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try
귀족으로서의 지위는 없었으나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받은 중간 계층으로 요먼(자유민 부농) 이상, 귀족 이하의 토지 소유자, 즉, 부유한 지주와 법률가·성직자·개업 의사 등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자 및 부유한 상인 등을 핵심으로 한 중산계급의 상부층이다.
가문의 휘장을 사용할 수 있는 계급인 만큼 실질적으로는 봉건 영주에 준하는 지주이며, 영지 규모에 따라 준남작(baronet), 기사(Knight), 향사(Esquire), 신사(Gentleman)등으로 분류된다. 일본의 사족(士族), 조선의 양반 계급과 비슷하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윌리엄 1세의 노르만 정복때 잉글랜드 전역에 봉한 노르만족 귀족 아래에 있던 가신계급들이며 상위 귀족들이 장미전쟁으로 서로 죽이는 통에 숫자가 급감하고 흑사병의 창궐과 백년전쟁이라는 장기간 정쟁을 통해 사회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자 점차 영주에서 지주로 전환하고 사회 영향력을 넓혀갔다.
여기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헨리 8세의 종교 개혁. 이때 영국의 가톨릭 교회가 지니고 있던 토지를 성공회 개혁과 동시에 싸그리 빼앗은 헨리 8세는 이것으로 왕실재정 등을 확충하기 위해 이 토지들을 젠트리에게 매각하게 되고 이를 통해 크게 성장하였다. 이것을 옆에서 보좌했던 토마스 크롬웰도 평민출신에서 상인이자 법률가로 올라선 중산계급이었고 이러한 중산계급들이 젠트리화 되기도 했다. 인클로저 운동의 주체는 바로 이들. 교과서에서 시민 혁명이라고 등장하는 청교도 혁명이나 명예 혁명도 사실은 젠트리가 주도한 사건들이었다.
19세기 이후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이전부터 상공업에 종사하여 부를 쌓은 젠트리들은 자연스럽게 자본가로 전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