 행해지는 일이었다. 만약 위 멤버 부모의 발언을 가지고 밤무대를 뛴 것이라 본다면 억측이다. 설령 밤무대가 사실이라면, 스케쥴을 사전에 알려 메이크업도 하고 공연 준비를 대충이라도 해야 될텐데, 무슨 날벼락처럼 자고 있는 새벽에 갑자기 부르겠는가.
6 강제로 해체당했는지 여부
해체의 경우 젝스키스/해체 문서를 참조 바란다. 젝스키스 해체는 매우 큰 이슈였고, 이후 십수년 동안 멤버들이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이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그 발언들을 모두 정리해놨다. 요약하자면, 멤버들 중 해체를 원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가 나뉘었다(물론 소속사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해체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게된다. 은지원과 강성훈은 해체를 하자는 쪽이었다.
이렇듯 멤버들이 방송에서 몇번이고 해체에 대해 말했지만, 일부 팬들은 그 발언들을 부정하며 이호연과 DSP가 뒤에서 억압해 강제로 내뱉는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신빙성이 없는 말이다. 애초에 이호연은 뇌졸중으로 2010년 이래 계속 거동이 불가능하고 말도 못하는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다. 이호연이 쓰러진 뒤 아내가 대표이사에 취임하면서 기존 직원들이 대거 쫓겨나거나 나갔다. 그래서 현 DSP에 젝키 시절 직원은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 DSP는 오늘 내일 하는 암울한 처지인데, 그 정도 권력이 있을리 만무하다.
한편 이재진이 2005년 케이블 방송(해당영상)에서 소속사를 옮겨 젝키를 하려고 했는데 강제해체 당했다고 발언한 것이 문제가 됐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 그 말 뒤에 "또 나는 다른 친구들 의견을 되게 존중하는 편이고, 하도 그러니까, 확고하니까, 어쩔 수 없이" 라고 말하며 해체를 하자는 쪽의 멤버들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PD가 뒷 내용을 잘라버려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즉 이재진의 발언은 이재진 입장이지, 멤버 전원 의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젝스키스/해체 문서에서 보듯이 다른 멤버들도 방송에서 수없이 해체에 대해 이야기해왔는데, 이재진과 같은 발언을 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2016년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본인이 해체하기 싫어 지방으로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해체 날짜가 한달 가까이 미뤄졌었다. 다른 멤버들은 이날 이 사실을 알고 매우 놀라워했다. 이렇듯 이재진이 유독 심하게 반대했었던 것이다. 부모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재진이 무한도전에 밝힌 바에 따르면 해체 당시 부모님이 "젝스키스 은퇴했을 때 많이 원망하셨었다. 부산에 내려올 생각을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고 말하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다른 부모님이 해체 직후 응한 인터뷰를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해체 얘기는 작년 연말부터 나왔어요. 그때 엄마들끼리 모여서 사장님한테 '해체 하려면 질질 끌지 말고 빨리 해라' 고 얘기하곤 했어요. 애들이 인기 얻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이가 벌어졌으니까요." 이와 같이 입장이 갈린 이유에 대해 보면, 냉정하게 말해서 빈부 격차가 원인이었던 점을 부정할 수 없다.
2016년 10월 17일자 일간스포츠 기사에 해체에 대해 입장이 갈린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3] 무한도전에 이어 이재진이 끝까지 반대했던 점이 다시 밝혀졌다. 과반수가 해체에 동의를 했다고 하므로, 은지원, 강성훈, 고지용, 장수원의 4명과 김재덕, 이재진의 2명으로 입장이 갈렸을 것이다.
-해체 당시를 떠올려 볼까요?지원 "3.5집과 정규 4집까지 성적이 나쁘진 않았지만 이제부터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한참 인기 많을 때 해체하는게 맞다고 생각했고 물론 동의하지 않는 멤버도 있었고요."
재진 "동의 못 했어요. 동의하지 않은 채로 해체됐죠.(웃음)"
지원 "과반수가 문제에요. 과반수 이상이 동의를 해 해체했어요."
성훈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해체하지 않았으면 지금 이 자리도 없었고 더한 특별함도 없었겠죠."
7 정산 문제
정산의 경우, 당시 젝스키스의 인기에 비해 멤버들이 적게 벌었다고는 하지만 한달에 100만원 벌었다는 말은 거짓이다. 훗날 멤버들이 직접 밝힌 바와 90년대 당시 소속사의 수입 규모에 대해서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에 서술되어 있으니 참조 바란다. 간단히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근거와 출처는 위 문서에 모두 적혀있다.
이재진은 데뷔 몇달만에 부모님 집 사드리고 남을 만큼 벌었다고 하고, 당시 행사를 한번하면 멤버당 3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은지원이 '멤버당 2억씩 벌은 것 같다'고 한 말 때문에 이것이 사실로 확정되어 퍼져있는데, 이보다는 더 벌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른 증언들이 존재하긴 하는 것이다. 설령 은지원의 말이 정확하다고 하더라도, 연봉으로 실수령액 7천만원 가량이 되는 수준이다. 당시 대졸 신입 월급 평균이 130만원 할때이다.
