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을 환영하는 인천 제물포 지부 건국준비위원회 회원들)
1 개요
여운형이 일제강점기 말에 조직한 지하조직인 조선건국동맹을 중심으로, 8.15 광복 이후에 출범시킨 정치조직. 약칭 건준 혹은 건준위. 영어 명칭은 Committee for the Preparation of Korean Independence 혹은 CPKI.[1]
1945년 8월 15일, 일본 제국이 패망하면서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을 역임했던 엔도 류사쿠가 서울 필동에서 여운형을 만나자고 하였다. 그리고는 치안권과 행정권 등 모든 권한을 여운형에게 이양하여 한반도에서 철수하는 일본인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게 된다. 이에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조건을 제시하였다.
1. 모든 정치범을 즉시 석방할 것.2. 경성 시민들이 3개월 동안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식량을 확보해줄 것.
3. 우리 조선이 주체적으로 치안을 맡는다.
4. 치안 유지와 건설 공사에 총독부는 방해하지 않는다.
5. 학생들과 청년들 활동을 총독부는 방해하지 않는다.
여운형이 총독부와 교섭을 한 이유는 일본군이 철수하기 전에 조선인들을 마구 학살하고 떠난다거나 해방 직후에 민중 내에서 친일파를 처단한다는 이름으로 사적인 감정에 기인한 마구잡이식 보복성 살인으로 사회 분열이 일어나고 혼란이 일어나 힘없는 사람들이 거기에 말려 억울한 피해를 입을 것이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총독부 정무총감은 당시 일제의 패망으로 항복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여운형이 제시한 이 조건에 수락할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여운형은 자신이 이미 1년 전인 1944년 8월에 결성했던 지하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 건국동맹을 모체로 해서 건국준비위원회를 발족시키게 된다. 건준 위원장은 여운형, 부위원장은 안재홍이 맡았다. 아래 첨부된 건국 동맹 강령은 안재홍이 작성하였다.
1.1 건국동맹 강령
① 각인 각파는 대동단결하여 거국일치로 일본제국주의 제세력을 구축 하고 조선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회복할 것.
② 반추축제국과 협력하여 대일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조선의 완전한 독립을 저해하는 일체 반동세력을 박멸할 것.
③ 건설부면에 있어 일체 시정을 민주주의적 대중의 해방에 치중할 것.
1.2 건국준비회 선언
인류는 평화를 갈망하고 역사는 발전을 지향한다. 인류사상의 공전적참사인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우리 조선에도 해방의 날이 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주의적 착취와 억압하에 모든 방면에 있어서 자유의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36년간 우리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을 계속하여왔다. 이 자유 발전의 길을 열려는 모든 운동과 투쟁은 제국주의와 및 그와 결탁한 반동적 반민주주의적 세력에 의하여 완강히 거부되어왔다.
전후 문제의 국제적 해결에 따라 조선은 제국주의 일본의 기반(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 민족의 해방은 다난한 운동사상에 있어 겨우 새로운 일보를 내딛었음에 불과하나니 완전한 독립을 위한 허다한 투쟁은 아직 남아 있으며 새 국가의 건설을 위한 중대한 과업은 우리의 전도에 놓여 있다. 그러면 차제에 우리의 당면임무는 완전한 독립과 진정한 민주주의의 확립을 위하여 노력하는 데 있다. 일시적으로 국제세력이 우리를 지배할 것이나, 그것은 우리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도와줄지언정 방해치는 않을 것이다. 봉건적 잔재를 일소하고 자유 발전의 길을 열기 위한 모든 진보적 투쟁은 전국적으고 전개되었고 국내의 진보적 민주주의적 여러 세력은 통일전선의 결성을 갈망하고 있나니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의하여 우리의 건국준비위원회는 결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본준비위원회는 우리 민족을 진정한 민주주의적 정권에로 재조직하기 위한 새 국가건설의 준비기관인 동시에 모든 진보적 민주주의적 제세력을 집결하기 위하여 각층각계에 완전히 해방된 통일전선이요, 결코 혼잡된 협동기관은 아니다. 왜 그런고 하면 여기에는 모든 반민주적 반동세력에대한 대중적 투쟁이 요청되는 까닭이다. 과거에 있어서 그들은 일본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민족적 죄악을 범하였고 금후에도 그들은 해방 전 조선과 같이 그 건설도중에서 방해할 가능성이 있나니 이러한 반동세력, 즉 반민주주의적 세력과 싸워 이것을 극복 배제하고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하여 강력한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 정권은 전국적 인민대표회의에서 선출된 인민위원으로서 구성될 것이며 그동안 해외에서 조선해방운동에 투신하여온 혁명전사와 그 결집체에 대하여서는 적당한 방법에 의하여 전심적으로 맞이하여야 할 것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조선 전민족의 총의를 대표하며 이익을 보호할 만한 완전한 새 정권이 나와야 하며 이러한 새 정권이 확립되기까지의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본위원회는 조선의 치안을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의 완전한 독립국가조직을 실현하기 위하여 새 정권을 수립하는 한 개의 잠정적 임무를 다하려는 의도에서 아래와 같은 강령을 내세운다.
1.3 강령
우리는 완전한 독립국가의 건설을 기함.
우리는 전민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본요구를실현할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을 기함.
우리는 일시적 과도기에 있어서 국가질서를 자주적으로 유지하며 대중생활의 확보를 기함.
2 여담
건준은 남북과 좌우를 망라하여 한국 현대사 최초로 지방자치를 시행한 조직이다. 후에 조선인민공화국으로 정부화되면서 지부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다.
8월 말까지 민중들의 호응에 부응하여 100여개의 지부가 설립되었다. 해방직후 민중들로부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단체였다.[2]
그러나 38선이 그어져 분단되고 미군과 소련군이 군정을 선포하면서...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3 관련 문서
- 김대중 : 건준 목포지부 활동
- 김성곤 : 건준 경북지부 활동
- 박상희 : 건준 구미지부 개설
- 박헌영 : 건준을 좌경화시킴
- 안재홍 : 건준 부위원장
- 여운형 : 건준 위원장
- 조만식 : 건준 평남지역 위원장
- ↑ The Preparatory Committee for National Construction 라는 번역어도 쓰이는데 CPKI에 비해 빈도가 적다.
- ↑ 1945년 10월, 우파 성향의 잡지사인 <선구>회라는 곳에서 '해방 정국 어떤 지도자가 이상적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했었는데, 1위가 여운형 , 2위가 이승만 , 3위가 김구 , 4위가 박헌영 , 5위가 이관술 , 6위가 김일성 순이었다. 반면, 건준의 최대 적수였던 한민당 인사들은 단한명도 뽑히지 않았다. 한민당은 대부분이 전라도 지역 지주나 친일파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민심 지지기반이 매우 약했다.