그리고 DSP가 젝키로 몇백억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허무맹랑한 소리다. 당시 아이돌 업계 1위이던 SM엔터테인먼트를 보면, 전술한 바와 같이 97년도 순이익은 2억원, 98년도 순이익은 9억원, 99년도 순이익은 31억원, 2000년도 순이익은 12억원이었다.[14] 90년대 말 가수의 수입에 대해서는 동아일보 1999년 9월 29일자에 자세히 나와있는데,[15] 이를 토대로 추론했을 때 DSP는 젝스키스로 40억~60억 사이의 돈을 번 것으로 보인다. 은지원의 2억 벌었다는 말이 정확하다고 가정하면, 대략 3:7에서 2:8 사이의 비율로 수익배분이 이루어졌다.
이외 이상호 기자가 "99년 11월 이후 (9개월 간) 93만 원 받았고, 그 후로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보도를 내보낸 것은, 앞에 "앨범판매대금"이란 단어를 빼서 내용을 왜곡한 부분이다. "앨범판매대금 항목"에 관해서 99년 11월 이후 93만원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젝키의 마지막 앨범인 4집은 99년 9월 9일에 발매됐다.
기타 영화 세븐틴의 개런티로 3억을 받았다고 해도, 업계 평균으로 계산해보면 멤버 한명당 버는 금액은 2천만원 못 미치는 정도다. NRG가 한달에 1억 5천만원 벌었다는 이야기는 천명훈이 허위사실이라고 밝힌 바 있다. H.O.T.의 1집 정산금액이 1억 2천만원이라는 말도 허위사실이다. 문희준이 H.O.T. 시절 15억짜리 광고를 찍었을 때 1억 2천만원을 주고 어떤 집을 샀다고 했을 뿐, 1집 정산금액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팬들이 부러워하던 H.O.T.의 경우, 활동 당시 음반 한장당 100원으로 멤버당 20원을 받았다고 밝혀졌다.# 젝스키스가 SM의 계약서대로 계약했다면, 음반 총 판매량이 223만장(다만 이는 축소 의혹이 있는 공식 기록이다)이니 멤버 1인당 3716만원 밖에 받지 못한다. 90년대 당시 가요계 전반의 가수 대우에 대해선 각주 참조.[16][17]
8 음반 판매량 축소 신고
탈세목적으로 소속사에서 음반판매량을 축소 신고했다는 것에 대해서 보면, 젝스키스/음반 판매량 축소 의혹에 앨범 별로 정리되어 있으니 이를 참조 바란다. 이 부분은 상당히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MBC 이상호 기자가 취재하기도 했다. 이후 이호연은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소속사 사장을 경찰조사까지 받게 만든 젝키 팬들의 위엄이다ㄷㄷ 당시 경찰조사를 받은 이유는 음반판매량 축소와 팬클럽비 유용이다.# 이때 무혐의처분을 받았는데, 이상호 기자의 후일담에 따르면 탈세와 관련해선 나중에 수억원 추징금을 물었다고 한다.
9 멤버들의 솔로 활동을 방해했는지 여부
해체 후 멤버들의 솔로활동에 있어, 일부 팬들은 DSP 이호연이 악질적으로 방해한 것 때문에 솔로 활동 성적이 안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고지용의 경우, 2001년 KBS 드라마 쿨에서 캐스팅 취소된 것은 이호연이 사주한 것이고, 이후 연예계에서 은퇴한 것도 이호연이 강제적으로 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젝키의 재결합을 계기로 이 말이 팬들에 의해 각종 사이트에 널리 퍼졌다. 그러나 그렇게 확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을 뿐더러, 무턱대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야 말로 비합리적이라고 보인다. 고지용의 오래된 팬이 외압으로 캐스팅이 취소되거나 연예계에서 은퇴한 것이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소속사 사장이랑 그럭저럭 원만한 관계였고, 캐스팅 취소는 배역이 맞지 않아서 그랬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연기 경험이 전무한[18] 아이돌이 공중파 황금시간대의 드라마에 캐스팅 되는 것이 쉬운 일인가. 게다가 젝스키스가 해체한 마당인 상태였다. 또한 그 취소된 자리에 캐스팅 된 사람이 무려 배우 오지호다. 당시 정황상 캐스팅이 취소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이걸 가지고 무조건 이호연을 죽일 놈이라 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이후 고지용은 팬들에게 기대만 하게 만들어서 죄송하다는 글과 함께 연예계를 떠났다. 고지용 본인이 2016년 무한도전 방송에서 얘기한 바에 따르면, 방송 활동을 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에는 따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자신이 끼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고지용은 젝키 활동 당시에도 외모는 천상연예인인데 성격이 완전 정반대라는 소리를 들었다. 프로그램을 나가도 한마디도 거의 안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당시 인터뷰에서 몇번이고 사업가가 원래 꿈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연예계 떠났을 시기를 보면, 나이가 슬슬 2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무엇보다 2000년도 젝스키스 해체 후 만 3-4년여간 10대들의 이메일 진행을 제외하면 공식적인 방송이나 스크린 활동은 없었기 때문에, 복귀에 대한 부담감도 제법 있었을 것이다. 이후 아이돌 출신들의 수많은 발연기의 역사유노윤호 등 셀 수가 없을 정도를 돌이켜보면, 고지용도 만약 연기자의 길을 밀고 나갔다면 궤도에 오르기까지 험난한 길이 펼쳐있었을 것이다.
기타 나머지 멤버들의 솔로활동도 방해받았다는 증거가 없다. 오히려 H.O.T.에서 나온 3명인 jtL의 경우 당시 방송출연불가사태가 이수만 입김이라는 의혹이 매우 크게 일어 수십개의 기사가 나며 사회적 파란을 일으켰다.[19] 젝키의 경우 이런 증거들이 전혀 없다. 당시 팬카페의 글들을 보면, 음악프로에서 1곡 부른 것을 가지고 '원래 2곡 불러야 했는데 뒤에서 조종해서 취소시킨 것'이라는 등의 내용만 보이지, 진정으로 전 소속사 방해때문에 솔로활동이 망했다는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이후 솔로 활동과 관련해선 SM 이수만과 달리 DSP가 질척이지 않는다는 평가도 나왔다. (물론 계약서가 없었다는 측면이 크긴 하다.) 은지원 3집의 만취 in Melody나 제이워크의 Suddenly 같이 노래만 좋으면 대중들은 열렬히 환호하며 좋은 성적이 나왔다. 강성훈의 경우 2004년까지 활동을 하다가 조금씩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는데, 2015년 개인콘서트에서 직접 말하기를 배가 불러서 솔로 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당시 강성훈이 국내에 희귀한 페라리를 몰고 다니는 모습 등에 관해 인터넷에 여러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2015년 레이디경향 인터뷰에서는 강성훈이 "열일곱살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연예인으로 살고 보니 활동에 대한 미련이 점점 없어지더라고요."라고 답했다.#
이외 이재진 3집 활동의 경우, 2005년 젝키 해체에 대해 말했다는 이유로해당영상 전 소속사에서 방해해 방송활동이 줄고 강제은퇴 당했다는 소문이 퍼져있다. 하지만 그렇게 볼 증거가 없을 뿐더러, 이재진은 2005년 4월에 정보처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2005년 9월 306보충대에 입소했다.[20] 군대 문제가 컸던 것이다. 9월달에 입소했을 때는 몸이 아프다며 퇴소했고, 이후 곧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게 됐다. 당시 입소 때부터 이미 많은 양의 병원기록부를 준비해와서 처음부터 퇴소할 생각을 했다는데,[21] 그 자료를 준비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됐을 것이다. 게다가 2005년 이재진의 아버지가 췌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2006년 1월달에 돌아가셨다. 이런 상황이니 방송활동이 많은 게 이상한 것이었다. 이후에는 탈영 사건으로 연예계에 복귀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야 탈영사건이 유명하니 사람들이 왜 연예계에 복귀 안했는지 알지만, 전술한 바처럼 외국 K-POP 팬들한테 DSP가 막아서 2016년 무한도전까지 연예계에 복귀 못했다고 퍼뜨리는건 매우 악의적인 처사다.
10 기타 루머
- 그동안 DSP가 젝스키스 해체하고 나서 찌질하게 상표권 등록을 수차례 시도했다가 실패했다고 소문이 퍼져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DSP에서 젝스키스 상표권 등록을 신청한 사실 자체가 없고, 어느 이상한 기업체에서 신청했다 거절당한 내역만 있다. 여기서 검색 가능하다. [4]
- 일부 팬들은 99년도 SBS 연말 시상식에서 시상 10분 전에 트로피 이름을 바꿔치기 해서 젝키 대신 핑클을 대상타게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근거가 없고 오히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측면이 크다. 당시 핑클 인기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로 하늘을 찔렀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 99년을 돌이켜봤을때, 핑클의 노래와 춤은 여전히 대중들의 뇌리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을 정도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상을 바꿔치기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 팬들은 스티커로 이름을 바꿔치기하여 젝키의 상을 빼앗은 증거라며 다음의 사진을 퍼뜨렸다.[5] 얼핏보면 '최고인기상'이라는 스티커 같은 것이 붙어있으니 그럴 듯한 증거사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체를 보면 99년 SBS 시상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선동하는 거짓말일 뿐이다. 99년 SBS 가요대전에 '최고인기상'이라는 상 자체가 없었다. 2001년에 '최고인기상'이 신설되서 핑클과 강타가 그 상을 탔을 뿐이다.출처 젝키가 참석한 99년 시상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진인 것이다. 위 해외 K-POP 팬들에게 퍼뜨린 내용 중 "99년도 SBS 가요대전에서 핑클이 대상을 탔는데, 나중에 팬들이 대상 트로피에 젝스키스라고 적혀있는 점을 밝혀냈다."고 적혀있는데, 도대체 뭔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이 사진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면 심각한 수준의 행동이라고 보인다.
- 팬들은 소속사와 사장은 젝키에게 제대로 해준 것이 없이 괴롭히기만 했고, 젝키는 멤버 본인들 능력으로 뜬 아이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돌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점을 잊은 듯 하다. 소속사가 키우는 것이 아이돌이다. SM에 비해 뮤직비디오 등에서 딸리는 점이 있었지만, 당시 아이돌 시장에서 SM의 H.O.T. 라이벌을 키워낼만한 역량의 소속사는 DSP 밖에 없었다.
- 우선 S급 멤버들이 한 팀에 모인건 DSP 이호연 역할이 컸다. 2016년 라디오스타 방송(젝스키스 멤버 항목에 설명 있음)을 계기로 일부 팬들은 강성훈이 젝키 멤버를 구성한 것이지 이호연은 젝키를 만든 것에 1도 한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데, 막상 내막을 살펴보면 고지용을 제외하고는 이호연의 공이 크다. 자세한 내용은 각주 참조.[22] 그리고 젝키의 뮤비 퀄리티가 안좋긴 하지만, 대신 비싸고 좋은 작곡가는 많이 섭외해서 겨우 3년 활동인데도 명곡들이 즐비하다. 해체 후 16년이나 지나서 단독 콘서트를 열었지만 오늘날 들어도 좋은 노래가 많아 세트리스트를 충분히 채웠다.[23] 이에 대해 팬들은 작곡가가 곡을 만든거지 이호연은 한게 뭐냐고 욕하는데, 말이 안되는 소리다. 기획사가 아이돌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서포트가 좋은 작곡가로부터 대박날만한 곡을 받아오는 일이다. 이 능력 여부에 따라 아이돌의 성공이 결정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16년 기사만 봐도, 젝스키스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곡 폼생폼사는 이호연 인맥으로 신인 작곡가를 발굴해 대박을 터뜨린 사례다#. 이호연이 쓰러진 이후의 DSP가 레인보우에게 블랙스완같은 망곡을 주며 못 띄우는 것만 봐도, 소속사 사장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외 이호연 까는 용도로 '젝스키스라는 이름 조차 MBC PD가 지어줬는데 이호연은 한게 뭐냐'는 말이 많은데, 그 MBC 은경표 PD가 이호연 인맥이다. 하와이에서 강성훈과 은지원을 스카웃 했을 때, 이호연이 하와이에 간 이유가 은경표 PD랑 놀러간 것이었다. 사장이랑 친분이 두터우니 고민을 거듭해서 젝스키스라는 끝내주는 이름을 지어준거지, 그런 인맥이 아니었으면 이름을 지어줄 리 없었다. 애초에 데뷔하자마자 H.O.T.의 라이벌 포지션으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요 방송에 출연한 것은, DSP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했다(당시의 DSP 위상은 지금과 전혀 다르다). 이후 당시 최고로 인기있던 프로그램들에 젝키가 무수히 많이 출연했는데, 이 역시 소속사의 파워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스케쥴을 매우 빡세게 돌려 원망을 들었지만, 그렇게 쉴 새 없이 앨범을 내며 몰아부쳐 H.O.T.를 따라잡았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2011년 해피투게더 해당영상 6분 20초부터을 보면 다음과 같다. 거기서 은지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H.O.T.와 라이벌이라고는 하지만 데뷔초에는 인기 격차가 너무 커서 따라잡기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H.O.T.는 활동 후 휴식기가 있던 반면, 젝스키스는 전혀 쉬지 않고 1년에 2~3장 씩 앨범을 내며 활동해서 팬을 늘려가, 따라잡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그렇게 쉬지 않고 활동한 기간(97년 4월 15일 ~ 99년 1월)의 마지막인 3.5집 커플에서 H.O.T.를 이겼었다. 강타가 무릎팍도사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젝키의 3.5집 커플에 처음으로 지면서 위기감을 느꼈었다고 한다.[24] 근본적으로 DSP 자체가 거의 이호연 사장의 카리스마, 인맥, 그리고 감으로 유지되던 회사였다. 그가 뇌출혈로 쓰러진 후 DSP가 쇠퇴하자 이 점이 더욱 부각됐고, 이호연의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기사들도 나왔다.[25] 당시 아이돌 시장이 막 형성되고 있던 상황이라, DSP와 이호연 이외에 H.O.T. 라이벌을 키워낼만한 역량을 가진 곳은 없다시피 하기도 했다. 2016년 라디오스타에 젝키가 출연했을 때 해체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자, 사장님과의 관계 때문은 아니라고 밝히기도 했다.
11 외국 K-POP 팬들한테 퍼뜨린 내용 중 잘못된 것들
전술한 외국 K-POP 팬들한테 퍼뜨린 내용 중 대부분은 위에서 실제 사실은 어떤지 서술되어 있다. 빠뜨린 내용만 보면 다음과 같다.
- 타이틀 곡에 대해 뮤직비디오를 찍어주지 않은 것은 2집 뿐이다. 하지만 이는 어쩔 수 없던 것이 1집 활동이 끝나자마자 거의 곧바로 2집이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스케쥴을 빡세게 돌린 점에 대해선 탓할만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그런 방식으로 H.O.T.를 따라잡았기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4집 타이틀 곡 Com'Back은 진원석 영화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김규리(당시 김민선)를 주인공으로 섭외하여 나름 해외 촬영에 헬기까지 동원한 액션극으로 촬영했지만 공개되지 않고 4집 수록곡인 Summer in Love의 뮤비로 바뀌어 콘서트에서 공개돼버렸다.
- "핑클이 나오자 젝키를 차버리고 핑클만 키워줬고, 이 때문에 99년도 젝스키스가 부진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쓰여있다. 그러나 첫 아이돌의 성공으로 번 돈을 다음 아이돌에 투자하는 것은 기획사로서 당연한 행동이다. 오늘날이야 팬들이 기획사 직원보다 아이돌 시장에 더 전문가 행세를 할 정도지만, 90년대 말에는 그런 투자 자체를 이해 못하던 시대여서 그 사실 자체로 소속사를 매우 욕했었다. 하지만 오늘날까지 그렇게 욕하는 것은 악의에 찬 행동이라고 보인다. 게다가 99년도 젝스키스를 차버렸다는데, 당시 젝스키스에게 한 투자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4집의 경우 당시 최고의 프로듀서를 붙여줬고, 활동곡은 물론 수록곡들 퀄리티도 매우 뛰어날 정도로 좋은 작곡가를 붙여줬다. 4집 수록곡들 중 '이게 젝키 노래였어?'라고 할 정도로 유명한 곡들이 상당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뫼비우스의 띠다. 4집 당시 스케쥴이 줄은 것은 멤버와 소속사의 불화 때문인 점이 크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미 소속사의 통제가 제대로 안되던 시점이었다. 그렇다고 방송을 안 시켜준 것도 아니고 서세원쇼 등 주요 방송에 잘 출연했고, MBC 라디오 고정 MC를 잡아줬을 정도다.
- "2000년도 당시 젝스키스 멤버 전원이 YG로 이적하려 했지만, 소속사는 핑클의 인기에 누가 될까봐 그것을 막았다."고 쓰여있는데, YG로 이적하느냐는 루머가 팬들 사이에 돌았을 뿐이지 사실로 확인된 바는 전혀 없다. 게다가 전술한 해체 항목에서 보듯이 멤버들 중 해체하자는 의향을 가진 멤버들이 있었고, 결론적으로 해체하자고 합의가 되었다.
- 팬들은 이재진의 '다 같이 어느 소속사로 옮겨서 젝스키스를 하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강제해체시켰다'는 입장이 원래는 멤버 전원의 입장이었다고 보고, 이것이 좌절되어 해체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볼 증거가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여러 방송에서 수없이 해체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도, 이재진 외에 그런 발언(다 같이 어느 소속사로 이적해 젝키를 하려고 함)을 한 멤버는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젝스키스를 계속 하는 것 자체"에 부정적 의견을 가졌었다는 발언들이 존재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재진이 유독 심하게 해체에 반대한 것이다. 은지원과 강성훈이 DSP에 남아달라는 제안을 거절했다고 해서, 이재진의 입장과 같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2016년 라디오스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거절한 시점은 이미 내부적으로 해체가 확정된 혹은 거의 결정된거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후 솔로를 준비할 생각을 했지, 젝스키스를 계속 하려고 DSP 제안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 "젝스키스 멤버들은 단지 3년 동안 2억을 벌었다."고 쓰여있는데, 저렇게 써놓으면 멤버 전원으로 2억을 벌었다는 내용이 된다. 멤버당 2억으로 전체는 12억을 번 것이다. 게다가 이는 은지원의 추측성 발언에 근거한 것이고, 2억보다 더 벌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다른 멤버들의 증언이 존재하기는 한다.
- "당시 소속사가 4집 판매량을 35만장이라 조작해 발표했는데, 이를 근거로 젝스키스가 낮은 보수를 지급받았다."고 쓰여있다. 그러나 2016년 무한도전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소속사는 은지원에게 4집이 50만장 팔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팬들은 50만장이라고 말한 것도 거짓말이라는 입장이다. 팬들은 당시 기사들에서 젝스키스 4집이 발매 이틀만에 60만 장, 발매 2주 차에 70만 장을 달성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논의는 젝스키스/음반 판매량 축소 의혹 문서 4집 판매량에 대한 문제 목차를 참조 바란다.
12 이런 상황의 근본적 원인
전술한 바와 같이 팬들 사이의 루머는 상당부분 틀리거나 과장된 면이 있고, 이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이호연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고, 이런 루머의 발생과 유포는 다음의 점이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인다. 전에 전혀 없던 새로운 '아이돌 팬덤'이란 것이 생기며, 90년대 당시 DSP는 SM과 함께 엄청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들어온 돈에는 그만한 책임도 따르는 법이다. 팬들은 좋게 말하면 진심으로 나쁘게 말하면 반쯤 미쳐서 젝스키스에 빠져 있었다.그러니 그렇게 돈이 벌린거지 이런 상황인데 3년만에 팀이 해체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물론 멤버 중 해체를 원하는 파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해체의 방식을 그렇게 팬들에게 충격적인 방법으로 해서는 안됐다.
아무튼 젝키의 해체 사건 이후 벌어진 광경들은,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이 갑작스럽게 해체하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한 선례를 남기게 되었다. 덕분에 이후 연예 기획사들은 일정기간 활동의 공백을 두면서 개인 활동이나 유닛 활동 등으로 어느 정도 암시를 준다든가 계약 기간을 연장하지 않고 멤버들이 알아서 흩어지게 하는 등 아이돌의 해체를 공식화하는 것을 피하게 되었다. 젝키가 드림콘서트라는 한국 최고의 무대에서 수많은 관객에 둘러쌓여 해체를 하는 것은 극적이고 타인이 보기엔 감동적인 장면이었지만, 그만큼 젝키 팬들의 감정도 격앙됐다. 훗날 후배 아이돌들이 해체하듯이 최대한 충격을 피하고 시간이 흐르며 흐지부지되는 형식으로 진행됐어야 했다. 다만 젝키의 해체소동을 보고 이후 아이돌 해체 방식이 바뀐 것이기 때문에, 당시 DSP가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을 탓하기 힘들기는 하다.
이런 루머는 2016년 젝스키스의 재결합을 계기로 더욱 유명해지고 널리 퍼졌다. 6년째 식물인간처럼 누워있는 노인네는 갑자기 젝키 팬들에게 각종 쌍욕과 패드립을 엄청 먹고 있는 중이다. 젝키 데뷔때는 태어나지도 않은 신규 입덕한 애들이, 올드팬들 말에 따라 "개호연새끼 뒤져라"는 등의 소리를 외치고 있고, 기존 팬들은 그걸 보고 즐거워하고 있다. 오늘날 젝키 팬덤의 형성과 확장에, 전술한 루머가 일정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젝키 커뮤니티 등을 보면, 이런 루머를 가지고 욕하는 글들이 엄청난 추천수와 많은 댓글을 받으며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동안 와해됐던 팬덤이 뭉쳐지는 것은 물론, 어린 나이대의 신규 팬덤 유입도 활발하게 하며 신규 팬덤과 기존 팬덤의 결합도 끈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신규 팬덤에 있어 저런 루머들은 흥미와 동정심을 유발하며 입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26]
그 루머에 사실인 부분이 일부 있기는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허위나 과장이 많이 섞여있으니, 그걸 퍼뜨리며 욕설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요즘 인터넷 비방글에 대한 고소와 처벌 사례를 봤을 때, 지금까지 올라온 글들을 보면 빼박 처벌 당할 글들이 상당히 많다. 욕 자체가 걸릴 수위인 것은 물론, 전술했다시피 내용 자체가 허위사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호연 자체가 말도 못하는 상태로 누워만 있으니 자신이 직접 고소할리는 없겠는데,[27] 회사 대표로 있는 부인이 하면 가능하기는 하다.요즘 DSP 돈도 제대로 못 벌던데, 이런거로나 돈 버는건 어떨지
현재도 전술한 루머를 근거로 욕을 하는 글들은 계속 올라온다. 만약 당신이 위 근거들을 대면서 '이 부분은 허위사실 아니냐'고 묻는다면, '너 DSP 관계자냐' '나무위키 자료는 전부 쓰레기다'는 말과 함께 욕설을 들을 수 있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젝스키스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글로 써놓으니 정색할만한 이야기인데, 해당 방송 분위기는 유머스럽게 진행됐다. 은지원이 그때 말려줘서 고맙다고 하는 부분도 웃기다.
- ↑ 고지용 또는 장수원의 부모님으로 추측됨
- ↑ 99년 9월달 4집으로 컴백했을 때는 오히려 방송이 왜 이렇게 적냐며 팬들이 항의를 할 정도였다.
- ↑ 사실 젝키 팬들이 부러워하는 H.O.T. 뮤직비디오의 경우도, 오늘날 시점에서 보면 촌스러운 면이 있는건 매한가지다.
- ↑ 당시에는 싱글이나 미니앨범의 개념이 거의 없었고, 오로지 정규 앨범만 낸다음 앨범의 곡중 2~4곡 정도를 타이틀곡으로 정해 수개월간 연속적으로 활동하는게 기본 패턴이었다. 그러나 젝키는 이 정도가 심해서 앨범 활동 종료후 한달만에 새 앨범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으며, 앨범 한장에 4곡 이상씩 선정해 계속 활동을 시키기도 했다. 그에따른 안무증가와 쉴틈없는 스케쥴은 덤. 게다가 이재진, 김재덕은 안무를 직접 만들기까지 해야 했으니..
- ↑ 3.5집 스페셜 앨범이라고 하는데 실질적으로 정규앨범이다. 영화 세븐틴의 OST로 기획된 음반에 수록될 곡이 늘어나자 아예 젝스키스 정식 앨범으로 출시 한 것.
- ↑ 김희선과 송혜교였다는 점이 거의 사실로 굳어진 듯하다.
- ↑ DSP 이호연 사장이 박소현을 발굴해 키운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래서 이날 방송을 보면 박소현은 은지원과 강성훈이 연습생 시절 듀엣으로 데뷔하려 했던 모습도 다 알고 있었다.
- ↑ 잡지 촬영 등의 스케쥴이 아니라 그냥 행사를 12개 뛴 것이다.
- ↑ 이어서 샵과 god는 당시 대기실이 화장실 옆 복도의 의자였는데, 젝스키스와 H.O.T.는 좋은 대기실을 써서 부러웠다는 말이 나왔다.
- ↑ 이재진 컴백 자서전 원문: 당시 재덕이는 멤버라는 이유로 빳빳한 수표를 용돈으로 받았다. 밥먹으러 갈때도 웬지 나는 덤으로 끼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연습할 때 열심히 따라서 연습했고, 내가 아는 것들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몇달 후, 매니저인 기영이 형이 나를 따로 불렀다. "그 동안 너를 지켜봤는데....멤버들에게 춤도 잘 가르쳐 주고 하더구나. 우선. 팀에 합류하는 게 어떻겠니?" 무슨 대답이 필요할까? 대답은 YES 였다. 그렇게 나는 젝키의 새로운 멤버가 되었고, 처음으로 빳빳한 수표를 용돈으로 받는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
- ↑ 일단 은지원이 말한 사건은 기간이 2주인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기간이 겨우 4일 정도다. 잡히는 과정도 은지원이 말한 사건의 경우 자발적으로 돌아간 것인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공항에서 매니저에게 강제로 잡혔다. 은지원이 말한 사건은 이후 방송가에 사죄하는 의미로 H.O.T.가 취소한 스케쥴까지 다 뛰어주며 전보다 스케쥴이 2배 늘었다고 했다. 그런데 김재덕이 말한 사건은 3~4집 때 쯤의 막바지라고 하는데, 젝키의 막바지 상황은 스케쥴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팬들 사이에 불안한 예감이 감돌 때였다. 정황이며 시기를 볼 때 다른 사건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 그리고 3천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호연과 핑클은 젝키 팬들 주장대로 사이가 좋아, 다른 나쁜 일을 시킨 것도 아니고 노래 부른 것 정도로 핑클이 이호연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 출처 출처
- ↑ [6]
- ↑ 사장이 기분이 좋으면 돈 더주고 안되면 말고 식. 예를 들어 몇년 선배인 룰라의 경우 100만장을 팔았지만 정상적인 수익분배는 기대도 할 수 없었다. 예능 방송에서
고영욱이 후배 가수들에게 너네 백만장 팔아봤어? 라고 농담식으로 자랑하자 옆에있던신정환은 그래서 100만장 팔아서 얼마 받았는데? 라고 디스하자고영욱이 데꿀멍 했던 적도 있다. 심지어 심신은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오직 밤무대에서만 활동하는 가수로 전락했다. 그 때가 그랬던 시절이었다. 그냥 사장이 내키는대로 보너스 식으로 돈 더주는 것에 만족했을 정도이며 R.ef의 경우도 자신들의 인기 정점의 시기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밤무대에서 활동 했을 때가 수익적으로 훨씬 나았다고 할 정도. 서지원은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 추모콘서트 등으로 번 수익마저 기획사에서 삼키는 바람에 말이 많았다. 심지어는 레전드로 칭송받는 조용필 조차 자신이 작곡한 곡의 저작권 조차 소속사 사장이 가지고 수익분배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 전엔 돈 문제로 사장한테 얘기했다간 니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잘됐냐는 식으로 사장이 적반하장 화를 내고 협박하는 등의 경우도 많았다. 터보 김종국이 김광수한테 당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김종국이 터보로 활동할 때 당시 소속사 스타뮤직은 조폭계열이었는데, 이 소속사는 터보를 미친 듯이 굴렸다. 전 멤버인 김정남에 따르면 전성기 때는 평소 스케줄이 하루에 10개고 많으면 17개까지 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잠잘 시간은 커녕 밥먹을 시간도 없을 정도의 살인적인 스케줄 속에서 김정남과 김종국은 컴백한 후 한 달 동안 병원 응급실 신세를 세번씩이나 지기도 했으며, 김정남이 '슈퍼선데이' 녹화 도중에 갑자기 쓰러지거나 김종국이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다. 이런 소속사의 행패에 견디지 못한 김종국과 김정남은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터보 멤버는 잠적하고, 경찰은 그제서야 스타뮤직에 대한 수사에 나서가 된다. 당시 터보는 전성기였는데, 실상은 이런 꼴이었던 것이다. 이후 터보에는 마이키라는 새 멤버가 들어왔지만 대표가 그대로이니 만큼 소속사의 수익금 갈취는 이어졌다. 마이키의 증언에 따르면, 김종국은 사장에게 지하실로 끌려가 구타당했다고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이수만식의 앨범당 얼마 등 명문화된 수익분배는 1990년대 중후반 치곤 나름 발전된 체계였던셈이다. 다만 주는 돈이 적었다. 예전 김구라의 시사대담에서 나온 말을 보면, 2000년대초 이재원이 SM 나오면서 한숨쉬며 한말이 '사장님이 장당 백원만 줘도 안나갔을거다'라고 했다고 한다. 당시 CD 한장에 1만2천원정도였다. 장당 100원으로 멤버당 20원씩 받았다고 한다. - ↑ 2016년 기사를 보면 과거 큰 인기를 모았던 베이비복스도 당시 받은 것이 없고 삶이 궁핍해져갔다고 한다. 아직도 못받은 미수금이 있다고 밝혔다. 원문: “그런 감정들 때문에 베이비복스를 관뒀다. 나 혼자 살아남겠다고 한 것보다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못 버틸 만한 상황을 멤버들이 아닌, 소속사에서 만들었다. 아직도 미수금이 있다. 사장님도 괴롭게 하고, 매니저들도 힘들고. 버틸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남들은 건물 몇 채 지은 줄 아는데 우린 받은 게 없었다. 삶도 궁핍해져가고,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사람들과 계속 해나갈 수 있을까 싶었다”기사
- ↑ 영화 세븐틴이 있다지만 연기력 측면에선 감추고 싶은 흑역사다
- ↑ [7] [8] [9] [10] 등
- ↑ [11]
- ↑ [12], [13]
- ↑ 일단 은지원, 강성훈 2명은 이호연이 친분이 있던 하와이 클럽 사장으로 부터 소개 받아 직접 데리고 왔다.(SBS 땡큐 130329일자 방송) 이외 4명이 문제인데 고지용 영입은 전적으로 강성훈의 친구였던 사실 덕분이지만, 나머지 3명은 강성훈 아니었으면 젝키 멤버로 뽑히지 않았을거라고 볼 수는 없다. 장수원은 기존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장도 강성훈과 마찬가지로 솔직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해서 뽑고 싶어 했다. 김재덕과 이재진은 이호연이 인맥이 있던 이주노 소속사에 찾아가 직접 데려온 인물이다. 김재덕의 경우 이날 장수원 폭로에 따르면 강성훈이 사실 뽑기 싫어했다. 이재진의 경우 이호연이 코가 크다며 뽑기 싫어했는데, 기존 방송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은지원과 김재덕이 이호연을 설득해 뽑힐 수 있었다.영상 14분부터 한편 고지용의 경우도 이날 강성훈은 고지용 쪽이 먼저 가수가 하고 싶다고 자기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는데, 기존에 고지용이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가수를 할 생각이 없었고 방송에서도 사업가가 꿈이었다고 얘기했다. 또한 가수를 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도 '성훈이의 추천으로' 라고 대답했었다. 즉, 강성훈의 말에서 '고지용이 가수를 하고 싶어했다' 라는 것은 먼저 가수를 하고 싶다고 자기 의견을 낸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강성훈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뒤 설득 끝에 승낙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보는 게 맞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호연은 고지용 얼굴을 처음 보자마자 바로 OK해서 캐스팅 되는데 문제는 없었다. 핑클의 옥주현처럼 강성훈이 젝키 멤버 구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맞지만, 강성훈이 젝키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 ↑ 수록곡 중에서도 명곡들이 많다. 뫼비우스의 띠 같이 '이게 젝키 노래였어?'라고 하는 곡들도 상당수 있다.
- ↑ 아무튼 팬들 입장에선 음악방송이며 각종 예능에서 거의 1년 내내 젝키를 볼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이때에 익숙한 일부 올드팬들은 재결합 후 젝키의 신곡 활동이 2~3주란 소리를 듣고 적응 못하고 있다.
- ↑ 원문: 업계 관계자들은 “DSP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된 데는 DSP의 설립자인 이호연 대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DSP 설립 초부터 줄곧 기업의 경영·기획 등을 비롯해 가수의 앨범 제작까지 손수 돌보며 기업의 성장을 도모했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1981년 한밭기획, 1989년 대성기획 등을 거쳐 1991년 DSP를 설립했다. 실력 있는 제작자로 유명세를 탄 후 데뷔시키는 가수마다 정상에 올려 ‘스타제조기’라는 수식어를 얻기도 했다. 큰 부침 없이 기업의 덩치를 키워내 경영 능력 또한 높이 평가받았다.# // 원문: 대성기획의 수장은 80년대 소방차를 대스타로 만들었으며, 90년대 잼 젝스키스 핑클, 2000년대 SS501 등 수많은 스타 아이돌 그룹을 탄생시킨 이호연 대표였다. 물론 이호연 대표는 DSP의 사장도 맡았다. 추진력과 스태프 관리에 있어 가요계 최고 수준이었던 이호연 대표가 일선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시절, 대성기획 및 DSP는 이수만 사장의 SM엔터테인먼트와 함께 사실상 국내 양대 가요 기획사로 군림했다.#
- ↑ 저 루머 내용만 놓고 보면 거의 도시전설이나 괴담 급이니 그럴만도 하다.
- ↑ SM 이수만의 경우도 과거에 팬들에게 엄청 욕을 먹었는데, 현재 여전히 권력의 정점에 서있으니 이호연 같은 꼴은 전혀 안 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